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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48화 (48/196)

# 48

송곳 파이터 (2)

한호영은 여전히 거칠게 공격했다. 서유림이 오로지 방어만 하고 있으니 수비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시종일관 공격 일변도로만 나왔다.

게다가 제법 지친 상태라서 동작도 컸다.

당연히 빈틈이 많을 수밖에. 특히 안면에.

이건 제발 안면 좀 공격해달라고 부탁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부탁을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이왕이면 크로스 카운터로 그 부탁을 멋지게 들어줘야 할 것이다.

서유림이 가만히 기회를 노렸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워낙 공격이 거칠어서 늘 빈틈이 보였고, 늘 타이밍이 잡혔다.

한호영이 오른손 주먹을 힘껏 뻗는 게 보였다. 가드를 완전히 내린 상태라서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서유림이 옆으로 슬쩍 피하면서 마치 맞받아치듯 오른손 주먹을 송곳처럼 일직선으로 쭉 뻗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주먹을 뻗긴 했지만, 그때마다 솜방망이 주먹이었다. 오직 타이밍을 잡아보기 위한 연습 차원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파워를 실어서 주먹을 뻗는 것은 경기 시작하고 처음이었다. 그나마도 힘을 50% 정도로 죽인 것이지만.

전력을 다하다가 한호영을 죽이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아무리 밉상인 놈이라고 해도 그런 전례는 만들고 싶지 않다.

힘이 줄어든 만큼 정확도는 높아졌고, 움직임도 깔끔했다. 최단거리로 뻗어진 송곳 같은 주먹은 헤드기어 사이로 드러난 한호영의 코를 예쁘게 찔러주었다.

퍼억!

“억!”

한호영이 순간적으로 비틀했다. 가벼운 한방이었지만, 워낙 방심한 상태로 맞은 크로스 카운터라서 충격은 두 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야 없지.

원래 펀치는 ‘원!’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최소한 ‘원투!’, 상황이 허락되면 ‘원투쓰리!’까지 가야지.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었다.

그러고 그것 알지? 첫 펀치보다는 두 번째 펀치가 강하고, 두 번째 펀치보다는 세 번째 펀치가 강하다는 것!

휘청거리는 한호영의 얼굴을 향해 다시 왼손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이번에는 더욱 가볍게. 제3타를 위한 준비라고 할까?

두 번째 주먹도 한호영의 코를 정확하게 찍었다. 한호영의 몸이 뒤로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서유림의 세 번째 주먹이 더 빨랐다. 경기를 끝내기 위한 마지막 한 방!

‘성형외과 가서 좀 더 예쁜 코로 만들어달라고 해라!’

이번 주먹에는 60% 정도의 힘을 실었다.

파앗!

세 번째 주먹이 놈의 안면을 강타함과 동시에 선홍빛 핏물이 허공에 튀었다. 이미 첫 번째나 두 번째 펀치에서 코피가 터졌던 모양이다.

이어서 놈이 고목나무처럼 쓰러지며 쿵! 하는 충격음을 만들어냈다.

심판이 깜짝 놀라서 다가갔다. 한호영의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손을 좌우로 흔들며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의료진들이 다급히 다가왔다.

서유림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호영을 바라보았다.

아! 물론 표정만. 이렇게라도 해줘야 매너 있다는 소리를 듣잖아. 아무리 깡패라고 해도 ‘꼴좋다!’ 하는 식으로 나오면 개매너니 뭐니 하며 악플 잔뜩 받을 테니까.

나야 눈 감고 귀 닫고 신경 끄면 그만이지만, 부모님이 그 악플 보시면 거품 무실 게 뻔하다.

좋은 게 좋은 거잖아.

그나저나 한호영의 꼴이 너무 흉하다. 겨우 60%의 힘으로 때렸는데 저 지경이 되었나? 쌍코피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다.

설마 저러다가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그래봐야 겨우 쌍코피일 뿐인데.

그래도 다음부터는 힘을 좀 더 죽여야겠다.

“괜찮을까요? 크게 다친 것 같은데.”

“의료진이 괜찮다고 합니다. 참가자는 그만 퇴장하세요. 아차! 서유림 선수 승리!”

심판이 뒤늦게 서유림의 손을 번쩍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얼른 대기실로 밀어주었다.

