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미친 잠재력-6화 (6/196)

# 6

사냥은 남자의 본능 (2)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카락도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다.

그냥 들어갔다가는 큰일 날 뻔했네.

“어쩌죠? 다른 동굴을 찾아봐야 할까요?”

“아뇨. 저 마물도 제 향기를 맡았을 거예요. 그냥 두면 마족에게 제 위치가 노출될 수 있어요. 제가 혼자 움직일 수 있으면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거지? 나보고 어쩌라고?

“동굴고블린 같아요. 약한 놈이에요. 그래도 혹시 다치시게 되면 그건 제가 마법으로 치료해드릴 수는 있는데.”

이 요정 음흉한 데가 있네. 말을 빙빙 돌리고 말이야. 그냥 ‘유림씨가 사냥해주세요.’ 하면 될 것을.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다. 그냥 두면 마족이 눈치 챌 수 있다지 않는가? 그러면 서유림도 함께 위험해질 것이다.

아리아나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심만 하면 서유림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아리아나에게 치료능력까지 있다지 않는가?

이왕 하는 거라면 ‘원래 내가 사냥하려고 했어.’ 하는 식으로 먼저 나서는 게 낫겠지? 남자답게 말이야.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이 빠진다.

“혹시 무기 같은 건 없어요?”

“이거라도 드릴까요?”

아리아나가 허리춤에서 작은 칼을 꺼내준다.

장난해? 그건 거의 커트칼 수준이잖아. 애들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저것이 나을 것 같네요.”

서유림이 바닥에 떨어진 몽둥이처럼 생긴 나뭇가지를 잡았다.

두께도 적당하고, 길이도 적당하고, 바짝 말라서 크기에 비해 그리 무겁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부러진 면이 송곳처럼 날카롭다. 몽둥이로도 쓸 수 있고, 창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빛의 축복을 걸어드릴게요.”

그게 뭔데?

아리아나가 자신의 손으로 서유림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잠시 후 서유림의 얼굴을 향해 가볍게 입김을 불었다.

이게 끝이야? 뭐가 달라진 거지?

아, 달라진 게 있다. 시커멓기만 했던 동굴 안이 제법 잘 들여다보인다. 좁은 입구와 달리 동굴이 꽤 깊게 만들어진 듯하다.

“빛의 축복은 지속시간이 10분뿐이에요.”

지금 재촉하는 것 맞지?

어차피 더 준비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방패를 만들 것도 아니고.

서유림이 엉금엉금 기듯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아, 무릎 아프네!

그래도 바짝 긴장한 탓인지 통증이 크지 않다. 언제든지 찌를 수 있도록 나무창을 앞에 둔 채 계속 전진했다.

어두컴컴하긴 하지만 빛의 축복 덕분에 사물을 확인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5m쯤 기어가자 동굴이 갑자기 확 넓어진다. 허리를 바짝 세워 일어서도 머리가 천정에 닿지 않을 정도다.

키애액!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소리에 서유림이 움찔했다. 나무창을 잔뜩 움켜쥐며 본능적으로 전투준비를 했다.

‘어디야? 어디에 있는 거야? 왜 안 보여?’

아, 저기 있다.

어두컴컴한데다가 동굴고블린이 보호색을 띄고 있어서 찾기 힘들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네.

무려 세 마리다. 언제든 뛰어오를 것처럼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서유림을 노려보고 있다.

생각보다 작다. 몸을 바짝 세워도 1m가 안 넘을 것 같다.

게다가 맨손이다. 특별한 도구 같은 건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의 일부가 무기라는 뜻일 테니까.

어차피 사냥해야 할 놈들이다. 그렇다면 저놈들에게 선공을 양보할 이유는 없다. 싸움은 무조건 선빵이 최고라지 않던가?

서유림이 천천히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동굴고블린의 몸이 더욱 낮아진다. 누가 봐도 뛰어오르기 직전의 모습이다.

‘그래. 차라리 놈이 뛰어오르는 타이밍을 노리자.’

나무를 몽둥이 삼아 휘두르기엔 몸이 너무 지친 상태다.

