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59화 (59/196)

# 59

내일을 위한 투자 (1)

아리아나가 스트레칭 하는 모습이 보인다. 언제 보아도 참······ 선정적인 모습이다.

매일 아침마다 저런 구경 시켜주니 너무 고맙다니까.

“오셨어요?”

그런데 오늘은 표정이 조금 이상하네. 목소리도 평소처럼 밝지 못하고.

아주 사소한 변화이지만 분명히 뭔가 다르긴 하다.

“무슨 일 있어?”

“밤새 생각해보았어요. 이곳이 어디일지.”

하긴, 며칠 전부터 자꾸 ‘이상하네.’라는 말을 반복하긴 했다. 사방팔방으로 제법 멀리까지 가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요정마을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라는 말을 노래처럼 하곤 했다.

“그래서? 결론이 났어?”

“아무래도 완충지대 같아요. 마계와 정령계의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 서로 불가침지역으로 정해놓은 곳이죠.”

한마디로 휴전선의 비무장지대 비슷한 개념이라는 거잖아.

그러면 방향을 잘못 잡으면 그대로 마계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네.

“그럼 어떻게 해야 정령계로 들어갈 수 있는 거야? 방향은 알아?”

“해가 뜨는 방향으로 가면 돼요. 하지만 문제는 완충지대는 사방이 결계미로로 막혀있다는 점이에요.”

“결계미로?”

“마족과 요정이 통과할 수 없도록 막은 벽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차원이동으로 가면 되지 않나?”

“몇 번 시도하다 보면 정령계로 돌아갈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러면······.”

아리아나가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우린 다시는 만날 수 없겠죠. 제가 유림씨를 정령계로 불러들이면 유림씨는 늘 이 숲에서만 소환될 테니까요.”

하긴, 아리아나가 서유림의 소환 장소까지 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하겠네.

“그럼 어떻게 하지? 방법이 없는 거야?”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해요. 유림씨가 결계미로를 통과해서 저를 소환해주시면 돼요.”

“내가 아리아나를 소환하는 것도 가능해?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그럴 일이 없었죠. 그리고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어떤 방법인데?”

“제 마나하트를 가져가는 거예요. 그러면 언제 어디에서건 절 불러줄 수 있어요.”

마나하트를 가져라가고? 왠지 느낌이 으스스하다. 이건 꼭 심장을 꺼내가는 느낌이잖아.

“마나하트를 꺼낼 수 있어?”

“가능해요. 하지만 마나하트를 꺼내면 그때부터 저는 식물인간이 돼요. 숲고블린이 와서 제 살을 뜯어먹어도 반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되죠.”

맙소사.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그런 위험한 일을 해야 한다고?

“그러다가 내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러니 철저히 준비해야죠.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최소한 성장판을 열고 잠재력이라도 100 이상 키워놓아야 가능성이 있을 거예요.”

물론이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1%라도 실패할 확률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잖아.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1분1초라도 빨리 성장판을 열어서 잠재력을 더 키워야지.

그런데 성장판은 대체 언제 열리는 거야?

딱 하나의 스텟만 999가 되면 되는데.

하지만 한참 전에 998에 도달한 체력은 그 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대로 영원히 멈춰!’ 하는 지시라도 받은 듯했다.

레벨은 꾸준히 올랐지만, 그때마다 스텟이 가장 낮은 감각만 계속 올랐다.

그러니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진이 빠질 수밖에.

언제부턴가는 아예 스텟의 정보도 확인하지 않았다. 이따금 생각나면 한 번씩 확인하긴 하는데, 그래봐야 사나흘에 한 번 정도씩이었다.

마침 생각났으니 한번 확인해볼까?

서유림이 망막의 정보를 확인했다. 워낙 수치의 변화가 없어서 이제는 별 기대도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가만!

“어! 이게 뭐야?”

서유림이 깜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말을 흘렸다.

아리아나도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왜요?”

하지만 서유림은 아리아나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망막에 새겨진 기초정보가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벨 291]

근력 : 996

순발력 : 994

체력 : 999

감각 : 618

마력 : 35

서유림이 기쁜 표정으로 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나 성장판 열린 것 같아.”

그러자 아리아나도 예쁜 눈을 크게 뜨며 반겼다.

“정말이에요? 999를 찍은 스텟이 있어요?”

“체력이 정확히 999야.”

“어머! 축하해요. 그럼 어서 잠재스텟을 열어보세요.”

그럴까? 저것인 모양이네.

[잠재레벨 1]

잠재력 : 13

지속력 : 0.5

회복력 : 0.1

맷집 : 4

항마력 : 2

“잠재레벨이 1이야. 그런데 저 스텟들은 의미가 뭐지?”

대충 짐작은 되지만,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것과는 달랐다.

