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우린 제법 잘 어울려 (3)
“운이 좋으면 마력을 단번에 5 이상도 올릴 수 있어요. 마력이 10 이상 증가되는 것도 있지만, 그 정도 마물은 제가 사냥할 능력이 못 되고요.”
오! 단번에 5가 오른단다.
당연히 욕심이 났다. 일단 도전해보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마물이 나타난다면 그때 요정망토 안으로 쏙 숨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왠지 느낌이 좋아요. 이제 출발해볼까요?”
나도 느낌이 좋아.
“가지.”
여전히 서유림이 선두였다. 마력의 서를 품은 마물이 나타나주기만을 기대하면서.
아리아나가 뒤에서 받쳐주니 든든했다.
어찌 보면 아리아나의 보호 아래 성장하는 어린이가 된 기분이다.
조금 쪽팔린 감은 있지만, 무슨 상관이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그래. 최대한 빨리 성장하자. 그래서 내가 아리아나를 보호해주는 거다.
마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이번에는 머리에 뿔이 달린 다크혼이라는 놈들과 마주쳤다. 마치 코뿔소처럼 돌격하는 놈들이었다.
이번에도 아리아나가 땅의 정령과 결속마법으로 다크혼을 묶어놓았고, 서유림이 이삭줍기하듯 깔끔하게 사냥했다.
비록 기대했던 마력의 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레벨은 쭉쭉 올랐다.
아리아나도 마물에서 뽑아낸 마나스톤을 독식하며 소모한 마력을 빠르게 회복했다.
말 그대로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아무래도 아리아나와는 천생연분인 것 같다. 이렇게 궁합이 잘 맞을까?
아직도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았는데, 오늘 하루만 벌써 13레벨을 넘게 올렸다. 말 그대로 눈앞에서 섬광의 폭죽이 터졌다.
틀림없이 속궁합도 기가 막히게 잘 맞을 것이다. 기구한 운명 때문에 맞춰보지 못하는 게 원통하고 한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는데, 아리아나가 갑자기 낮으면서도 날카롭게 이야기했다.
“멈춰요!”
깜짝이야.
서유림이 돌발 상황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듯 달리기를 멈추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낮추며 상황을 살폈다. 아리아나가 저러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마물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
아! 저기 있군!
한 100m쯤 될까? 사람의 형상을 한 마물이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게 대체 뭐지?
외모도 걸어오는 모습도 마치 사람 같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저거야말로 완벽한 괴물이었다. 그것도 끔찍한 괴물.
얼굴도 피부도 마치 개구리 같은 양서류의 모습인데, 더욱 끔찍한 것인 피부 전체에 점액물질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마치 침이 잔뜩 묻어있는 듯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점액질이 끈적끈적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날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되었다.
“저놈은 마력의 서를 품고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앗싸! 대박이닷!
남은 문제는 하나뿐이다.
과연 내가 사냥할 수 있는 놈일까? 마력의 서를 품고 있는 놈이니만큼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만큼 더 긴장하고 조심해야 하겠지.
서유림이 칼을 세웠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아리아나가 정령이나 마법을 써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리아나가 뜻밖의 말을 했다.
“유림씨가 상대할 수 없는 놈이에요. 온몸이 맹독으로 이루어진 놈이니까 멀찌감치 물러나 있으세요.”
그럼 저 끈적끈적한 것이 전부 맹독이라는 건가?
세긴 센 놈인가 보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는가?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을 펼친다면 훨씬 더 위력적으로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아나는 뒤에서 마법을 걸어줘. 그래도 내가 상대해볼게.”
“아니요. 다크트롤에게는 정령도 마법이 통하지 않아요.”
정령도 마법도 통하지 않아? 그럼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야?
차라리 요정망토 안에 숨는 게 낫지 않을까?
혹시 요정망토도 효과가 없는 건가?
어쨌건 내가 나설 상황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듯했다. 이럴 때는 그냥 방해가 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칼이라도 줄까?”
“아뇨. 어서 뒤로 빠져요.”
