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요정무술은 OOO이다. (2)
“동작을 하나하나 풀어서 가르쳐드릴게요. 다시 위로 올라와보세요.”
그래주면 고맙지.
다시 포개지듯 아리아나의 온몸을 짓눌렀다.
잠시 가라앉았던 그놈은 다시 흉기가 되어 아리아나를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아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것처럼.
그러다 보니 서유림도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놈이 흉기가 되건 말건, 아리아나의 몸 구석구석을 연신 찔러대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수업에만 열중했다.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해보세요.”
아리아나와 서유림은 그렇게 계속 자리를 바꿔가며 연습했다. 한번은 서유림이 위에서, 한번은 아리아나가 위에서.
그러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부부처럼 꼭 끌어안고.
난 잠잘 때가 제일 좋더라.
다음날에도 같은 하루가 반복되었다. 낮에는 요정의 샘물을 중심으로 주변을 크게 돌며 지형을 탐색했고, 저녁에는 요정무술을 배웠다.
정령계에는 온갖 마물이 득실거렸다. 뱀처럼 땅바닥을 기는 놈도 있고,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는 놈도 있고, 사람처럼 도구를 사용하는 놈도 있었다.
이따금 아리아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놈도 있었고, 아예 요정망토를 덮고 마물이 지나칠 때까지 숨어있어야 할 정도로 강한 놈도 있었다.
대부분은 만만한 놈들이었다. 아리아나가 뒤에서 마법을 걸어주고, 서유림이 칼로 난도질하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마력의 서는 더는 구하지 못했다. 있을만한 놈은 너무 강했고, 약한 놈들은 마력의 서를 품지 않았다. 다크트롤처럼 어중간하게 강한 놈이 나타나줘야 하는데, 그런 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조급하지 말자. 내가 더 강해져서 아리아나와 함께 더 강한 마물을 사냥하면 된다.
그때까지만 참자.
다시 오후가 되었다. 어김없이 요정무술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넘어뜨리는 동작부터 배웠다. 서로 대치하면서 상대방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다가 느닷없이 하체를 붙잡고 무게중심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건 MMA 격투기의 테이크 다운과 거의 완벽하게 같았다.
아리아나가 한번, 서유림이 한번 번갈아가며 공격과 수비를 연습했다.
이어서 넘어진 동작에서의 자세를 배웠다.
그런데 오늘따라 자세가 특히 야했다. 아리아나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서 서유림에게 손짓하는 것이다.
“오늘은 다리를 활용하는 요정무술을 가르쳐드릴게요. 이리 들어와 보세요.”
그 사이를 파고들라고? 가랑이 사이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차라리 옷이라도 두껍게 입던가. 그렇게 허벅지를 하얗게 드러내놓고는.
물론 아리아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겠지만, 난 다르다고. 내가 아무리 마인드컨트롤을 한다고 해도 정도가 있는 거라고.
“왜 그러고 있어요?”
정말 몰라서 묻나?
서유림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아리아나가 가르침을 멈추고 일어나 앉았다. 조금은 무거운 눈빛으로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자세가 너무 추해서 그래요?”
추한 거하고 야한 거는 조금 다른데.
아무튼 자세 때문인 건 맞다.
“어쩔 수 없어요. 요정무술 자체가 그런 거니까. 말씀드렸잖아요. 요정무술이 왜 만들어졌는지.”
마족의 겁탈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떨어져있는 상태에서는 굳이 요정무술이 필요 없다. 요정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마법이니까.
그 마법이 실패하고, 마족에게 붙잡히고 나서야 비로소 요정무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요정무술의 모든 동작이 성행위 동작과 비슷하다. 마족은 요정을 잡기만 하면 무조건 겁탈부터 하려고 하니까.
그러니 마족의 몸 아래에 깔린 상황에서 공격하거나 탈출하는 동작이 요정무술의 대부분일 수밖에.
“전 그냥 도움을 드리고 싶었을 뿐이어요. 꺼림칙하면 굳이 하지 않으셔도 돼요.”
꺼림칙하긴. 오히려 그 반대다. 지나치게 황홀한 게 문제지. 자꾸 생각이 삼천포로 빠져서 집중이 안 되는 점.