아리아나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능력이었다.

“잠재력을 발휘하면 모든 기본 스텟에 잠재력이 더해져요.”

한마디로 지금 상태에서 잠재력을 발휘하면 근력, 순발력, 체력, 감각, 마력까지 모두 일시에 13이 증가한다는 뜻이었다.

즉, 잠재능력 1 증가는 기본스텟 5 증가와 같은 의미였다.

이거 생각보다 엄청난걸!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니까.

“지속력은 잠재력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분 단위로 표시돼요.”

뭐야? 그럼 겨우 30초밖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잖아?

“잠재력은 한번 사용하면 그 순간 0으로 떨어지고 다시 천천히 회복돼요. 회복력은 1분당 회복되는 잠재력의 수치를 말하고요.”

얼씨구. 그럼 13의 잠재력이 모두 회복되려면 130분이나 걸린다는 얘기네. 갈수록 가관이다.

하지만 실망할 단계는 아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열심히 사냥해서 레벨을 쭉쭉 올리면 잠재력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지속력과 회복력도 함께 늘어날 테니까.

맷집과 항마력은 덤이겠지.

“그럼 다시 사냥해볼까? 출발하지.”

“그래요. 가요.”

* * *

오늘도 개운한 아침이다.

“으드득! 아, 잘 잤다. 물부터 한잔 마셔볼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컵을 마시는 것은 어려서부터 들여온 습관이다.

그런데 책상 위의 컵을 잡는다는 것이 실수로 툭 치고 말았다. 물이 가득 들어있는 컵이 그대로 이불 위로 추락했다.

안 돼!

서유림이 재빨리 손을 뻗었다. 순발력이 500 가까이까지 오른 덕분인지 컵이 떨어지기 전에 낚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완벽하게 잡을 수는 없었다. 컵은 이미 뒤집어진 상태였고, 서유림이 잡은 곳은 컵의 주둥이 부분이었다.

한마디로 컵을 거꾸로 뒤집어 쏟은 형국이 되었다.

그런데 어! 이게 뭐야?

서유림은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컵이 기울어지면 그 안에 있는 물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런데 이 컵의 물은 조금도 쏟아지지 않았다.

단 한 방울도. 자연의 이치에 완전히 어긋난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러자 정령 아리안이 갑자기 툭 끼어들었다.

> 물이 쏟아지는 걸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막았습니다.

‘아리안이? 그게 가능해?’

> 정령계에서 능력치의 성장판이 열리면서 저도 상급 정령으로 진화하였습니다. 이제 가까운 곳의 물은 제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오······! 그런 거였어? 이거 정말 희소식이네. 그럼 할 수 있는 게 뭐야?’

> 가까운 곳의 물은 제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뭐야? 같은 대답이잖아.

하긴, 내 질문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긴 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못 하는 것 빼고 다 할 수 있다.’가 가장 현명한 답이겠지.

이럴 때는 하나씩 콕콕 짚어서 물어봐야 하는데.

뭐가 있을까?

‘혹시 물을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나?’

> 가능합니다. 물방울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겨보세요.

오, 가능하단다.

얼른 손가락에 물을 묻히고, 가까이 보이는 달력을 향해 튕겼다. 정확히는 달력의 7자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자 물방울이 마치 화살처럼 날아가며 정확히 7자를 맞혔다.

‘와! 정확하네. 우연인가?’

> 제가 유림씨의 의지를 읽고 물을 컨트롤했습니다. 언제든 원하는 곳에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가까운 거리에서만 가능하지만요.

‘어느 정도 거리까지 가능한데?’

> 지금 조준한 달력 정도가 한계치인 것 같습니다. 그 거리를 넘어서면 제가 컨트롤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대충 2m쯤 될 것 같다.

조금 실망스러운 거리군.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령계의 잠재능력이 겨우 13에 불과하니까.

‘정령계의 잠재능력을 키우면 컨트롤할 수 있는 거리도 멀어지겠지?’

> 물론이죠.

‘그런데 세기가 좀 약하네. 더 강하게도 할 수 있나?’

> 지금 상태에서는 이 정도가 한계입니다. 정령계에서 더 큰 성장을 이루어야만 저도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첫술에 배부르랴?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이다.

‘혹시 설거지 같은 것도 가능하나?’

> 저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유림씨의 설거지를 도울 수는 있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대충 감은 잡힌다. 능력을 잘만 활용하면 일상에서 제법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령계에서의 능력을 더욱 키우면 활용가치 역시 더욱 높아지겠지.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화장실로 가서 대충 몸을 씻었다. 그런데 물을 보니 자꾸만 정령 아리안의 힘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거울이나 벽을 조준하고 물방울을 날려보고, 물을 손에 담아서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손바닥 안에 모아진 물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서유림이 상상하면 엉성하게나마 사람의 모양도 갖추고, 강아지의 모양도 갖추었다.

