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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38화 (38/196)

# 38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더라. (2)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아가씨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잠깐만 들었는데도 무슨 내용인지 쉽게 알 수 있는 대화였다.

“씨발, 돈 줄게. 내 돈은 돈이 아니냐?”

“우린 그냥 놀러 온 거라고.”

“그럼 우리랑 놀면 되잖아. 내가 재미있게 해줄게.”

“싫다고. 관심 없으니까 꺼지라고.”

와! 아가씨들이 제법 대차게 싸운다. 소도둑놈들처럼 생긴 깡패들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특히 가운데 앉아있던 가장 예쁜 아가씨가 가장 드세다. 죽기 살기로 대든다.

“아, 씨발. 확 패버릴까 보다.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어차피 하룻밤 즐기러 온 것 아냐? 꼭 험한 꼴을 당해봐야 말을 듣겠냐?”

그런데 저놈들이 아주 대놓고 깡패짓 하네. 주변에 행인들도 제법 있는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행인들 역시 모른 척하고 피해가기 바쁘다.

하긴, 사내들 모두 문신에 깍두기 머리다. ‘나 조폭이니 험한 일 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피해가라.’ 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서유림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앗싸!’를 외쳤다. 선악이 이보다 완벽히 구별되는 경우가 또 있겠는가?

정령소환력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서유림이 가까이 다가가자 아가씨 하나가 서유림을 알아보았다. 얼른 손을 들어서 도움을 청했다.

“어머! 잘생긴 오빠! 저희 좀 도와주세요.”

그러자 깡패들도 함께 고개를 돌렸다. 서유림을 노려보는 눈빛이 ‘어떤 새끼야?’ 라고 말하는 듯했다.

저 눈빛. 기분 더럽네!

“당신 뭐야?”

“너 얘들이랑 알아? 얘들은 우리가 이미 침 발라놨으니까 상관 말고 꺼져.”

“그래. 좋게 말할 때 꺼져라. 다치기 싫으면.”

나이도 한참 어려보이는 놈들이 매를 버는구나.

말 섞어봤자 입만 더러워진다. 서유림은 깡패들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가씨 한 명의 손목을 낚아챘다. 세 명 중에서 미모가 가장 눈에 들어오는 아가씨였다. 가장 적극적이기도 했고.

그런데 아직 이름도 모르네. 해변에서 만났을 때 이름이라도 알아둘걸.

“여기에서 뭐 하고 있어요? 약속시각 다 됐습니다. 어서 가요.”

그리고는 아가씨를 이끌고 성큼성큼 걸었다.

당연히 깡패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의 험한 말과 함께.

“아, 씨발 새끼. 쳐 돌았나? 대가리 깨져서 피 철철 흘러봐야 ‘아! 내가 큰 실수 했구나!’ 느끼고 후회하지?”

“야, 이런 새끼 말로 할 필요 없어. 그냥 몇 대 쥐어박고 보내.”

말뿐이 아니었다. 어린애 타이르듯 서유림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리려고 했다.

서유림이 제때 팔을 들어서 막지 않았다면 쪽팔린 꼴을 당했을 것이다.

깡패가 흥미로운 표정을 했다.

“아쭈. 어디서 좀 놀았나 보네.”

“하여튼 요즘 새끼들은 처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뒤쪽에 있던 놈이 느닷없이 서유림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상대가 다섯 놈이나 되다 보니 일일이 다 시야에 넣어둘 수가 없었다. 주먹을 날린 놈도 마침 시야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뭔가를 느끼고 재빨리 몸을 빼며 피하긴 했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살갗을 스치는 느낌이 쓰라리게 전해왔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그깟 작은 상처야 정령 아리안이 금방 치료해줄 테니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놈의 주먹에 서유림이 맞았다는 점이다.

서유림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디들 봤지? 분명히 내가 먼저 맞은 거다!

서유림도 사실 준비하고 있었다.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어떤 놈을 어떤 식으로 공격하고, 다음 놈은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지에 대한 계산.

예전에는 상상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서유림 따위가 싸움이라니. 그것도 여럿을 상대로 혼자서. 그것도 저런 우락부락한 깡패들을 상대로.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과감하게 저질러볼 용기가 생겼다.

