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청개구리 심보를 다루는 법 (2)
‘아리안. 된 거야?’
> 네 되었습니다. 흡수할 수 있는 한계치의 체력을 모두 흡수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러고 보니 아침의 격렬한 운동 때문에 가볍게 쌓여있던 피로가 말끔히 가신 느낌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후훗, 이거 정말 쓸모가 많은 마법인걸.
그러는 사이 한동민은 벌써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고 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빠르게 지시하듯 이야기했다.
한동민의 말을 누가 거역하랴. 게다가 구매팀 상황에 맞게 바꾸는 거라는데 이견을 달 이유도 없었다.
업무분장은 신속하게 변경되었다.
서유림의 업무에 ‘창고관리 보조’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런데 벌써 효과가 있다. 한동민이 갑자기 입을 쩍쩍 벌리며 하품을 시작한다.
“하~암!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졸려?”
마력 20짜리 마법인데도 효과가 제법 좋다.
고것 참 재미있네!
“근데 서유림씨는 왜 아직도 그러고 있어? 지금 급히 출고해야 할 게 있다니까 얼른 창고로 가봐. 아, 허리 삐끗하지 않게 조심하고. 그래서 훈련 못 하면 그건 내 책임 아니니까.”
그 얘기 하면서 왜 그렇게 생글생글 웃는 건데?
아예 허리 삐끗하라고 돼지머리 놓고 고사라도 지내시지 그래?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난 잠깐 외근 좀 다녀올게요.”
한동민이 서유림보다 먼저 일어섰다.
외근은 무슨 사우나 가는 거겠지. 피로 풀러.
그래. 푹 쉬다 와라. 체력 충분히 회복하면 오후에 또 빨아먹어주마.
서유림은 웃음을 참으며 대신 오만상을 찌푸렸다. 하기 싫은 표정을 해야 창고 업무를 빼지 않을 테니까.
“휴우, 저도 창고 다녀오겠습니다.”
서유림도 한동민을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창고로 들어선 서유림은 출고목록부터 확인했다.
창고 업무는 낯선 업무가 아니다. 처음 인턴으로 입사했을 때 창고 업무부터 배웠다.
하지만 체력이 너무 약해서 곧바로 사무실 업무로 바꾸었다.
그래도 목록 확인하고 재고물품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물품은 박스로 포장되어있었다. 무게는 박스당 30kg 전후가 가장 많았고, 가벼운 게 10kg, 무거운 건 100kg도 넘었다.
너무 무거운 건 지게차를 동원해야 하지만, 그런 건 극소수고, 대부분 손으로 한 박스씩 운반해야 했다.
“감자가 일곱 박스. 여기 있군. 으라차차!”
와, 30kg이 이렇게 무거워?
그래도 어깨에 짊어지지 않았다. 일부러 두 팔의 힘으로 지탱하며 창고 밖으로 운반했다.
겨우 세 박스 옮기고 나니 손과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특히 악력이 약해져서 자꾸만 박스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강철중은 이런 것들을 하루에 수백 개씩 나르곤 했을 텐데. 대체 힘이 얼마나 좋은 걸까?
그보다는 서유림 본인의 힘이 궁금했다. 약한 건 아는데 평균적인 능력치보다 얼마나 약한 걸까?
혹시 아리안은 알 수 있을까?
‘아리안, 인간계에서 내 능력치를 확인할 방법은 없어? 정령계에서 스텟으로 보는 것처럼 말이야.’
> 스텟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확인은 가능하다는 얘기야? 남자 평균 능력치를 100이라고 했을 때의 내 능력치.’
> 현재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근력은 79, 순발력은 88, 체력은 67, 감각은 124입니다.
문득 아리아나가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정령계의 스텟은 잠재력이고 대부분 인간은 그 절반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서유림도 마찬가지였다. 정령계에서 보았던 스텟들의 절반 정도인 듯했다.
아니, 가만 생각해 보니 그보다 훨씬 못 미쳤다.
정령계에서 근력이 아마 230이 넘었을 것이다. 순발력도 마찬가지로 230이 넘었다.
그 절반이라면 근력도 순발력도 각각 115은 넘어야 한다.
그런데 79와 88이라니.
물론 정령계에 며칠 머무는 동안 능력치를 제법 키워놓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유림의 몸이 엉망이었다.
‘하긴, 내가 운동을 외면하고 살긴 했지.’
그게 사람의 본성인 걸까?
원래는 남들보다 부족한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생활했다. ‘이건 안 돼.’ 하는 생각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외면해왔다.
대신 남들보다 잘하는 걸 찾아서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일명 ‘재능개발’이라는 핑계로.
남들보다 하나만 확실하게 잘해도 먹고는 산다는 의미.
서유림도 그렇게 선택과 집중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 결과가 이 꼴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초고속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어쩌면 벌써 많이 성장했을 수도 있다. 아리안을 만난 이후로 몸이 좋아지면서 죽어라고 운동했으니까.
문득 궁금해진다. 비록 아리아나를 만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분명 변화가 있을 것이다. 과연 얼마나 변했을까?
그걸 따져보면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성장할 것인지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아리안을 만났을 때의 능력치는 어땠지? 지금과 비교해서 확인할 수 있을까?’
> 최초의 능력치는 근력 76, 순발력 86, 체력 62, 감각 124였습니다.
가만, 그러면 각각 얼마나 오른 거야?
근력은 3이 올랐고, 순발력은 2, 체력은 무려 5나 올랐다. 겨우 이틀 만에.
그럼 열흘 정도면 웬만한 남자의 평균적인 능력치는 넘어설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그거야 노력하기 나름이다.