서유림이 대기실로 향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내 경기를 어떻게 봤을까? 내 실력을 알아봤을까?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전문가들이니만큼 웬만큼은 알아봤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알아봤다고 해봤자 내 타격기술의 50%정도에 불과할 테니까. 게다가 서브미션 능력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설령 100% 다 알아본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다. 그때 쯤 되면 내가 목표한 바는 다 이룬 후일 테니까.

대기실로 들어와서 결과를 기다렸다.

이미 이겼는데 무슨 결과를 기다리느냐고? 예선을 몇 번 치러야 하는지에 대한 결과다.

한 번 이겼다고 해서 단번에 본선에 진출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두 번의 예선을 거쳐야 하고, 몇몇 사람은 세 번까지 예선을 치러야만 한다.

마지막 예선은 투신과의 대결!

즉, 이미 프로격투가가 된 사람들과 대결해서 3분을 버티는 것이다. 그 과정을 보고 본선 진출자를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

잠시 후 결과가 발표되었다.

서유림은 후자였다. 아마추어와의 예선을 한 번 더 치러야만 투신과의 마지막 예선을 치를 수 있다.

진행자가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간단한 내용이었다.

“실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1차전 승리가 우연인지 실력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2차 예선을 치러야 합니다.”

전문가도 별것 아니군. 그 정도면 내 타격 실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피하고 막은 펀치와 킥이 몇 번이나 되는지 몰라?

어쨌건 잘됐다. 투신과 경기를 치르려면 어차피 실전감각을 더 끌어올려야 하니까.

“2차 예선은 언제쯤 치러집니까?”

“오늘 1차 예선이 끝난 후에요. 대충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쯤 걸릴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나가서 운동 좀 하고 있으려고 했는데, 편차가 두 시간씩이나 되다니. 일찍 돌아와야 하나?

“혹시 순서 되면 문자 좀 찍어줄 수 있나요? 제가 급한 볼일이 있어서······.”

뭐야? 왜 그렇게 뻥친 표정을 하는데? 내가 해서는 안 될 부탁이라도 한 거야? 그깟 문자 한 통 찍어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진행자가 무척 바쁜 모양이다. 대답하자마자 얼른 대기실 밖으로 사라진다.

그럼 나도 운동 좀 나가볼까?

“거기 잠깐!”

밖으로 향하는데 날 선 목소리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이 목소리, 귀에 익은데!

고개를 돌려보았다.

역시나였다. 아까 대기실에서 한호영과 이야기 나누었던 투신이었다.

용건이야 안 들어도 빤하지 뭐.

투신이 천천히 다가왔다. 눈에 힘 빡 주고. 게다가 목소리도 쫙 깔았다. 공포분위기 조성하려고 작정한 듯했다.

“2차 예선도 반드시 통과해라. 그래야 날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이거 반어법 맞지? 2차 예선 통과하면 최종예선에서 자신에게 반쯤 죽을 거라는 경고.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알아서 예선탈락 하라는······.

근데 그거 알아? 너 지금 매를 벌고 있다는 것.

“실력 좋은 정형외과도 미리 알아놓고. 이왕이면 코뼈 수술 잘하는 곳으로.”

이거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나? 겁먹은 척이라도 해줘야 하는 건가? 아니면 ‘너나 잘하세요.’ 한마디 해줘야 하는 건가?

이런! 고민이 너무 길었다. 투신이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몸을 돌려서 사라지려고 한다.

그렇게 가면 섭섭하지. 내가 2차전 통과하기를 바란다면 너도 나름대로 노력은 해줘야 할 것 아냐?

“저기요.”

투신이 고개를 돌렸다.

“그럼 2차전 상대는 좀 약한 사람으로 붙여주시는 건가요?”

“······뭐?”

투신이 어리벙벙한 표정을 한다. 내 말이 그렇게 엉뚱했나?

투신이 인상을 찌푸리며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 말을 중간에 가로채는 사람이 있었다.

조금 전에 대기실 밖으로 나갔던 진행자였다. 무슨 일이 있는지 다시 다급히 대기실로 들어왔다.

“서유림씨, 잠시만요. 제가 바빠서······. 아! 강규정씨 여기 있었네.”

저 투신의 이름이 강규정이었나?

그런데 진행자가 훨씬 높은 사람인 모양이다. 강규정이 진행자를 보고는 깍듯이 고개를 숙인다.

“예, 과장님.”

“잘됐군. 내가 바빠서 그러는데 이 진행표 보고 서유림씨 순서 되면 문자 좀 날려줘.”

