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코어의 강제 각성.
이는 카일이 과거에 사용한 각성 능력으로, 이제는 아프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다. 능력을 완숙하게 사용하면서 코어를 다루는 경지도 훨씬 올라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걸 바꿔 생각하면…….
‘훨씬 더 아프게도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 그 강건한 검은 바람이나 고고한 발레리아도, 카일에 대한 충성심이 광기에 달한 아리시아도 카일의 강제 각성에 의한 고통은 몸을 떨며 기피했다. 그걸 수십 배 더 강력하게 사용한 것이었다.
상우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까무러쳐 버렸다. 카일은 인간의 육체로 돌아온 그의 코어를 동결시켜 버렸다.
“이걸로 제압 완료군. 흠…….”
카일은 기절한 상우를 챙기면서 생각했다.
상대방의 초능력 코어를 멋대로 다룰 수 있는 이 능력이 있는 한…….
“대초능력자의 전투에서 난 무적이군.”
이건 좋은 징조였다. 세계 정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카일이 상우를 제압한 그 시점, 지상의 다른 전투도 마무리되고 있었다.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겠다.”
“무기를 버리고 엎드려라. 어서!”
검은 바람을 중심으로 한 지상 병력이 이미 세계 정부의 군대를 완벽하게 제압했고, 발레리아가 이끌고 있는 은장미 기사단은 세계 정부의 공중 병기인 헬기와 전투기를 모두 처리한 상태였다.
그리고 구스타프 공작은 뉴 에덴의 중심에 세계 정부가 설치해둔 본거지를 공격 중이었다.
“이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드디어 승리가 눈앞에 있었다. 이제 세계 정부가 만들어 낸 게이트를 점령하고 그곳을 기점으로 세계 정부에 반격을 가하면 이 세계는 안전해질 것이었다.
* * *
“하……. 하하하하……. 다 끝났어, 다…….”
물밀듯이 몰려오는 구스타프 공작과 근위 기사단.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것은 익숙한 얼굴인 루마니스 제국의 황제였다.
빌딩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혜정은 허탈함에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난 공적과 자신의 유용함을 인정받은 그녀는 지난 2년 동안 자신이 바라던 모든 것을 누렸다. 이세계 점령 정책의 최고 책임자로서 진급했고, 일개 능력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이 세계를 완전히 점령한 후에는 세계 정부의 의원직에 임명될 것을 약속받기까지 했다.
그랬던 그녀의 야망이 이제 다 무너졌다. 설마 죽었다고 생각했던 카일과 황제 일행이 다시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그녀였다. 이제 끝났다. 설령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세계 정부는 그녀를 처분할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혜정은 비틀거리면서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나 혼자 망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엄중하게 봉인되어 있는 케이스를 열었다. 그리고 그 케이스 안에 있는 기계 장치의 붉은 버튼을 주저 없이 눌러 버렸다.
“다 죽어 버려.”
그녀가 버튼을 누른 순간 뉴 에덴의 군수 기지 쪽에서 무수한 미사일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건?”
“설마?”
카일과 드리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미사일을 보며 전율했다. 어떻게 저걸 잊겠는가? 이전에 단 한 발의 핵폭탄만으로도 수백 년의 고난을 겪은 그들이 말이다.
“막아라!”
“폐하, 이미 늦었습니다.”
“제길, 몇 발이라도 막으란 말이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핵폭탄 미사일은 못해도 수백 발은 넘어 보였다.
세계 정부에서는 만약 카일 화이트와의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면 중앙 대륙 전체에 핵미사일을 뿌려 버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중앙 대륙은 초토화되겠지만 남방 대륙도 있고, 또 나중에 찾아보면 다른 멀쩡한 대륙이 또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잃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모든 것을 초토화시켜 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제길.”
그 순간 카일은 고민했다. 시간을 돌려서 처음부터 이 전투를 다시 해야 할까? 힘이 많이 소비되기는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유일한 방법으로 보였다. 그때…….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카일의 귀에 상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놈은……. 정신을 차렸나?”