아리아나의 목소리가 무척 차갑다. 벌써부터 다크트롤과의 싸움을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서유림이 눈치껏 뒤로 빠져주었다. 그것도 멀찌감치. 자칫 놈의 표적이 되면 아리아나의 싸움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아리아나도 그걸 염려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칼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그럼 대체 뭘 가지고 싸우겠다는 거야?
어! 저 자세는······?
아리아나가 다크트롤을 향해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는 마치 유도나 레슬링선수처럼 손을 들고 싸울 준비를 했다.
마치 맨손으로 때려잡겠다는 식으로.
미친 것 아냐? 저놈은 온몸이 맹독이라면서?
드디어 아리아나와 다크트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아리아나가 그 설마를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다.
아리아나는 단검도 주먹도 발길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 뭘 가지고 싸우느냐고?
온몸이었다. 다크트롤의 맹독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저 동작은 뭐지? 저건 레슬링 동작 같은데. 저건 유도 같고.
아리아나가 빠르면서도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마치 다크트롤과 MMA방식의 맨손 격투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대치했다.
다크트롤은 동작이 무척 거칠었다. 마치 곰처럼 손을 휘두르기도 하고, 입을 쩍 벌려서 톱날 같은 이빨로 아리아나를 물어뜯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아리아나는 바람처럼 물처럼 부드럽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다크트롤의 공격을 피하고 흘려냈다.
와! 멋진 움직임이다. 저런 움직임을 격투기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실력이 진일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리아나가 갑자기 다크트롤의 등 뒤로 돌았다. 그와 동시에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으앗! 깜짝이야!’
역시 선입견은 무서운 것이다. 다크트롤의 온몸이 맹독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절대 피부에 닿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리아나가 맨몸으로 와락 끌어안아버리니 놀랄 수밖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런데 아리아나의 몸이 저렇게까지 빨랐나? 눈 깜짝할 사이에 등 뒤로 달라붙었다.
게다가 다크트롤의 목을 조이는 연속동작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동작이 너무도 깔끔했다.
다크트롤은 꼼짝도 못하고 목을 내주었고, 아리아나는 팔을 아주 깊게 넣은 채 힘껏 조였다.
‘앗! 저건 주짓스 기술이다. 확실해.’
리어네이키드초크!
서유림의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이토록 위험한 순간에도 아리아나의 예술같은 움직임에만 매료되어있었다.
서유림의 머릿속에는 언제부턴가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저거······ 배우고 싶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왜 굳이 저런 식으로 싸우는 거지? 요정의 단검을 사용하면 훨씬 쉽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저렇게 사냥해야만 마력의 서를 구할 수 있는 건가?
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서유림은 일단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도록 칼을 들고 단단히 채비한 채.
다크트롤이 아리아나를 떼어내기 위해서 심하게 발버둥 쳤다.
하지만 아리아나는 엿가락처럼 달라붙었다.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며 온 힘을 다해서 다크트롤의 목을 조였다.
아리아나의 힘이 저토록 강했나 싶었다.
하지만 다크트롤은 끈질겼다. 벌써 1분이 넘게 목을 조이고 있는데도 여전히 힘차게 버둥거렸다.
반면 아리아나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힘이 빠지고 있는 듯했다.
서유림은 그렇지 않아도 칼을 힘껏 움켜쥔 채 언제든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이 그때인 듯했다.
꼭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나? 말없이도 호흡이 척척 맞아야 환상의 짝꿍이지.
빨리 끝내자. 그리고 아까 그 기술······ 가르쳐달라고 하자.
서유림이 칼을 들고 다크트롤을 향해 뛰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누가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마라.]
B급 호러물 영화에서 캐릭터가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런 경고를 무시하고 ‘괜찮아. 난 내 멋에 살아.’ 하며 만용을 부리면 반드시 죽게 된다.
이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비록 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지만, 섣부른 행동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서유림이 뛰면서 짧게 물었다.
“칼을 써도 되지?”
“피 튀지 않게 조심······!”
아리아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말을 하기 힘들 정도로 온힘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하나!
