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34화 (34/196)

# 34

상대를 잘못 골랐단다 (2)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내가 얼마나 불쌍하게 지내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줘야지.

식사를 마치자마자 잠시 쉴 틈도 없이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밀린 일이 많아서.”

“점심시간인데 좀 쉬었다 해야지.”

“저한테 점심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일하다가는 퇴근 전에 일 못 끝냅니다. 불쌍히 보이면 와서 좀 도와주시던가요.”

저 매정한 인간들.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고개를 싹 돌리냐?

그래도 권진아는 좀 낫네. 눈빛만 봐도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팍팍 느껴진다.

“이따 퇴근 무렵에 봬요.”

서유림이 팀원들을 뒤로 하고 창고로 향했다. 이제는 창고가 안식처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다시 운동 좀 해볼까?’

옮겨야 할 물건은 모두 다 옮겼다. 그동안 능력치가 크게 오르면서 작업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덕분이었다.

새로운 목록이 내려올 때까지는 자유시간이다.

30kg짜리 박스를 역기처럼 들고 앉았다 일어섰다. 들었다 놨다. 이런저런 운동을 반복했다.

> 체력이 1 올랐습니다.

지게차 발을 높이 올려놓고 턱걸이나 평행봉도 해보았다.

> 근력이 1 올랐습니다.

새로 출고해야 할 목록이 내려오면 일부러 힘든 동작을 취해가며 박스 하나하나씩 손으로 들어 날랐다.

> 순발력이 1 올랐습니다.

스텟 오르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정령계에서 스텟을 잔뜩 올려놓은 덕분이었다. 잠재력이 월등하게 올라가니 인간계의 육체가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서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도 운동도 너무 즐거웠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정신없이 운동하다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오늘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아리안. 일단 신체치수도 좀 가르쳐줘.’

> 키 186.6cm, 몸무게 73kg, 가슴둘레 98cm, 어깨넓이 42cm 허리둘레······.

다른 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일한 콤플렉스였던 가슴둘레와 어깨넓이만 관심이 갔다.

정말 많이 성장했다. 겨우 열흘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인데 어깨넓이만 무려 4cm가 넘게 성장했다. 이제는 어디 가서도 어깨 좁다는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아직도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 열흘 정도만 더 지나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어깨깡패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능력치 좀 볼까?’

> 근력은 219, 순발력은 208, 체력은 223, 감각은 156입니다.

‘가만있어봐. 처음에 능력치가 대충 얼마였더라? 아리안. 기억하고 있어?’

> 근력은 79, 순발력은 88, 체력은 67, 감각은 124였습니다.

와! 이렇게 비교하고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빠른 성장이었다. 평균치와 비교해서 한참 모자란 능력치였는데 겨우 열흘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오히려 보통 사람의 두 배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아직도 끝을 모르고 성장했다. 오늘만 해도 제법 많이 올랐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일까?

어쨌건 무척 마음에 든다.

업무 마무리는 사무실에서 해야 하겠지? 밀린 업무가 조금 있긴 하지만, 머리도 팽글팽글 잘 돌아가서 30분이면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수건으로 대충 땀을 닦아내고 사무실로 향했다. 창고 옆에 샤워실이 있긴 하지만, 샤워는 일부러 피했다.

왜? 다 이유가 있지.

서유림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팀원들이 다들 인상을 찌푸린다. 권진아만이 인상 찌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서유림의 땀 냄새 때문이다.

“좀 씻고 들어오지 그래?”

“질식사 하겠다.”

슬쩍 보니 한동민이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그놈의 코도 땀 냄새로 테러 좀 했어야 했는데.

“업무처리 할 시간도 없는데 씻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싫으면 창고 업무를 바꿔주시던가요.”

저것 봐. 창고 업무 바꿔달라는 얘기 나오자마자 다들 고개 싹 돌리네.

그러게 왜 혼날 것 빤히 알면서 떠들고들 지랄이야?

앉아서 업무를 마무리했다. 30분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26분 만에 끝내버렸다.

퇴근시간까지 4분이 남았네.

시간도 남는데 팀장과 오영훈 좀 괴롭혀줄까?

“팀장님. 진짜 대리님께 말씀 안 해주실 겁니까? 우리 구매팀은 가족이잖아요.”

“난 모른다니까. 직접 해.”

“오 주임님.”

“나 바쁜 것 안 보여?”

“강은영씨. 부탁 좀 할게.”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세요.”

