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213화 (213/215)

213화

180년 후.

레이나에게 정신 검진을 맡긴 후, 자살자와 폭주하는 인물은 없어졌다. 그런 기미가 보인다면 드리스를 통해서 그의 몸을 통째로 얼려 봉인시켜 버렸다. 이 공간에서 나가는 순간이 올 때까지 그를 동결 보관 하도록 한 것이었다.

카일은 이런 게 있었다면 진작 말했어야 한다고 드리스에게 화를 냈지만 드리스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진작 있었으면 그랬지. 만든 지 한 달도 안 된 마법이다.”

결국 카일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드리스 역시 이 사태에 관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로 인해서 자살자와 폭주하는 인물은 없어졌지만 그 대신 얼음의 관에 잠든 인물들이 대거 늘어났다. 정신적인 피로가 한계에 달했던 이들 중에 상당수가 수면을 선택했다. 무의 공간에는 수백 개의 얼음 관이 생겼다.

하지만 카일은 그 관에 들어가지 않았다.

‘난 아직 할 일이 있어.’

* * *

200년 후.

카일은 검술 수련을 그만두었다. 이때 카일의 검술 경지는 마스터 상급. 솔직히 200년이나 갈아 넣고서 이 정도의 경지라는 것은 카일이 검에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말이었다. 수련 말고는 할 것도 없는 공간에서 최고의 스승들이 달라붙어 가르쳐서 마스터 상급이니 말이다.

카일보다 늦게 수련을 시작한 황제는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 다만 그는 그 후에 스스로 수면에 들어가 버렸다.

어쨌든 카일은 자신에게 검의 재능이 없음을 인정했고 그 대신 자신의 초능력을 더 갈고닦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늦었다. 어쩌면 카일의 초능력이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 * *

250년 후.

카일은 자신의 초능력을 강화하는 것에 안간힘을 다했다. 카일 본인의 능력을 더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른 이들의 초능력을 각성하는 것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아직 초능력을 각성해 본 적 없는 루마니스 제국의 기사들도 카일의 은총을 받고 능력을 각성했다. 하지만 워낙 인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초능력을 각성하지 않은 인간은 금방 없어졌다.

이때 카일은 생각했다. 초능력을 각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 거둬 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무각성자가 다시 늘어날 테니 초능력자를 각성시키는 연습도 계속할 수 있을 텐데, 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발상은 카일의 능력자로서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 *

300년 후.

거의 대부분의 인물이 얼음 관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은 카일을 포함해서 스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 시간 동안 카일의 초능력은 눈부실 정도로 대단한 발전을 거뒀다. 그저 능력이 강해졌다는 말이 아니었다. 카일은 초능력이 어떤 것인지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전생과 현생, 그리고 이 차원의 틈새에서 300년. 인류 역사상 초능력을 카일만큼 오랫동안 다뤄온 인물은 그 누구도 없었다. 그리고 그 오랜 경험과 필요에 의해서 다듬어진 탐구심은 카일을 초능력자로서 전혀 새로운 경지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카일은 다른 능력자의 코어를 봉인하거나 회수하거나 혹은 개조하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그런 카일의 능력에 드리스가 주목했다.

“나를 각성시켜라, 카일 화이트.”

“뭐? 하지만 당신은…….”

드리스의 말을 들은 카일은 망설였다.

드리스 엔케모니아의 능력 각성. 카일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많이 망설였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드리스는 9서클 마스터의 마법사이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그렇지 않지만 아주 가끔 마법사들 중에는 카일의 은총을 받으면 마법을 상실하는 이들이 있었다. 무조건은 아니지만 대략 10~12% 정도의 확률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마법사를 각성시킬 때는 카일도 상황을 잘 설명하고 마법사가 충분히 납득을 한 후에야 각성을 진행했다.

시드의 경우에는 카일과 만났을 때 이미 잃을 게 없는 몸이었고, 그 외에도 마법사이면서 카일에게 능력을 각성받은 이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도박을 걸어 성공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드리스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드리스의 마법은 이들이 이 차원의 틈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만약 드리스가 마법을 잃어버린다면 그 후로 모두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이 공간에서 보내야 할 것이었다. 그건 진정으로 끔찍한 지옥이었다.