서유림이 훤히 드러난 다크트롤의 가슴이며 배를 마구잡이로 찔렀다. 다크트롤의 피나 점액질이 몸에 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크트롤은 아리아나에게 붙잡힌 상태라서 서유림의 칼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찌르는 족족 칼이 다크트롤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그런데 놀라웠다. 칼이 다크트롤의 몸에 깊은 상처를 냈는데, 그 상처가 불과 10초도 안 돼서 깔끔하게 치료되는 것이다.
재생능력이 어마어마한 놈이었다.
아리아나가 왜 단검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이렇게 큰 상처도 저렇게 빨리 아무는데, 그깟 단검이 무슨 큰 위력을 발휘하겠는가?
하지만 10초가 어디야? 2초에 한 번씩 찌르면 아물기도 전에 새 상처가 놈을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재생은 뭐 공짜로 되나?
아무리 정령계라고 해도 그런 법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에너지가 소모될 것이다. 그만큼 아리아나에게 도움이 되겠지.
계속 찔렀다. 특히 놈의 심장 부근을 향해.
한참을 찌르고 나자 다크트롤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서유림의 공격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제야 아리아나가 서유림에게 방향을 지시해주었다.
“하악. 하악. 목을 베요. 어서!”
내가 원래 시키는 건 무척 잘하거든.
서유림이 칼을 높이 들었다.
“피해!”
아리아나가 다크트롤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서유림이 다크트롤의 목을 향해 칼을 힘껏 휘둘렀다.
팟!
“계속 쳐요. 목을 완전히 잘라요.”
내가 시키는 건 잘한다니까. 계속 시켜줘!
파파팟!
서유림이 계속해서 칼을 휘둘렀다.
다크트롤의 목은 재생이 되다가도 다시 더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렇게 상처가 누적되면서 결국 목이 잘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놈의 목이 잘리는 순간 눈앞에서 폭발하는 섬광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제야 아리아나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서유림도 다크트롤의 목 뒤에서 마나스톤을 꺼내고는 아리아나의 옆에 앉았다.
“가까이 붙지 마세요. 다크트롤의 독이 묻으면 위험해요.”
서유림이 얼른 떨어져 앉았다.
내가 그랬잖아. 다른 건 몰라도 시키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요정의 샘물을 아리아나에게 건네주었다.
“진즉에 도와달라고 하지 그랬어? 아니면 어느 시점에 끼어들라고 언질이라도 주던가.”
“제가 겨우 다크트롤을 상대로 이렇게 고전할 줄은 몰랐어요.”
아리아나가 변명하며 마나스톤과 함께 요정의 샘물을 달게 마셨다.
서유림이 그런 아리아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크트롤의 몸에 있던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아리아나의 온몸에 묻어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아리아나도 점액질이 묻어있으니 조금은 보기 그랬다.
“아리아나는 다크트롤의 독에 괜찮아?”
“요정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아요. 이렇게 묻히고 있으면 오히려 피부를 강화시키는 기능이 있어요.”
그래서 아직도 씻어내지 않고 있는 거였군.
보기에 징그러우니 빨리 씻어내라고 하려 했는데 그냥 둬야겠다.
그런데 그것도 물어봐도 될까?
이런 상황에서 그걸 걸 물으면 괜히 욕심만 많은 놈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그래도 궁금한 걸 어떻게 해.
서유림이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마력의 서는 왜 안 나오지? 이번에도 꽝인가?”
“다크트롤의 몸을 잘 찾아보세요. 어딘가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을 거예요.”
뭐야? 게임에서처럼 바닥에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었어?
기대를 품고 다시 다크트롤의 사체에 다가갔다. 손으로 만질 수는 없기 때문에 커다란 나무막대기를 사용해서 다크트롤의 사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 역겨워!
온몸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마치 콧물 같기도 하고 침 같기도 하다.
어디에 있나? 앗! 이건가 보다!
다크트롤의 겨드랑이 안쪽에 기하학적으로 생긴 문신 같은 것이 보였다. 딱 봐도 마법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