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82화 (82/196)

# 82

억울하면 출세해라. (1)

서미진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스폰서로 계약을 맺은 금액이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면 푼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500만 원에 불과했으니까. 처음에는 0이 하나 빠진 줄 알았다.

“어떻게 된 거야? 지난번보다 두세 배는 많아야 정상 아냐? 너 혹시……?”

서유림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서미진이 오히려 서유림을 노려보았다.

“설마 지금 내가 돈을 빼돌리기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적은 것 아니냐?”

“딱 한 게임에 대해서만 계약한 거니까.”

“한 게임? 왜?”

“당연하지. 오빠가 우승한다는 조건이면 그렇게 하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오빠 몸값이 올라갈 것 아냐?”

듣고 보니 그럴듯하네.

지금은 푼돈이지만 8강에 올라가고 4강에 올라가면 지금 계약금에 0이 하나 더 붙을 것이고, 결승까지 진출하면 거기에 0이 하나 더 붙을 수도 있다.

난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정령의 힘을 얻었는데도 잔머리 굴리는 데는 서미진을 못 따라가겠다.

“그래. 이번 토너먼트까지는 네가 내 매니저 해라.”

“잘 생각했어, 오빠. 호호.”

사실 지금은 그깟 스폰서 비용에 목 맬 때가 아니다.

우승상금이 15억 원에, 내기로 받을 금액이 10억 원이니 스폰서 비용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도 될 것이다.

훈련에만 집중하자. 최대한 멋있는 경기를 치러야지.

토너먼트 예선은 11월 중순에 치러졌다.

서유림 역시 예선전부터 치러야 했다. 원래 체급인 미들급으로 출전했다면 곧바로 64강전부터 시작하겠지만, 무제한급으로 바꾸다 보니 다른 일반인과 똑같은 자격으로 참가해야 했다.

하지만 서유림에게나 MAN FC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서유림이 무제한급에 출전한다는 이야기에 많은 격투기 팬들이 예선전부터 제법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팬들의 의견은 반반이었다.

“미친 것 아냐?”

“아마추어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니까 기고만장해진 거지. 이번 예선에서 서유림이 떡실신 해서 패한다는 데 내 손모가지 건다.”

“내 생각엔 예선은 통과할 것 같은데. 그만큼 자신 있으니까 도전했겠지.”

“하여튼 격투기를 모른다니까.”

하지만 예선전이 끝나고 나자 분분했던 의견이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리기 시작했다. 서유림이 예선전을 정확히 1라운드 46초 만에, 그것도 서유림의 특기인 크로스 카운터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서유림이 우승까지 하는 것 아냐?”

“에이, 아무리 그래도 우승은 무리다. 밀코 그로캅이 있는데. 게다가 오이르꺼러도 있고, 최흥만도 있고, 마이티 무어도 있잖아. 내 생각에는 잘해야 16강이다.”

“나는 8강. 내기할래?”

“콜!”

덕분에 MAN FC 토너먼트는 시간이 갈수록 흥미가 더해졌다.

그리고 12월 23일에 치러진 64강전에서 만원 관중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한때 헤비급세계챔피언이었던 밀코 그로캅이 출전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서유림에 대한 기대감도 큰 역할을 했다.

경기는 당연히 액션TV에 생중계로 방송되었고, 밀코 그로캅의 경기는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 직전 경기가 바로 서유림의 경기였다.

토너먼트이기 때문에 메인이벤트나 코메인이벤트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기대감 높은 경기가 뒤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서유림을 향한 기대감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오늘도 그 기대감을 100% 충족시켜줘야 하겠지.

64강전 상대는 몸무게가 무려 139kg이나 되는 거구였다. 그런데도 비대하다거나 굼뜨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기세도 무척 흉포했다. 케이지 저쪽에서 서유림을 노려보는데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바라보는 듯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기세는 더욱 흉포해졌다. 육중한 몸으로 짓눌러버리겠다는 듯 서유림을 향해 거칠게 돌진했다.

