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9화 (9/196)

# 9

아리아나의 보답 (1)

“후우, 유림씨였군요. 고생 많으셨어요.”

아리아나의 목소리다. 서유림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서유림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긴장감이 일순간에 녹아내렸다.

그런데 말뜻이 조금 이상하다.

‘유림씨였군요? 내가 동굴 입구에 있었다는 걸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야.’

“저를 느꼈어요?”

“정령을 풀어서 주변의 광물을 좀 찾아보게 했어요. 그러다가 누군가가 근처로 다가오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얼른 감췄고요.”

“그럼 아까 제가 보았던 게 정령이었던 모양이군요.”

“아마 그럴 거예요. 제가 힘이 약해서 정령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랬구나. 나도 정령과 계약을 맺으면 저런 게 가능한 걸까?

기대되는군.

“그런데 광물을 찾아요?”

“언제까지 그런 나무창으로 마물을 사냥할 수는 없잖아요. 능력은 부족하지만 무기 하나 만들어보려고요. 정령들을 이용하면 검이나 창 같은 걸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서유림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정령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게 크게 기대하진 마세요. 실패할지도 몰라요. 성공한다고 해도 너무 조악해서 실망하실 거예요.”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맨손으로 무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경천동지할 일이다.

게다가 무엇이 되었건 나무창보다는 낫겠지.

괜히 기대된다.

그건 그렇고.

“여기 요정의 샘물입니다.”

서유림이 물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아리아나가 주둥이를 열어서 향기를 확인했다. 향기만으로 갓 솟은 샘물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모양이다.

확인을 마치고는 예쁜 입술을 입맞춤하듯 샘물을 마셨다.

“하아, 살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해요.”

아리아나가 시원해하는 표정을 보니 서유림도 덩달아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열매 몇 개를 따왔어요. 어떤 게 먹을 수 있는 건지 몰라서 보이는 대로 조금 씩 따왔는데.”

옷으로 만든 자루에서 열매를 꺼냈다.

아리아나가 환하게 웃었다.

“전부 다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에요. 어머! 이건 가일크랩이네요.”

코코넛크랩이 아니고 가일크랩이구나.

“먹을 수 있는 건가요?”

“그럼요. 식감도 좋고, 맛도 달아요.”

다행이군!

그런데 뭐야? 마치 맛을 아주 잘 아는 듯이 이야기하네. 그럼 아리아나도 먹어봤다는 이야기인가?

“요정도 이런 걸 먹어요?”

“물론이죠. 먹을 게 없으면 이따금 고블린 고기를 먹기도 해요.”

와, 깬다!

문득 고블린의 다리 한쪽을 잡고 뜯어먹는 아리아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너무 안 어울리는 걸.

어쨌건 다행이다. 가일크랩이 무척 커서 둘이 먹어도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다.

게다가 과일도 모두 먹을 수 있는 거라지 않은가? 내일 아침까지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익히지?

라이터도 없고, 성냥도 없고, 파이어스틸도 없고. 불을 피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밖에서 불 좀 피워볼게요. 날것으로 먹을 수는 없으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익혀드릴게요.”

말뿐이 아니었다. 아리아나가 가일크랩을 손으로 잡자 손에서 파란 불길이 일어났다. 제법 떨어져있는 서유림에게까지 열기가 느껴졌다.

“이건 간단한 마법이라서 마력 소모가 많지 않아요.”

역시 요정은 다르구나. 편하네!

갑자기 부러워졌다.

‘나도 저런 마법 익히고 싶다!’

가일크랩이 순식간에 빨갛게 익었다. 짭짜름하면서도 달콤한 향도 느껴진다.

군침 도네!

커다란 집게발을 잡고 바위에 톡톡 때려서 껍질을 깼다.

레이디 퍼스트!

아리아나에게 먼저 집게발 한쪽을 주었다.

“감사해요.”

아휴, 복스럽게도 먹네! 먹는 모습만 봐서는 요정 같지가 않다.