사실 그동안은 운동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창고 업무도 지금 처음 시작했고, 강성체육관도 겨우 하루 간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침부터 자정까지 오직 운동에만 매달릴 수 있다. 그러면 시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주먹이 운다.’ 예선이 시작될 때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서유림은 격투기라고는 배워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제로 가까운 상태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신체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번 시즌에 본선에 진출하고 우승상금까지 거머쥐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무조건 이번 시즌에 끝내버린다. 한 달만 빡세게 굴러보자.’
좀 더 재미있게 운동할 방법도 생각났다.
‘아리안, 능력치가 1 오를 때마다 알람처럼 알려줄 수 있을까? 그러면 더 신나게 운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부러 부연설명까지 했다. 필요성을 알아야 아리안도 덜 귀찮게 생각할 테니까.
> 그렇게 하겠습니다.
역시 착하다니까.
사무실에도 악력기 하나 사놓아야 하겠다. 티 안 나게 운동하기에는 악력기만큼 좋은 것도 없을 테니까.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이거 열두 박스.’
“으라차차!”
> 체력이 1 올랐습니다.
아리안에게 부탁하길 잘했다. 이따금 스텟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가운 마음에 없던 힘이 다시 샘솟는 듯하다.
창고 업무는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것은 저 높은 곳에, 또는 저 깊은 곳에 숨어있다. 그러면 탑처럼 쌓인 물건 위를 기어 올라가서 가져와야 한다.
‘이놈이 여기 있었네. 이거는 네 박스.’
“웃쌰!”
> 순발력이 1 올랐습니다.
좋아. 좋아.
> 근력이 1 올랐습니다.
한참 신나게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가까워졌다.
와! 내 몸이 엉망이긴 엉망인 모양이다. 강철중씨는 오후 3시면 끝냈을 일이라는데, 나는 아직도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서유림씨. 나머지는 내일 오전에 빼줘도 돼요.”
“그래도 됩니까?”
“그럼요. 쉬엄쉬엄해요. 그러다 허리 나가면 우리만 힘들어져요.”
칼퇴근해야 했는데 다행이다. 아무리 그래도 창고보다는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사무실로 향했다. 그래도 팀원들에게 얼굴도장은 찍고 퇴근해야지.
그런데 정말 힘들다. 손도 떨리고, 발도 떨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힘들지 않은 곳이 없는 듯하다.
정령 아리안이 몸을 열심히 회복시키는 게 느껴지긴 하는데 조금 더딘 느낌이다. 회복속도에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한동민이 자리에 앉아있다.
사우나에서 피로를 조금 풀고 온 모양이다. 한동민의 표정이 다시 쌩쌩해졌다.
한동민이 서유림을 슬쩍 바라본다.
“창고 일은 다 마무리했나요?”
“급한 것은 대충 마무리했습니다. 나머지는 내일 오전에 빼도 된다고 하네요. 아구구, 허리야.”
서유림이 앓는 소리를 하자 한동민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짜식! 남의 불행 앞에서 좋아하는 꼴이라고는.
내가 더는 그 꼴을 못 봐주겠다.
“강은영씨. 출장준비 다 했어요?”
“네. 다 했습니다.”
뭐야? 또 둘이서 호텔 가게? 요즘엔 아주 하루가 멀다고 둘이 붙어 다니는구나. 그만큼 체력이 남아돈다 그거지?
그놈의 쓸모없는 체력, 내가 좀 가져가야겠다.
서유림이 얼른 다가가서 한동민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대리님. 창고 업무 한 명만 더 붙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혼자 하려니 도무지 감당이······.”
“그깟 창고 업무에 어떻게 두 사람이나 붙여? 강철중씨는 혼자서 잘만 해내던데.”
한동민이 손을 뿌리쳤다.
서유림이 다시 팔뚝을 붙잡으며 부탁했지만, 한동민은 요지부동이었다.
“나 바쁘니까 내일 얘기합시다. 강은영씨 가지.”
“네.”
한동민이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다가 갑자기 스트레칭을 하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이상하네. 오늘따라 몸이 왜 이러지?”
“어디 안 좋아요?”
“응? 아냐. 괜찮아. 가자고. 하암. 오늘은 출장 일찍 끝내고 푹 자는 게 좋겠어.”
서유림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한동민이 피로를 느끼는 만큼 서유림은 피로가 해소되었다. 한 동민과 스킨십을 마치고나자 한 시간쯤 단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해졌다.
덜덜 떨리던 손발도 어느새 안정을 찾았다.
다시 힘껏 운동할 수 있겠다.
‘이거 효과 죽이네! 앞으로 종종 사용해야 하겠어. 그럼 나도 퇴근해볼까?’
강셍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강철중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소식이 궁금했다. 허리는 남자의 생명인데.
“강철중씨, 좀 어떠세요?”
- 상태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습니다. 그나저나 죄송해서 어쩌죠? 저 때문에 서유림씨가 괜히······.
창고 업무를 맡긴 꼴이 되어서 미안하다 그거지?
괜찮아.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행복한데. 그래도 마음 써주는 게 고맙다.
“그런 생각 전혀 할 필요 없어요. 강철중씨 허리 완전히 나을 때까지 창고 업무는 제가 책임질게요. 답답한 사무실 벗어나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회복하겠습니다.
“서두를 것 없다니까요. 완전히 회복된 후에도 창고 업무는 제가 맡을게요. 강철중씨라고 만날 현장 업무만 맡으라는 법 있습니까? 사무실 업무도 배워야 승진도 빠르고 하죠.”
-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은혜 꼭 갚겠습니다.
감사할 것은 없는데.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인데.
어쨌건 강철중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은 좋다. 강성체육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