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60화 (60/196)

# 60

내일을 위한 투자 (2)

일요일 아침.

“잘하고 와. 다치지만 말고.”

어머니가 걱정스런 표정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그런 어머니를 나무랐다.

“격투기 하러 가는 사람이 다치는 걸 걱정하면 어떻게 해? 원래 몸 사리면 더 다치는 거다. 무조건 파이팅 해.”

아버지가 서유림의 등을 힘껏 다독여주었다.

정말 다행이다. 부모님이 사실을 알고 길길이 날뛰시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그런데 어제 서유림의 ‘주먹이 운다.’ 출전 소식을 접하시고도 뜻밖에 차분하셨다. 어머니도 처음에는 걱정이 크셨지만, 아버지의 설득 덕분에 입술 한번 꾹 깨물고는 서유림을 응원해주셨다.

“그래. 이왕 시작한 거니까 잘해.”

아마 오늘 열릴 서유림의 결승전 경기도 집에서 TV로 보게 되실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격투기도 멘탈이 무척 중요하거든.

부모님이 절대로 안 된다며 울고불고 붙잡으면 마음이 심란해서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내 실력이야 그런 멘탈적인 부분을 뛰어넘을 정도라고 자신하지만, 비정상적일만큼 강한 힘을 사용하지 않고 이기려면 멘탈을 잘 가꿔야 한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와! 사람 많다.

어제도 그랬는데, 오늘도 경기장은 관중들로 가득 찼다. 못해도 1만 명은 쉽게 넘을 것 같다.

케이지 가까운 곳에는 유명 연예인도 제법 많았다.

MAN FC의 각 체급별 챔피언들도 챔피언벨트를 자랑하듯 앞에 놓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중에는 현 미들급 챔피언인 권이슬도 있었다.

하지만 최고의 VVIP자리는 당연히 현재 MAN FC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김문홍과 곧 MAN FC를 인수하게 될 유진그룹 한상민 실장의 차지였다.

한상민 실장 옆으로는 한동민과 그 아버지 한명진도 와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서유림의 눈에는 오직 한상민 실장의 모습만 보였다. 앞으로 저 사람이 MAN FC의 모든 경기를 손에 쥐고 흔들게 될 테니까.

즉, 한상민의 눈에만 확실하게 들면 한 경기를 하더라도 임펙트 있는 경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격투기 역시 실제 경기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전 홍보니까.

그러자면 일단 오늘 경기가 인상적이어야 하겠지.

웰터급 3,4위전부터 경기가 시작되었다. 서유림의 경기는 그로부터 2시간가량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서유림이 먼저 입장하고, 도상국이 나중에 입장했다.

도상국이 더욱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뜻이겠지. 물론 그것은 도상국의 검증된 그라운드 실력 때문일 테고.

하지만 대부분 관중은 오히려 서유림을 응원했다.

도상국의 과거 때문이겠지.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니까.

저런 흉악범을 ‘주먹이 운다.’에 출전시킨 MAN FC의 운영 자체를 비난하는 여론도 제법 많을 정도였다.

주심의 간략한 경기규칙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결승전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땡!

다른 때 같았으면 실전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시간을 끌었겠지만, 오늘은 그럴 마음이 없다. 임팩트 있는 경기를 위해서는 오히려 적당히 빠른 타이밍에서의 승부가 필요하다.

게다가 도상국은 흉악범이다. 제아무리 법적인 처벌을 모두 받았다고 해도,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사연이 숨어있다고 해도 결코 유쾌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빨리 끝내자. 대신 팬들이 원하는 경기를 보여줘야 하겠지.

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합법적이면서도 통쾌한 응징일 것이다.

그런데 저 현란한 움직임은 뭐야?

도상국이 사우스포 자세(왼손잡이 자세)를 하다가 오서독스 자세(오른손잡이 자세)로 바꾸고 오른쪽으로 돌다가 일순간 왼쪽으로 돌았다.

미들급이 저렇게 빨라도 되는 거야?

도상국은 타이밍을 예상할 수 없는 기습적인 발차기가 최대 강점으로 분석된 상태였다. 그런데 직접 마주쳐보니 경량급 선수에 버금가는 빠른 스피드가 더욱 강점 같았다.

게다가 움직임을 예측할 수가 없다. 스텝을 밟는 것 자체가 회피동작 같기도 하고, 펀치동작 같기도 하고, 발차기동작 같기도 하다. 언제 어떻게 주먹이나 발차기가 날아올지 모르겠다.

