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압도적인 힘으로 (1)
봉고차가 모텔 신라로 들어갔다.
봉고차에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운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동남아 계열의 외국인들이었다.
하나같이 손에 송곳이니 쇠파이프니 칼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게다가 눈빛이 번들거리는 것이 비장미가 넘쳤다.
운전자가 승합차를 세우고는 차량에서 내렸다.
뒤에서 대기하던 동남아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 내렸다. 다들 자신만의 흉기를 잔뜩 움켜쥐고 있었다.
운전자가 카운터로 향했다.
늙수그레한 모텔 주인이 손님을 맞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운전자가 다짜고짜 주인의 멱살을 잡았다.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물었다.
“조금 전에 이 여자 안으로 들어갔지?”
모텔 주인의 눈은 순식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사내 뒤에 잔뜩 포진한 흉기 든 괴한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감히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예! 713호······ 억!”
운전자의 주먹 한 방에 모텔 주인이 그대로 기절했다.
“씨발, 높이도 올라갔군. 너희 넷은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다. 나머지는 계단으로 올라가. 7층.”
다들 한국말을 웬만큼은 알아들었다.
괴한들이 계단을 이용해서 7층으로 뛰었다. 운전자도 조금의 시간적 텀을 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유림이 눈을 번쩍 떴다. 채희라가 서유림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오빠, 일어나.”
서유림이 벌떡 일어섰다.
서유림도 채희라도 옷을 모두 갖춰 입은 상태였다.
채희라가 휴대폰으로 온 문자를 보여주었다.
[도착. 봉고차 1대.]
동원한 인원이 생각보다 적군.
서유림이 준비한 복면을 썼다. 일이 실패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신분이 드러나서 좋을 건 없으니까.
“여기서 기다려.”
“예.”
채희라가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평소 안 쓰던 존댓말을 다 쓰네.
서유림이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벽에 세워두었던 1m가 조금 넘는 몽둥이 하나를 손에 쥐었다.
몽둥이를 들고 나니 자신감이 넘쳤다. 정령계에서 마물과 싸울 때 늘 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맨손의 서유림과 칼이나 몽둥이를 든 서유림은 천지차이였다.
서유림이 당당하게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계단에서 우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베이터도 아래층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도착할 것 같다.
봉고차 1대라면 많아야 15명 정도이겠군. 엘리베이터에는 많아야 다섯 명 안쪽일 테고.
그렇다면 계단으로 올라오는 놈들 먼저 처리한다.
굳이 다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줄 이유는 없겠지. 슬립다운 마법을 사용한다면 계단 중간에서 처리하는 게 훨씬 편할 테니까.
먼저 복도의 전등을 껐다. 스위치의 위치를 미리 확인하였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스위치를 찾으려면 어둠 속에서 한참을 허둥대야 할 것이다.
복도가 순식간에 암흑이 되었다.
서유림이 손가락으로 기묘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라이트사이트!’
그러자 주변이 대낮처럼 환하게 보였다.
라이트사이트는 마력 소모가 크지 않은 마법이었다. 1분에 1마력 정도나 소모될까?
서유림의 체력이 500 가까이 되니 1시간 정도 사용한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슬립다운이었다. 마력소모가 큰 마법이니만큼 아껴가며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소모된 마력을 중간 중간 보충할 방법도 있긴 하지만.
서유림이 계단 아래쪽으로 뛰었다.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4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뭐야? 한국 사람이 아니네.
딱 봐도 동남아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손에는 칼이며 쇠파이프 등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놈들도 서유림을 발견했다. 알아듣지 못할 말로 소리를 지르며 더욱 힘껏 뛰어올랐다.
서유림은 놈들이 코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손가락은 이미 기묘한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와라. 조금만 더. 지금이다!
서유림이 속으로 외쳤다.
‘슬립다운!’
선두에서 달려오던 놈이 미끄러지듯 쓰러졌다. 서유림이 그 틈을 노려서 선두에 선 놈을 발로 힘껏 밀었다.
그러자 마치 볼링공이 볼링핀 쓰러뜨리듯 아래에 있던 놈들을 주르르 훑고 내려갔다.
몇몇 놈들은 재빨리 벽에 기대며 피했다.
