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6화 (16/196)

# 16

호구 한 마리 잡아드시고 갈게요 (2)

3천만 원이라.

한동민이 배포가 생각보다 작네. 1억 원을 이야기하면 그보다 더 부를 줄 알았는데.

그래도 3천만 원이 어디야?

우승상금도 5천만 원이나 된다. 합하면 8천만 원이 아닌가? 서유림의 3년 연봉과 맞먹는 액수였다.

이거 왠지 보너스 두둑하게 탄 기분인걸.

게다가 우승하면 MAN FC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파이트머니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웬만큼 생활비는 되겠지.

그래. ‘주먹이 운다.’ 우승을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는 거다.

“계약서? 좋아요. 까짓것 쓰죠 뭐.”

서유림이 술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 서유림!”

오영훈이 다급히 만류했다. 하지만 한동민이 그런 오영훈을 다시 제지했다. 조금은 거친 목소리로.

“오 주임! 내가 나서지 말라고 했지!”

“아, 네. 대리님.”

“권진아씨. 종이하고 볼펜!”

분위기가 시베리아였다. 한동민을 중심으로 찬바람이 쌩쌩 분다.

잔뜩 긴장한 권진아가 빠릿빠릿 움직였다. 얼른 종이와 볼펜을 가져왔다.

한동민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주먹이 운다.’ 시리즈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분기마다 시즌이 반복되었다. 즉 3개월에 한 번씩 지원자를 모집했고, 지금 한창 시즌3의 지원자가 모집되고 있었다.

시즌3의 예선은 약 1개월 뒤.

계약서는 그것에 맞추어 작성되었다.

물론 시즌3이 목표는 아니었다.

[계약서.

한동민(갑)과 서유림(을)은 을의 ‘주먹이 운다.’ 출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계약을 체결한다.

제1조 : 갑은 을에게 1년간의 체육관 훈련을 지원한다.

제2조 : 갑은 ‘주먹이 운다. 시즌5’가 종료될 때까지 을에 정시 퇴근을 보장한다.

제3조 : 을은 ‘주먹이 운다.’에 출전하여 시즌5가 종료되기 전까지 예선을 통과해야 한다.

제4조 : 갑이 제1조와 제2조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거나, 을이 제3조의 사항을 이행할 경우 갑은 을에게 3천만 원을 지급한다.

제5조 : 을이 제3조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을은 갑에게 3천만 원을 지급하고, 1년간의 체육관 비용을 배상한다.

위 사항은 00년 00월 00일(월)부터 시작된다.

계약자 한동민(갑) : 서명

계약자 서유림(을) : 서명

공증인······]

계약서는 순식간에 작성되었다. 똑같은 내용으로 두 장이었다.

한동민이 먼저 서명하고 서유림에게 내밀었다.

서유림이 술이 잔뜩 취해서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계약서 내용을 대충 살펴보았다.

시즌5라면 앞으로 7개월 뒤에나 예선이 치러질 것이다.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서유림은 시즌5까지 질질 끌 마음이 없었다. 이왕이면 이번 시즌3에서 끝장을 보고 싶었다.

한동민의 계약과 상관없이 자신과의 싸움이랄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당장 내일 월요일부터 시작이었다. 한동민이 다른 건 몰라도 시원시원한 것은 마음에 든다.

“진짜 내기하는 거예요?”

“왜? 갑자기 자신 없어졌어?”

“에이, 자신 없기는. 그럽시다, 뭐.”

서유림도 자신의 이름 옆에 서명했다. 이어서 구매팀 전원이 공증인으로서 서명을 마쳤다.

“잘 해봐, 서유림씨. 하하.”

한동민이 서유림의 어깨를 다독이며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서유림도 활짝 웃었다.

‘후훗, 고마워, 호구 아저씨!’

명진식품 주차장.

대형버스가 직원들을 우르르 쏟아냈다.

“수고했어요.”

“들어가세요.”

직원들 모두 손을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다들 표정에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서유림도 온몸이 뻐근하다.

하지만 그 뻐근함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기분 좋은 자극이랄까?

‘내가 변하긴 변했구나!’

서유림은 집으로 향하면서 지나온 날을 되짚어보았다.

생각해보면 너무 궁상맞게 살았다. 먹을 것, 입을 것은 물론이고, 늘 전기세, 수도세, 가스 걱정하며 ‘절약’을 외치고 살았다.

어쩔 수 없었다. 써야 할 돈은 많고 벌어들이는 돈은 적으니.

그렇게 아꼈는데도 통장에 모인 돈은 겨우 1천만 원 조금 넘었다.

그런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쓸 돈은 쓰고, 즐길 것은 즐기며 살고 싶었다. 이젠 그래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물론 과소비는 피해야 하겠지만.

당장 오늘부터 즐겨볼까? 그동안 너무 참고만 살아왔잖아.

이제 망설임은 없다. 결심이 서자마자 곧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저녁 드시지 마세요. 제가 먹을 것 좀 사갈게요.”

- 뭐 하러 쓸데없이 돈 쓰려고 그래? 그냥 집에 있는 반찬 가지고 대충 먹지.

“제가 먹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밥만 해놓으세요.”

통화를 마치고 집에서 멀지 않은 대형마트로 들어갔다.

뭐가 좋을까?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고기도 좋고, 야채도 좋고, 생선도 좋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점보랍스타.

평소에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었다. 게다가 마침 할인판매까지 하고 있다.

“이거 여기에서 쪄주는 건가요?”

“네. 쪄드립니다, 손님. 주문하시고 한 시간 정도만 있다 오시면 돼요.”

잘됐다. 집에서 요리하는 불편도 없겠다.

게다가 시간도 완벽하군. 집어 들어가서 바로 저녁 먹으면 되겠다.

“두 마리 쪄주세요.”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1시간을 뭐 하며 보내느냐고?

시간이 없지 할 일이 없을까?

이곳에서 집까지 걸어서 15분가량 거리이니 가서 씻고 와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움직이고 싶다. 그것도 미친 듯이.

빨리 내 몸을 시험해보고 싶다.

서유림은 곧장 가까운 곳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을까?

허벅지가 터지도록, 가슴이 타들어가도록 마구 뛰었다. 철봉에도 매달리고 평행봉도 해보았다. 힘 좀 쓸 수 있겠다 싶은 운동기구만 보이면 무조건 달라붙었다.

몸은 여전히 허약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턱걸이도 해보고 평행봉도 해보았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달리기도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하지만 전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가능성이랄까?

전에는 ‘이게 내 한계야.’ 하며 노력할 의욕도 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베스트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잠이 덜 깬 몸 같다고 할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몸이 굳은 느낌이랄까?

몸만 제대로 풀리고 나면 턱걸이 백 개쯤은 거뜬할 것 같았다. 운동장을 바람처럼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꾸만 욕심이 났다. 운동에 대한 갈증이었다. 빨리 몸을 풀어서 최상의 능력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제대로 운동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저녁 먹고 나와서 다시 해봐야지.’

점보랍스타를 찾아가기 위해서 다시 마트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휴대폰이 울어댔다.

부모님이신가 싶어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모르는 전화번호네.

받지 말까 하다가 받았다. 혹시 모르니까.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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