우리 눈 좀 마주치고 이야기하자. 죄 졌어? 왜 다들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그래?

“아휴. 그럼 또 체육관 가봐야겠네. 제길. 저 먼저 일어납니다.”

서유림이 자리를 정리하고 가장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금요일 오후.

창고 일을 마친 서유림이 퇴근을 앞두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한동민 대리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서유림씨. 내일 뭐해?”

내일은 토요일이란다. 네가 내 일정 알아야 할 이유가 없는 날이라는 뜻이지.

“운동합니다.”

“그 운동 부산에서 하세요.”

부산? 그게 무슨 해운대 물 빠지는 소리야?

“미국 바이어가 구매 요청한 물품들 알아보러 가야 한다고. 나랑 강은영씨랑 서유림씨. 이렇게 셋이 가기로 했어.”

아! 바잉오피스!

명진식품은 참 이해할 수 없는 회사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라면 그런 자잘한 일은 손 떼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잔심부름해서 수수료 얼마나 남는다고.

그런데 더욱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다.

겨우 물품 알아보러 가는 일에 세 명씩이나 간다고?

그런 일에 한동민이 직접 출장을 간다고? 그것도 주말에?

속셈이 빤히 보인다.

물품 알아보는 것은 곁가지 핑계일 뿐이고 실제는 부산에서 다른 용무가 있는 것이겠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왕 부산 내려가는 김에 강은영은 심심풀이로 데려가는 것이고, 나는 운전 시키려고 데려가는 것이겠지.

어쩌면 물품 알아보러 간다는 것도 거짓말일 수도 있다. 워낙에 가짜 출장을 많이 다니는 놈이라서.

그래. 틀림없어. 그냥 놀러가는 거다. 괘씸한 놈.

나름대로 알차고 재미있는 주말을 계획하고 있는 모양인데, 과연 그게 될까? 어디 행복한 주말이 될지 악몽의 주말이 될지 한번 보자고.

다시는 나와 함께 출장가기 싫게 만들어주마.

“서유림씨는 운전만 해. 그러면 운동시간은 충분히 보장하는 거잖아. 평소에 야근 안 하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왜? 공문으로 명령서라도 만들어줄까?”

어차피 가야 할 일인데 그런 식으로 딱딱하게 굴 필요가 있을까? 이왕 갈 거라면 좋게 가야지.

서유림이 얼른 한동민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에이, 대리님도 참. 우린 가족이잖아요. 가족끼리 무슨 명령서에요? 당연히 제가 가야죠. 하하하. 몇 시까지 나올까요?”

마치 한동민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부하는 듯했다.

한동민도 어깨 주무르는 것까지 뿌리치지는 않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밝힌다고, 매일같이 아부만 받아온 놈이다 보니 서유림의 아부도 당연한 권리처럼 누리는 거겠지.

“일찍 출발하지 뭐. 한 아홉 시에 보자고. 내 오피스텔 어딘지 알지?”

픽업까지 하라고?

아니지. 아마 강은영과 함께 있겠지. 사무실 안 들르고 오피스텔에서 바로 부산으로 출발하겠다는 거겠지.

어디, 둘이서 얼마나 재미있게 콩을 깔 수 있는지 보자고. 비아그라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걸.

체력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한동민의 체력은 줄었겠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지금의 흡수마법 능력으로는 더 흡수할 수도 없고.

“알겠습니다. 아홉 시까지 가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체육관 운동 때문에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요즘 들어서 서유림의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반면 한동민은 자꾸만 온몸이 결린다.

“이상하네. 몸이 왜 이러지? 오늘은 한의원을 좀 가볼까?”

다음날 아침.

“전화 안 받아?”

한동민의 물음에 강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호는 가는데······.”

“이 인간이 진짜!”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벌써 약속시간이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그동안 서유림에게 걸어댄 전화만 열 번은 넘을 것이다.

“다시 해봐.”

강은영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서유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에 잔뜩 취한 목소리였다.

- 여보세요.

한동민이 강은영의 휴대폰을 빼앗듯 낚아챘다.

“서유림씨. 왜 안 와?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 지금이 몇 신대요?

“아홉시 이십 분.”

- 어! 내 시계는 일곱 시밖에 안 됐는······! 어라! 시계가 죽어있네!

“장난해? 빨리 튀어와!”

한동민이 목청이 찢어지라 소리쳤다. 눈앞에 보이면 머리통이라도 쥐어박아주겠는데, 보이지도 않으니 소리라도 칠 수밖에.

