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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4화 (14/196)

# 14

쟤 좀 이상해졌어. (2)

구매팀이 멍한 표정으로 서유림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공통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쳤어.’

‘미친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는 사람이 저렇게 한 순간에 변할 수 없다.

게다가 저 먹는 모습 좀 봐.

서유림은 원래 식사량이 무척 적다. 함께 식사하면 늘 밥을 절반 정도 남긴다. 마치 결혼식을 코앞에 둔 예비신부 다이어트 하는 것처럼.

음식을 먹는 모습도 늘 깨작째작이었다. 정말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모습이랄까?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게걸게걸. 우적우적.

저게 그렇게 맛있나? 차갑게 식은 고기를 다시 데운 것에 불과한데.

너무 궁금해서 한동민도 술안주 삼아서 고기 한 점을 먹어보았다.

‘에이, 별로구만!’

육즙이 다 빠져서 푸석푸석하고 질기기만 하다.

그런데 서유림은 걸신이라도 든 사람처럼 마구잡이로 집어넣고 있다. 그 짧은 시간에 먹어치운 양이 벌써 3인분은 족히 될 거다.

회식자리 마친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그러다 체하겠어요. 물 좀 마셔가며 드세요.”

권진아가 물을 따라서 권했다.

“물? 에이, 삼겹살엔 소주가 최고지. 팀장님. 한잔 하시죠.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하겠습니까? 하하하.”

“응? 그, 그럴까?”

원래 한잔 더 할 생각이긴 했다. 서유림 때문에 갑자기 분위기가 이렇게 되긴 했지만.

“구매팀을 위하여!”

“위하여!”

서유림도 잔을 힘껏 부딪치며 시원하게 넘겼다.

“캬아! 죽이네. 하하하! 대리님. 제가 한잔 드릴게요. 제가 이번에 요정한테 행운을 잔뜩 받아서 제 잔 받으시면 행운이 넘칠 겁니다. 틀림없이 이번에 승진하실 거예요. 하하하.”

주는 잔을 어찌 마다하랴?

얼떨결에 손을 뻗어서 잔을 받았다.

“고, 고마워요.”

“다시 한잔 하시죠. 이번에는 우리 한 대리님의 승진을 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하하.”

한동민도 오영훈도 팀장 배기열도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쟤 진짜 왜 저래? 안 하던 짓을 하고.

늘 소극적이던 서유림이 아니던가? 어떻게든 한 잔이라도 덜 마시려고 온갖 수작을 부리던 서유림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갑자기 술자리 분위기를 주도하고 그래?

게다가 저 웃음소리는 뭐야? 뱃심으로 토해내는 것처럼 웃음소리가 힘차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서유림의 웃음소리가 귀에 인으로 박힌 듯하다. 가만히 있는데도 ‘하하하!’ 하는 이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걱정이 앞서지만, 입은 어느새 서유림을 따라 외치고 있다.

“한 대리님의 승진을 위하여!”

“위, 위하여!”

“캬아, 오늘따라 술이 왜 이렇게 달아? 하하하!”

식당에 서유림 혼자 있는 느낌이다. 서유림의 목소리밖에 안 들린다.

오영훈이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너…… 괜찮은 거냐?”

서유림이 오영훈을 바라보았다. 실없는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괜찮으냐고?

괜찮고말고. 너무 괜찮아서 미칠 지경이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냐고? 왜 미친놈처럼 안하던 짓을 하냐고?

사람이 바뀌었거든. 난 이제 어제의 서유림이 아니거든.

산길을 혼자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확 엎어버리고 새 직장을 구해?’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다.

물론 상상으로는 수십 번도 더 사표를 던졌지만, 실제로 그럴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진식품을 그만둔다고 해서 더 나은 직장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그곳에서는 행복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다른 직장에서 잘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꾹 참기만 했다. 한동민이 승진해서 다른 팀으로 가기만 하면 조금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에.

하지만 지금은 자신감이 넘쳤다.

오히려 명진식품의 구매팀 같은 곳에서 계속 일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훌륭한 몸을 썩혀두는 꼴이 되니까.

그래서 생각해봤다.