놈의 주먹이 얼굴을 스치자마자 서유림이 미리 계산했던 대로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타앗!

땅을 박차며 앞에 있던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주먹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비록 싸움 경험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느낌은 왔다. 이 정도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상황 종료다!

적어도 강냉이 두세 개는 털리지 않았을까 예상해본다.

왼 발로 다시 땅을 박차며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근력과 순발력이 좋아지니 순간순간의 움직임이 번개처럼 빨랐다. 마치 허공에서 탱탱볼이 혼자 통통 튀어 다니는 느낌이다.

몸의 회전력을 이용해서 주먹을 거꾸로 휘둘렀다.

이것을 백스핀블로우라고 하던가?

TV에서 본대로 대충 휘두른 것에 불과한데 거리가 마침 딱 맞았다. 주먹이 놈의 얼굴을 예쁘게 후려쳤다.

체중이 실린 펀치가 아니라서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이 새끼가!”

깡패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이놈들아 싸움은 말로 하는 게 아니란······ 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파앗! 하는 느낌과 함께 얼굴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시야의 사각지대에 들어갔던 놈이 서유림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은 것이다.

제길, 정통으로 맞았다. 맞는 순간 빠악!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충격을 극복하는 데는 0.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 충격이라면 까짓 얼마든지 감당해줄 수 있다.

좋아! 나 한 대 맞고, 너 한 대 맞자고. 그럼 결과적으로 내 승리일걸.

아직 기술이 없으니 그런 식으로 싸우는 수밖에.

뒤쪽에 있는 놈이 또다시 주먹을 날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서유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리 계산해두었던 대로 원래 공격하려 했던 놈의 복부를 향해 그대로 주먹을 꽂았다.

“허억!”

헛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놈이 새우처럼 몸을 굽혔다. 그대로 무릎을 들어서 놈의 이마를 찍었다.

이놈도 골로 갔군!

서유림은 방어는 완전히 포기했다. 다시 몸을 돌리며 사각지대에 있던 놈을 공격했다.

놈이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했다.

역시 싸움은 기세라니까.

하지만 피하기엔 이미 늦었단다. 서유림의 주먹에서 제법 기분 좋은 충격이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백스핀블로를 맞고 넘어졌던 놈이 몸을 일으켰다. 체중이 실리지 않아서 충격이 조금 약했던 모양이다.

놈이 곧장 호주머니에서 반짝이는 것을 꺼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은빛 날이 튀어나왔다.

서유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칼은 싫은데!

갑자기 긴장감이 느껴진다.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이건 두려움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그런데 그때 놈의 뒤통수를 향해 짧은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아가씨 중 한 명이 핸드백에 넣어 다니던 호신용 몽둥이를 휘두른 것이다.

빠악!

네 놈은 확실하게 정리되었군.

이제 한 놈 남았다.

마지막 남은 놈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칼은 빼들지 않았다.

그런데 눈치가 없는 놈인 듯싶다. 이쯤 되면 끝난 싸움이라는 걸 알 법도 한데 주둥이가 여전히 팔팔하게 살아있다.

“개새끼. 넌 뒈졌어.”

오! 복싱자세는 제법 좋다. 가볍게 스텝을 밟는데 복싱을 잘 모르는 서유림의 눈에도 제법 근사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건 복싱이 아니라니까.

내가 복싱과 실제 싸움의 차이를 가르쳐줄까?

시간을 오래 끌고 싶지 않다. 서유림이 그대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놈이 잽을 매섭게 뻗는다. 주먹에서 휙! 하는 바람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빠르면서도 날카롭다.

하지만 서유림은 전혀 피하지 않았다. 한 대 맞고 나도 한 대 때린다는 작전이었다. 놈의 잽을 얼굴로 받아내면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잡았다!

놈의 옷깃을 낚아챘다. 바짝 당기면서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놈이 가드를 바짝 올렸지만, 파워가 잔뜩 실린 주먹은 가드를 뚫어버렸다. 그리고는 안면에 펀치를 적중시켰다.

이놈도 강냉이 좀 털렸겠다. 그것도 앞니!

다섯 놈 정리 끝!

혹시나 싶어서 놈들의 상태를 살폈다.

