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88화 (88/196)

# 88

아버지를 부탁해. (2)

> 하위정령의 레벨이 10을 넘으면 다른 대상자와의 계약도, 계약을 해지하고 하위정령을 회수하는 것도 유림씨의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서유림의 눈이 커졌다. 이걸 이제야 생각해 내다니. 바보같이.

‘그런데 계약해지도 내 마음대로 가능해?’

> 물론입니다. 하위정령은 말 그대로 제 분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유림씨가 원한다면 계약 없이 상대방의 몸에 침투시킬 수도 있습니다.

‘계약 없이도 상대방의 몸에 침투시킬 수 있다? 상대방도 모르게?’

> 그렇습니다.

‘그럼 아리안이 내 몸을 치료해주는 것처럼 워리도 다른 사람의 몸을 치료해줄 수 있는 거야? 계약을 맺건 맺지 않건 상관없이?’

> 가능합니다. 다만 하위정령의 힘이 아직 미약하고, 직접 계약된 상태가 아니라면 치료 속도는 조금 느려질 수 있습니다.

역시 그랬어.

속도가 좀 느리면 어때? 그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치료될 텐데.

무엇보다도 기쁜 소식은 굳이 정령과 계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사실 아버지께 정령의 비밀을 가르쳐드리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면 아버지도 인간인 이상 당연히 욕심이 생길 테니까.

특히 아버지는 건강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건강에 대한 욕심이 더욱 크실 것이다. 몸이 충분히 강해진 후에도 정령의 능력을 놓고 싶지 않으시겠지.

하지만 모든 힘에는 책임이라는 것이 따르게 마련이다. 당장은 그 책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그 부담이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당장 서유림만 해도 정령계를 오가며 아리아나를 돕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더욱 무거운 짐을 지게 될 수도 있겠지.

아버지께는 그런 짐을 지워드리고 싶지 않았다. 오직 정령의 혜택만을 누리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 아버지는 정령의 꿀만 빨게 해드리는 거야.’

서유림은 너무 기뻐서 그 자리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당장 아버지께 정령과의 힘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겨우 몇 분 늦어진다고 아버지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까.

일단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해놓은 후에 일을 처리하는 게 안전할 것이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이 숨어있을 수도 있잖아.

서유림은 정령 아리안에게 이런저런 많은 질문을 던졌다. 덕분에 하위정령에 대하여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상대방을 느낄 수도 있다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 흐릿하게나마 감정이나 오감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정령의 능력이 강해지면 상대방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도 가능하죠. 저를 매개체로 해서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하고요.

문득 요정 아리아나와 정령 아리안의 관계가 생각났다.

사실 아리아나도 정령 아리안을 통해서 서유림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정령신의 인터셉트로 소통이 끊어지면서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간단한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니. 물론 계약된 상태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고, 그나마도 하위정령의 힘을 키운 후에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와! 이거야말로 대박인걸!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다면 그 즉시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리안과의 대화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위험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서유림이 의도를 가지고 뭔가를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서유림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리고는 하위정령 위리를 아버지의 몸속으로 침투시켰다.

‘워리! 아버지를 부탁해.’

맞잡은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위정령 워리가 아버지의 몸으로 침투하는 느낌인 듯했다.

아버지도 따뜻한 기운을 느끼셨는지 고개를 돌려서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셨다.

지켜보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요? 어디가 이상해요?”

“아니······. 이상하다기보다는······. 통증이 갑자기······ 사라졌어.”

서유림이 활짝 웃어드렸다.

“드디어 진통제 약효가 나타나나 보네요.”

“아무리 그래도······ 통증이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까?”

“아버지께서 하도 아프다고 하셔서 의사선생님이 진통제를 세게 놓으셨나 봅니다.”

“그······ 그런가?”

닷새 후.

서유림이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을 찾아갔다.

의사는 그때까지도 X-RAY 사진을 보면서 믿지 못하는 표정을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요, 선생님?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어요?”

“아뇨. 그게 아니고······.”

의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X-RAY 사진만 계속해서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엉덩뼈에 금이 간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잘못 찍었을 리는 없다. 너무 이상해서 다시 찍은 사진을 보고 있는 중이니까.

하지만 놀랄 만큼 깨끗했다. 최소 한두 달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겨우 닷새 만에 치료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물론 서유림은 태연했다.

‘빨리 결론을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왜 저렇게 질질 끌어? 돌팔이 의사인가?’

어딘가 그래보였다. 젊기도 하고 자신의 진료에 확신도 없어보였다.

하긴, 지금 상황이 어떤 확신을 갖기에는 너무 이상하긴 하겠지.

서유림이 기다리다 못해 의사를 재촉했다.

“상황이 어떤가요? 악화되었나요?”

“아뇨. 아주 잘 치료되고 있습······. 아니 치료된 것 같습니다.”

“예? 치료가······ 된 것 같다고요? 그럼······?”

어머니가 놀라서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의사는 이번에도 대답을 피했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함께 환자분께 가시죠. 직접 증상을 여쭤보고 판단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낫겠군.