무엇보다도 아리아나에게 미안했다. 민망하게도 그놈이 자꾸만 흉기로 돌변해서 아리아나를 쿡쿡 찔러대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리아나만 괜찮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냥 모른 체하는 거다.
아리아나와의 관계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가르쳐주고 배우는 입장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히 예의를 갖춰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요정무술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그래.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리아나는 나의 스승님이다! 스승님으로 모시자!
서유림이 표정을 굳히고는 벌떡 일어섰다. 아리아나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마음도 경건하게 가다듬었다.
“죄송합니다. 꺼림칙하거나 한건 절대 아닙니다. 제가 잠시 인간의 기준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계속 가르쳐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어머!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리아나가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했다.
하지만 서유림은 세상 진지했다.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원만한 훈련을 위해서는 꼭 그래야만 했다.
“아닙니다. 이래야만 저도 훈련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제야 아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게 편하시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럼 다시 시작할까요?”
다시 요정무술 훈련이 시작되었다.
아리아나는 서유림을 위해서 동작을 바꿔주었다. 지나치게 야한 건 뒤로 미뤄두고 조금 덜 야한 동작들을 연습했다.
하지만 그게 아리아나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요정무술 자체가 마족의 겁탈동작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와 비슷한 동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훈련하는 도중에 아리아나의 가랑이 사이를 파고드는 일도 예사였다.
그러다 보니 이젠 서유림도 아리아나도 포기했다. 어떤 동작이 나오건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요정무술 자체에만 집중했다.
“상대방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해야 해요. 그러면서 기회를 노리려면 이렇게 허리를 휘감아야 해요.”
아리아나가 두 다리로 서유림의 허리를 거침없이 휘감았다. 그것도 모자라서 몸을 단단히 조였다.
이건 겁탈을 피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자세였다.
그러다 보니 서유림은 미칠 것만 같았다. 만약 누군가가 본다면 100% 엉뚱한 상상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접촉한 부위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옷을 입었기에 망정이지.
‘으악! 그래도 이건 자극이 너무 심해!’
엉덩이가 절로 하늘로 도망갔다. 조금이라도 자극을 덜기 위해서.
“그렇게 엉덩이를 들면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거예요. 몸을 바짝 붙이고 상체도 최대한 낮춰요. 안 그러면 이렇게 돼요.”
아악! 트라이앵글초크다. 완벽하게 걸렸다. 아리아나의 뽀얀 허벅지 사이로 얼굴이 완전히 파묻혔다. 순간 숨이 턱 막혀서 깜짝 놀랐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훈련이라고 이 병신아. 이상한 생각 좀 하지 말라고.
서유림이 정신 차리자는 의미로 자신의 뺨을 힘껏 때렸다. 그리고는 힘차게 이야기했다.
“다시 하겠습니다!”
아리아나가 다리를 벌려주었다. 그 사이를 파고들자 다시 허리를 휘감으며 바짝 조였다.
‘젠장. 집중하기 정말 힘드네. 이건 성고문 수준이잖아!’
* * *
서유림이 눈을 번쩍 떴다.
모텔 방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휴우, 인간계로 돌아왔구나.
깊은 한숨이 내쉬어졌다. 성고문에 가까운 요정무술을 배우다 보니 몸이 잔뜩 흥분되어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계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요정무술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눈을 뜨자마자 아랫도리에 참을 수 없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채희라가 쌔근쌔근 잠들어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이쪽을 보고 누워있는데 이불이 반쯤 내려와 있어서 어둑어둑한 가운데에도 봉긋한 젖무덤이 눈에 자극적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니 욕정이 더욱 치밀어 올랐다.
자는 걸 깨우면 싫어하려나?
싫다면 그때 그만두면 되지 뭐.
서유림이 잠들어있는 채희라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채희라가 곧바로 반응했다.
“으응? 뭐야? 또 하자고?”
“이놈이 자꾸 고개를 드네. 죽겠다. 괜찮지?”
“아웅. 피곤한데·········.”
그러면서도 팔로는 서유림의 목을 휘감는다.