하지만 그놈들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서유림이 계단 아래로 뛰어내려오면서 다시 슬립다운 마법을 펼쳤기 때문이다.
동시에 손에 든 몽둥이를 휘둘렀다.
너무 힘껏 휘두르면 자칫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힘을 주었다. 그것도 어깨나 무릎처럼 생명에 지장이 없는 곳만 골라서.
아악!
으윽!
언어는 달라도 비명소리는 똑같았다.
모텔 계단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와중에 서유림 혼자서 동분서주하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정확히 열 명이었다. 불과 1분도 안 돼서 열 명의 괴한들 모두를 전투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계단은 놈들의 끙끙대는 신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때 아래쪽에서 다시 우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유림이 피식 웃었다.
‘조금 늦었군!’
이제 엘리베이터 놈들을 처리할 차례다.
서유림이 놈들에게 가도 되겠지만, 놈들을 이쪽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왕이면 계단에서 싸우는 게 훨씬 유리하겠지.
방법은 간단하다.
“희라야. 빨리 내려가.”
서유림이 소리쳤다. 그러면서 쓰러져있는 괴한들을 상대로 체력을 흡수했다. 절반 즈음으로 떨어졌던 체력이 순식간에 가득 채워졌다.
“뭐야? 이놈들은 왜 안 올라와?”
한국 사람의 말도 들려왔다. 계단 쪽으로 올라오던 놈들이 보이지 않아서 당황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엉뚱한 놈의 목소리까지 들려오니 더욱 당황할 수밖에.
서유림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때 계단 위에서 놈들의 얼굴이 보였다. 혹시나 싶어서 계단 쪽을 흘끔 바라보는 듯했다.
사람 심리라는 게 묘한 구석이 있다.
상대가 잡으려고 쫓아오면 괜히 내가 꿀리는 것 같아서 도망가고 싶고, 반대로 상대가 달아나면 괜히 쫓아가고 잡고 싶다.
말하자면 기세 싸움이지.
서유림이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희라야 빨리 달아나. 여긴 내가 막고 있을게. 어서.”
그리고는 놈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놈들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계단 아래쪽으로 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하긴, 복도가 깜깜해서 그쪽으로는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놈들과 계단 중간에서 마주쳤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마주칠 뻔했다. 하지만 그 직전에 놈들이 주르륵 미끄러지면서 계단을 뒹굴기 시작했다.
서유림의 몽둥이가 그런 놈들의 어깨와 팔, 무릎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악!”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나머지는 도상국이 정리할 것이다.
다시 7층으로 올라갔다.
모텔 문을 열었다. 채희라가 몽둥이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입구에 서있었다.
보기보다 당찬 구석이 있다니까.
“이제 가자.”
“벌써 끝났어?”
채희라가 서유림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채희라도 서유림도 복면과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처음 모텔로 들어왔을 때처럼.
“확실해?”
서유림의 물음에 채희라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 퍼센트. 아니 백이십 퍼센트. 말했잖아. 그 새끼들이 우리 민들레 직원을 첩자로 삼으려고 했다고. 그 애한테 직접 확인한 거야.”
그렇다면 100% 확실하군.
서유림의 머릿속에 ‘민희’라는 아가씨의 얼굴이 계속 맴돌았다. 꼭 여동생 같은 이미지였다.
그런 아가씨를 납치해서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설마 마약으로 족쇄를 채운 건 아니겠지?
생각할수록 자꾸만 분노 게이지가 솟구쳤다.
잠시 후, 도상국이 도착했다. 도상국 뒤로는 네 명의 청년들도 함께 있었다. 채희라가 민들레를 비롯한 업소 경비를 위해서 고용한 주먹들 중에서 그나마 힘이 좋은 자들이었다.
원래는 열 명을 동원했었지만, 나머지 여섯 명은 일을 마치자마자 돌려보낸 상태였다.
다들 모자와 마스크 등을 동원해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서유림도, 도상국도, 채희라도 마찬가지였다.
“일은 깔끔하게 처리했어?”
“그나마 얌전해 보이는 놈 두 명은 따로 빼돌리고, 나머지는 경찰에 신고해서 잡아가도록 했습니다.”
