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90화 (90/196)

# 90

압도적인 힘으로 (2)

도기태가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했다.

하지만 이 좁은 방구석에서 도망칠 곳이 어디 있겠는가?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지만, 벽으로 뒤쪽이 막혀있자 벽에 등을 붙이고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막아! 저 새끼 막아!”

양쪽에 앉아있던 놈들이 황급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서유림이 주먹과 발길질을 할 때마다 여지없이 나가떨어졌다.

그제야 도기태도 이판사판이라는 듯 맥주병 하나를 집어 들고 휘둘렀다.

서유림이 가볍게 맥주병을 잡아들고는 도기태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딱 한 방에 도기태가 정신을 잃고 주저앉았다.

도기태의 멱살을 잡고 3번 룸을 빠져나왔다. 도기태가 마치 짐짝처럼 질질 끌려왔다.

“사장님이 납치당한다.”

“저 새끼 잡아!”

유흥주점 종업원들이 뒤늦게 주먹을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서유림 근처에 오기도 전에 미끌미끌 쓰러졌고, 간신히 서유림 가까이까지 붙은 놈들도 주먹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서유림의 옷깃 하나 제대로 건드는 놈이 없었다.

꼭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았다. 나는 뛸 테니 너희는 공격하는 척하며 알아서 쓰러지고 피해라.

서유림은 그렇게 무인지경으로 달리며 순식간에 원나잇을 빠져나왔다. 곧바로 승합차 안으로 뛰어들었고, 시동이 걸려있던 승합차는 1초의 낭비도 없이 그대로 출발했다.

승합차에 대기하던 청년들이 도기태의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고 눈을 완전히 가렸다. 그때까지도 도기태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음은 피아노의 오윤진 차례였다.

피아노는 원나잇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채희라는 그곳에도 감시자를 배치해두었다.

“안에 있어?”

“잠깐 나와서 담배 태우고 있습니다. 저기.”

감시자가 손가락을 뻗었다.

오윤진이 보였다. 감시자의 말대로 똘마니 두 명과 함께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무척 여유로워보였다. 원나잇의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잘 됐군!

서유림이 다시 움직였다. 원나잇에서보다 훨씬 쉬웠다. 오윤진은 서유림이 근처에 올 때까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고, 서유림은 그냥 뒤통수를 후려갈긴 후에 짐짝처럼 들고 승합차로 데리고 오기만 했다.

오늘 처리할 일은 모두 끝냈다.

일단은 시간을 흘려보낼 것이다. 시간은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는 치료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의 공포심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도 하니까.

외진 창고에서 온몸이 묶이고, 눈도 가려지고, 입까지 막힌 채 하루 정도 묶여있으면 충분히 두려움을 느끼겠지. 게다가 주변에서 동남아사람들 말소리까지 들리면 더욱 두려워지겠지.

자신들이 불러들인 놈들이 바로 동남아 깡패니까. 그놈들이 얼마나 잔인한 놈들인지는 자신들이 더욱 잘 알 테니까.

“고마워 오빠. 감사해요, 도상국씨.”

“정말 괜찮겠어?”

“괜찮다니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채희라가 의외로 굳센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연약한 여자가 아닌가?

도상국이 서유림의 마음을 읽은 모양이다.

“제가 사장님 곁에 남아있을게요. 형님은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세요.”

도상국이 옆에 남아준다면 그나마 안심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연락 주고.”

“알겠습니다, 형님.”

그제야 서유림이 승합차에서 내렸다. 승합차가 빠르게 사라졌다.

“어머!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있네!”

강은영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라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일인데?”

오영훈, 권진아, 강철중 할 것 없이 팀원들이 관심을 보였다.

서유림도 창고로 향하다가 뭔가 싶어서 강은영의 모니터를 보았다.

기사 제목이 조금 자극적이었다.

