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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84화 (84/196)

# 84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1)

전화는 계속 걸려왔다. ‘주먹이 운다.’에서 우승한 후로 전화통화량이 50배 정도는 증가한 느낌인데, 오늘따라 유독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문자도 무차별적으로 날아왔다. 마치 융단폭격을 맞는 기분이었다.

벌써 휴대폰이 뜨거워졌네. 이러다가 배터리 폭발하는 것 아냐?

에라, 모르겠다.

휴대폰을 꺼버렸다. 어차피 가족에게는 외박한다고 이야기해놓았으니 잠시 꺼놓아도 상관없겠지.

채희라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잘했어, 오빠.”

외곽에서 저녁을 먹고 조금 더 드라이브를 즐겼다. 밤길이라서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서 더 운치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채희라의 행동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차량을 내리거나 오를 때, 식당에 드나들 때마다 혹시 미행하는 사람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단순히 예방 차원으로 보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을 정도다.

“상국이가 옆에서 지켜주는데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러자 채희라가 조금은 슬픈 표정을 했다.

“그놈들이 내 뒤를 밟으려고 민들레에 첩자까지 심어놓았더라고. 상국씨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뒤에서 기습하면 누구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잖아.”

첩자까지? 그럼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거잖아!

그런데 채희라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놈들이 민들레의 텐프로까지 납치해가고 있어. 얼마 전에는 민희라고 내가 제일 아끼는 애도 사라졌어. 아무래도 놈들이 납치해서 빼돌린 것 같아.”

민희?

처음 민들레 건물에 들어갔을 때 채희라의 방까지 안내해주었던 아가씨다. 꼭 갓 입학한 새내기 여대생 같은 아가씨였는데.

도상국과 강종범도 민희를 보고는 단번에 그 매력에 푹 빠졌었다.

놈들이 그런 민희를 납치했다고?

“대체 어떤 놈들인데?”

서유림이 발끈하며 물었다.

“짐작 가는 놈들이 몇 있어. 하지만 짐작만 가지고 놈들을 먼저 공격할 수는 없고. 가만히 있자니 내가 무슨 일을 당할 것 같고. 아휴, 요즘 불안해 죽겠어.”

정말 그래 보인다. 저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어떻게 살아?

저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일이 확 벌어지는 게 낫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놈들에게 납치당한 텐프로들이었다. 특히 ‘민희’라는 아가씨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역시 사람은 ‘정’에 약한 동물이라니까. 겨우 얼굴 몇 번 보고 말 몇 마디 나눴다고 이렇게 마음이 쓰이나?

“놈들은 텐프로 납치하면 어떻게 하는데? 설마 섬 같은 곳에 팔아넘기거나 하는 건 아니지?”

“그런 일은 드물어. 대신 가둬두고 자기네 가게에서 손님 받게 만들겠지. 심하면 마약으로 약점 만들어서 잡아두기도 하고.”

“마약!”

갑자기 웬 깡패들이 ‘민희’의 몸에 강제로 마약을 투여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뒷목이 뻐근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것들 완전히 상종 못할 인간들이잖아! 그냥 두면 안 되겠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놈들이 민들레에 첩자를 심어놓았다고?”

“응. 다행히 그 친구가 나한테 고백해줬어.”

그럼 더욱 잘 되었다. 첩자를 역으로 이용하면 채희라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채희라의 안전이 먼저였다. 계획을 확실하게 세운 뒤에 일을 결행해야 할 것이다.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안심해. 내가 지켜줄게.”

“고마워 오빠.”

* * *

“드디어 찾았어요.”

서유림이 정령계로 들어오자마자 아리아나가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했다.

“뭐를?”

“결계미로 입구요.”

“결계미로 입구라면 전에도 찾았었잖아.”

한두 번이 아니다. 결계미로 입구를 찾은 것만 벌써 대여섯 번은 된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그냥 지나쳐왔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저러는 이유가 뭐지?

“그땐 제가 숨어있을 곳이 없었어요. 하지만 여긴 적당한 장소가 있어요.”

서유림이 아리아나를 따라서 시선을 돌렸다.

멀지않은 곳에 바위산이 보였다. 저기 어디쯤 동굴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보고 결계미로로 들어가라고? 잠재력을 좀 더 키운 후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불안했다. 아리아나의 마나하트를 들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서유림이 실패한다면 아리아나는 그대로 죽은 목숨이었다.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능력을 더욱 키워야 했다.

하지만 아리아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근처에서 마족의 기운이 느껴져요. 마족도 조만간 제 기운을 느끼고 찾아올 거예요. 시간을 더 끌면 제가 숨어있을 수도 없어요. 지금 시도해야만 해요.”

이런, 드디어 마족에게 꼬리를 잡힌 모양이다.

미치겠군. 이건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망막에 새겨진 정보들을 확인했다.

[레벨 303]

근력 : 999

순발력 : 999

체력 : 999

감각 : 714

마력 : 39

근력과 순발력, 체력은 모두 한계치인 999였다. 그러다 보니 레벨이 거의 오르지 않았고, 이따금 오르면 감각만 계속 올랐다.

감각의 20%만 마력으로 투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재레벨 45]

잠재력 : 344

지속력 : 8

회복력 : 1.3

맷집 : 65

항마력 : 32

잠재력은 어느새 344가 되었다. 아직 지속력이나 회복력은 성에 차지 않았지만, 그래도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잠재력은 제법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2차성장판까지 연 후에 결계미로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잠재력이 999가 되면 2차성장판이 열린다. 그러면 웬만한 마물은 물론이고 마족도 어렵지 않게 승부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2차성장판은 요정 중에서도 연 사람이 흔치 않다고 했다. 그러니 그 근처까지만 가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차성장판은커녕 잠재력이 344인 상태로 들어가야 하다니.