“우리 흔적은 안 남겼겠지?”
“머리카락 같은 걸 흘려서 유전자검사라도 한다면 모를까, 지문 같은 건 절대 못 찾을 겁니다.”
도상국이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안심이었다.
CCTV를 통해서 차량도 추적할 수 없을 것이다. 번호판을 엉뚱한 것으로 갈아 끼운 상태니까.
“그럼 이제 진짜 나쁜 놈들을 잡으러 가볼까?”
모두 함께 15인승 승합차에 올라탔다. 동남아 조폭들이 모텔 신라에 끌고 왔던 승합차였다.
“먼저 원나잇으로 가서 도기태부터 잡아. 그놈이 69회 회장이야. 그다음이 행동대장이나 마찬가지인 피아노의 오윤진이야. 첩자를 심어놓은 새끼도 오윤진이야.”
승합차는 채희라의 지시에 따라서 먼저 유흥주점 원나잇으로 향했다.
채희라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도기태 위치 확인해]
그러는 사이 서유림은 명상을 하듯 눈을 감았다.
조금 전 신라 모텔에서의 싸움을 복기해보았다.
사실 몇 군데 다칠 각오를 하고 시작한 싸움이었다. 상대는 수도 많았고, 흉기도 들었고, 무엇보다도 이런 싸움에 이골이 난 놈들이었으니까.
물론 두려움은 없었다. 설령 뼈가 부러진다고 해도 정령 아리안의 힘으로 며칠이면 나을 테니까.
그렇다고 죽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고.
그런데 뼈는커녕 살갗 하나 긁히지 않았다.
완벽한 승리.
마법의 힘 덕분이었다. 특히 슬립다운.
패싸움도 처음이었고, 그런 싸움에 마법을 콤비네이션처럼 사용한 것도 처음이었는데, 너무도 위력적이었다.
그 말은 조금 더 익숙해지고,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인간계에서는 마력이 회복되지 않으니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체력을 소모시켜야 하니까.
상대의 체력을 흡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대비해야지.
즉 지금부터는 완력이나 순발력보다는 체력을 치우는 게 관건이다.
아리안, 지금의 내 능력은 얼마나 되지?
> 근력은 511, 순발력은 501, 체력은 483, 감각은 461입니다.
지금까지는 근력 위주로 운동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체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운동해야 하겠다.
그러는 사이 승합차가 원나잇에 도착했다.
시각은 새벽 2시경.
원나잇의 네온사인은 아직도 화려하기만 했다.
승합차가 도착하자 청년 한 명이 재빨리 뛰어왔다. 채희라가 근처에 심어놓은 감시자였다.
“도기태는?”
“안에 있습니다. 3번 룸입니다.”
감시자가 3번 룸의 위치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서유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도기태의 사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람인데, 선입견 때문인지 딱 봐도 범죄자 상이었다. 주먹을 부르는 얼굴이랄까?
서유림이 승합차를 내려서 원나잇을 향해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서유림은 체육복 차림에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게다가 일행도 없이 혼자.
누가 봐도 유흥주점에 드나들 차림은 아니었다.
당연히 종업원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목소리도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의아함과 경계심이 섞인 목소리였다.
몇몇은 서유림의 앞을 가로막으려고도 하였다.
“잠깐만요.”
서유림은 대꾸하지 않았다. 멈추지도 않았다. 오히려 빠르게 몸을 날리며 종업원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깜짝 놀란 종업원들이 서유림을 붙잡기 위해서 다급히 손을 뻗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완력과 순발력에서 압도적인 서유림은 종업원들 사이를 그대로 지나쳐서 순식간에 3번 룸에 도착했다.
서유림이 문을 활짝 열었다.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다섯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안쪽에 도기태가 보였다. 사진의 얼굴과 똑같았다.
주먹을 부르는 더러운 인상.
놈들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방을 잘못 찾아들어온 사람인가 싶다가 서유림의 기세를 보고는 이게 아닌가 싶었던 모양이다.
“너 뭐야?”
“뭐 하는 새끼야?”
서유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뒤에서 종업원들이 손을 뻗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문을 열고 1초도 안 돼서 도기태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테이블을 밟고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