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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11화 (11/196)

# 11

아리아나의 보답 (3)

역시 몸이 가볍군. 나무창도 어제보다 조금 덜 부담스럽다.

세 번의 레벨업 덕분이리라. 정확히 어떤 스텟이 올랐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근력과 순발력, 체력 등이 조금씩 골고루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 저거 대나무 아닌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것 같다. 다가가서 통통 두르려보니 속이 빈 소리도 난다.

기대감이 솟았다.

그런데 어떻게 자르고 다듬지?

아리아나가 준 단검을 꺼냈다. 장난감처럼 작지만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이것뿐이다.

제발 잘려라.

단검으로 밑단을 베어보았다.

그런데 싹둑! 쉽게 잘린다.

나무가 무른 거야, 단검이 예리한 거야?

단검으로 다른 나무창을 잘라보았다.

싹둑!

단검이 예리한 거구나. 마치 잘 잘리는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손쉽게 잘리다니.

잘됐다. 서둘러서 대나무를 다듬었다.

아리아나의 단검 덕분에 금방 대나무창이 만들어졌다. 길이는 2m가 훨씬 넘은데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거 타고 날아다닐 수도 있겠다.

끝도 무척 날카롭다. 기존의 나무창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됐어. 이제 뭐든 덤벼.”

괜히 혼자 자신감을 폭발시켜본다.

그런데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저쪽에서 뭔가 인기척이 느껴진다. 수풀이 갈라지는 소리인데 이쪽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하다.

‘뭐, 뭐지?’

소리로 판단해볼 때 몸집이 작은 놈은 아니었다. 어제 상대했던 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른 놈이 분명했다.

갑자기 두려움이 느껴진다.

아까 그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하긴, 천성이 소심한 겁쟁이 아니던가? 30년 가까운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고블린 몇 마리 사냥했다고 갑자기 용감한 전사가 될 수는 없겠지.

괜히 객기 부릴 때가 아니다.

일단은 숨고 보자.

얼른 요정의 망토를 뒤집어쓰고 웅크렸다.

요정의 망토는 참으로 유용한 물건이다. 이걸 사용하면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볼 수만 있다. 이 상태로 자리를 이동이거나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요정의 망토를 걷어내야만 한다.

요정의 망토 안에 숨은 채 가만히 밖의 상황을 살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서유림의 인기척을 느끼고 이쪽으로 똑바로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놈의 모습이 보였다.

저게 뭐지? 곰 같기도 하고, 멧돼지 같기도 하고.

서서 다니는 멧돼지라고 해야 하나?

덩치는 그리 크지 않다. 반듯이 서도 서유림의 어깨 정도밖에 안 닿을 것 같다.

하지만 온몸이 근육질이다. 맞붙어 싸울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서유림은 가만히 웅크리기만 했다. 놈이 그냥 지나쳐가기만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이놈이 그냥 가질 않는다. 서유림이 웅크린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서유림의 냄새가 난다 그거겠지. 조금 전까지 서유림이 이 부근에서 열심히 대나무창을 만들었으니까.

지금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그냥 가라.

서유림은 꼼짝 않고 웅크린 채 상황만 지켜보았다.

그런데 쉽게 갈 놈이 아니다. 서유림이 잘라서 버린 대나무 가지 앞에 앉더니 대나무 잎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뭐야? 초식동물인가?

아니다. 잡식성이겠지. 대나무 잎이라도 먹어야 할 정도로 굶주린 거고.

걸리면 끝장이다.

그런데 가만.

저놈이 등을 돌리고 앉은 채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대나무 잎을 먹는 것에만 온통 정신이 팔린 듯하다.

잘하면 기습으로 놈의 목을 뚫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대나무창의 위력도 시험해볼 겸.

‘해볼까?’

어차피 기회는 지금뿐이다. 놈이 대충 배를 채우고 나면 기습의 기회는 더는 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놈이 저걸 다 먹고 떠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이렇게 웅크리고만 있을 수도 없고.

‘해보자.’

대나무창을 움켜쥐었다.

요정의 망토를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숨도 제대로 못 쉬겠다.

다행히 바람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불어오고 있다. 비록 약한 바람이긴 하지만, 냄새는 숨길 수 있으리라.

하지만 발걸음을 떼는 순간 놈이 인기척을 느낄 것이다. 잠시의 틈도 주지 말고 단번에 뒷목을 뚫어야 한다.

기회는 한 번!

대나무창끝을 조준하고는 땅을 박차고 달려들며 있는 힘껏 놈의 뒷목을 찔렀다.

파앗!

‘찍혔다!’

그런데 젠장. 대나무창 끝이 무딘 걸까? 아니면 저놈 가죽이 질긴 걸까? 아니면 재수 없게 뼈에 막힌 걸까?

‘왜 깊이 안 박혀?

겨우 2cm도 안 박힌 듯했다. 찔렀다는 표현보다는 찍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나 보다. 놈이 밀침을 당해서 앞으로 고꾸라지긴 했는데, 재빨리 다시 일어선다.

‘망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차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잖아.

왜 이길 수 없다고 단정 짓느냐고?

목숨이 하나뿐이니까. 죽으면 레벨업이고, 잠재력이고, 정령이고 다 무슨 소용인데?

죽을 가능성은 단 1%도 용납할 수 없다.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할 때만 싸울 것이다.

그렇다고 저놈을 따돌리고 달아날 자신도 없고.

