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12화 (12/196)

# 12

아리아나의 보답 (4)

“와, 예쁘다!”

뭔가 특별한 물건인 것 같기도 하고, 설령 아니라고 해도 예쁜 모양 때문에 아리아나에게 가져다주면 좋아할 것 같다.

일단 챙기자.

다시 가죽 벗기는 작업을 이어갔다.

1시간도 안 돼서 가죽을 깔끔하게 벗겨냈다. 팔다리는 벗겨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다 잘라냈다.

그런데 가죽을 벗기고 나니 사체의 모습이 너무 흉물스럽다.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

아직은 저 모습에는 적응이 안 된다.

가죽과 대나무창을 챙겨들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아리아나. 이게 뭔지 봐줘요.”

서유림은 동굴로 돌아오자마자 가죽부터 내밀었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마치 지나가다가 눈에 띄어서 식후 운동하듯 가볍게 사냥했다는 식으로.

“어머, 이건 정크의 가죽이잖아요. 정크를 사냥하셨어요?”

“그게 정크였나? 모르겠어요. 이렇게 딱 마주쳤는데 피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사냥했죠.”

“대단해요. 지금 서유림씨의 힘으로는 사냥이 어려웠을 건데.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전 멀쩡해요. 그리고 이거······ 정크의 몸에서 나왔는데.”

이번에는 콩알만한 붉은 구슬을 꺼내주었다.

“정크의 마나스톤이에요. 마물이 마계가 아닌 정령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 마나스톤의 힘 덕분이죠. 잘하셨어요. 이게 있으면 마력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돼요.”

챙겨오길 잘했다.

“그럼 마물을 잡는 족족 마나스톤을 챙겨와야겠군요.”

“아뇨. 너무 작은 것들은 별 도움이 못 돼요. 그러니 고블린의 마나스톤 챙겨온다고 시간낭비 하지 마세요.”

아리아나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제 저녁을 먹어볼까?

가일크랩도 세 마리나 잡아왔다.

“어서 익혀줘요. 배고파 죽겠어요.”

그래도 서유림은 중간에 나무열매라도 먹었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아리아나는 더욱 허기질 것이다.

어제처럼 가일크랩을 익혀서 함께 나누어먹었다.

곧 어둠이 깔릴 것이다.

사실 어제처럼 아리아나 곁에 꼭 붙어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려니 너무 속보이는 듯하다.

밖에서 나뭇가지와 풀잎을 구해서 침대 하나를 더 만들었다. 머리맡에 모닥불도 작게 피웠다. 빛과 온기는 사람의 마음에 안정을 주니까.

그런데 아리아나가 또 심장 요동치는 소리를 한다.

“이리 붙여요. 요정망토가 하나뿐이라서 어차피 함께 붙어서 자야 해요.”

하긴, 새벽에는 너무 춥다.

서유림이 흐뭇함을 애써 감추며 자신의 침대를 아리아나의 침대 곁에 바짝 붙였다. 마치 하나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누웠다.

아쉽게도 어제처럼 아리아나와 몸을 바짝 밀착시키지는 못했다.

차라리 침대를 만들지 말걸.

그래도 옆으로 돌아누우면 코앞에 있는 아리아나를 볼 수 있다. 어차피 망토는 하나뿐이라서 그걸 함께 덮어야 하니까.

“아리아나, 부탁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망설여진다.

에라 모르겠다.

‘남자 아냐? 뭘 망설여?’

자고로 좋아한다는 표현 했다고 원수지간 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다.

“수면마법, 조금만 있다 걸어주면 안 돼요? 이렇게 아리아나 얼굴을 조금만 더 감상하고 싶어요.”

조금은 당황할 법도 한데 아리아나는 평온했다. 고개를 돌려서 서유림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살짝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럼 1분만 있다가 걸게요.”

그뿐이 아니었다. 서유림을 향해서 몸을 돌려 누웠다. 그리고는 먼저 잠을 청하듯 눈을 감았다.

마치 부담 없이 자신의 얼굴을 감상하라는 듯.

모닥불 피워두길 잘했다. 불빛이 그렇게까지 밝진 않지만, 아리아나의 얼굴이 워낙 가깝다.

사실 처음이다. 아리아나의 얼굴을 이토록 세밀하게 감상하는 것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너무 분에 넘치는 아름다움이다 보니 감히 오랫동안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갑자기 집에 가기 싫어진다.

‘이렇게 평생 아리아나와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서유림은 다음날에도 사냥을 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원래 계획은 이틀정도 후에 인간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정도면 아리아나가 인간계의 육체를 회복시킬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서유림이 자발적으로 하루를 더 남았다.

인간계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 아리아나가 그동안 혼자 지낼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춰주는 것이다.

