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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22화 (22/196)

# 22

널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1)

그런 거라면 아리안의 말이 맞다.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선택은 오로지 서유림의 몫이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정령 아리안은 아리아나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었나?

아리아나가 아무리 정상이 아닌 상태라고 해도 그렇지. 최하급 정령 따위가 어떻게 아리아나의 마법에 저항할 능력을 준다는 거야?

이건 소대장이 ‘대대장 심부름 좀 보내줄까?’ 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잖아.

그리고 아리안이 갑자기 왜 그런 제안을 해오는 이유는 뭐냐고? 것이다. 뭔가 선물을 준다면 당연히 그 목적이 있을 것 아냐?

왠지 그 목적이 불순하게 느껴졌다. 수단이 불순하면 목적도 당연히 불순한 법이니까.

‘나한테 그런 혜택을 주는 이유가 뭐지? 아리안도 그만큼 나한테 원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 정령과 계약자는 몸과 마음이 하나입니다. 계약자를 아는 만큼 정령의 힘도 강해져요. 그래서 유림씨를 알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깊이, 자세히. 유림씨를 보여주세요.

듣는 순간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만들어낸 핑계 같다고 할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냥 보여주라고 하면 되잖아. 왜 굳이 아리아나의 순결을 보상으로 내거는 건데?

묻는다고 순순히 대답해줄 리도 없고.

살살 유도질문을 해야 하겠는데,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알아듣기 어렵군. 어떻게 보여주라는 거지?’

> 간단해요. 선악과 시비의 판단이 서면 망설이지 말고 생각대로 하시면 돼요. 그러면 유림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단지 그뿐이야?’

> 네. 그뿐입니다.

망설이지 말라.

어찌 보면 간단한 요구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다못해 마트에서도 사고 싶다고 모두 다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사람을 만날 때에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하며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사람은 필연적으로 망설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어깃장을 놓아보고 싶다.

나도 정령 아리안의 반응을 보고 싶거든.

‘그건 지킬 수 없는 약속이겠군. 때로는 참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 망설인다면 그것 역시 유림씨의 판단이겠죠.

뭐야? 망설여도 된다는 거야?

그럼 지금과 달라질 게 없잖아. 굳이 나를 보여 달라느니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냥 평소의 나를 보면 되는 것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아리안의 의도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리안의 의도가 아니라 아리아나의 의도이겠지.

생각해봐. 아리아나와 아리안이 다른 존재이겠어? 나와 아리아나 사이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와 같은 존재라고 했잖아.

당연히 나보다는 아리아나와 더욱 가까울 것이고. 어쩌면 하나부터 열까지 아리아나의 조종을 받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군! 아리아나의 수면마법에 저항할 힘이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은 거야.

이놈이 믿을 만 한 놈인가 아닌가를 보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아리안이 결정한 게 아니라 아리아나가 시킨 것이로군. 나를 시험하기 위해서.

하여튼 요정이 아니라 요물이라니까.

어쨌건 조건을 들어보니 ‘마법에 대한 저항력’은 공짜로 주는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더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 조건이 하나 더 있어요. 이건 우리만의 비밀입니다. 아리아나에게는 절대 말해서는 안 돼요.

그런다고 내가 속을 줄 알고?

아리아나의 의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잖아.

속 보인다. 속 보여.

‘만약 실수로라도 말하게 되면?’

서유림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솔직히 사람이 실수는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해진다.

> 유림씨와 정령과의 계약은 무효가 되고, 요정 아리아나는 정령계에서 소멸될 것입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령 아리안의 말이 절대 빈말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아리아나에게 이야기하면 100%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뭐야? 웃자고 한 얘긴데 죽자고 달려드는 거야?’

> 정령은 장난으로 약속하지 않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킵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고 있어.’

뭐 사실 비밀 좀 지키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다. 까짓, 그냥 속아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무튼 나는 콜! 이제 잠 좀 자볼까? 그런데 아리아나는 왜 이렇게 안 불러주는 거야? 오늘 밤에 불러주려나?’

왠지 오늘은 불러줄 것 같다. 아리안이 괜히 아리아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서유림이 기대감을 품고 가물가물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코끝으로 청량함이 느껴진다.

갑자기 기대감이 든다.

‘혹시?’

서유림이 눈을 번쩍 떴다.

어두컴컴한 동굴이다.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 아리아나가 누워있다. 서유림이 만들어준 침대 그대로였다.

“죄송해요. 또 불렀어요. 원래는 유림씨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정령신의 이름으로 한 약속 때문에······.”

그래서 허락이 아닌 강제소환을 했다 그 말이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서유림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괜찮습니다. 왜 안 불러주나 했어요.”

“유림씨가 제 생각을 전혀 안 해주시니, 죄송해서 부를 수가 있어야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리아나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난 아리아나가 다른 도우미라도 구해서 절 완전히 잊은 줄 알았죠.”

서유림의 말에 아리아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제 생각을······ 많이 하셨다고요?”

“당연하죠. 아리아나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아! 말하고 나니 조금 낯부끄럽다. 이런 고백에 가까운 말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꺼내다니.

서유림! 많이 컸구나. 낯가죽이 악어가죽이 되었어!

그래서인가? 아리아나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너무 강한 고백을 갑작스럽게 했나?

그런데 그 때문이 아니었다.

아리아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제가 느꼈어야 했는데. 혹시 제 마음도 못 느끼셨나요? 유림씨 도움이 필요해서 여러 차례 간절히 생각했는데.”

나를 생각해준 것만도 고마운데, 거기에 ‘간절히’라는 단어까지 붙여주니 더욱 고맙다.

그런데 진심일까?

“아뇨. 전혀 못 느꼈습니다. 얼마나 섭섭했는데요.”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아리아나가 저토록 당황하는 표정은 처음 본다. 예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역시 여자는 얼굴이 무기라니까. 뭘 해도 다 예뻐 보여.

“혹시 인간계에서 뭔가 특별한 일 없었나요? 특히 정령에게서요.”

그렇게 막연하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

“특별한 일이라면 어떤······?”

“정령이 갑자기 거래를 제안해온다거나 미션을 준다거나 하는 일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귀신이네!

아니지. 자기가 거래를 제안해놓고 왜 묻는 거야? 게다가 비밀을 발설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해놓고.

확 말해버려?

그 순간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 일은 저와 유림씨만 알고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약속을 잊지는 않으셨죠?

알지. 기억하고 있다니까. 그런데 왜 묻느냐고? 그럼 아리아나가 시킨 게 아니었단 말이야?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네.

“전혀요.”

서유림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요? 음······ 그럼 제 힘이 너무 약해서 그런가 봐요. 정령도 최하급이라서 힘이 약할 거고요. 힘을 키우면 괜찮아지겠죠.”

그래. 그렇게 믿어주면 서로가 속 편하지.

그런데 지금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자작극이야, 아니야?

자작극이라면 그냥 맘 편히 속아주면 된다.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이거 문제가 심각해지네. 정령 아리안을 믿을 수가 없게 되잖아.

아리아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요만큼도.

그럼 아리아나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물론 질문을 잘해야 할 것이다. 자칫 비밀을 발설하는 식으로 질문이 나가면 감당 못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아리아나. 나와 계약한 정령 있잖아요.”

“네.”

“몇 프로나 믿을 수 있는 거죠? 100% 믿어도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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