명진식품 그만두고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좋은 몸을 활용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런데 마땅한 게 없었다.

신체능력이 좋아졌으니 스포츠를 하라고?

무슨 스포츠?

축구? 야구? 육상? 골프? 격투기?

어떤 스포츠건 단시간에 완성되는 것은 없다. 좋은 몸에 훌륭한 테크닉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테크닉을 단시간에 연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시간을 투자하라고?

그동안 가족은 누가 먹여 살리는데?

그쯤 고생은 각오해야 한다고?

굳이 고생을 사서 할 이유가 뭔데?

무엇보다도 스포츠에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유림은 자신의 잠재력을 훨씬 더 크게 보았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무려 정령의 힘을 얻은 존재니까.

예를 들자면 프리메이슨의 리더?

그래. 프리메이슨의 리더 좋다!

실제로 그런 단체가 존재하는지, 어떤 규모에 어떤 성격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계를 한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그런 사람. 멋지지 않은가?

이런 행운을 얻었다면 그 정도 꿈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스포츠를 하게 된다면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한 디딤돌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굳이 편한 길을 버려두고 낯선 길을 택할 이유는 없다.

그럼 편한 길이 뭐냐고?

그야 당연히 다니던 직장 잘 다니는 거다.

물론 똑같은 직장이라고 해도 지금부터는 다른 직장이 될 것이다.

해고될까 무서워서 전전긍긍, 괴롭힘 당하는 게 무서워서 굽실굽실.

더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생활할 것이다.

어디 해고해보라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

괴롭힘? 당해주니까 괴롭힐 수 있는 거다. 막말로 내가 막가자는 식으로 대들면 어쩔 건데?

게다가 지금까지 당한 게 억울하지도 않아? 많이 당했잖아. 한동민한테, 오영훈한테, 강은영한테.

당한 것만큼 복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면 붙어있어야 한다. 저놈들이 고생고생해서 해고할 때까지.

그때 즈음이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정령의 힘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길이.

“괜찮으냐고, 인마. 산속에서 뭔 일 있었던 것 아냐?”

서유림이 아무 대답이 없자 오영훈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서유림이 더욱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일은 무슨. 요정을 만나서 축복을 받았다니까요. 하하하.”

그럴수록 오영훈의 표정은 굳어져갔다.

당연히 못 믿겠지. 너희들이 믿어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사실대로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요정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있었냐고?

있지. 있고말고.

저 반응들을 봐. 크게 당황하고 있잖아. 저걸 노린 거지.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면 반환점이 필요한 법.

서유림은 오늘 그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전전긍긍 굽실굽실하는 YES맨 서유림은 죽고, 마초 본능 풀풀 풍기는 쾌남 서유림으로 다시 태어난 거다.

그렇게 180도 바뀐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뇌리에 그럴만한 계기를 강하게 심어줘야지.

나 혼자만의 반환점이 아니라 모두가 ‘그때 뭔 일이 있었던 거야.’ 할 수 있는 반환점.

너희 머릿속에는 오늘의 야간산행이 그 반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너희가 자초한 일이지.

그건 그렇고. 오늘같이 좋은 날 술 한 잔 안 할 수 있나?

물론 무턱대고 마셔서는 안 되겠지.

‘아리안님. 술 취하면 깨게 해줄 수 있죠?’

> 네, 유림씨. 알코올을 분해하겠습니다.

‘아뇨. 지금 말고요. 필요하면 얘기할게요.’

근데 정령은 나이가 있을까?

목소리가 저렇게 앳된데 계속 존댓말을 사용하려고 하니 괜히 거리감이 느껴진다.

다음에 기회를 봐서 슬쩍 말을 놓아야겠다.

오늘은 초면이니 그냥 이렇게 가고.

“왜 자꾸 그런 눈으로 봐요? 우리 든든한 오 주임님도 한잔 받으셔야죠? 자자, 술 놓고 고사지내요? 구매팀 분위기 왜 이래? 우리 거국적으로 한 잔 해요. 하하하.”

오늘따라 서유림의 웃음소리가 유독 맑고 시원하다.

그럴수록 구매팀의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얘 진짜 이상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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