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57화 (57/196)

# 57

앞으로 형님이라고 불러라. (1)

이변은 없었다. 예상대로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전문 그래플러인 강승찬이 8강에 진출했다. 1라운드 시작되자마자 30초 만에 암바를 성공시켰다.

부상 하나 없이 팔팔한 몸으로 서유림과 붙게 된 것이다.

덕분에 한동민이 모처럼 신이 났다. 주말에 서유림에게 체력을 빨리지 않은 효과까지 더해져서 아주 방방 뜬다.

“이번 미들급 우승자는 강승찬이라니까. 서유림씨 아쉬워서 어떻게 해? 강승찬만 아니었으면 어찌어찌 결승까지 진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놈 참 말 가볍네. 그렇게 자신 있으면 추가로 내기를 하자니까. 왜 ‘내기’ 소리만 나오면 꼬랑지를 내리는 건데?

“8강전에서 누가 이기나 저랑 천만 원 내기 할래요?”

“거 사람 참! 왜 그렇게 내기를 좋아해?”

그럼 주둥이라도 닥치고 있던가.

아무래도 체력이 문제인 것 같다. 저놈은 체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모조리 주둥이로 몰리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저 주둥이를 닫게 해줘야겠지.

서유림이 한동민의 어깨에 달라붙었다.

“에이, 그러시지 말고 내기 하죠. 1천만 원이 부담스러우면 직원 간식내기는 어때요?”

“됐어. 간식 자주 먹으면 살쪄. 어깨 안 주물러줘도 되니까 퇴근이나 해.”

“진짜 재미없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서유림은 퇴근하면 매일 강성체육관 아니면 복성체육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오늘은 액션TV 방송국으로 향했다. 8강전을 앞두고 사전 인터뷰가 약속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전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아니,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긴장할 것 없습니다. 단지 시청자들의 흥미를 좀 더 강하게 유발하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이번 8강전을 앞둔 느낌이나 각오를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당사자에게 직접 말해도 되고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된 느낌이다.

서유림이 조금은 딱딱한 표정으로 강승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선을 다해봅시다.”

그러자 리포터가 손을 흔들었다.

“에이. 그러면 재미가 없죠. 사전인터뷰에서부터 서로 싸우듯 해야죠. 그래야 시청자들이 볼 때 ‘와! 정말 피 튀기게 싸우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긴장감 넘치게 보죠.”

한마디로 말다툼하라는 거잖아.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이야 몸이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겼다지만, 평생 약자로서 움츠리고만 살아오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본능적으로 꺼려졌다.

하지만 강승찬은 다른 모양이다.

서유림이 제대로 나서지 못하자 답답하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하하, 지옥에서 태어난 송곳 파이터라고 하더니 웬 겁이 그렇게 겁이 많아요? 혹시 지옥에서 쫓겨난 소녀 파이터 아닙니까? 하하.”

재치 있는 입담이었다. 덕분에 주변 사람도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리포터도 잘하고 있다는 듯 더 부추긴다.

강승찬이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옥에서 태어났으면 그곳에서 계속 살 것이지 여긴 왜 왔어요? 이번에 내가 다시 지옥으로 보내줄 테니까 다시는 오지 마세요. 하하.”

리포터가 이번에는 서유림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별 말은 없었다. 강승찬이 시범을 제대로 보였으니 알아서 상대를 자극해보라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비슷한 수준으로 대응해줘야 하겠지.

그런데 꼭 그런 식으로 입을 털어야만 되는 걸까?

난 달라. 나만의 방식대로 해주지.

서유림이 강승찬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뻗어보았다. 물론 빈 주먹질이었다. 대신 입으로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피유~~! 30초!”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강승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보니 의사는 충분히 전달된 모양이다.

리포터도 크게 만족한 듯했다. 사전 인터뷰는 그렇게 짧게 끝났다. 기다리는 시간 빼고 실제로 인터뷰한 시간은 10분도 안 되는 것 같다.

젠장, 겨우 이거 하려고 사람을 오라 가라 한 거였어?

허탈한 기분으로 방송국을 나왔다.