‘이크!’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서 발차기가 날아왔다. 잔뜩 주의하고 있는데도 타이밍을 빼앗기고 말았다.

미들킥.

이전 경기에서도 도상국이 선보였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깜짝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비정상적인 능력을 사용하고 말았다. 도상국의 미들킥을 막아내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말도 안 되는 반사신경과 순발력을 동원한 것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서유림이 도상국의 발차기 타이밍을 읽어낸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굉장한 움직임이다. 도상국 혼자서 개발해낸 스텝인가?

돈을 주고 배우고 싶을 정도다.

‘앗! 또!’

와! 재미있다! 도상국의 발차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비정상적인 반사신경과 순발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하다.

이 정도면 ‘예술’의 경지라고 해도 될 듯싶다.

그러면서도 도상국은 좀처럼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빨리 경기를 끝내겠다고 섣불리 달려들었다가는 오히려 내가 흉한 꼴을 당할 것 같다.

물론 힘으로 주먹을 우겨넣는다면 당장 경기를 끝낼 수 있지만, 비정상정인 힘을 사용하면서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임팩트 있는 경기 못지않게 힘을 감추는 것도 중요하니까. 무조건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승리를 해야 한다.

서유림은 도상국의 펀치와 발차기를 가드로 받아내면서 묵묵히 전진했다. 도상국도 지금쯤 혀를 내두르고 있을 것이다.

철벽 방어라고 말이다.

도상국은 좀처럼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따금 빈틈이 보였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펀치를 집어넣었다.

제대로 들어갔다 싶은 펀치도 여러 차례였다.

그런데 이놈 맷집도 제법이네. 다른 선수 같았으면 여러 차례 휘청거렸을 텐데 아직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내가 펀치의 힘을 너무 많이 뺐나?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일격이라고 해도 충격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도상국 얼굴에 흐르는 피가 그것을 증명했다. 벌써 코피도 터지고, 입술도 터지고, 눈썹 위도 찢어졌다.

그런데도 도상국은 악착같았다. 피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도 죽자 살자 달려들었다.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서유림의 편이었다. 1라운드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도상국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규칙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다만 뭔가 모르게 느낌이 왔다. 본능적인 반사신경이랄까?

그럴수록 도상국의 공격은 서유림의 방어에 막혔고, 서유림의 공격은 점점 더 정확도가 높아졌다.

도상국의 상처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상황이 그러다 보니 도상국이 다급해진 듯했다.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서유림의 하체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테이크 다운을 노린 것이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한다고 해도 시간은 끌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하긴 서유림의 서브미션이 최악으로 분석된 상태이니 이 공격도 일견 나쁘지 않은 판단으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오판이었다. 오히려 서유림을 도와주는 일이 되었으니까. 정령계에서 아리아나와 함께 테이크 다운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서유림이 재빨리 엉덩이를 빼며 테이크 다운을 피했다. 동시에 도상국의 뒤로 돌며 상위포지션을 점했다. 도상국의 등에 올라탄 형국이었다.

됐다. 이 기회만큼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서유림의 펀치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관중들의 함성소리도 함께 뿜어지기 시작했다. 흉악범을 대상으로 한 통쾌한 응징을 성원하는 것이었다.

도상국이 엎드린 채로 얼굴을 가렸지만, 서유림의 주먹은 그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옆구리도 가리지 않고 두드렸다.

50% 이상의 힘을 주고 있기 때문에 도상국은 제법 큰 충격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버티지 못한 도상국이 몸을 돌려서 바로 누웠다.

하지만 서유림의 펀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더 맹렬하게 망치 같은 주먹을 내리꽂았다.

피해자와 그 가족을 대신한 합법적인 복수였다.

도상국은 저항하지 못했다. 그저 가드를 바짝 올려서 막기에만 급급했다.

그러자 주심이 얼른 다가와서 경기를 종료시켰다. 그리고는 서유림의 손을 번쩍 들어주었다.

와아-

관중들이 일제히 우레와 같은 함성을 터뜨렸다.

물론 몇몇 서유림의 팬들은 서유림의 우승에 기뻐하며 환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다른 대부분 사람들은 도상국의 우승을 저지했다는 점에서 환호했다. 여고생 강간살인 경력이 있는 도상국에게 제대로 복수해줬다는 점에 대한 환호성이었다.

서유림도 통쾌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찜찜한 구석도 있었다. 상처로 얼룩진 도상국의 얼굴 위로 몇몇 장면이 스쳐지나간 것이다.