아리아나가 활짝 웃는 표정으로 가일크랩 맛을 표현해주었다.

설마 고블린 고기를 먹으면서도 저런 표정을 하진 않겠지?

‘그럼 나도 먹어볼까?’

남은 집게발을 까서 먹어보았다.

‘와우! 이 맛이야말로 진리다!’

식감이 어쩜 이렇게 탱탱하면서도 야들야들할 수가 있지? 게다가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았는데,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절묘하다.

입에 넣는 순간 침샘이 폭발하는 느낌이다.

과일도 달고 상큼하다. 가일크랩과 환상의 궁합이다. 내일 아침에 먹을 걸 남겨두는 게 힘들 정도로 자꾸만 입맛이 당긴다.

“그런데 아리아나. 물어볼 게 있어요.”

“말씀하세요.”

“고블린을 사냥하다가 갑자기 눈앞에서 섬광이······”

서유림이 아까의 느낌을 상세히 설명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리아나가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딱 부러지게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레벨이 오른 거니까.”

서유림의 눈이 커졌다.

그럴 거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에이 설마.’ 했었는데 정말로 그렇다니.

“레벨이 오르면 어떤 변화가 있나요?”

“스텟이 10 상승해요. 아, 아직 스텟 보는 법도 모르시겠네요. 초점을 움직이면 망막에 새겨진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초점을 움직이라고?

서유림이 눈의 초점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아, 저거구나!’

글자가 보인다. 조금 더 집중하니 마치 새로운 창이 열리듯 스텟과 관련한 정보가 보였다.

[레벨 4]

근력 : 164

순발력 : 184

체력 : 140

감각 : 244

이게 전부야? 간단하네.

그런데 원래 수치라는 게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기준점, 즉 비교대상이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이를테면 사람들의 평균적인 수치가 얼마이냐에 따라서 스텟의 수치에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높은지, 낮은지.

강한지, 약한지.

낮은 수치를 묻기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고, 가장 높은 수치를 예를 들어서 물어보았다.

“감각이 244면 높은 건가요?”

“이곳 정령계에서는 매우 낮은 수치에요. 하지만 인간계를 기준으로 하면 평균보다 조금 높은 편이에요. 인간의 스텟 평균치는 200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리아나는 그것 외에도 많은 것을 설명해주었다.

어차피 밤은 길고 시간은 많으니까.

레벨이 1 오를 때마다 스텟이 10 상승한다. 하지만 각 스텟에 저절로 분배되기 때문에 게임에서처럼 임의의 스텟 하나를 골라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스텟은 정령계에서만 적용된다. 즉, 인간계의 육체와는 별개라는 뜻.

하지만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니다. 정령계의 스텟이 높을수록 인간계의 육체도 그만큼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곳 정령계는 인간들에게는 잠재력의 세상이라고 봐도 될 거예요. 능력치 역시 잠재력의 수치고요.”

“이곳에서 레벨을 잔뜩 올리면, 인간계의 육체도 그만큼의 잠재력을 갖는다는 건가요?”

“맞아요. 인간계에서의 실제 능력은 잠재력의 절반 정도라고 보시면 돼요. 물론 노력 여하에 따라서 개인별로 차이는 크겠지만요.”

“그럼 잠재력을 1,000까지 올리면 인간계에서 능력을 500까지 올리는 것도 쉽겠군요.”

“어느 정도는 그래요. 잠재력이 높을수록 인간계의 능력이 훨씬 빠르게 오르긴 하죠. 하지만 반대일 수도 있어요. 인간계의 능력이 너무 낮으면 오히려 잠재력이 그에 따라 하락할 수도 있죠.”

알 것 같다. 한쪽이 일방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뜻이겠지.

한쪽이 높으면 다른 쪽도 함께 높아질 여지가 크지만, 반대로 한쪽이 낮으면 다른 쪽이 함께 낮아질 수도 있다는 뜻.

상승효과가 날 것이냐 하락효과가 날 것이냐를 결정하는 건 당연히 노력 여하일 것이다.