방법은 하나뿐.

서유림이 대나무창을 바닥에 버려버린 채 요정의 망토 안으로 쏙 들어갔다.

놈이 화가 났는지 서유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서유림이 감쪽같이 사라지자 갑자기 멍한 표정을 한다. 콧김을 씩씩거리며 사방을 둘러본다.

서유림이 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며 서유림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괜히 대나무창을 들었다가 화가 나서 힘껏 버리기도 한다.

큰일이다. 벌써 10분이 넘게 지났는데 저놈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예 이곳에서 밤을 보내기라도 할 모양이다.

다시 10분가량이 지났다.

이제야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진 모양이다. 다시 자리에 앉아서 대나무 잎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뒤를 돌아본 상태다.

어쩌지? 이대로 계속 숨어있어야 하나? 그러다 저놈이 떠나지 않으면 어쩌지?

갈등 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러다가 문득 단검이 생각났다. 비록 날은 짧지만 그 예기만큼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저놈의 가죽이 얼마나 질긴지는 모르겠지만, 단검의 날만큼은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저 자세.

완벽한 빈틈이 아닌가?

TV에서 UFC 경기를 여러 차례 보았다.

사자를 맨손으로 죽일 수 있다는 기술.

그 기술과 단검을 조화롭게 사용하면 사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해보자!’

아니, 반드시 해야만 한다. 언제까지고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물론 두렵고 망설여진다. 미칠 정도로.

놈을 바짝 끌어안고 싸울 생각을 하니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친다.

하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놈이 완력은 어마어마했지만 몸은 조금 굼뜬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등 뒤에 제대로 달라붙기만 하면 되는 거다. 더 늦으면 기회도 없어. 제발 용기를 내자, 유림아!’

서유림이 스스로 용기를 북돋으며 요정의 단검을 손에 쥐었다. 다시 망토를 걷어냈다.

기척을 숨기고 발걸음을 옮길 자신은 없다. 차라리 놈이 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재빨리 달라붙는 편이 낫겠다.

서유림이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기척을 느낀 놈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서유림은 이미 지척까지 다가왔다. 재빨리 등에 달라붙고 TV에서 봤던 것처럼 팔로 놈의 목을, 다리로 놈의 몸을 휘감았다.

발목을 정강이에 걸쇠 걸 듯 조였다. 그러자 놈이 발버둥치는 데도 버틸 힘이 생긴다.

“윽!”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놈이 팔을 휘저으면서 손톱이 어깨를 할퀸 모양이다.

하지만 통증은 크지 않았다. 잔뜩 흥분한 상태라서 통증을 제대로 못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꾸물거릴 틈이 없다. 시간은 이놈의 편이다.

서유림의 한 손으로 놈의 목을 단단히 잡고, 요정의 단검으로 놈의 가슴을 마구 찔렀다.

날이 짧긴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찌르니 한 방 한 방이 치명타였다. 놈의 버둥거리는 힘이 약해지는 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팔 아래로 살짝 드러난 목을 찔렀다. 짧은 날로 치명상일 입히기에는 가슴보다는 목이 더 적당할 것 같다.

꾸륵. 꾸륵.

놈이 꽉 막힌 것 같은 신음을 토해낸다. 그럴 때마다 입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서유림은 악착같이 매달렸다. 가슴이건 목이건 정신없이 찔러댔다. 두려움과 흥분 때문에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털썩!

놈이 드디어 쓰러졌다.

뭐든 확실한 게 좋다. 서유림이 놈의 목젖 부위를 깔끔하게 잘라내듯 단검을 그었다.

순간 눈앞에서 섬광이 폭발했다.

레벨이 올랐다는 뜻이다. 그 말은 놈이 완전히 절명했다는 뜻도 되겠지.

그제야 서유림이 땅바닥에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하악. 하악.”

숨을 거칠게 토해냈다.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레벨이 오르면서 몸이 리셋되었기 때문에 피곤함은 전혀 없었다.

피곤함뿐만이 아니다. 상처마저 회복되었다. 놈과 사투를 벌이면서 어깨를 여러 번 할퀴었는데, 그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길게 찢긴 옷과 핏자국만이 그곳에 상처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숨을 헐떡이는 이유는 단지 흥분 때문이었다. 목숨을 건 사투가 서유림의 심장을 사정없이 요동치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호흡이 차츰 가라앉았다. 흥분도 누그러지는 듯하다.

그 대신 찾아오는 것이 있었다.

성취감!

‘내가 저놈을 잡았어!’

짜릿했다.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그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으로 뿌리고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도 남자라고. 나를 쉽게 보지 말라고.

물론 허황된 꿈이다. 백번을 말한들 누가 믿겠는가? 아마 가족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리아나는 믿어주겠지.

증거를 가져다주자.

게다가 아까 대나무창으로 찔러보니 놈의 가죽이 무척이나 질겼다. 털도 짧고 보드랍다.

가죽을 벗길 수만 있다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침대 바닥보로도 사용할 수 있겠지.

요정의 단검을 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날이 워낙 예리하니 그 질긴 가죽도 쓱쓱 잘 잘린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잘 벗겨지나? TV에서 보면 동물 가죽 벗기는 게 무척 힘들어 보이던데.

“어, 근데 이건 뭐지?”

가죽을 벗기다가 놈의 뒷목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콩알보다 작은 크기인데 마치 빨간색 구슬 같다.

요정의 단검으로 꺼내니 톡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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