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33화 (33/196)

# 33

상대를 잘못 골랐단다 (1)

강성체육관.

> 체력이 1 올랐습니다.

> 근력이 1 올랐습니다.

> 순발력이 1 올랐습니다.

서유림이 몸을 혹사시킬수록 정령 아리안이 더욱 바빠졌다. 시도 때도 없이 스텟 올랐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이렇게 하니까 운동이 정말 재미있다. 아리안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바닥난 체력이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움직인 후에 집으로 향했다.

며칠 경험해보니 도심 속에서는 무작정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신호를 읽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기까지는 웬만큼 빨리 달려도 신호를 못 받는다. 숨을 고르듯 천천히 달리면 신호가 딱 떨어진다.

다음 신호는 전력질주하면 잘하면 받을 수 있다.

> 순발력이 1 올랐습니다.

서유림은 그렇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뛰고 또 뛰었다.

> 체력이 1 올랐습니다.

덕분에 집에 도착하자 서있을 힘도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그래도 47분 만에 주파했어. 하악. 하악. 아리안 내 스텟이 얼마나 올랐지?’

> 근력은 83, 순발력은 92, 체력은 73, 감각은 124입니다.

근력 4, 순발력 4, 체력은 6이 올랐다. 오늘 하루만 도합 14나 되는 스텟이 오른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다시 힘이 생겼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께서 거실에 앉아계셨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인데.

“아직 안 주무셨어요?”

“온종일 놀기만 하는데 좀 늦게 자면 어떠냐? 미연이 들어오면 얘기 좀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미연이가 왜요?”

“경찰공무원 준비한다더니 남자친구한테만 푹 빠져있는 것 같아서 잔소리 좀 해야겠다.”

서미연이 요즘 조금 나태해진 면이 없지 않았다. 남자친구 사귀는 건 좋은데 그래도 공부할 건 해야지.

사람의 미래는 직장을 잡았느냐 못 잡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근데 그보다는 아버지가 더 걱정이다. 직장을 그만둔 후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느낌이다.

사람은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오히려 더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그렇다고 아버지께 다시 취직하라는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

그 문제는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그나저나 그토록 건강하셨던 분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되셨을까? 아직 60세도 안 되셨는데. 이제는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곤해지고 숨이 차다고 하시니.

건강에 대한 과신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에 건강만 믿고 몸을 너무 혹사시킨 탓이다. 그것도 술과 담배와 스트레스로.

지금은 술과 담배를 모두 끊긴 하셨지만, 이미 나빠진 건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피곤할 텐데 씻고 자거라.”

“예.”

* * *

잠이 드는가 싶더니 정령계로 들어왔다.

먼저 망막에 새겨진 스텟 등의 정보부터 확인했다. 정령계를 드나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보곤 했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마법창에 뜻밖의 변화가 있다.

[마법]

체력흡수 : 21

정령소환 : 2%

지난번에 인간계로 돌아가기 직전에도 확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령소환력은 분명히 1%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 2%로 올라있었다.

분명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정령소환력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올라버렸다니.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정령소환력이 왜 올랐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아야 같은 방법으로 계속 올릴 것 아냐?

도대체 왜 오른 거지?

혹시 아리아나는 답을 알고 있을까?

“아리아나. 내 정령소환력이 올랐어.”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으니 좋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워낙 예뻐서 말 놓는 데도 엄청나게 오래 걸렸다.

그런데 아리아나도 말 좀 편하게 해주지.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자신은 존댓말이 편하다네.

“축하드려요. 인간계에서 좋은 일을 하셨나 봐요.”

내가? 좋은 일을 했다고? 언제?

지난 하루를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하지만 좋은 일을 했다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뭐가 있었지?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퇴근할 때 걸려온 강철중의 전화. 비록 목소리뿐이었지만, 미안함과 고마움이 잔뜩 섞여있었다.

그것 때문인가?

그 외에는 전혀 생각나는 게 없었다.

“혹시 이것 때문인가?”

서유림이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아리아나에게 들려주었다.