“그래. 지랄맞게 아프군. 그리고 저 미사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상우의 말에 카일이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고 하는 찰나…….
퍼어엉! 펑펑펑!
하늘에서 연쇄적으로 미사일이 폭발했다. 동시에 하늘을 가득 메우는 것은…….
“불꽃?”
그곳에서는 형형색색의 폭죽만이 터지고 있었다.
상우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가 손을 썼다. 핵탄두를 모두 빼돌리고 개조했지.”
“우리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냐?”
카일의 물음에 답한 것은 상우가 아니었다.
“대공 전하, 신 아폴론 지금 돌아왔습니다.”
거기에는 과거 AP―55248이라고 불렸던 아폴론이 있었다.
“아폴론? 그렇다면 혹시 상우 너는…….”
“진작에 자유를 찾았지. 그리고 반정부군의 레지스탕스로서 활동하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상황을 모두 설명하면 이렇다.
카일은 과거 아폴론을 풀어 주면서 지구로 잠입시켰다. 그러면서 아폴론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명령의 내용은 지구에서 세계 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강력한 반정부군을 형성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카일은 세계 정부와의 전쟁 구도가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었기에 사용 가능한 수단은 다 사용하려고 했다. 그 일환으로 아폴론을 지구에 잠입시킨 것이었다.
그러면서 카일은 아폴론이 반정부군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 가지 도구를 주었다. 바로 대량의 근거리 블링크 스크롤이었다.
세계 정부에서는 능력자들의 머릿속에 칩을 박아서 그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카일은 아폴론의 칩을 그 스크롤로 제거했는데, 아폴론이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스크롤을 제공한 것이었다.
지구로 돌아간 아폴론은 일단 자신의 복수부터 완수했고, 그 후 몸을 숨긴 상태로 암약하며 유능한 세계 정부의 능력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포섭했다.
아폴론은 그들의 두뇌 속에 박혀 있는 칩을 제거한 후 그들을 설득해서 반정부군으로 활동하게 했다. 칩을 제거한 이들은 항상 그 칩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여전히 세계 정부에 협조적인 것처럼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아군을 늘려가던 아폴론은 마침내 세계 정부 최강의 능력자였던 무한의 상우까지 포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 앞서 동료들을 동원해서 핵무기를 모두 무력화시켜 두었다.
“잠깐, 그럼 나하고는 왜 싸운 거야?”
카일의 말에 상우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우리의 지도자가 될 인물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지도자?”
벙찐 표정으로 물어보는 카일에게 상우가 말했다.
“그럼 우리를 구하고 책임은 지지 않을 생각이었나? 설마 우리같이 위험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폭탄들에게 오늘부터 자유니 멋대로 살아라, 라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
그럴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상우는 한숨을 내쉬며 그런 카일에게 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자유를 얻었지만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어느새 상우의 뒤편으로 아폴론과 다른 초능력자들도 다가와서 카일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해서 상우가 말했다.
“우리를 이끌어 주기 바란다. 우리의 왕이여.”
원래 카일을 섬기던 이들과 카일을 섬기기로 한 이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그의 지배를 청했으며 하늘에서는 이 순간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쉬지 않고 폭죽이 터졌다.
이것이 훗날 화이트 제국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황제 탄생의 순간으로 기록되는 장면이었다.
【에필로그】
“아빠, 정신 차리세요. 아빠!”
나를 붙잡고 흔들면서 애타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목소리. 젊은 시절의 자기 엄마를 닮은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아이리스……. 사랑하는 내 딸아. 약속된 이별의 순간이다.”
“아빠…….”
울먹이는 딸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얼마 만일까? 철들고 나서는 아바마마나, 폐하 등으로만 불렸는데 말이다.
많은 일이 있었다. 세계 정부의 야욕을 꺾고 그 후에 지구로 역습을 가해서 세계 정부를 완전히 굴복시켰다.