상대는 펀치 대신 손을 거칠게 내저었다. 유도가 특기인 듯했다.

하지만 너무 무모했다. 성급하다고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격투기와 관련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체중이 올라가면 펀치력과 맷집도 함께 올라간다는 것이다.

일정 부분은 맞는 말이다. 체중이 올라가면 펀치력도 함께 올라가니까.

하지만 맷집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정부분 상승하겠지만, 펀치력의 상승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그래서 경량급은 여러 차례 펀치가 오가도 KO가 쉽게 나오지 않는 반면 무제한급은 펀치 한 방으로 KO가 쉽게 나오는 것이다.

상대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체중은 어마어마하게 나갔지만, 그래봤자 맷집은 미들급 선수와 거기서 기기였다.

그런데 저렇게 안면을 훤하게 드러내놓고 돌격해 들어오다니.

그건 ‘내 때려 잡수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다.

서유림은 매 경기 납득할만한 승부를 펼친다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야 서유림의 이미지가 확고하게 굳어질 테니까.

이렇게 빈틈이 훤히 보이는데도 한방 펀치를 집어넣지 않는다면 그것도 납득하지 못할 일이겠지. 때려달라면 때려줘야 하는 것이다.

서유림이 상대의 돌격을 슬쩍 옆으로 흘리면서 안면에 정확히 펀치를 집어넣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상대가 쿵! 하는 거대한 울림소리를 만들며 그라운드에 나자빠졌다.

1라운드 시작하고 겨우 11초 만에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그와 동시에 관중들이 ‘와-’ 하는 함성소리를 터뜨렸다. 서유림이 미들급에 이어서 무제한급에서도 모든 경기를 1라운드 만에 KO로 끝내버리니 그 기대감이 갈수록 상승했다.

사회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얼른 올라와서 서유림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멋진 경기였습니다. 미들급에 이어서 무제한급에서도 서유림 선수의 펀치가 빛을 발하고 있는데요. 스트레이트가 성공했을 때의 느낌이 어땠나요?”

“맞는 순간 끝났구나! 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팬 여러분들께 시원한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뜻을 이루게 되어서 기쁩니다.”

“이번 토너먼트 전경기의 대전료 중 일부를 좋은 곳에 쓰기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특별한 이유? 물론 있지.

서유림은 정령소환력을 올리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착한 일 하겠답시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어려운 사람 찾아다니며 사연 들어볼 수도 없는 일이잖아.

그러다가 도상국과 함께 참사랑 보육원을 다녀오고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거면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같은 일이라도 어떤 식으로 포장하느냐에 따라서 효과가 확 달라진다. 내 할 일만 묵묵히 해내면 100%의 효과밖에 못 보겠지만, 주변 사람들을 동참하게 한다면 200%, 300%의 효과도 낼 수 있는 거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은 어떻게 동참시키느냐?

일단은 관심부터 확실하게 끌어야겠지.

그렇다면 사회자의 저런 질문에 정형화된 답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듣는 사람을 졸리기만 할 테니까.

의외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답으로 뒤통수를 때리는 거다.

그래야 사람들이 ‘뭐야?’ 하며 관심을 보일 테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첫 반째는 유명해지고 싶어서입니다.”

사회자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라. 저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군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간단합니다. 대전료 일부를 기부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주겠다 싶어서 결심한 겁니다. 쉽게 말하면 기부금으로 팬 여러분의 관심을 사고 싶은 거죠.”

서유림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사회자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기부 결심에 대한 일반적인 답과는 너무도 동떨어져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그런 목적이 있다고 해도 발표할 때는 좋게 포장하기 마련인데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아무런 목적도 없이 순수한 마음이었다면 그렇게 TV에서 홍보하지도 않았겠죠. 그런 상황에서 순수한 마음이었다고 하면 눈에 보이는 빤한 거짓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냥 솔직하고 싶었습니다. 목적의식 가지고 기부한다는 게 죄 짓는 것도 아닌데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너무 솔직했나?