정령신의 이름으로 한 약속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아리아나를 위해서 해주고 싶었다.

새롭게 만든 물주머니 세 개를 요정의 샘물로 가득 채워놓았고, 가일크랩이나 과일을 비롯한 먹을 것도 잔뜩 쌓아놓았다.

그러는 동안 고블린은 수십 마리를 사냥했고, 정크도 무려 세 마리나 더 사냥했다.

덕분에 마나스톤도 네 개나 모았다.

아리아나는 빠르게 회복했다. 하루가 다르게 혈색이 좋아졌다. 특히 입술이 선명하면서도 윤기를 품었다.

처음 봤을 때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떻게 갈수록 더 예뻐질 수 있지?

다시 저녁이 되었다.

“감사해요. 덕분에 마력을 많이 회복했어요. 이제 제가 약속을 지킬게요.”

서유림은 말없이 아리아나만 바라보았다.

인간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이렇게 아리아나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도 돌아가야 하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하니까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자.

“두 번째 약속도 제가 먼저 지킬게요. 정크의 마나스톤 덕분에 그 정도 마력은 지금도 사용할 수 있어요.”

두 번째 약속.

정령과의 계약을 말하는 거다.

물론 간절히 원하는 바다. 정령과 계약을 맺으면 인간계의 육체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준다지 않는가?

하지만 서두를 필요까지는 없다.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서유림의 몸보다는 아리아나의 몸이 먼저일 것이다. 아리아나가 무사해야 약속이 지켜지는 것이니까.

“그 마력으로 아리아나의 몸부터 치료해요.”

“저는 기혈이 손상된 거라서 마법으로 치료할 수 없어요. 오직 시간만이 치료할 수 있어요.”

그렇구나.

“그래도 자신을 지킬 마력은 남겨둬야죠.”

“정령과의 계약은 적은 마력으로도 가능해요. 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위험한 상황이 되면 부를게요. 정령이 저희를 연결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할 거예요.”

“정령이 연결해준다?”

왠지 듣기 좋은 말이다. 이왕이면 끈끈하게 연결해줬으면 좋겠는데.

“유림씨가 저를 생각하면 제가 그걸 느끼고, 제가 유림씨를 생각해도 마찬가지고요. 아직 힘이 약해도 그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이런! 그럼 아리아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종일 나를 느끼게 되겠군. 생각을 자제해야 하겠다.

그런데 아리아나는 내 생각을 얼마나 하게 될까?

나도 아리아나를 많이 느꼈으면 좋겠군! 이왕이면 자주, 강하게!

“어쨌건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해결해보겠다고 미련 떨지 말고 꼭 불러줘야 합니다.”

서유림이 당부하듯 이야기했다. 이제는 아리아나의 생명이 서유림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리아나가 치명적일만큼 예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최초 계약정령은 최하급만 가능해요. 능력이 많이 부족할 거예요.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그건 이해해주셔야 해요.”

“그래도 제 몸을 좋게 해주는 건 가능한 거죠?”

“그건 가능해요.”

그렇다면 뭐가 문제랴? 더 바란다면 오히려 도둑놈 심보리라.

아리아나가 정크의 마나스톤 네 개를 입에 넣고는 서유림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이리 오세요. 물의 정령과 계약을 도와드릴게요.”

저 포즈. 괜히 가슴 설렌다. 안 그러려고 해도 아리아나의 입술에 자꾸 눈이 간다.

시키는 대로 다가갔다.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또 그런 식으로 해줬으면 좋겠군.’

아리아나는 요정이 아니라 천사 같다. 서유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 바람을 들어주는 것 같다.

아리아나가 서유림에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것도 아주 길게.

달콤한 느낌이 입술을 시작으로 전신을 가득 적시는 듯하다. 정말이지 이건 최고의 축복이었다.

그러다가 아득히 정신을 잃었다.

그러자 서유림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사라졌다.

아리아나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런데 표정이 살짝 굳어있었다.

‘뭔가 이상해! 내가······ 처음이 아니었던 거야? 왜? 설마 정령신께서 벌써······?’

> 일어나세요.

어디에선가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모를 힘이 있었다. 깊이 잠들어있는 서유림을 깨우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서유림의 의식이 가물가물 돌아왔다.

청량하면서도 선선한 바람이 몸을 쓸고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어디지?’

살며시 눈을 떴다.

어두컴컴하다. 나뭇가지와 나뭇잎들도 마치 그림자처럼 어두컴컴하게 보인다. 그 너머로 새까만 하늘과, 점점이 박혀있는 별들도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운 가운데에도 풍경에서 익숙함이 느껴진다.

서유림의 입술에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선녀계곡이군. 인간계로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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