다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나같이 땅바닥에 누워서 꿈틀대고 있다.

아가씨 하나가 서유림의 손을 잡아끈다.

“얼른 자리 떠요. 여기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것 하나 없어요.”

동감이다. 싸움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상책이지.

다른 아가씨 하나가 벌써 택시를 잡아놓았다. 함께 택시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출발했다.

그런데 이런. 자리를 잘못 잡았다. 급하게 타다 보니 뒷좌석 가운데자리에 앉고 말았다.

마치 양쪽에 여자를 거느린 것 같잖아.

게다가 양쪽 아가씨가 나만 바라본다. 그것도 묘한 눈빛으로.

“정말 감사해요.”

그 감사, 뿌듯한 마음으로 받아주지. 이런 때는 그냥 받아줘도 되잖아?

물론 멋진 말을 섞어주면 더 좋겠지.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보답하고 싶은데······ 어떻게 보답할까요?”

뭐야? 왜 자꾸 그런 새치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야? 사람 심장 쿵쾅거리게. 자꾸 그러면 엉뚱한 오해를 할 수도 있다고.

물론 나도 보답이야 받고 싶지.

하지만 사실 아가씨들에게 받는 보답보다 더 기대되는 보답이 따로 있단다.

‘아리안. 이 정도면 정령소환력이 좀 올랐겠지?’

>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정령계로 가셔서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오늘 밤에 들어가서 확인해보지 뭐.

생각해보니 아가씨들의 보답은 절대 받아서는 안 되겠다. 괜히 부정 타면 어떻게 해? ‘보답을 받았으니 정령소환력 보답은 없다.’는 식으로. 그러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보답 안 하셔도 됩니다. 전혀 마음 쓰지 마세요.”

“그래도······.”

“어머, 여기 상처 났어.”

그러고 보니 얼굴이 조금 쓰라리긴 하다.

하긴, 나도 몇 대 맞긴 했다. 주먹이 스치면서 난 생채기도 있을 테고.

하지만 상관없다. 이쯤 상처는 정령 아리안이 하루 정도면 깔끔하게 치료해줄 테니까.

오히려 영광의 상처지.

“남자가 주먹질 하다보면 상처도 나고 할 수 있죠 뭐. 괜찮아요.”

“어머, 멋지다!”

그러는 사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조금 늦었네요. 얼른 들어가죠. 아, 참! 아까 있었던 일은 얘기하지 말도록 하죠. 주변에 그놈들 지인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냥 없었던 일로 생각하세요.”

“알겠어요.”

친구들이 먼저 도착해있다. 한영훈과 이학주가 함께 앉아있다. 방금 도착했는지 아직 테이블 세팅이 안 되어있다.

이학주도 한영훈도 예전 모습 그대로이다. 특히 이학주의 저 거드름 피우듯 앉아있는 모습은 전매특허 같다.

서유림이 당당하게 다가갔다.

“영훈아, 학주야. 오랜만이다.”

한영훈과 이학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표정이 어리둥절하다. 마치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다.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 나서야 반가운 표정을 한다.

“어! 너 진짜 서유림 맞냐? 와! 완전히 달라졌네.”

특히 이학주가 많이 놀란 모양이다.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서유림의 몸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너 무슨 운동 했냐?”

“내가 왜소한 몸이 늘 콤플렉스였잖아. 그래서 운동 열심히 했다.”

이학주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칭찬까지 해주었다.

“그랬구나. 와! 몰라보겠다야. 멋지다!”

그런데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소개해줄 사람이 있거든.

서유림이 뒤에서 기다리던 아가씨들을 옆에 세웠다.

“서울에서 놀러 오신 분들인데 해변에서 우연히 만났다. 합석해도 되겠지?”

한영훈과 이학주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아가씨들의 외모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빼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가운데 아가씨의 미모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너무 놀라서 서유림의 목소리도 못 들은 모양이다. 한영훈도 이학주도 대답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답이 뻔한 질문을 한 내가 잘못이다. 개가 똥을 마다하겠냐?

“좀 더 넓은 자리로 옮겨야겠다. 저기가 좋겠다.”

서유림이 널찍하게 비어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제야 한영훈과 이학주가 가출했던 정신을 되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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