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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친 잠재력-5화 (5/196)

# 5

사냥은 남자의 본능 (1)

서유림이 눈을 떴다. 깜빡 잠들었다가 깬 느낌이다.

그런데 주변 환경은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나뭇잎 사이를 비집은 햇볕이 유난이 화사하다.

주변은 온통 숲이다. 그런데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의 숲이다. 단풍이 든 것도 아닌데 온통 형형색색이다.

멀지 않은 곳에 거칠고 웅장하게 솟은 바위산도 보인다.

‘여기가 어디지?’

적어도 강원도 영월군의 선녀계곡은 아니었다. 아니, 인간세상이 아닌 듯했다.

문득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와 함께 정령계로 가요.]

“설마 내가 정령계로 온 거야?”

“맞아요.”

깜짝이야.

여자가 아직까지 옆에 있는 줄은 몰랐다.

얼른 고개를 돌렸다.

선녀계곡의 어둠 속에서 보았던 그 여자다. 두려울 정도로 낯선 환경인데도 미모만큼은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런데 여전히 나무에 기댄 채 힘없이 주저앉은 상태였다. 몸이 아직도 안 좋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는데.’

일단 몸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먼저일 듯싶다.

서유림이 몸을 일으켜보았다.

다행이다.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움직임이 자유롭다.

다만 약간 허기진 느낌은 있다.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서유림의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여자 걱정이 아니라 서유림 본인에 대한 걱정이었다.

“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죠?”

“물론이에요. 원하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으니까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체력을 회복한 후에 돌아가셔야 해요. 안 그러면 육체가 위험해질 수 있어요. 절 믿어주세요.”

사실 다른 방법이 없다. 조금 괘씸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믿지 않으면 어쩐단 말인가?

지금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이름도 모르는 이 여자뿐인데.

어찌 되었건 일단 상황파악부터 하고.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아가씨는 누구인지. 왜 인간계로 왔고, 저는 또 어떻게······.”

“제 이름은 아리아나. 정령계의 요정입니다. 운이 좋아서 태어날 때부터 정령신의 후보가 되었어요.”

정령신의 후보는 얄궂은 운명을 갖는다. 잠재력은 큰데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약해서 마족들이 가장 탐내는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아리아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20년간 잘 숨어 지냈는데, 결국 마족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마족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요정들은 아리아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그 희생 덕분에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쫓고 쫓기는 추격전.

일주일이 넘게 쫓기던 아리아나는 마력이 바닥났고, 마족과 마물의 공격을 받아서 몸 안팎으로 큰 부상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아리아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차원이동마법을 통한 도주.

어느 차원으로 이동될지 알 수도 없고, 마력이 부족하면 정령계로 돌아올 수도 없는 위험한 방법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만히 듣고 보니 대충의 상황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인간계로 오게 된 거였군요.”

“은인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전 마족에게 힘을 빼앗긴 채 소멸되고 말았을 거예요. 정말 감사해요.”

아리아나가 서유림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와중에도 하반신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아직도 몸이 많이 불편하세요?”

“몸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그보다 이곳은······.”

아리아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빛에 걱정이 묻어있었다.

“아무래도 마족의 영역으로 떨어진 것 같아요. 마기가 잔뜩 느껴져요.”

그러면 큰일 아닌가? 지금 상황에서 자칫 마족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아리아나뿐만 아니라 서유림도 함께 위험해질 것이다.

“어쩌죠?”

“어디든 숨을 곳이 필요해요. 여기 계속 있으면 마물들이 제게서 풍기는 정령신의 향기를 맡고 몰려들 수 있어요.”

“그럼 어디로······?”

“저기 바위산으로 가요. 동굴만 찾으면 정령신의 향기를 감출 수 있을 거예요.”

좋은 생각이다. 거리도 무척 가까웠다.

“그런데 제가······.”

아리아나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혼자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그거겠지.

“제가 부축해볼게요.”

서유림이 힘을 써보았다.

아리아나가 생각보다 가벼웠다. 하지만 아리아나의 양쪽 다리가 모두 불편해서 부축을 해줘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안 되겠네요. 차라리 업혀보세요.”

“괜찮겠어요?”

사실 자신은 없었다. 워낙 저주받은 체력이라서.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아리아나의 몸이 나뭇잎처럼 가벼웠다.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죠.”

“그럼 실례할게요.”

아리아나가 비로소 서유림에게 업혔다.

‘생각보다 훨씬 가볍군.’

웬만한 여자보다도 힘이 약한 서유림이었지만, 아리아나의 몸무게는 웬만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밝히지 않았네.

“저는 서유림입니다.”

“그러시군요, 서유림씨. 여러모로 죄송하게 되었어요.”

“그냥 유림이라고 불러주세요.”

크게 죄송할 건 없다.

물론 아리아나가 장담한 것처럼 다시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몸도 정상으로 회복되어야 하겠지.

“이쪽으로 가주세요.”

길은 이쪽이 더 좋은데.

하지만 이유가 있으니 방향을 바꾸는 거겠지.

그런데 얼마나 걸었다고 벌써 힘드냐?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아리아나와 몸이 겹친 등에서는 땀이 축축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아리아나 같은 미인을 업어볼 수 있겠는가?

이런!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예쁜 여자타령이나 하고 있다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 남자인 건가?

“다시 이쪽으로요.”

길이 더 좋은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방향을 바꾸는 걸까?

그나저나 얼마나 더 걸을 수 있을까?

너무 힘들다. 당장에라도 아리아나를 내려놓고 쉬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버텨보고 싶다. 얼마나 더 참고 걸을 수 있는지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다.

이를 악물고 걸었다.

“다시 이쪽으로······.”

“방향을 계속 바꾸는 이유가 있나요?”

“마물의 기운이 느껴져서요.”

마물?

서유림이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왠지 모르게 섬뜩한 단어였다. 마주치기만 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리아나가 서유림의 마음을 읽은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이곳의 마물은 모두 약한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마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피해가는 것뿐이에요.”

그렇구나.

구경해보고 싶다. 어떻게 생긴 놈들인지.

“저도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조심해서 싸우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뭐야? 모두 약한 마물이라고 해놓고.

그만큼 서유림을 나약하게 본다는 말 아닌가?

괜히 자존심 상하네.

하지만 사실 두렵긴 하다. 마물뿐만이 아니라 싸움 자체가 두렵다. 어려서부터 허약체질로만 살아와서 싸움이라는 건 무조건 피해왔으니까.

괜히 센 척하다가 망신당하느니 차라리 이렇게 피해 다니는 게 상책이긴 하지.

그나저나 더는 버티기 힘들다. 이제 쉬어가자고 해야 할까?

그때 아리아나가 구원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기 동굴이 있는 것 같아요.”

“어디요?”

“저쪽으로 조금 더 가 봐요.”

아리아나의 손짓을 따라서 걸었다.

보인다. 이렇게 좁은 동굴을, 게다가 나무로 가려지기까지 한 동굴을 어떻게 알아봤을까?

입구가 너무 좁다. 업은 상태로 들어가는 커녕 서유림 혼자도 그냥은 못 들어간다. 몸을 바짝 낮추고 기어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은 좀 넓을까? 아리아나가 당분간 머물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되어야 할 텐데.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제가 안을 살펴볼게요.”

서유림이 시커먼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몸을 낮추었다.

그런데 아리아나가 갑자기 서유림의 손목을 잡아챘다.

“잠깐만요.”

“왜요?”

“동굴에서 마물의 기운이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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