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24화 (24/196)

# 24

고블린도 밟으면 OO한다. (2)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뒤돌아볼 틈도 없었다.

그대로 몸을 쓰러뜨리듯 옆으로 굴렀다.

그와 동시에 왼쪽 어깨에서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파앗!

“끄윽!”

간신히 머리는 피했지만, 대신 어깨를 내주었다.

어깨뼈가 으스러진 느낌이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픈 줄도 몰랐다.

몸을 한 바퀴 구르며 고개를 돌려서 놈을 보았다.

고블린 대장보다 더 큰 놈이었다. 게다가 머리에는 뿔까지 달려있었다.

뿔 고블린이 다시 달려들었다. 야구방망이보다 더 큰 몽둥이를 젓가락처럼 휘둘렀다.

서유림은 다시 몸을 굴렸다. 몽둥이가 서유림의 몸을 아슬아슬 스치며 땅바닥을 찍었다.

몽둥이의 위력이 엄청났다. 정크의 가죽이 아니었다면 살짝 스친 것만으로도 살점이 한 움큼은 뜯겨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방이 서유림에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뿔 고블린이 몽둥이를 회수하는 사이 재빨리 요정의 망토를 꺼내들었다.

“크으윽!”

망토를 뒤집어쓰려고 팔을 움직이자 한쪽 어깨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깨가 완전히 으스러진 모양이다.

그래도 망토를 펼쳐서 덮는 데는 성공했다.

서유림이 사라지자 뿔 고블린이 당황해했다. 서유림을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지난번 정크와 같은 반응이었다. 잘 버티고만 있으면 이번에도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긴장이 조금 풀어진 걸까? 어깨에서 본격적으로 통증이 느껴졌다. 식은땀이 흐를 정도의 통증이었다.

신음소리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런데 설상가상이었다. 뿔 고블린이 갑자기 서유림이 숨어있는 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뭐야? 설마 내가 보이는 건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뿔 고블린은 서유림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서유림이 사라진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끼루루. 끼루.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흘렸다. 그러자 꼬마 고블린들이 서유림이 숨은 곳으로 다가왔다.

걷는 모습은 아장아장 귀여웠지만, 이빨이나 손톱을 보면 영락없는 마물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저쪽 수풀이 흔들리더니 고블린 대장이 슬그머니 걸어 나왔다. 한 놈이 아니다. 저쪽에서도 또한 놈이 걸어 나왔다.

그럼 뿔 고블린을 제외하고도 고블린 대장만 세 마리였단 말인가?

게다가 꼬마 고블린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하나같이 수풀 속에서 아장아장 기어 나오는데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비로소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어깨의 통증이 잠깐 무뎌질 정도로 무서운 사실이었다.

‘이놈들이 매복하고 있었구나!’

고블린의 지능이 그렇게 뛰어난 줄은 짐작도 못했다.

그런데 누구를 노린 매복일까? 이곳에 서유림이나 아리아나 말고 놈들이 노릴 존재가 또 있단 말인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욱 소름이 끼쳤다.

‘날 잡으려고!’

이곳 정령계 시간이로 약 엿새쯤 전에 이곳에서 고블린을 떼로 사냥했었다. 그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매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블린들이 그렇게나 대단한 존재였어? 복수에 매복까지 하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놈들의 인내심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매복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언제까지 매복할 계획이었던 것일까?

몇 시간 단위는 아닐 것 같았다. 최소한 하루 이틀 단위는 될 것이다.

끼루. 끼루. 끼르르.

뿔 고블린이 자꾸만 떠들어댄다.

다른 고블린은 모두 지능이 떨어지는데, 저 뿔 고블린만 지능이 제법 높은 모양이다.

하긴, 한 놈만 똑똑해도 나머지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대체 뭐라고 떠드는 걸까?

대충은 알 것 같다. 뿔 고블린의 지시에 따라서 다른 고블린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보였다.

상황은 더욱 암담하게 흘러갔다. 고블린들이 주변을 포위하듯 흩어진 것이다. 그리고는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듯 자리를 잡았다.

뿔 고블린도 다른 고블린 대장과 함께 포위망에 직접 동참했다. 그 중심에 서유림이 있었다. 다들 서유림이 사라진 곳을 집중적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꼼짝없이 갇힌 꼴이 되었다.

‘어쩌지?’

이놈들이 포위망을 언제 풀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늘 안으로 풀지 않을 것만큼은 거의 확실하다. 언제 올지도 모를 서유림을 공격하기 위해서 매복을 해있던 놈들이니까.

생각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고 줄행랑을 놓는 것.