아리아나가 가만히 들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유림씨에게 득이 되는 일이지만, 강철중씨라는 분께도 도움이 되는 일이네요. 그러면 그 밝은 마음이 정령소환력을 키워줄 수 있어요.”

그런 식이구나.

대충 원리를 알 것 같다. 정령소환력 키우는 것도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괜히 가슴 설레네.

그럼 다시 사냥을 나가볼까?

* * *

며칠이 지났다.

창고 업무를 맡은 이후로 몸은 더욱 빠르게 좋아졌다.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에서의 목소리도 날마다 힘차고 밝아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특히 오영훈의 표정이 어두웠다. 서유림에게 대놓고 핀잔까지 주었다.

“뭐가 좋다고 그렇게 혼자 신이 나있어?”

오영훈이 저러는 이유는 빤하다. 예전에는 서유림의 몫이었던 잡일 야근을 오영훈 혼자서 책임지고 있으니 열이 뻗칠 수밖에.

그런데 그건 아니지.

왜 나를 원망해?

누군가를 원망해야 한다면 당연히 한동민 대리를 원망해야 할 것이다. 잔무를 함께 부담해야 할 강은영과 권진아를 감싸고도는 바람에 오영훈만 저렇게 개고생 하는 중이니까.

그런데 오영훈뿐만이 아니다. 다른 팀원들도 서유림을 바라보는 눈빛이 그다지 좋지 않다. 배기열 팀장조차도.

이건 아니지. 따지고 보면 나도 창고 업무 맡아서 개고생 중이잖아.

물론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에 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그건 나만의 비밀인 거고.

막말로 구매팀에서 불만이 제일 커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고.

아무래도 분위기 좀 바꿔줘야겠다. 내가 아닌 한동민을 원망하도록.

방법? 있지. 아주 간단해.

점심시간.

오늘도 한동민은 따로 점심약속을 잡았다. 팀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에 불과하다.

한참 게걸스럽게 식사하던 서유림이 갑자기 숟가락을 탕!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으면서 분노를 폭발시켰다.

“아, 진짜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배기열 팀장을 비롯해서 다들 깜짝 놀라서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주임도 못 단 일개 사원이 팀장 앞에서 숟가락을 내팽개친 것 때문이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순둥이 초식남 YES맨 서유림이 저런 식으로 기분을 표출하다니.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날 선녀계곡 사건 이후로.

물론 그렇다고 저게 팀장 앞에서 할 행동은 아니지.

오영훈이 팀장을 대신해서 서유림을 나무랐다.

“팀장님 앞에서 뭐 하는 짓이야?”

“진짜 너무하잖아요. 제가 왜 창고 업무를 맡아야 하는데요. 제가 왜 야근수당도 못 받고 팔자에도 없는 체육관에 가서 줄넘기나 해야 하는데요. 제가 왜요?”

서유림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분을 냈다.

목소리가 제법 커서 주변에서 식사하던 사람들 모두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서유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 다른 사람 눈치 따위는 전혀 안 본다니까.

“이건 진짜 웃자고 한 얘기 가지고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잖아요. 술자리에서 그런 농담쯤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아, 진짜 돌겠네.”

“그러게 왜 계약서까지 쓰고 그래?”

“장난이었죠. 그런 건 다음날 아침 되면 북북 찢어버려야 하는 것 아니에요? 팀장님. 안 그렇습니까? 강은영씨. 안 그래?”

서유림이 동조 좀 해달라는 듯 구걸했다.

하지만 배기열도 강은영도 다들 고개를 돌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표이사의 아들과 관련된 일이 아닌가? 괜히 잘못 끼어들었다가 불똥 튀기면 재미없다.

서유림이 그런 배기열 팀장을 붙잡고 늘어졌다.

“팀장님이 한 대리님 설득 좀 해주세요. 계약서 찢어버리라고요. 막말로 제가 남아서 야근해야 팀원들도 편하잖아요. 오 주임님 만날 남아서 야근하는 것 볼 때마다 얼마나 미안한지 아십니까?”