과연 얼마만한 힘까지 가능할까?

“제가 노력만 하면 잠재력을 무한으로 키울 수도 있나요?”

“네. 잠재력에는 한계가 없어요.”

오! 한계가 없대. 그러면 내가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하든 이야기잖아. 그럼 인간계의 육체도 폭풍성장 할 수 있을 테고.

폭풍성장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몸이 허약해서 무시당하는 꼴만 면해도 소원이 없겠다.

어쨌건 레벨에 대한 욕심이 팍팍 샘솟는다.

원래 아무것도 모르면 궁금한 것도 없는 법이다. 반대로 뭔가 조금 알기 시작하면 궁금한 게 마구 생기게 된다.

서유림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아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묻고 싶은 게 자꾸만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궁금한 게 있었다.

“혹시 나처럼 요정을 만나거나 정령과 계약을 맺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하지만 인간과 연결될 수 있는 차원이 정령계만 있는 건 아니에요. 마계나 영계에 연결된 사람은 있을 수 있겠죠. 그건 제가 알 수 없는 일이에요.”

하긴, 인간계가 있고 정령계가 있다면 그 외의 다른 세계도 많을 것이다. 아리아나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질문이었다.

그럼 다음 질문.

사실 이것도 무척 궁금했다. 궁금하다기보다는 탐난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나도 아리아나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정령신께서 축복을 내려주시면 가능하겠죠.”

오, 가능하대. 이것도 욕심나네.

“어떻게 해야 축복을 받을 수 있죠?”

“정령신의 퀘스트를 받아서 완료해야 해요. 하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정령신이 요정 외의 다른 종족에게 그런 퀘스트를 주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

자고로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라고 했다.

서유림이 요정 아리아나를 만나서 정령계로 온 것도 마찬가지다. 이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던가?

정령신의 퀘스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흔치 않다는 것은 전혀 없지는 않다는 뜻도 된다.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만약 축복을 받아서 마법을 익히게 되면 인간계에서도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저도 인간계에서 마법을 사용했잖아요.”

와! 눈이 번쩍 떠진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계에는 마나가 존재하지 않아요. 마법을 사용하려면 체력을 소모해야 할 거예요. 그러면 마법을 마음껏 사용할 수 없어요.”

“아리아나는 제 체력을 흡수해서 사용했잖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체력을 흡수해서 사용할 수 있지 않나요?”

“체력흡수마법이 있긴 하죠. 하지만 정령신이 요정 외의 종족에게 그런 마법까지 허락할지는 모르겠어요.”

한마디로 정령신 마음대로다 그 말 아닌가?

가만, 그러고 보니 아리아나가 정령신의 후보라지 않았는가?

이거 연줄 제대로 잡은 느낌이네.

“만약 아리아나가 정령신이 되면 제게 그런 능력을 줄 수 있나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정령신이 되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잊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만약 기억이 남는다면 고려해볼게요.”

요것 봐라. 은근슬쩍 대답을 피해가네.

역시 요물이야.

하긴, 너무 무리한 요구이긴 하다. 더는 부담 주지 말자.

그래도 확실한 목표 하나는 만들어진 셈이 아닌가?

이곳에서 얼마나 머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레벨을 최대한 높일 것이다. 그러면 그만큼 잠재력도 커지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슬쩍 졸음이 찾아온다.

하암! 그러고 보니 오늘 너무 많이 움직였다.

그런데 가만.

‘이거 난감하네. 난 어디에서 자지?’

밤이 되니 무척 쌀쌀하다. 쌀쌀한 정도가 아니라 춥다. 이대로 잠이 들면 100% 감기 걸린다.

감기뿐이랴? 동굴 바닥은 온통 차갑고 딱딱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돌아가있을 것 같다.

게다가 심하게 울퉁불퉁하다. 제아무리 평평한 자리를 골라 눕는다고 해도 등이 아플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침대를 만들고 나뭇잎이라도 대충 깔아둘걸.

그런데 아리아나가 갑자기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이리 올라와서 함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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