가장 가까운 놈이 기습하기에 가장 적당하겠지?

고블린 대장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거리는 대략 5m.

긴 팔로 대나무창을 쭉 뻗으면 2m정도는 커버가 될 것이다. 그러면 3m만 접근하면 기습이 가능하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놈들이 압도적인 숫자를 바탕으로 이중 삼중으로 포위망을 만들었다.

더욱 큰 문제는 어깨의 부상이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진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다.

‘아리안. 이거 치료해줄 수 있지?’

> 지금 치료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걸릴까?’

> 완치까지 예상 치료시간은 5일입니다.

뜨악!

한두 시간이라면 모를까 5일이라니. 그렇다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치료되는 것도 최소 이틀 이상 걸릴 것이다.

하긴, 어깨뼈가 으스러졌으니 5일도 빠른 편이겠지.

어쨌건 어깨가 치료되기를 기다리는 건 포기다.

‘그럼 통증이라도 없애줄 수 있어?’

>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무리하게 움직이면 어깨 부상이 더욱 심해질 겁니다.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다.

‘일단 통증이라도 없애줘.’

서유림이 부탁하자마자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됐다! 제대로 힘을 쓸 수는 없지만, 시도는 해볼 만하다. 다른 건 몰라도 달리기 하나만큼은 서유림이 월등하게 빠를 테니까.

서유림이 대나무창을 움켜쥐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고블린 대장을 겨누었다.

그 뒤로도 고블린 대장이 한 마리 더 있었다. 하지만 아까 서유림의 공격으로 큰 부상을 당해서 숨이 꼴딱꼴딱 하고 있었다.

놈들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대나무창도 요정의 망토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다.

기회를 노렸다. 마음이 조급했지만, 놈들의 경계심이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가 두 시간쯤 지나자 마침내 기회가 왔다.

몇몇 고블린이 하품하기 시작했다.

하품은 전염병처럼 퍼졌다. 대장 고블린에 이어 뿔 고블린까지 입을 쩍 벌리며 하품했다.

이때다!

눈앞의 고블린 대장이 하품하는 순간을 노려서 요정의 망토를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땅을 박차며 맹렬하게 뛰었다.

고블린 대장이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고블린들도 움찔하며 반응하는 게 보인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서유림이 빨랐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때까지도 다른 고블린은 물론이고 고블린 대장도 제대로 방어동작을 갖추지 못했다. 그저 허둥대고 있을 뿐이다.

서유림이 고블린 대장의 가슴을 향해 대나무창을 힘껏 뻗었다.

푸욱!

제대로 박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치명타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블린 대장을 사냥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다.

대나무창을 힘껏 뽑아 회수하며 포위망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제야 뿔 고블린, 꼬마 고블린 할 것 없이 다들 서유림을 쫓기 시작했다.

다급했다. 이제는 두 다리만이 살 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쓰러져있는 고블린 대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반쯤 죽여 놓은 놈이었다. 딱 한 방만 더 먹여도 숨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덤이다!’

달리기를 멈추지 않은 채 대나무창을 지팡이처럼 뻗었고, 놈은 무방비상태로 목이 꿰뚫렸다.

끝냈군!

이제 무작정 달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서 강렬한 섬광이 느껴졌다.

번쩍!

온몸에 화끈한 전율이 느껴졌다.

구석구석 쌓여있던 피로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심한 부상으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왼팔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서유림의 입술에 미소가 지어졌다.

‘레벨이 올랐구나! 몸이 리셋 되었어!’

확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단은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다. 최대한 빨리 달려서 고블린 무리와의 거리를 벌렸다.

역시 뿔 고블린이 가장 빨랐다. 하지만 그래도 서유림보다는 느렸다.

웬만큼 달리고 나니 조금은 거리의 여유가 생겼다.

‘아리안, 내 어깨상태가 어때?’

> 레벨이 오르면서 완쾌되었습니다.

역시 그랬군!

자신감이 샘솟았다. 한편으로는 복수심도 불타올랐다.

‘감히 내 어깨를 아작 내려고 했어?’

흘끔 뒤돌아 보았다.

뿔 고블린이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서유림을 향해 성큼성큼 뛰어오고 있었다. 겁도 없이!

서유림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놈들은 뛰는 속도가 제각각 달랐다. 뿔 고블린은 그중 압도적으로 빨라서 혼자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각개격파!’

제깟 놈이 강해봤자 정크만큼 강하겠어?

‘무조건 내가 이긴다!’

서유림이 몸을 돌려서 오히려 뿔 고블린을 향해 뛰었다.