이후 초능력자의 인권을 확립하고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의 환경을 재생시켰다. 마법과 초능력을 대거 동원해서 숲을 되살리고 물을 정화하는 등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결국 지구의 자연환경을 15세기 수준까지 되돌리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대륙으로는 지구의 과학 문물을 도입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었고 탈도 많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했다.
그 과정에서 나와 뜻을 함께해 줬던 이들의 도움도 컸다. 나의 충복이었던 검은 바람, 발레리아, 아리시아, 레이나, 레이븐, 세피로스, 호크, 시드,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나를 도왔다.
그렇게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은 그들이었지만 결국 검은 바람이 가장 먼저 내 곁을 떠났다. 그날의 슬픔과 충격은 나 자신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다시 태어나도… 주인님의 충복으로…….”
그렇게 한마디를 남기고 내 품 안에서 숨을 거둔 검은 바람. 나와 시작을 같이했던 그의 죽음은 나에게 큰 쇼크를 주었다.
그 후에도 호크, 레이나 등등이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아이리스에게 제위를 물려준 후 뒤로 물러났다. 뭐랄까? 이제 내 역할은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솔직히 능력을 이용해서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서 내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모두에게 전해 주렴. 나는 행복한 삶을 살다 간다고…….”
그리고 나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아빠, 아빠아아!”
딸아이가 오열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아련해져 간다.
아……. 이것이 나의 마지막이구나.
* * *
“…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화이트 제국의 황실 도서관. 그곳에서 아직 어려 보이는 소년이 앞에 역사서를 두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샌드릭스 필 데릭 화이트. 화이트 제국의 18황자다. 그리고 내면은…….
“쯧, 하필 태어나도 18황자가 뭐야? 발음하기 뭐하게시리…….”
바로 카일 화이트였다.
* * *
며칠 전 말에서 낙마를 하고 전생의 기억을 깨달은 나는 며칠간 멍하니 지내다가 오늘 황실의 도서관에 찾아왔다. 내가 죽고 나서 화이트 제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신세계력 89년 아이리스 폰 고르시파 화이트 여황제 즉위.
위대한 초대 황제 카일 화이트의 피를 이어받은 여황제는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과학 문명과 마법 문명을 융합한 마도 과학이라는 분야를 만들어서 제국을 융성하게 했다.
아이리스 여황제는 과학의 폐해였던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문명을 발달시켰다.
또한 초능력자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으며 그녀의 제위 기간 동안 두 세계에는 단 한 차례의 전쟁도 없었다.]
“역시, 이래야 내 딸이지.”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다른 이들의 근황도 살펴봤다.
시드는 내가 죽고 나서도 200년은 더 살았다고 한다. 마도 과학의 종주로서 그 위치를 확고하게 했으며 무수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호크, 이 녀석은 나보다 먼저 죽었는데 지금 보니 그 아들이 다음 대에도 제국군의 원수로 취임했다고 한다.
발레리아, 나의 충직한 기사이자 애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내가 죽은 후 은거했고 은장미 기사단 역시 그녀를 따라서 통째로 은거했다고 한다. 제국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은장미 기사단이 통째로 은거하는 일은 제국에 큰 충격을 주었지만 아이리스는 나를 향한 그녀들의 충성심을 이해한다며 그녀들의 은퇴를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다만, 이후에 그녀들이 한 번 더 나선 일이 있다고 황실의 비사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꼬마가?”
극비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 그 부분을 읽으며 나는 살짝 당황했다.
푸른 물결. 검은 바람이 늦게 얻은 아들인 그가 투란족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단다.
이건 나도 놀랐다. 말년에 내가 봤던 푸른 물결은 검은 바람의 품에 안겨서 손가락이나 쪽쪽 빨고 있던 꼬마였다. 그랬던 꼬마가 어떻게 자랐는지 모르겠지만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데 그 이유는…….
“쯧, 내 딸 미모가 죄군.”