강성체육관에서 실컷 땀을 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서미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몰래 방으로 들어온다.

“오빠, 이거.”

홍보와 관련한 계약서들이었다. 드디어 일을 끝낸 모양이다.

계약서를 확인한 서유림은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서미진은 역시 인물이라니까. 겨우 일주일도 못 돼서 스폰서 계약을 이렇게 빵빵하게 성사시키다니. 무려 3천만 원이나 되었다.

“오빠가 우승하지 못하면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네.”

한마디로 내가 우승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는 거겠지.

그래. 어디 한번 제대로 털려봐라.

강성체육관에서 받은 것까지 포함하니 총 5천5백만 원이나 되었다. 상금보다도 많은 액수라니. 생각보다 두둑했다.

강성체육관에 5백만 원 깎아주지만 않았어도 6천만 원 되는 건데.

그런데, 가만!

그러고 보니 서미진 고것이 겨우 일주일 일하고 무려 3백만 원이나 챙기는 셈이 되네.

와! 내가 계약을 잘못 체결했다. 계약금의 10%나 떼어준다고 했다니.

5% 아니, 1%만 체결하는 건데. 일주일에 30만 원이면 대학생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충분하잖아.

서미진이 서유림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빠 파이팅! 꼭 우승해야 해. 우승 못하면 나한테 주~~욱어!”

내가 미쳤지. 저런 악마한테 3백만 원씩이나 주다니.

아이고, 아까운 내 돈.

* * *

드디어 8강전이 시작되었다.

16강전까지는 녹화방송이었고, 8강전부터는 모든 경기가 액션TV를 통해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물론 부모님은 아직 전혀 알지 못한다. 언제쯤 알고 팔짝팔짝 뛰게 될까 조금은 조마조마했는데 아직까지 조용한 걸 보니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생방송이라 그런가? 괜히 긴장되네.

다른 출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리를 심하게 떨거나, 크게 심호흡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몇몇 사람은 과장된 행동으로 자신의 긴장감을 감추기도 했다.

오늘 서유림과 상대할 그래플러 강승찬이 그랬다.

“서유림씨. 만약 통증이 심하다 싶으면 빨리 탭을 때려요.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자칫 발목이나 팔꿈치가 부러질 수도 있으니까.”

시비 거는 거야 뭐야? 사전인터뷰 때문에 상대방 자극하는 것에 재미 들린 건가? 아니면 내 30초 발언에 제대로 자극된 건가?

그나저나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나도 정령계에서 매일 밤마다 그래플링 연습하고 있는데. 이제는 요정 아리아나에게 박수를 받을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와버렸는데.

물론 평생 레슬링만 훈련한 강승찬을 능가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적어도 강승찬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플링 문외한은 아니라고.

물론 요정무술이라는 패는 마지막까지 숨길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주먹이 운다.’가 끝날 때까지.

원래 숨겨둔 비장의 한수가 많을수록 뒤가 든든한 법이거든.

그런데 대회운영을 왜 이따위로 하는 거야? 대결 상대끼리는 서로 떨어뜨려놓아야 하는 것 아냐? 대기실에서 말싸움하다가 실제 싸움으로 커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설마 그걸 노리는 건가? 서로 싸우면 그게 화제가 되어 시청률이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딘가에 몰래카메라가 있다는 뜻인데.

아! 저기 있군! 저기도 있고, 저기도······.

그러고 보니 대기실을 지켜보는 카메라만 네 대나 되었다. 여태껏 저것들을 모르고 있었다니.

잠시 후, 개인대기실로 향했다.

조력자인 배복성도 비슷한 시각에 개인대기실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서유림의 어깨부터 다독여주었다.

“긴장할 것 없어.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전혀 긴장 안 되는데. 오히려 배복성이 더 긴장하는 것 같다. 그 긴장이 괜히 나에게까지 전염되는 듯하다.

“관장님.”

“응? 왜?”

“다리 좀 그만 떠세요.”

“응? 다리? 내가? 아! 그래.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테이크 다운만 잘 피하면 되는 거야.”