서로 마주보고 뛰어오니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서유림이 대나무창을 힘껏 뻗었다. 놈도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무기의 길이에 차이가 컸다. 대나무창이 먼저 놈의 가슴을 찔렀다.

끼액!

뿔 고블린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기세를 죽이지는 않았다. 몽둥이를 그대로 휘둘렀다.

서유림이 몸을 비틀며 옆으로 굴렀다. 뿔 고블린과 서유림이 교차하듯 지나쳤다.

재빨리 일어선 서유림이 다시 대나무창을 겨누었다.

뿔 고블린도 방향을 바꾸었다.

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교차했다. 뿔 고블린의 몽둥이는 번번이 빗나갔고, 서유림의 창은 매번 놈의 가슴을 정확히 찔렀다.

그러는 사이 고블린 대장이 제법 가까이까지 뛰어왔다. 60마리가 넘는 꼬마 고블린들도 저 멀리에서 아장아장 달려온다.

그 전에 이놈부터 끝낸다!

서유림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나무창의 길이를 이용해서 찌르고 또 찔렀다.

뿔 고블린이 여전히 몽둥이로 기세를 올렸지만, 그때마다 서유림이 뒷걸음질하며 거리를 유지하니 연신 헛방이었다.

뿔 고블린의 움직임이 급격히 느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을 찌르자 무릎을 꺾으며 쓰러졌다.

나머지 놈들은 줄줄이 사탕이었다. 고블린 대장을 시작으로 다가오는 족족 대나무창으로 꼬치를 꿰어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싸우다 보니 더는 고블린이 보이지 않았다.

“휴우~.”

서유림이 긴 한숨을 토해내며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에이 더러워!’

손등이고, 얼굴이고, 옷이고 온통 녹색 천지였다. 고블린의 피였다.

피비린내는 인간의 것보다 더욱 역겨웠다.

다시 요정의 샘물로 향했다.

퐁.퐁.퐁······

샘물은 주변의 전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세 좋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갈증부터 풀었다.

벌컥! 벌컥!

‘하아! 살 것 같다.’

조금 아래쪽에 내려가서 손과 얼굴, 팔을 씻었다.

물주머니를 가득 채우고 동굴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고블린에 이어 정크까지 마주쳤지만, 이번에는 아무 어려움 없이 사냥을 끝마칠 수 있었다.

정크의 가죽을 벗기고 동굴로 돌아오고 보니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린 뒤였다.

서유림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아리아나가 깜짝 놀랐다.

“어머! 다치셨어요?”

이 어둠에 내 몸이 보이나?

하긴, 요정이잖아. 마법이나 정령의 힘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겠지.

서유림의 꼴이 말이 아니긴 할 거다. 정크의 가죽옷이 온통 고블린 피로 덕지덕지할 테니까.

무엇보다도 바지가 너덜너덜하게 찢겨져있다. 꼬마 고블린의 손톱이 그렇게 날카로운 줄은 몰랐다.

레벨업 할 때마다 상처가 말끔히 치료되긴 했지만, 그 후에 얻은 상처는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령 아리안이 치료하고는 있지만, 겨우 딱지가 앉은 수준이다.

“괜찮습니다. 별것 아니에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리아나 곁에 앉았다. 아리아나가 마법을 걸어주자 마치 레벨업을 한 것처럼 상처가 말끔하게 아물었다.

그러는 사이 서유림이 영웅담처럼 이야기했다. 잘못하면 겨우 꼬마 고블린 몇 마리를 못 당해서 이렇게 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그 정도로 약한 놈은 아니라고.

“고블린이 떼로 덤비더라고요. 한 삼백 마리도 넘었던 것 같아요.”

웬 삼백 마리냐고?

워래 영웅담은 뻥을 좀 튀겨줘야 감칠맛이 나는 법이거든!

“이 부근에 고블린이 좀 많긴 한 것 같아요.”

아리아나가 호응해준다. 마음도 참 예쁘다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웃는 거지? 왠지 내 말을 못 믿는 것 같네.

“덩치 큰 놈도 한 열 마리쯤 있더라고요. 머리에 뿔 달린 놈도 있고. 게다가 그놈들이 매복까지 하고 있더라고······?”

서유림이 말을 하다 멈추었다. 아리아나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서유림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뿔 달린 고블린이라고 하셨나요?”

“네. 머리에 뿔 하나가 나있더라고요. 꼭 도깨비처럼.”

“혹시 요정의 샘물 인근이었나요?”

“어떻게 알았어요?”

아리아나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혹시······ 고블린 퀸을 사냥하신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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