그런데 웅성웅성하던 관중들이 서유림의 말에 호응하듯 박수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사람이 군데군데에서 박수를 쳤는데, 그것이 점점 전체 관중들로 퍼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기장 전체가 박수소리와 환호성소리로 가득했다.

조금은 멋쩍었다. 솔직히 이런 반응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사회자도 비로소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군요. 솔직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도 되겠지.

서유림이 배복성 관장을 바라보았다.

“관장님. 그거 펼치시죠.”

함께 커다란 플래카드를 펼쳤다. 플래카드에는 사진이 들어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두리랜드에서 즐겁게 노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배우 임채모님을 기억하십니까? 그분께서 평생을 모은 돈으로 세운 두리랜드라는 놀이동산입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해서죠. 그래서 두리랜드는 입장료도 없고, 놀이기구 타는 비용도 무척 저렴합니다. 인근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그나마도 무료고요.”

서유림이 두리랜드를 제법 길게 홍보했다. 두리랜드에 녹아든 임채모의 아름다운 마음에 대한 홍보였다.

그리고 임채모의 현재 건강상태와 두리랜드의 어두운 미래도 함께 이야기해주었다.

“이런 곳은 오랫동안 유지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작게나마 대전료라도 일부 기부하고 싶었습니다. 1천 원씩이면 어떻고 5천 원씩이면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관심으로 두리랜드를 오래 유지시켜주십시오. 오늘 꼭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서유림이 말을 마쳤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회자도 감동이라는 듯 마이크를 쥔 채 박수를 주었다.

분위기 좋군. 이쯤에서 인터뷰 마치면 딱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사회자는 아직도 물어볼 게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아시겠지만, 이번 토너먼트 대회 무제한급은 우승상금이 15억 원, 준우승상금이 1억 원입니다.”

서유림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기에서 상금 이야기가 왜 나와? 그건 건들면 안 되지. 단위가 너무 크다고.

하지만 사회자는 하지 말아야 할 질문까지 던지고 말았다.

“혹시 상금을 타게 되신다면 상금도 기부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을 해? 기부 못 하겠다고 하면 기껏 대전료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게 의미가 없어질 테고, 기부하겠다고 하면 상금의 규모상 어마어마한 액수를 기부해야 하는데.

아 놔! 이거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사회자 놈의 주둥이를 콱! 때려주고 싶다. 진짜 매너 없이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래?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일명 물귀신 작전이다.

‘사회자 이놈! 너도 똑같이 당해봐라.’

서유림이 사회자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사실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 지금 즉흥적으로 계획을 세워볼까요?”

“그래주시면 팬들 여러분들도 즐거워하실 것 같군요.”

당연히 즐거워하겠지.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것 갈 데까지 가보자. 서유림이 관중들을 향해 호응을 이끌어냈다.

“여러분, 원하십니까? 제가 토너먼트에서 우승이나 준우승했을 경우 기부금을 냈으면 좋겠습니까?”

물으나마나한 질문이었다. 관중들이 뜨겁게 호응해주었다.

여러 소리가 난잡하게 뒤섞여서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연히 ‘YES’일 것이다.

서유림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차피 우승할 거다. 그렇다면 굳아 우승이나 준우승했을 경우에 한정할 필요도 없었다. 이왕 같은 말 하는 것 생색이라도 실컷 내는 게 낫겠지.

“그럼 해야죠. 제가 우승하건 준우승하건 아니면 32강전에서 탈락을 하건 반드시 기부금을 내겠습니다.”

“금액은 얼마나 하시겠습니까?”

사회자가 자꾸만 구체적인 부분을 파고든다. 그게 자기 무덤 파는 건 줄도 모르고.

서유림이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다.

“사회자님도 이참에 동참하시죠. 만약 사회자님이 동참하신다면 얼마를 기부하시건 저는 그 두 배를 기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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