며칠 전부터 그 얘기만 수십 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거든. 피하란다고 피할 수 있으면 전부 다 격투기선수하게.

“전 이미지 트레이닝 좀 하겠습니다.”

“그래. 그거 좋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강승찬과의 대결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서유림과 강승찬의 차례가 되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다. 긴장하지 마. 긴장 풀어.”

긴장 안 된다니까 자꾸 그러네.

그냥 못 들은 척하고 경쾌하게 뛰어서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서유림의 소개 멘트는 그대로였다. 지옥에서 태어난 송곳 파이터.

강승찬의 소개 멘트 역시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케이지는 나의 늪.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다. 공포의 악어이빨 강.승.차~~~안!”

와아-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무척 컸다.

사전인터뷰 덕분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주먹이 운다.’ 광고할 때마다 인터뷰가 방송되었고, 덕분에 몇몇 대결은 제법 흥미를 끌었다.

특히 서유림과 강승찬의 대결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주먹이 운다.’에서 가장 시원시원한 경기를 펼치고 있는 사람이 세 명 있는데, 그중 두 명이 바로 서유림과 강승찬이니까.

강승찬은 압도적인 그래플링 실력으로 상대를 모두 1라운드만에 굴복시켰고, 서유림 역시 송곳 같은 크로스 카운터로 승부를 1라운드 안에 끝내버렸다.

나머지 한 사람은 여고생 강간 살인범으로도 유명한 도상국이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서유림과 도상국을 강승찬과 함께 미들급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기까지 했다.

타격 전문과 그래플링 전문의 대결이라는 점도 흥미요소였다.

그러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그런데 나도 무대체질인 모양이다. 관중들의 함성을 온몸으로 받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솟는 느낌이다.

가벼운 흥분도 느껴졌다.

멋지게 끝내주자.

땡!

드디어 공이 울렸다.

그런데 저놈 뭐야? 공이 울리자마자 자세를 낮추더니 바닥을 기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이 악어라도 된 것처럼 네 발로 움직이는 것이다.

4점 포지션에서의 안면 킥 공격 금지라는 규정을 이용한 거겠지. 즉 두 발과 두 손이 모두 바닥에 닿아있는 상대에게는 얼굴에 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머리를 쓰긴 썼군.

그런데 잘못 썼다. 꼭 발로만 공격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껏 발차기로 상대를 공격한 적이 없거든.

크로스 카운터 몰라? 내 주특기는 주먹이라고.

서유림이 냅다 다가갔다.

강승찬도 그 틈을 노리고 테이크 다운을 위해서 하체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건 이미 예상한 동작이다. 그래플러인 네가 그 자세에서 그것 말고 달리 공격할 방법이 있겠어?

주먹 한 방쯤은 맷집으로 때우고 포지션을 노리겠다는 계산이겠지. 날 넘어뜨리기만 하면 게임을 쉽게 끝낼 수 있다 그거 아냐?

그런데 내 펀치를 맷집으로 때울 수 있을까?

어디 한번 해보시지.

서유림이 테이크다운을 피하듯 하체를 뒤로 쭉 빼며 강승찬의 얼굴을 향해 어퍼컷처럼 주먹을 날렸다.

힘을 완전히 뺀 주먹이었다. 그래야 강승찬의 회피동작을 따라가듯 타격할 수 있으니까.

예상대로 강승찬이 고개를 비틀며 주먹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힘을 잔뜩 뺀 서유림의 주먹은 패트리어트미사일처럼 방향을 비틀며 강승찬의 안면에 정확히 적중했다.

서유림의 근력과 순발력은 이미 보통 사람의 4배를 훌쩍 넘고 있었다. 제아무리 힘을 뺀 주먹이라고 해도 가벼울 수가 없었다.

단 한 방에 강승찬이 깜짝 놀라서 손으로 얼굴을 막기 시작했다. 뒤늦게 일어서서 피하려 했지만, 그렇게 놓아둘 서유림이 아니었다.

서유림의 주먹이 계속해서 날아갔다.

힘을 뺀 만큼 빠른 연타가 가능했다. 이마와 얼굴에 꿀밤을 먹이듯 빠른 연타로 계속 때렸다.