“······예?”

강규정이 어깨를 움찔했다. 나름대로 서유림 혼내주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찾아온 건데, 오히려 서유림 잔심부름을 하려고 찾아온 꼴이 되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간다고 하는 걸까?

조금 다른 것 같긴 하군.

어쨌건 왠지 모르게 통쾌한 부분이 있다.

이럴 땐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괜히 남아있어 봤자 귀찮은 일만 생길 테니까.

나머지는 둘이 알아서 하겠지.

“그럼 부탁드립니다. 파이팅!”

서유림이 강규정을 향해 힘껏 파이팅을 외쳐주고는 도망치듯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오빠! 여기에요, 여기!”

“서유림씨!”

강은영, 권진아, 강철중이다. 대기실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경기를 마친 사람이 빠져나오는 문은 여기뿐이니까.

귀찮게 생겼네. 운동해야 하는데.

“어, 왔구나! 언제 왔어?”

“아까부터 와있었죠. 오빠 찾으려고 한참 헤맸어요. 그러다가 경기하는 것 봤고요. 와! 오빠 정말 멋졌어요. 원투쓰리!”

강은영이 저것도 은근히 불여시라니까. 은근슬쩍 ‘오빠’라고 부르네.

근데 너무 자연스러워.

게다가 원투쓰리! 하면서 주먹 내뻗는 모습도 은근 귀엽다.

그래도 마음은 끌리지 않는다. 너에게 마음을 주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거든.

“근데 미안해서 어쩌지? 나 아직 예선 안 끝났어. 대여섯 시간 후에 2차 예선 치러야 해. 그때까지 운동 좀 해야 하는데.”

“그렇구나. 그런데 가족 분들은 응원 안 오셨어요?”

미쳤어? 이런 일을 가족에게 알리게? 알게 되면 아마 걱정 때문에 밤잠을 못 주무실 텐데.

마지막 순간까지 비밀로 해야 할 것이다.

‘주먹이 운다.’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액션채널 자체를 거의 안 보시는 분들이니 본선이 끝낼 때까지도 모르실 거다.

물론 주변 분들이 보고 ‘자네 아들 TV에서 봤네.’ 하는 식으로 알려줄 수는 있겠지.

“가족은 모르셔.”

“그렇구나. 어쨌건 점심은 드셔야 하잖아요. 점심은 저희랑 함께 먹어요.”

“그래. 점심때 보자. 강철중씨. 죄송합니다. 일부러 경기장까지 찾아와주셨는데.”

“아닙니다. 그리고 밖에서는 말씀 놓으세요, 형님. 제가 한 살 어리잖습니까.”

“에이, 그래도······. 그럼 이따 한 시쯤에 봬요. 전화 드릴게요.”

서유림이 팀원들을 뒤로 하고 뛰었다.

방향은 이미 정해놓았다. 어제 인터넷을 통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고등학교를 확인해놓았다.

투신 강규정으로부터 문자가 온 것은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서였다.

[순서 됐어. 빨리 와. 넌 나중에 뒈졌어.]

표현이 생각보다 약하다. 엄청나게 센 걸 기대했는데.

문자 찍기 귀찮아서 약식으로 한 건가?

서유림도 마침 운동을 접고 종합체육관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3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그래도 답장을 해줘야 하겠지? 그래야 예의 바른 사람이지.

[쌩유 베리 감사요]

서유림이 도착하자 경기 진행자가 서둘렀다.

“빨리 준비하세요. 다음다음 순서입니다.”

그리고는 또 후다닥 대기실을 빠져나간다.

뭐가 이렇게 급해? 지금껏 운동하고 돌아와서 아직 숨도 제대로 못 골랐는데.

좀 더 일찍 돌아와서 체력 좀 비축해둘 걸.

그런데 투신 강규정이 또 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들어오자마자 서유림을 노려보았다. 이번에도 서유림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용건인 모양이다.

“예선전 치르겠다는 놈이 어딜 싸돌아다니다 온 거야?”

오! 체력이 부족했는데 마침 잘 됐다.

서유림이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강규정에게 다가가서 두 손을 공손하게 내밀었다.

“선배님께 이것 좀 드리려고요.”

“응?”

강규정이 얼떨결에 손을 내밀었다. 서유림이 비로소 분위기를 파악하고 아부를 떨기 시작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서유림이 그런 강규정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강규정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긴 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이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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