대기실 안에서 순둥이처럼 서유림을 연장자 대접해주던 장면, 이전 경기에서 싸울 의지를 잃은 상대에게 더는 펀치를 내지 않던 장면.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도상국이 측은하게도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제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케이지의 상황이 아직 종료된 것도 아니다. 케이지 안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내일을 위한 투자였다.

서유림은 격투기를 통해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채희라가 스폰서에게 이름이라도 이야기할 구실을 만들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자면 화제성을 뿌리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가슴에 기대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사람들이 서유림의 경기를 보고 싶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의 입에 서유림이라는 이름이 수시로 오르내려야 한다.

코너 막그리거처럼.

코너 막그리거는 무거운 체급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헤비급 챔피언보다 더 많은 대전료를 챙긴다. 사람들이 그의 경기에 열광하고 그의 경기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있었다.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서유림은 이제부터 한국의 코너 막그리거가 될 것이다.

사회자와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즉흥적 질문도 있었지만, 몇몇 질문은 사전에 계획되기도 했다.

“격투기 팬들 앞에서 앞으로의 각오 한 말씀 하시죠.”

서유림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는 곧장 권이슬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권이슬은 현재 MAN FC의 미들급 챔피언으로 군림하고 있는 선수였다.

“저 선배님과 붙으려면 앞으로 몇 번을 더 이기면 되는 겁니까?”

서유림의 발언과 동시에 경기장 안의 모든 TV화면이 현 미들급 챔피언 권이슬 선수를 담아서 보여주었다.

그러자 관중들이 일제히 와- 하고 소리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격투기 팬들이 권이슬을 ‘얍삽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얄미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이슬은 트레시토킹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입담이 거칠었고, 선후배 가릴 것 없이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었다.

게다가 평소 행동도 거칠었다. 인터뷰를 이상하게 한다며 방송국 관계자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고, 격투기 팬과 언쟁이 붙어서 싸움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경기중에도 비매너 행동이 자주 나왔다.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거나, 로블로를 때려서 경기력을 떨어뜨리거나, 후두부를 가격하는 식이었다.

물론 본인은 고의가 아니라고 했지만, 격투기 팬들도 이젠 보는 수준이 높아져서 딱 보면 고의인지 아닌지 웬만큼 감이 왔다.

특히 무제한급 간판스타인 최흥만 선수를 조롱한 사건은 권이슬의 ‘얍삽이’ 이미지를 더욱 굳어지게 만들었다. 최흥만의 경기는 격투기가 아닌 광대들의 서커스라고 놀리며 차라리 자신이 맞붙어 싸워서 이겨 보이겠다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아무래도 권이슬 스스로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악플도 나름대로 방식의 관심이긴 하니까.

그 덕분에 ‘얍삽이 권이슬’은 한국 격투기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실력도 최고였다.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는 경쟁자가 없었고, 일본과 브라질의 이름난 선수들도 권이슬을 상대로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창피만 당하고 돌아갔다.

당장 석 달 후에 예정된 일본 선수 후지와라와의 경기도 다들 권이슬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후지와라가 한때는 UFC에서 제법 활약한 강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때문에 대부분 격투기 팬은 누군가가 나서서 권이슬의 납작한 코를 꺾어주기를 바랐다. 물론 한국인 선수가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햇병아리나 마찬가지인 서유림이 권이슬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니 괜히 통쾌할 수밖에.

사회자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더욱 흥미로운가를 잘 알고 있었다.

얼른 권이슬 선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권이슬 선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담이라면 오히려 권이슬이 한수 위였다. 자신감도 넘쳤다.

“와! 또라이네! 좋아! 딱 내 스타일이야. 랭커 상대로 딱 세 게임만 이기고 와. 그러면 언제든지 받아줄 테니까.”

랭커라면 미들급 TOP10 안에 드는 선수들을 의미했다.

하긴, 그런 선수 세 명은 이겨줘야 챔피언벨트에 도전할 수 있겠지.

마이크가 다시 서유림에게 넘겨졌다.

“그럼 제가 대표님께 첫 번째 대결상대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TV화면이 이번에는 MAN FC 대표 김문홍을 비췄다.

김문홍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해보였다.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여보였다.

그러자 서유림이 망설임 없이 한 선수를 지목했다. 마침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선수였다.

“강규정 선수입니다.”

그러자 카메라가 순식간에 강규정을 찾아서 모니터에 담았다.

서유림이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지난번 부산 깡패와 형님동생 하며 가까운 모습을 보였던 투신이었다.

후훗, 자식 놀라기는. 하긴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