마지막으로 마법창을 열어보았다.

사실 정령계로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마법창부터 열어보려고 했다. 정령소환력이 얼마나 올랐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리아나가 뜬금없이 결계미로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다.

‘마법창이 어디 있나? 여기 있군.’

[마법]

체력흡수 : 39

정령소환 : 103%

순간 서유림의 눈이 커졌다.

“어! 이게 뭐야?”

“왜요?”

아리아나의 물음에 서유림이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령소환력이 100%가 넘었어.”

“어머! 정말요? 어떻게 하루만에······?”

나도 믿어지지가 않는다니까.

지난번에 정령계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 57%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오늘 하루만에 46%나 상승한 것이다.

역시 그랬구나. 임채모와 두리랜드 관련해서 인터뷰한 것이 큰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거 대박인걸.

이제 조금 알겠다. 어떻게 해야 정령소환력을 빠르게 올릴 수 있는지를. 나 혼자 좋은 일 하고 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함께 좋은 일을 하도록 확대시키는 것이다.

됐어!

“어서 정령을 소환해보세요. 정령의 능력을 키워놓으면 제법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서유림 못지않게 아리아나도 기대가 큰 모양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메인 정령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 형태로 소환할 수는 없다. 개, 호랑이, 소, 말 등의 동물 형태로만 소환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정령펫 정도라고 해야 할까?

각각의 형태마다 장단점이 있다. 이를테면 개는 충성심과 지구력이 높은 반면 공격력은 조금 떨어지고, 호랑이는 공격력은 강한데 지구력과 충성심이 약한 식이다.

아무리 좋은 정령이라고 해도 호흡이 맞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랴? 호랑이 정령이 탐나기는 했지만, 자칫 주인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말에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서유림이 주문을 외웠다.

“정령 소환!”

허공에서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왔다.

에계계. 이게 정령이야? 눈도 제대로 못 뜬 새끼강아지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레벨 10까지는 정령계의 기운만 먹고도 무럭무럭 성장한다고 했으니까.

아리아나도 정령펫을 보며 무척 귀여워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그보다는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시간이 없어요. 이제 결정해야 해요.”

결계미로 이야기다.

하긴, 내가 이곳에서 보통 머무는 시간은 5일. 최대 7일까지 머물 수는 있지만, 웬만하면 5일을 넘기지 않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그 안에 결계미로를 통과해서 아리아나를 소환해줘야 한다.

“알겠어. 지금 들어갈게.”

“만약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싶으면 결계미로 안에서 절 소환하세요. 꼭 그러셔야 해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계로 무사히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아리아나와는 영원히 ‘안녕’ 해야 하니까.

하지만 아리아나에게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알겠어.”

대답이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아리아나가 서유림의 손을 잡고 다시 당부했다.

“유림씨가 결계미로 안에서 저를 소환해준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제게 방법이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망설이지는 말아요. 알겠죠?”

서유림의 눈이 커졌다.

“그런 방법이 있었어? 어떤 방법인데?”

“나중에 가르쳐드릴게요.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약속해줘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나를 안심시키려고 없는 말을 지어내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리아나 말대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알겠어. 약속할게.”

“그럼 이제 움직여요.”

함께 동굴로 들어갔다.

아리아나가 반듯이 눕고는 가슴에 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붉게 빛나는 마나하트가 손에 쥐어졌다.

“어서 가세요.”

마음을 굳게 먹긴 했지만, 좀처럼 손을 내밀 수가 없다. 어쩌면 저것을 받는 순간이 아리아나와 이별의 순간이 될 수도 있잖아.

‘아냐! 마음이 약해지면 안 돼. 된다고 생각해도 될까 말까한 일인데 시작도 전에 이러면 안 돼지.’

그래도 좀처럼 마음을 굳힐 수가 없다.

그런데 아리아나는 어쩜 저렇게 평온할 수가 있지? 요정은 원래 저렇게 감정이 없는 종족인가?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그동안은 애써 참아왔지만, 오늘만큼은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 가요.”

아리아나가 마나하트 쥔 손을 더욱 내밀었다.

서유림이 아리아나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아리아나의 입술을 덮쳤다.

사실 지금까지 아리아나의 입술을 훔친 적은 많았다. 아리아나도 서유림에게 수시로 입술을 맞춰주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늘 뭔가 핑계를 댔었다.

체력을 주겠다. 마법을 주겠다. 치료를 해주겠다. 인간계로 보내주겠다.

서유림의 마음을 제대로 담아서 한 키스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아무 이유도 핑계도 없었다. 오로지 서유림의 마음만 가득 담긴 키스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아리아나도 그런 서유림의 마음을 느낀 모양이다.

키스를 받는 순간 살짝 놀란 듯 움찔했지만, 그대로 멈추고 서유림의 키스를 온전히 받아주었다.

제법 긴 키스였다. 영원히 멈추고 싶지 않은 키스였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서유림이 길었던 키스를 멈추었다. 고개를 살짝 들고 아리아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반드시 결계미로를 통과해서 소환해줄게. 그런 다음 못다한 키스 다 해줄게. 날 믿어.”

아리아나가 가볍게 웃어주었다.

“믿을게요.”

서유림이 입술을 깨물고 마나하트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아리아나가 마치 죽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떨어뜨리며 정신을 잃었다.

서유림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의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가슴을 울리는 찌릿한 슬픔이 느껴졌다.

‘반드시 해낸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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