[베트남 하노이파 조직원 15명. 흉기 들고 의정부시 외곽의 S모텔 습격]

지난밤 신라 모텔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역시 소식이 빠른 세상이구나. 기사가 벌써 뜨다니.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서유림도 도상국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완벽을 기한다고 신경을 많이 쓰긴 했지만, 혹시 흔적을 남겼으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기사 본문을 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여 CCTV 등을 확인해보았지만, 베트남 조직원들과 싸움을 벌인 자들 모두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신분을 가렸고, 차량 역시 번호판이 위조된 것으로 확인되어 아직까지 신원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조직원 두 명은 한국 조직원들로 보이는 자들에 의해 현장에서 납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베트남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정확히 누구를 노린 테러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 관계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조폭과 동남아 조폭 사이의 세력다툼으로 추정······.

베트남 조직원들은 모두가 불법체류자들로서, 경찰의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후······.]

그 정도면 됐다 싶었다.

하지만 상황을 조금 더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었다.

“저는 그만 창고로 가보겠습니다.”

늦은 오후.

서유림은 퇴근하자마자 강성체육관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서울시 외곽의 창고로 향했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뛰어서 갔다. 인간계에서 마법을 양껏 사용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게 체력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전력으로 달리고 싶었지만, 신호등 때문에 번번이 강제휴식을 당해서 그렇게까지 양껏 뛰지는 못했다.

밤이 완전히 깊어지고 나서야 창고에 도착했다. 창고 인근에서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야 채희라와 도상국이 도착했다.

“잘 될까?”

채희라가 서유림을 바라보며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세상에 100%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서유림이 그 좋아진 잔머리를 한참동안 굴려서 생각해낸 방법이니까.

“내가 준비하라는 건 다 준비했지?”

“응.”

“그럼 잘 될 거야. 내가 잔머리는 제법 돌아가는 편이거든.”

서유림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에 채희라도 용기를 얻은 듯했다.

“일단 이거 받아.”

다들 가면 하나씩을 손에 쥐었다. 얼굴에 붙이는 대신 막대기로 손잡이를 만들어서 쉽게 가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가면이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

함께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에는 유흥주점 업주 두 명과, 베트남 조직원 두 명이 갇혀있었다. 채희라가 고용한 청년들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유흥주점 업주들은 눈과 입까지 모두 막혀있지만, 베트남 조직원들은 눈만 가려져있을 뿐 입은 열려있었다.

서유림이 의도적으로 시킨 것이다. 입이 열려있으면 자기들끼리 실컷 떠들어댈 테니까. 그러면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말도 할 수 없는 유흥주점 업주들은 그 소리에 극심한 공포감을 느낄 테니까.

거의 20시간 가까이 저렇게 묶여있었으니 지금쯤이면 몸과 마음이 모두 녹초가 되어있으리라.

물론 베트남인들도 마찬가지겠지.

먼제 베트남인들을 다른 장소로 옮기도록 했다. 그리고는 업주들 가까이로 다가갔다.

색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자 업주들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웁. 우웁!”

모든 상황은 채희라가 주도하도록 했다. 채희라는 이미 저들에게 노출된 신분이니까.

“일단 입만 풀어줘.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청년들이 다가가서 업주들의 입을 막고 있는 청테이프를 뜯어주었다.

화끈하게 쫘악! 보기만 해도 무척 따끔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아픈 게 문제야?

업주들은 입이 열리자마자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입만 열렸을 뿐이지 눈이 보이지 않으니 그저 고개만 연신 굽실거렸다.

“살려주세요. 제발.”

“저희한테 왜 이러세요? 살려주세요.”

채희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왜 이러냐고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저 죄 없는 술집 주인들일 뿐입니다. 대체 왜······ 억!”

채희라의 손짓에 청년 하나가 업주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놈의 몸이 대번에 새우처럼 굽었다. 명치에 제대로 꽂혔는지 숨도 쉬지 못했다.