하지만 드리스에게도 나름 생각이 있었다.

“이전과 달리 지금 네 능력은 몹시 안정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

확실히 카일의 능력이 안정되기는 했다. 코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초능력을 각성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던 끔찍한 고통도 이제 사라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고통 자체가 카일이 코어를 제대로 각성시키지 못해서 일어나는 거부 반응이었다.

“지금의 너라면 괜찮을 거다. 그렇지?”

“알겠소. 하다가 안 되면 중간에 멈추도록 하지.”

그렇게 해서 드리스 엔케모니아가 초능력을 각성했다. 그것은 희미하지만 분명한 희망의 빛이었다.

* * *

500년 후.

“드디어…….”

“오……. 오오오…….”

모두가 감격에 젖었다. 눈앞에 보이는 푸른빛의 포털은 지난 500년의 세월 동안 모두가 바라고 바라던 희망이었다.

“오래 걸렸군. 정말 오래 걸렸어.”

시니컬한 드리스조차도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그 포털을 보고 있었다.

드리스가 각성한 이공간 조작 능력. 거기다 원래 그가 하고 있던 차원 이동 마법에 관한 연구. 8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시드의 조력과 그 외에도 시공간에 관련된 여러 능력자들의 협조. 그 모든 것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포털이었다.

“500년이라. 너무 길었군.”

“하지만 해냈다는 게 중요하지. 그럼… 가자.”

“옛!”

카일과 그 동료들이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500년 만의 귀환이었다.

* * *

“그렇게 된 겁니다.”

카일의 설명을 다 들은 빅토르와 클레어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500년이라…….”

빅토르는 말을 다 이을 수 없었다. 말로 하면 쉽지만 500년이라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압박은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심지어 카일은 다른 사람들처럼 얼음 관에서 잠들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 500년의 시간을 계속 깨어있는 상태로 노력하고 발버둥 쳤다. 그것이 과연 얼마나 가혹한 인고(忍苦)의 시간이었을까?

카일은 자신을 바라보는 빅토르와 클레어의 시선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시간 덕분에 얻은 것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게 뭔가?”

“이 전쟁은 저희가 반드시 이긴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카일의 말에는 강한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 * *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이 세계에 복귀한 카일과 그 부하들은 빠르게 세계 정부와의 전선에 합류해 전선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고작 수백 명이 합류한 것뿐이지만 전황은 극단적으로 변했다.

지난 시간 동안 고난을 겪고 강해진 것은 카일만이 아니었다. 그 공간에서 단련을 거듭한 이들은 모두 강해졌다. 최소한 마스터 수준의 경지는 이룩했고, 거기다 카일에 의해서 빠짐없이 능력을 각성했다.

그중에는 두 개 이상의 능력을 각성한 듀얼 능력자도 다수 있었다. 보통 한 시대에 한 명이나 나올까 말까 한 괴물 같은 강자들이 갑자기 수백 명씩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검은 바람, 발레리아, 아리시아, 시드, 구스타프 공작은 또 한 차원 다른 강자들이었다. 이들은 완숙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와 함께 강력한 초능력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시드는 8서클 마스터인 동시에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내는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반대로 아리시아가 6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고 말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과거 드리스 엔케모니아에 필적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강자들이 모여서 세계 정부를 가열차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히인 것은…….

“짐이 돌아왔다. 제국이여. 일어나서 싸워라!”

자신의 나라를 되찾겠다는 열망에 불타서 용감하게 싸우는 황제 아지무트 시비르 갈프슈타인 루마니스였다.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황제의 등장에 고무된 루마니스 제국의 인물들은 빠르게 황제의 곁에 모여들어 세계 정부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반격에 세계 정부는 크게 당황했다. 이 세계의 중앙 대륙을 거의 다 접수하고 이제 남방 대륙으로 손을 뻗으려는 계획을 하고 있던 그들로서는 계획이 송두리째 틀어지려는 참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할 생각이오?”

“어이가 없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지?”

“후우우……. 애당초 너무 온건하게 나간 게 잘못이오. 처음 계획했던 대로 저쪽 세계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부어서 한번 초토화시켰어야 했어요.”