“그럼 직접 가서 얘기하던가. 왜 나한테 그래?”

그게 너희들 특기잖아. 자기 일 나한테 부탁하고 먼저 퇴근하기.

나는 그런 것 좀 하면 안 되냐?

“팀장님이시잖아요. 구매팀의 아버지. 팀장님. 우리 구매팀 가족 아니었습니까? 예? 그렇잖아요.”

서유림이 답을 강요하듯 계속 물었다.

그제야 배기열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서유림의 부탁을 들어줄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물론 가족이지. 하지만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지. 서유림씨도 알잖아. 한 대리 성격.”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고.

만약 한동민이 계약서 찢자는 식으로 말을 바꾼다면 오히려 서유림이 발뺌해야 할 것이다. 내기로 걸었던 3천만 원의 절반이라도 달라는 식으로.

어차피 명진식품에 미련도 없는데 눈치 볼 게 뭐 있어?

이번에는 오영훈 차례인가?

헐! 말도 안 꺼냈는데 벌써부터 시선 피하는 것 좀 봐. ‘구매팀은 가족’ 이야기를 먼저 꺼냈던 게 누구였더라?

이리 와. 나하고 얘기 좀 하자니까.

“오 주임님. 주임님은 한 대리님하고 아삼륙이잖아요. 말씀 좀 해주세요. 그래야 주임님도 편하죠.”

“아삼륙은 무슨.”

“가족끼리 너무하시네. 어려운 얘기도 아니잖아요.”

“팀장님도 못 하는 얘기를 내가 어떻게 해? 강은영씨라면 또 모를까?”

못났다, 못났어. 그렇다고 강은영한테 핑퐁을 치냐?

아주 인간성 밑바닥을 드러내는구나.

어차피 강은영한테도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 못할 테니까.

“아, 맞다! 강은영씨. 한 대리님이 강은영씨 이야기라면 깜빡 죽잖아. 강은영씨가 얘기 좀 해줘. 계약서 찢어버리라고. 그러면 내가 멋지게 술 한 잔 살게. 응? 강은영씨.”

“전 못해요.”

“에이. 그러지 말고. 부탁 좀 하자.”

“그냥 직접 말씀하세요.”

나머지 팀원들은 벌써 서유림과 안 마주치려고 시선을 피하고 있다.

아까는 그렇게 고깝게 쳐다보더니.

“진짜 다들 너무하시네. 가족끼리 이래도 되는 겁니까? 막말로 이거 저 좋자고 부탁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남아서 일해야 다들 편하잖아요. 안 그래요? 전 진짜 아쉬운 거 없다니까요.”

다들 찍소리도 못한다. 팀장부터 권진아까지 서유림과 눈이 마주칠까 무섭다는 듯 고개도 못 든다.

됐군!

이제 더는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보지 못 하겠지?

그러게 왜 진짜 원흉 앞에 두고 애먼 놈을 원망하고 그래?

서유림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다시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밥이나 먹자. 배라도 불러야 감자를 나르건 양파를 나르건 하지.”

서유림이 남은 밥을 말끔하게 해치웠다.

제법 많은 양을 가져왔는데, 성에 차지 않는다.

“열 받는데 밥이나 한 그릇 더 먹자.”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약통에서 열 알이 넘는 알약을 꺼내서 한 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팀장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근데 서유림씨 요즘 계속 약 먹네.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먹어?”

이거? 영양제다.

칼슘, 철분, 미나랄, 오마가3, 비타민 등등.

어깨며 가슴이며 몸이 워낙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음식만으로는 영양분이 부족하더라고.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약으로 보충하고 있지.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제 허약한 몸을 보세요. 이 몸으로 창고 업무를 하고 있으니 몸이 성하겠습니까? 안 죽으려면 약이라도 드럼통으로 먹어야죠. 아휴, 내 팔자야.”

“쯧쯧쯧.”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원망으로 가득 차있었던 팀원들의 눈빛은 어느새 동정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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