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고블린 킹 (2) 수정완료
놈의 주무기는 독이라고 했다.
아까 시잇- 소리를 내며 날아왔던 것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독침이 되었건, 독니가 되었건 그것만 조심하면 승산이 있다.
그러자면 놈의 독 공격을 막아낼 엄폐물이 필요했다.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가 딱 좋을 것이다.
그래서 달아날 때도 아름드리나무를 엄폐물 삼아서 계속 갈지자로 움직였던 것이고.
‘저 나무가 좋겠다.’
서유림의 몸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굵었다. 게다가 주변에 수풀이 없어서 나무를 빙글빙글 돌며 움직이기 편할 것 같았다.
서유림이 나무를 반환점 삼듯 빙그르르 돌며 멈추어 섰다.
고블린 킹은 약 10m쯤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서유림이 멈추어 서자 고블린 킹도 자리에 멈추어서 대롱 같은 것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 끝이 서유림을 향해 있었다.
‘독침이구나!’
서유림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고블린 킹의 가슴과 배가 튕겨지듯 출렁일 때 재빨리 나무 뒤로 숨었다.
타앗!
독침이 나무에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고개를 내밀어서 놈을 보았다.
놈이 2격을 준비해서 발사했다. 하지만 서유림이 타이밍을 맞추어 숨어버리니 매번 헛방이었다.
그제야 놈도 독침을 포기했다. 대신 자루가 제법 긴 도끼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가 듬성듬성 빠지고 녹이 잔뜩 설어있는 도끼였지만, 한 대만 제대로 맞아도 정령계와는 작별을 고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싸우지?
이런 근접전에서는 대나무창이 너무 길었다. 길이가 딱 반만 되면 적당할 것 같다.
그러면 줄이면 되지.
요정의 단검으로 대나무창의 중간을 잘라버렸다.
한결 다루기가 편해졌다.
그러는 사이 고블린 킹이 도끼를 휘두르며 공격했다.
‘이크!’
서유림은 나무를 사이에 두고 빙글빙글 돌며 피했다. 고블린 킹이 휘두른 도끼가 휘잉- 하는 바람소리를 뿌렸다.
힘 하나는 무지막지한 듯했다.
하지만 움직임이 둔탁했다. 기술 없이 힘만 가지고 싸우는 놈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곰 잡는 사냥개처럼 치고 빠지는 식으로 공격하면 된다.
서유림이 기회를 엿보다가 재빨리 대나무창을 뻗었다.
강하지 않은 일격이었다. 어차피 한 방으로 끝낼 수 없는 놈이니 재빨리 치고 빠지는 식의 공격이었다.
그래서일까?
놈은 서유림의 공격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맷집과 체력에 자신이 있는지 서유림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오로지 공격만 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법.
시간은 서유림의 편이었다.
서유림은 바늘로 콕콕 찌르듯 대나무창으로 놈의 몸에 자잘자잘한 상처를 계속 냈다.
놈의 온몸은 어느새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움직임도 조금씩 느려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조금 더 과감한 공격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놈이 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헛방을 날리면서 빈틈을 크게 노출했다.
서유림이 그 틈을 노려서 놈의 목 뒷덜미에 대나무창을 깊이 찔러 넣는 데 성공했다.
끼애액-
놈이 휘청하며 쓰러졌다.
재빨리 다가가서 다시 놈의 목젖을 찔렀다.
‘됐다. 내가 고블린 킹을 잡았어!’
순간적으로 희열이 느껴졌다.
설마하니 이 부근에 고블린 킹이 또 있을까? 이놈만 사냥하고 나면 더는 서유림을 위협할 놈이 없을 것이다.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하겠지?
서유림은 쓰러진 고블린 킹의 목에 대나무창을 찌르고 또 찔렀다. 놈이 완벽하게 죽을 때까지.
그런데 그때였다. 놈이 마지막 힘을 짜내듯 서유림을 향해 침을 뱉었다.
퉤!
이런 제길. 저런 상태에서 침을 뱉을 줄이야.
게다가 피가 잔뜩 섞인 침이다. 더러움도 더러움이었지만, 그보다는 독에 대한 걱정이 더욱 컸다.
혹시 침으로도 중독되는 건 아닐까?
재빨리 침을 닦아냈다. 먼저 풀잎으로 닦아내고, 성에 차지 않아서 흙을 한 움큼 주워 얼굴에 문질러 닦아냈다.
고블린 킹은 어느새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앞에 섬광이 폭발한 것만 봐도 놈의 죽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침을 말끔하게 닦아낸 서유림은 움직임을 멈춘 채 몸 상태를 살폈다. 독의 기운이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다.
아! 정령 아리안은 알겠지?
‘아리안. 어때? 독에 중독된 거야?’
> 약하게 중독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약하게? 대답이 애매하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다.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
‘괜찮을까?’
> 위험할 수 있습니다. 빨리 안정을 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이 아니다.
중독만 되지 않았다면 고블린 킹의 가죽을 벗겨갈 생각이었는데, 그건 너무 무모한 짓 같다. 가죽 벗기는 게 웬만큼 힘들어야 말이지.
그래도 마나스톤은 챙겨야겠지? 어렵지 않게 빼낼 수 있으니까.
요정의 단검으로 고블린 킹의 등을 갈라서 마나스톤을 뽑아냈다. 정크의 것보다도 훨씬 크고 색도 진했다.
‘됐다. 이제 돌아가자.’
서둘러서 동굴로 향했다.
> 심하게 뛰지 마세요. 상태가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서유림도 느끼고 있었다.
이건 독이 아니라 마약 같았다. 고통보다는 현기증이 느껴졌다. 시야도 어질어질해졌다.
정령 아리안의 말대로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상태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다만 악화되는 속도를 조금 늦출 뿐이었다.
빨리 동굴에 가서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비척비척 걸었다.
‘저기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된다.
이를 악물었다. 겨우 침에 맞은 것뿐인데, 상태가 이렇게 심각해질 줄이야. 독침에 맞았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아리아나의 경고가 과장이 아니었다.
동굴 안에 몸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아리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유림씨!”
마치 환청 같았다. 아리아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아리아나······.’
서유림도 화답하듯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딱딱한 동굴 바닥이 다가와서 서유림의 얼굴을 때렸다.
그것이 서유림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유림씨!”
아리아나는 요정의 샘물을 마시며 계속 요양한 덕분에 몸이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혼자 힘으로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어금니를 깨물며 기듯 서유림에게 다가왔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서유림의 몸을 동굴 안쪽으로 이끌었고, 젖 먹던 힘을 다해서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아리아나의 온몸은 땀에 젖었다. 예쁜 가슴을 들썩이며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정신 좀 차려 봐요, 유림씨!”
치료마법도 써보고, 요정의 샘물도 먹여보았다. 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고블린 킹의 독에 당한 게 분명했다.
“어쩌지?”
아리아나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령신의 허락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아니, 정령신의 허락이 있다고 해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리아나의 목숨을 거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아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불편한 몸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을 모아 기도했다.
‘정령신이시여. 금단의 방법을 허락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