“그랬다간 중요한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버리지 않소. 이미 한 번 그로 인한 피해를 입어본 우리가 다시 자중하지 않으면 어쩐단 말이오?”

세계 정부의 중추 중의 중추. 모든 권력 기관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세계 정부 최고 기관인 의회. 그곳의 세계 의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평소 그들은 어지간하면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세계를 빼앗아서 그곳으로 지구의 인류를 이전시킨다는 그들의 계획에 인류의 장래가 걸려 있는 탓이었다.

세상에는 숨기고 있었지만 지구의 상태는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육지 면적에서 산소를 생산하는 녹지가 이제 10%도 남지 않았다. 사막화에 돌연변이체의 등장도 빈번했고, 무엇보다 인간의 출산율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졌다. 인류 자체가 환경을 따라서 피폐해지고 있음이 확실했다.

이런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자연환경의 이세계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장에서 성과를 거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주민을 보내기 위한 선발을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이 상황에서 갑자기 적의 반격이 시작되다니…….

“그 카일 화이트라는 애송이를 어떻게 처리할 순 없는 거요?”

“어렵소.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SS급 능력자인 세이코와 진호가 무엇 하나 해보지 못하고 패배했다고 하오.”

“아직 무한의 상우가 남아 있지 않소? 그라면…….”

“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강의 능력자요. 다른 네 명의 SS급 능력자들이 다 죽었으니 더욱더 그렇지. 그런 상황에서 그가 이긴다고 보장할 수 있소?”

“으음, 상우라면 가능하지 않겠소? 그가 진짜 실력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군부의 평가로는 그가 다른 네 명의 SS급 능력자보다 훨씬 강하다고 했소.”

“확실히… 듀란을 해상 전투에서 압도한 것은 무한의 상우 한 명뿐이었지.”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오. 그를 투입합시다.”

의원들은 그렇게 세계 정부에 마지막으로 남은 SS급 능력자를 투입하려고 했다.

그때 한 명이 말했다.

“상우를 투입하는 것은 찬성이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소.”

“그게 뭐요?”

“하나는 그가 과연 우리에게 협조할 것이냐? 하는 것이오. 알겠지만 상우는 다루기 어려운 인물이오.”

“으으음…….”

“그리고 설령 그를 어찌어찌 구슬려서 전투에 보낸다고 해도, 그가 과연 카일 화이트와 그 측근을 처리할 수 있겠소?”

“…….”

세계 정부의 의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지금 이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SS급 능력자인 상우의 투입은 최선의 한 수였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항상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상우가 협조하지 않으면? 그리고 협조한다고 해도 패배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제에 맞닥뜨린 세계 정부의 의원들은 섣불리 의견을 내기보다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말했다.

“상우를 협조시키기 위한 방법은 떠오르는 게 있소.”

“그게 뭐요?”

“내가 알기로 상우는 같은 SS급인 진호와 세이코와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고 했소.”

“쯧……. 주제도 모르고 우정 놀음이라도 했단 건가?”

“어쩔 수 없죠. 능력이 높은 놈들은 감정 제어가 안 되니까…….”

“Dr. 피터가 그 방면으로도 어떻게든 연구를 해주었으면 좋겠소.”

잠시 얘기가 다른 곳으로 새려고 했지만 처음에 말을 꺼냈던 인물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어쨌든 진호와 세이코가 카일 화이트라는 미개인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면 복수라는 명목으로 상우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이오.”

“그게 통하겠소?”

“통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계속 동면시켜 두는 수밖에요.”

“그렇군. 그럼 그렇게 시도해 봅시다.”

“그리고 만에 하나 상우가 졌을 때의 얘기입니다만…….”

그 의원은 망설이다가 무언가를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의원들은 크게 경악했다.

“진심이오?”

“최악의 경우는 피해야 하지 않겠소?”

“그건 그렇지만…….”

“일단 준비는 해둡시다. 상우가 이긴다면 아무 문제 없지 않겠소?”

“그건 그렇소.”

“가능한 모든 준비를 다 해두자는 의미로 보자면 그리 나쁜 선택지도 아닙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게 세계 정부는 카일의 반격에 대항하기 위해 두 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강과 금단이라는 카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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