어! 뭐야? 겨우 펀치 다섯 방을 못 버티네.

강승찬이 갑자기 푹 쓰러지더니 움직임을 멈춘다. 엎드린 자세라서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 있는데 눈이 완전히 풀렸다.

깜짝 놀란 심판이 다가와서 얼른 경기를 마쳤다.

그제야 강승찬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하지만 경기는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강승찬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했다. 자신이 3초가 넘는 시간동안 기절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그러게 왜 그렇게 바닥을 기어 다니고 그래?

나름대로 악어처럼 행동하려고 했던 모양인데, 내 눈에는 그냥 개처럼 보였을 뿐이다.

시간을 보니 딱 26초 걸렸다. 그냥 장난삼아 말한 ‘30초 안에 끝내기’가 얼떨결에 실현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사회자가 케이지 안에서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서유림씨. 약속대로 30초 안에 끝내셨군요.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가요?”

물론 아니지. 시간을 오래 끌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생각도 없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좀 더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재미없겠지? 원래 꿈보다 해몽이 중요한 거잖아.

게다가 내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내 경기를 보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독특한 캐릭터가 되어야 하겠지. 내 경기에 기대심도 갖도록 하고.

‘말만 앞세우는 허풍쟁이’라는 악플도 나쁘진 않다. 악플도 관심의 증거니까. 다만 ‘인간이 못됐다.’라는 평만 받지 않으면 된다.

사회자의 질문에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상대방이 초반부터 그래플링으로 승부를 걸어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 틈에 펀치를 꽂아 넣는 게 애초의 작전이었는데 상대방이 예상대로 움직여줘서 경기를 쉽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지옥에서 태어난 송곳 파이터 답군요. 이제 준결승과 결승만 남았습니다. 어쩌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도상국 선수와 결승에서 만날 수도 있는데 각오는 어떻습니까?”

여기에서 왜 갑자기 도상국 이야기가 나와?

사실 도상국과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하지만 흉악범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도상국’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괜히 감정이 상했다. 내가 피해자도 아닌데 피해자 대신 복수해주고 싶은 기분이랄까?

법이 주는 심판은 모두 받았다고? 그럼 나도 합법적으로 복수해주면 되잖아. 이곳 케이지에서의 구타보다 더 확실하고 합법적인 복수가 어디 있을까?

능력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서유림은 지금의 기분 그대로를 표현해주었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피유~~! 30초! 그 안에 주먹이 운다에 도전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습니다.”

서유림이 강승찬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재현해보였다.

물론 그것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니 나는 놈의 얼굴에 그만큼의 상처를 주어야 하겠지.

사회자 역시 크게 만족스러워했다.

“여러분! 송곳 파이터 서유림이었습니다!”

와아-

관중들의 함성을 뒤로 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체육관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개인 대기실은 경기를 치르기 직전의 선수만 사용할 수 있다.

경기를 마친 선수는 이렇게 공용대기실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공용대기실에 정해진 자리가 있었나? 대회 관계자가 서유림에게 자리를 지정해주었다. 그것도 하필 이상한 자리에.

“도상국씨 옆에 앉아주세요.”

뭐야? 서로 나란히 앉아서 신경전이라도 벌이라는 거야?

내키지 않는다. 조금 전에 도상국을 자극하는 멘트를 남기고 들어오지 않았는가?

도상국도 대기실의 TV를 통해서 모두 지켜봤을 터.

아 놔, 이런 분위기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행자가 그 자리에 앉으라는데.

게다가 도상국와 엮기기 싫은 것뿐이지 무서운 것은 전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한주먹에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보내줄 자신도 있었다.

서유림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도상국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도상국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그냥 TV만 바라보았다. 대회 관계자도 옆에 앉으라는 말만 있었지 그 이상의 주문은 없었다.

도상국 역시 서유림에게 무관심했다. 딱히 할 일도 없는지 서유림과 시선을 나란히 한 채 TV만 지켜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상국이 툭 찌르듯 말을 걸어왔다.

“타격 실력 좋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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