됐다. 망설일 것 없다. 다시 한 번 실컷 욕정을 풀었다.
“하악. 하악.”
서유림이 숨을 헐떡이며 모텔로 들어왔다. 한참을 뛴 덕분에 온몸은 어느새 땀범벅이었다.
채희라도 지금쯤이면 일어나 있겠지?
어라! 아직도 자고 있네. 벌써 정오가 훨씬 넘었는데.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에 무리해서 그런 모양이다. 욕정을 풀자마자 다시 드러눕더니 지금껏 죽은 듯이 잠들어있다.
“희라야. 일어나. 점심은 먹고 자야지.”
“아웅.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어?”
비로소 채희라가 몸을 뒤척이다가 일어섰다. 씻고 화장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거렸다.
함께 식당으로 가서 배를 실컷 채웠다.
“하아, 잘 먹었다. 인제 뭐 하지?”
어느덧 오후 세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곧 한동민과 약속한 시각이다.
“난 세 시까지 요 앞 체육관으로 가야 해. 인제 서울로 올라가야지.”
“나도 그 차 타고 서울 함께 가면 안 될까?”
채희라가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붙임성 하나는 타고난 듯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 차를 저렇게 쉽게 얻어 타고 가려 하다니.
“친구들은?”
“꼭 모여서 다녀야 하나? 서울에서 만나면 돼. 어차피 여행 함께 다닐 때마다 늘 그랬어.”
늘 이런 식으로 남자 유혹해서 밤을 즐겼다는 거로군.
뭐, 각자 사는 방식이 있을 테니까.
“나는 괜찮은데 한동민 대리가······.”
서유림이 부드럽게 거절하려다가 멈칫했다.
가만있어봐. 안 될 이유가 없잖아?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이 한동민 아닌가? 채희라 같은 미인이 ‘태워주세요.’ 하면 오히려 고맙다고 절을 할 인간이다.
게다가 채희라는 이제 보물단지였다. 잘만 하면 채희라 덕분에 정령소환력을 쑥쑥 올릴 수도 있다. 임도 보고 뽕도 딸 수 있다는 거지.
물론 더는 정령소환력이 오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괜찮을 수도 있겠다. 함께 가서 말해보자.”
“고마워. 근데 오빠. 내가 그 인간 좀 혼내줘도 될까?”
“어떻게?”
“그건 내가 알아서 해. 대신 오빠가 아주 조금만 도와줘.”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한편으로는 재미있을 것도 같았다.
“내가 뭘 도와줘야 하는 건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백호체육관으로 향했다.
한동민의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 있다.
약속시각인 세 시가 되려면 아직 5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소리를 꽥꽥 내지른다.
“이 인간이 아직도 안 와있어? 빨리 전화해봐.”
강은영이 얼른 휴대폰을 꺼냈다.
‘제발 받아라. ······어!’
강은영이 한동민의 눈치를 보았다.
“전화기가······ 꺼져있어요.”
“이 인간이 진짜!”
강은영이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겁먹은 척 해보인 것뿐이다. 한동민의 신경이 왜 저렇게 곤두서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겨우 1분을 넘기지 못하고 물 먹은 솜처럼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러고 보면 요즘 들어 계속 그랬다. 지난밤은 아예 시도도 못했다.
나이 서른도 안 되었는데.
게다가 격투기 한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갑자기 부실해진 걸까?
강은영은 어쩌면 그것이 한동민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나한테서 더는 매력을 못 느끼는 건가?’
하긴, 오래 버텼지. 사귄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이니 3년 가까이 되었다.
강은영이나 되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한동민을 붙잡고 있는 것이지, 여느 여자 같았으면 벌써 팽을 당했을 것이다.
‘이제 슬슬 배를 갈아탈 준비를 해야 하는 건가?’
“다시 전화해봐.”
꺼져있는 휴대폰에 전화 건다고 받겠냐?
하지만 시키니 할 수밖에. 한동민의 신경이 날카로울수록 강은영의 손놀림은 빨라졌다.
강은영이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다가 눈을 크게 뜨며 반색했다.
“어머! 저기 와요. 서유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