완력도 원래 약하고.

차라리 저놈이 힘을 쓰도록 해서 그 힘을 이용하는 편이 낫겠다.

게다가 상대가 셋이다. 섣불리 선공하면 다른 두 놈에게 빈틈을 보일 수도 있다.

서유림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러자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동굴고블린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올랐다. 마치 개구리 뛰는 모습 같았다.

서유림도 이때만을 기다렸다. 동굴고블린의 목 부근을 노리며 잔뜩 뒤로 재웠던 나무창을 있는 힘껏 뻗었다.

푸욱-

나무창이 동굴고블린의 목을 정확히 찔렀다.

그와 동시에 동굴고블린의 무게가 묵직한 충격으로 전해왔다. 서유림이 뒷발을 단단히 디디고 있었는데도 그 충격 때문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했다.

끼애애-

동굴고블린이 바닥에 쓰러졌다. 사후경직을 일으키는지 꼼짝도 못한 채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으으, 기분 더럽네!’

태어나서 동물을 죽여본 적은 처음이다. 바퀴벌레도 무서워서 못 잡는 서유림인데 이렇게나 큰 동물을 죽이다니.

특히 나무창이 동굴고블린의 목을 파고들 때의 느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도 끔찍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짜릿하기도 했다.

일탈의 기분이랄까?

세상에는 금지된 일들이 많다.

법으로부터 금지된 일, 부모로부터 금지된 일, 선생님으로부터 금지된 일.

노상방뇨 하면 안 돼.

속도위반하면 안 돼.

욕하면 안 돼.

수업시간에 만화책 보면 안 돼.

그런 금지된 것들은 한편으로는 반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없이 넘어갈 수만 있다면 한 번쯤 어깃장을 놓아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이따금 보란 듯이 노상방뇨도 하고, 기분 나쁜 일도 없는데 괜히 ‘씨발좆도’를 입에 물어보기도 한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더욱 그런다.

마치 그런 일탈을 통해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듯이.

우리끼린데 뭐 어때? 우리 사이가 이 정도는 되잖아?

첫 사냥의 느낌도 그랬다.

아니, 그런 일탈의 느낌을 백만 배 정도 증폭한 것 같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나는 해도 괜찮아.’라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본능인 듯했다. 남자의 사냥본능!

어쨌건 첫 사냥의 경험은 큰 재산이었다. 갑자기 용기가 솟았다. 가볍게 느껴졌던 두려움은 가시고 대신 흥분이 느껴졌다.

‘너도 와.’

서유림이 다른 한 놈을 자극하듯 다가갔다.

다행히도 이놈들은 조직적이지 못했다. 만약 두세 마리가 떼로 덤볐다면 무척 위험했을 것이다.

한 마리씩 각개격파라면 다칠 일도 없을 것 같다.

‘얼른 오라니까.’

서유림이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두 번째 동굴고블린도 개구리처럼 뛰어올랐다.

두 번째 사냥은 전율이 조금 덜했다. 한 번도 경험이라도 어느새 사냥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이런 식이라면 세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라도 거뜬히 사냥할 수 있을 것 같다.

‘너 하나 남았다. 빨리 끝내자.’

마지막 한 마리를 향해 다가갔다.

변수는 없었다. 마치 컴퓨터게임의 몬스터처럼 행동방식이 똑같았다. 납작 웅크렸다가 뛰어오르는 공격뿐이었다.

서유림의 나무창이 마지막 놈의 목마저 꿰뚫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서 섬광이 폭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짜릿한 흥분도 느껴졌다.

단순히 마물을 사냥한 것에 대한 기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건 분명 뭔가 느낌이 달랐다.

왠지 힘이 넘치는 것도 같고.

‘그러네! 힘이 넘쳐! 피로가 싹 사라졌어!’

아리아나를 등에 업고 1km를 넘게 걸었다. 그 때문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런 상태에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동굴고블린을 사냥했다.

당연히 녹초가 되어있어야 한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무를 몽둥이 삼아 휘두를 힘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온몸에 힘이 넘쳤다. 개운하기도 했다. 마치 대여섯 시간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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