제국의 위대한 여황제인 아이리스에게 반해서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리스에게 프러포즈를 했지만 차였고, 그 후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제국을 손에 넣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푸른 물결이 몰래 쿠데타를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었다. 이미 은퇴했지만 검은 바람과 같은 시기에 함께 활동했던 전사들이 그 사실을 황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황제는 고민 끝에 발레리아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이미 은퇴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고고한 1세대 은장미 기사단이 다시 한번 그리폰에 올라탔다. 그리고 직접 나서서 쿠데타를 진압했다고 하는데, 이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발레리아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죽고 나서도 빚을 졌구나.”
나는 발레리아를 기억하며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레이나는 나보다 먼저, 내 품 안에서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 레이븐과 세피로스는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내가 직접 그들을 아이리스에게 넘겼었다. 황실의 비사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늘에서 아이리스를 보좌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기록을 읽어 가다가…….
“풉! 진짜?”
나를 경악하게 한 구절이 있었다.
[드리스 엔케모니아, 에이라 폰 화이트 레드로즈 결혼.]
“진짜로? 그 둘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이해가 갔다. 그 둘은 일단 같은 세계 출신이기도 했고, 드리스는 전쟁 후에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에이라와 함께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에이라 녀석… 드래곤 로드나 정령왕 같은 절대자가 아니면 결혼 안 한다고 하더니. 진짜로 비슷한 급을 잡아냈군.’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 후의 제국은 발전과 갈등, 위기와 도약의 역사를 반복했다.
그리고 현재 신세계력 670년. 밤새워 읽은 역사책을 덮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리시아, 넌 뭘 했던 거냐?”
역사서를 읽으면서 깨달았는데, 아리시아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황족만 열람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이 기록에는 역사에 대놓고 남길 수 없는 비사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는 물론이고 나와 모험가 시절부터 함께했던 일까지, 그녀라는 존재 자체가 누락되어 있었다. 마치 아리시아라는 인물은 없었던 것처럼 하려는 듯이 말이다.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내가 죽을 당시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는데, 그 후에 어떻게 된 걸까? 왜 그녀의 기록은 모두 누락된 걸까?
시름에 잠긴 표정으로 나는 도서관을 나왔다. 그리고…….
“샌드릭스.”
“…….”
“야! 샌드릭스!”
‘아! 맞아. 내가 샌드릭스지?’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서는 어쩐지 나하고 쬐에에에끔 닮은 듯 안 닮은 듯한 얼굴들이 재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네가 도서관에는 어쩐 일이냐? 한번 죽을 뻔하니 공부라도 하고 싶어지더냐?”
“어쩌면 낙오자 나름의 발버둥일지도 모르죠.”
“후후후. 자기 분수를 안다는 점에서는 좀 성장한 걸지도 모르지.”
지금 내 앞에서 깐죽거리고 있는 놈들. 일단 나의 후손이나 지금 이 몸의 형제이기도 한 이들이었다.
초대 황제인 내가 강력한 초능력자였기 때문일까? 황실의 후손 중에는 초능력자가 많이 태어났고, 그들은 굉장한 우대를 받았다. 그런 일이 수백 년간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초능력을 각성하지 않은 황족은 낙오나자 떨거지 취급 받는 풍조까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몸 샌드릭스가 바로 그 떨거지였다.
“하아아……. 돌겠네.”
까마득한 후손이 삐뚤어진 모습을 보는 게 썩 즐겁지는 않았다. 마치 내가 이러려고 환생했나, 이런 느낌이었다.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고 형… 얘 이름이 뭐더라? 모르겠다. 어쨌든 형 A가 화를 내며 말했다.
“뭐라고 대꾸라도 해봐라. 형님을 보고 예의가 바닥이구나.”
“대꾸라……. 그래. 그럼…….”
어쩌겠는가? 자고로 가정 교육은 부모의 역할이다. 내 경우에는 선조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자.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일단 맞고 시작하자.”
나의 세 번째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