게다가 그런 모양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사람 모양을 만들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식이었다.

‘와! 정말 신기하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와 다르게 약간의 피곤함이 몰려오는 듯했다.

‘왜 그러지? 잠을 잘못 잤나?’

> 제 힘의 원천은 유림씨의 체력입니다. 제 힘을 많이 사용하면 그만큼 유림씨의 체력이 소모됩니다.

‘아, 그랬군! 대충 얼마나 소모된 거지?’

> 유림씨의 체력은 491에서 현재 386으로 감소된 상태입니다.

화장실에서 물을 가지고 장난한 것은 겨우 10분도 안 되었다. 그런데 무려 100이 넘는 체력이 감소되다니.

‘그리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닌데, 체력소모가 엄청나네.’

> 아직 제 능력이 부족해서 그래요. 정령계에서 더 큰 성장을 이루면 체력소모도 줄어들 겁니다.

역시 모든 힘의 원천은 정령계에 있었다.

그거야 뭐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줄 일이고. 그 전까지는 정령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그럼 출근해볼까?’

가뿐한 마음으로 집을 나왔다. 평소처럼 강성체육관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해장국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 사무실로 출근했다.

사람은 역시 규칙적인 동물인 듯하다. 사무실 출근 순서가 매일 똑같다. 권진아가 늘 1등이고, 다음이 강철중, 강은영, 오영훈, 서유림 순이다.

꼴등은 늘 한동민이다.

오늘도 한동민은 10분이 넘게 지각했다.

그런데 표정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평소에는 잠을 제대로 못 잔 사람처럼 자리에 앉자마자 눈부터 감았다. 그런데 오늘은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서유림부터 노려보았다. 게다가 그 눈빛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유? 물론 알지. 빤하잖아.

서유림이 ‘주먹이 운다.’ 결승에 진출하자 똥줄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거겠지.

사실 지난주부터 그랬다. 서유림이 부전승으로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설마설마 했는데, 8강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강승찬을 가볍게 쓰러뜨리니 비로소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것이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한동민과 서유림 사이의 내기를 명진식품 전 사원이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서유림을 볼 때마다 불안할 수밖에. 서유림을 바라보는 한동민의 눈빛에서 마치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놈을 어떻게 하지?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하지만 제까짓 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깟 5천만 원 때문에 깡패를 동원하겠는가? 물론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는 한동민 본인이 더 잘 알겠지.

모든 팀원이 출근하자 권진아가 커피를 타서 돌렸다. 권진아는 나름대로 센스가 좋아서 팀원들 취향별로 커피를 타는 재주가 있다.

“대리님도. 커피 한잔 드세요.”

“거기다 놔.”

한동민이 슬쩍 눈짓으로 책상을 가리켰다. 권진아가 책상에 커피를 조심스럽게 놓았다.

하여튼 싸가지 하고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는데 돈이라도 드나?

권진아가 서유림의 커피도 서비스해줬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서유림이 보고 배우라는 듯 감사의 리액션을 해주었다.

“전 그만 창고로 가보겠습니다.”

서유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한동민을 부르며 다가갔다.

“한 대리님!”

“왜?”

한동민이 거칠게 대답했다. 그깟 5천만 원 때문에 신경이 무척 날카롭게 서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왠지 한번 툭 건드려보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이제 결승전만 남았습니다. 5천만 원은 준비되셨죠?”

“씨발, 우승이나 하고 얘기하던가.”

나이도 한 살 어린놈이 말끝마다 반말이다. 돈 많고 직급 높으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법이라도 있냐?

하여튼 매를 번다니까.

서유림이 가볍게 웃으며 한동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한동민이 자신도 모르게 움츠렸다.

서유림을 향한 거부반응이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그랬다. 서유림이 어깨를 주물러주겠다고 하는데도 싫다며 손을 뿌리치기도 했다.

물론 서유림이 체력을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은 아니다. 단지 본능적으로 서유림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뿐이었다.

어쨌건 그 때문에 체력 흡수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구실을 찾아서 스킨십을 하긴 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동민이 벌써부터 경고성 메시지를 날린다.

“내 몸에 손대지 마. 기분 나쁘니까.”

그럼 곤란하지. 그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단다.

서유림이 호주머니에서 티켓 한 장을 꺼내서 한동민의 손에 잡아주었다. ‘주먹이 운다.’ 관람티켓이었다. 결승전 진출 선수에게만 특별히 주는 공짜 티켓이었다.

한동민이 그것만큼은 거절하지 않았다.

서유림이 그런 한동민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눈을 가만히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이번 주말에 꼭 오셔야 합니다. 제가 우승하는 것 직접 보셔야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서유림이 가뿐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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