함께 병실로 이동했다.

아버지는 누워계시기 답답했던지 침대 끝에 걸터앉아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손은 연신 빵이니 과일이니 하며 먹을 것을 집어서 입에 넣고 계셨다.

며칠째 계속 저러고 계셨다. 어머니가 병수발보다는 아버지 먹을 것 공수하는 게 더 힘들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물론 서유림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했다. 몸이 좋아지는 과정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본능적으로 섭취하는 과정이니까.

‘워리가 잘하고 있군. 영양제를 듬뿍 사다드려야겠어.’

그러면 아버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유림처럼 건강한 몸이 되실 것이다.

아버지는 병실로 들어오는 의사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일어섰다.

“하하, 먹는 건 굳이 참을 필요가 없다고 해서······.”

의사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잘 드시면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식욕이 당기시면 무리가 아닌 수준에서 많이 드세요. 그런데······ 증상은 어떠세요? 통증 같은 건 없으신가요? 아니면 다른 이상한 점이라던가······?”

“예. 전혀······.”

아버지가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이상한 일이 없진 않았다. 이 나이에 엉덩뼈에 금이 갔는데 닷새 만에 완치된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면 뭐가 이상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몸이 지나치게 개운했다. 기분 같아서는 당장 밖으로 나가서 마구 달려보고 싶을 정도였다.

더욱 이상한 점은 아랫도리였다. 이놈이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터질 듯이.

마치 그놈만 20대의 혈기왕성한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하지만 그런 증상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답답한 병원을 탈출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이상한 점을 이야기하면 그거 검사한답시고 붙잡아둘 것 아닌가?

아버지는 두꺼비처럼 입을 꾹 다물며 뒷말을 삼켰다.

의사가 기어이 결정을 내렸다.

“일단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증상이 느껴지시면 바로 오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감사합니다.”

초고속으로 퇴원수속을 밟았다. 그리고는 함께 병원을 나왔다.

아버지는 하늘을 날고 싶은 기분인 듯했다. 마치 운동회에 참가한 어린아이처럼 몸을 가만두지 못했다.

심지어 만용까지 부리셨다.

“집까지 한번 뛰어가 볼까?”

서유림은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서유림도 정령의 힘을 얻고 처음에는 그런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땐 산속이었는데, 여건만 허락했다면 이산저산을 마음껏 뛰어다녔을 것이다.

아버지께도 권하고 싶었다. 이제부터는 마음껏 운동해도 되니까. 그러면 몸이 훨씬 더 빠르게 좋아질 테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반대하고 나섰다.

“미쳤나봐. 그러다 큰일 나요.”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그래.”

“그래도 당분간 조심해요.”

“그렇게 하세요. 운동은 낮에 학교 운동장 살살 도시는 정도로 하시고요.”

서유림도 어머니를 편들었다.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굳이 워리를 빨리 회수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제야 아버지도 머리를 긁적이며 포기했다.

“하하, 그러마.”

그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할 즈음에 채희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오늘 알지?

벌써 오늘이었구나. 그래서인지 채희라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느껴졌다.

“알았어. 이따 갈게.”

부모님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채희라가 서유림의 집 부근까지 차를 끌고 왔다. 채희라의 차를 타고 의정부시 외곽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각이지만, 별다른 데이트는 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저녁만 먹고, 곧바로 모텔로 들어갔다.

제법 낡은 ‘모텔 신라’라는 곳이었다. 서유림도 채희라도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옷도 평소와 달리 운동복 차림이었다.

유흥주점 원나잇.

점주 도기태가 혼자 TV를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주변에 널린 게 젊고 늘씬한 여자들이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행복했다.

그런데 그 행복을 방해하는 소리가 있었다.

디리리-

휴대폰을 들어서 발신자를 확인했다.

유흥주점 피아노의 점주 오윤진이었다. 유흥주점 점주들의 모임인 69회에서 가장 젊은 점주였다.

도기태가 느긋하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오윤진의 첫마디를 듣자마자 느긋함은 사라졌다.

- 드디어 채희라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도기태가 깜짝 놀라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동안 채희라의 꼬리를 잡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좀처럼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낮에 민들에게서 근무하는 건 알고 있는데, 저녁만 되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들레를 공격할 수도 없는 일.

“어떻게?”

- 제가 민들레에 첩자 몇 명을 만들었거든요. 그것들 중 하나가 정보를 줬습니다. 오늘 모텔 신라라는 곳에서 잔답니다. 의정부 외곽에 있습니다.

“확실해?”

-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그럼 오늘 끝낼 수 있겠군. 준비는 잘 되어있지?”

- 걱정하지 마세요. 연변 흑사파에 버금간다는 베트남 하노이파입니다. 조금 무식한 면이 있어도 일처리 하나만큼은 깔끔하죠. 그년은 오늘 무조건 끝납니다.

“하노이파라면 믿어도 되겠군.”

도기태가 입술 끝을 깊게 말아 올렸다.

그리고 얼마 후.

의정부시 외곽에 있는 모텔 신라를 향해 15인승 승합차 한 대가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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