“베트남 조폭들을 시켜서 날 공격하게 해놓고 왜 이러냐고요? 그런 식으로 발뺌하는 걸 보니 살기 싫은 모양이죠?”

“베트남 조폭이라뇨.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다른 업주가 대신 나서서 발뺌했다.

“후훗. 그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죠? 그럼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이야기해줄까요? 여러분은 잠시 후 시멘트덩어리와 한 몸이 됩니다. 내일 새벽에는 고깃배에 실려서 바다로 나가겠죠. 그리고 풍덩! 물론 난 모르는 일이고요. 여러분들처럼 딱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오해이십니다. 정말 저희가 한 일이 아닙니다.”

업주들이 끝까지 발뺌했다.

물론 예상했던 일이다. 그래서 준비한 것도 있고.

“눈도 열어줘.”

채희라의 지시에 청년들이 업주들의 눈가리개도 풀어주었다. 하지만 채희라나 서유림 등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업주들의 눈이 열리는 순간 다들 가면을 들어서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곳에서 한 여자가 끌려왔다. 업주들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여자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헝클어졌고, 옷은 군데군데 찢겨져있으며, 얼굴에도 상처가 가득했다.

누가 봐도 심하게 고문당한 몰골이었다.

“이년이 누군지 잘 보세요.”

채희라의 눈짓에 청년 하나가 고개 숙이고 있는 여자의 턱을 바쳐 올렸다.

여자의 얼굴이 강제로 힘껏 쳐들어졌다.

유흥주점 피아노의 업주 오윤진이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했다. 자신이 첩자로 포섭했던 민들레의 여종업원 강민주였기 때문이다.

“다시 데리고 나가.”

청년 둘이 강민주를 창고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업주들의 눈은 다시 가려졌다.

서유림과 채희라 등도 다시 가면을 내렸다.

“이래도 발뺌할 셈인가요?”

업주들이 당황한 듯 말을 하지 못했다. 뭔가 이야기는 해야겠는데, 할 말이 없으니 빈 입술만 달싹달싹했다.

“전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강민주를 통해서 제 위치를 일부러 흘렸죠. 여러분들을 위한 함정을 파놓기 위해서.”

오윤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로소 일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계속 발뺌해보지 그래요? 그래야 저도 여러분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쉽게 굳힐 수 있을 것 아니겠어요?”

“죄송합니다. 장사가 너무 안 돼서 먹고 살려고 그랬습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업주들이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실토하듯 고개를 숙였다.

채희라와 서유림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니까.

서유림이 어서 빨리 준비하라는 식으로 고갯짓을 했다. 주변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채희라는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러면 여러분이 직접 이야기해보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면 죄를 뉘우치고 있다고 생각해드리죠.”

한마디로 살려주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업주들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왜 일을 꾸미게 되었는지, 어떤 식으로 꾸몄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채희라는 중간 중간 부실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을 던져서 확실하게 보충하도록 했다.

“민들레의 텐프로들을 납치한 것도 여러분들 짓이죠?”

“죄송합니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했죠?”

모두 업소에 가둬두고 강제로 성매매를 시키고 있었다. 하나같이 마약으로 올가미를 씌워놓았기 때문에 탈출할 수 없다고 했다.

민희라는 아가씨도 마찬가지였다.

서유림은 순간적으로 놈들의 면상을 갈겨버리고 싶었다. 이런 놈들을 살려두는 게 잘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구를 통해서 하노이파와 연결한 건가요?”

“김포 공항파의 장문석이가 하노이파와 인연이 깊습니다.”

“그 사람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요?”

제법 긴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모두 듣는 데만 무려 30분이 넘게 걸렸다.

덕분에 업주들의 이야기만 가지고 상황의 전말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마치 한편의 단편영화를 이야기로 듣는 것 같았다.

“이제 눈을 열어드려.”

청년들이 업주들의 눈가리개를 풀어주었다.

순간 업주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청년 하나가 비디오카메라로 업주들을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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