하지만 전화기로 들려오는 서유림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에 잔뜩 취해있었다. 저러다 또 자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 ······예.

“30분 내로 튀어와. 늦으면······ 어! 뭐야? 끊었어! 이런 씨발! 누구 마음대로 끊으래?”

한동민이 애먼 강은영의 휴대폰에 대고 화풀이했다.

강은영만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어제 못 하고 잔 것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건가? 자기가 못 세워서 못 한 것 가지고 왜 애먼 곳에 화풀이야?’

서유림이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40분이 넘게 지난 10시 10분가량이었다.

한동민은 그때까지 ‘이놈 오기만 해봐라!’ 하면서 혼자 분을 냈다.

하지만 무려 40분 동안이나 분을 내고 있다 보니 제풀에 지쳤다.

게다가 1시간이나 넘게 늦은 주제에 싱글벙글 웃고 있는 서유림의 모습을 보니 헛웃음만 나왔다.

“와! 오피스텔 진짜 높다. 여기 대리님이 사신 건가요? 아니면 월세? 한 달에 얼마나 나가요?”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상대를 말자.’

그런데 서유림의 눈이 온통 빨갛다. 하품하면 그대로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데 눈이 왜 그래?”

이거? 연출이다. 아리안에게 부탁하니 눈 빨갛게 만드는 것쯤은 껌이더라고.

그래서 살짝 작업 좀 했지.

“요즘 몸을 너무 혹사시켰나 봐요. 일곱 시간을 잤는데도 피로가 안 풀리네. 하~암!”

입 찢어지겠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운전할 때는 안 조니까. 제가 이래 봬요 3년 무사고 경력입니다.”

서유림이 큰소리 탕탕 쳤다.

“됐고. 얼른 운전이나 해. 늦었어.”

“제 차로 갈까요?”

“미쳤어 그런 똥차를 타게? 고속도로에서 엔진이라도 꺼지면 어쩌려고? 내 차 몰아.”

한동민이 차키를 던지듯 건네주었다.

“저도 보험 되나요?”

“20세 이상 누구나로 해놨으니까 빨리 운전이나 해.”

“알겠습니다. 가시죠.”

서유림이 운전석에 탔다. 그런데 시작부터 허둥댄다.

“어, 근데 열쇠구멍이 어디 있지? 어라! 차키에도 열쇠가 없네!”

“스마트키잖아. 스마트키 몰라?”

한동민이 답답해서 소리쳤다.

물론 알지. 하지만 서유림은 눈만 깜빡깜빡했다.

“스마트키?”

“거기 버튼 누르라고.”

“이게 뭔데요?”

“아, 답답해. 어떻게 스마트키를 몰라? 눌러보면 알잖아.”

서유림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하며 핸들 옆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차량이 부르릉- 하며 엔진소리를 내뿜었다.

“와, 이게 스마트키구나. 처음 알았네. 그럼 출발합니다.”

서유림이 차량을 출발시켰다. 그와 동시에 차량이 잔득 재워진 화살이 튕겨나가듯 앞으로 팍 치고 나갔다.

깜짝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차가 거꾸러질 것처럼 앞으로 쏠리며 급정거했다.

출발에서 멈춤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뒤에 탄 두 사람에게 강한 임펙트를 주기엔 충분했다.

한동민은 어느새 손잡이에 매달려 있었다.

“뭐야? 왜 그래?”

“아하하하. 악셀하고 브레이크 깊이가 낯설어서 그래요. 조금만 적응하면 괜찮아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은 그냥 누워서 주무세요. 부산 도착하면 깨워드릴게요.”

이 분위기에 잠이 올까?

한동민과 강은영은 양쪽으로 갈라져서 손잡이에 매달려있었다. 그것도 두 손으로 힘껏!

서유림이 더욱 밝게 웃었다.

“괜찮다니까요. 아무 걱정 마시고 그냥 눈 감고 주무세요. 그럼 부산에 도착해있을 테니까. 출바~알!”

“으악!”

“아, 실수. 이 차 악셀이 왜 이렇게 민감해? 차 뽑기를 잘못했네!”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여태껏 고장 한 번 안 났······ 으악! 살살 좀 몰아!”

“아따, 걱정도 팔자시네. 빨리 눈 감고 주무세요.”

“됐으니까 앞이나 보고 운전해. 뒤를 보고 운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 진짜 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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