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207화 (207/215)

207화

시작은 듀란이 먼저였다.

놈이 지면에서 뽑아 올린 물줄기가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면서 카일을 구속하기 위해서 날아왔다.

사방에서 수백 마리의 뱀이 조여오는 것처럼 날아오는 물줄기에 카일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가속 10배.’

아리시아의 능력을 이용해서 속도를 가속 시킨 카일에게는 수백 줄기의 수류조차도 빈틈투성이의 포위망일 뿐이었다.

빠르게 틈을 통해서 빠져나간 카일은 그대로 듀란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상대가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휘두른 일격이었지만…….

“칫…….”

유감스럽게도 통하지 않았다.

듀란의 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물줄기가 카일의 검을 막은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명색이 SS급 능력자인데 이렇게 싱겁게 당할 리가 있는가?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일은 카일의 예상을 넘어섰다.

카일의 검을 막아낸 물의 보호막이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카일의 검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카일은 황급하게 떨어지면서 거리를 벌리고 검을 세차게 휘둘러서 달라붙은 물줄기는 떼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카일의 검에 달라붙은 물은 전혀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검신을 타고 올라왔다.

카일은 황급하게 검을 손에서 놓고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그러자 듀란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군. 바로 끝낼 수 있었는데 말이야.”

“…….”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복잡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기만 하는 게 아니다. 본인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공격했는데도 막아낸 것을 봐서는 자율 방어도 가능한 거야. 그리고 물에 접촉한 순간 그대로 달라붙고 절대 떨어지지 않았어.’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능력이었다.

능력이 자율적으로 방어를 한다면 아리시아의 가속 능력으로도 빈틈을 노리기 어렵다.

거기다 공격이 방어든 공격이든 한 번이라도 접촉하면 그대로 물이 떨어지지 않는 능력도 성가셨다.

‘듀란이라……. 바다의 재앙이라는 별명 때문에 육지에서는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듀란이 바다의 재앙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의 능력이 물이 많은 곳에서 더욱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지라고 약한 것은 아니다. 다른 SS급 능력자들과 겨뤄도 손색이 전혀 없는 강적이었다.

바다가 무대였다면 다른 네 명의 SS급 능력자를 합친 것만큼이나 강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지금 죽여야겠군.’

카일의 눈빛이 스산한 살기를 띠었다가 가라앉았다.

육지에서도 이 정도로 강하고 까다로운 놈인데 저걸 바다나 강에서 만난다면 얼마나 곤란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카일은 듀란의 주변을 돌면서 염동력으로 놈을 공격했다.

퍼퍼펑!

염동력 자체는 카일이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다만 파괴력이 좀 부족해서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였지만, 시드와 아리아라는 상위급 능력자 두 명과 융합을 하면 얘기가 다르다.

카일이 발사하는 염동력은 A급 능력자였던 아폴론을 상회하는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SS급 능력자다. 놈은 물로 얇은 방어막을 쳐서 카일의 염동파를 막아냈다.

물의 방어막은 얇은 만큼 견고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말랑말랑한 탄성을 가지고 있었다.

충격을 흡수하듯이 부드럽게 막아낸 듀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생각보다 제법이군. 그럼 이건 어떠냐?”

그리고 듀란이 손을 뻗자 다시 물줄기가 카일에게 날아갔다. 단, 이번에는 훨씬 더 얇게 압축한 물줄기였다.

카일은 그 공격을 피했지만 물줄기가 지나간 자리의 바위와 나무는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수압을 이용한 커터, 거의 레이저 수준이군.’

카일의 염동력으로 방어막을 쳐도 완전히 막아내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카일은 아리시아의 가속 능력을 더 끌어 올려서 적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카일의 몸이 잔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적의 공격을 피했다.

그런 카일을 보고 듀란은 이를 악물더니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건방지다.”

그러자 듀란의 몸에서 수십 가닥의 고압 수류가 생성되며 일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레이저 쇼를 방불케 하는 복잡한 공격에 카일은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지금이 찬스다.’

적은 한정된 수량을 가지고 싸우면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그 말은 공격에 비중을 높이면 수비에 사용하고 있는 힘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지금 적과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생각한 카일은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듀란의 고압 수류 공격이 카일에게 쏟아졌는데…….

“음…….”

듀란의 안색이 처음으로 심각해졌다.

카일이 자신의 공격을 피하면서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복잡한 궤도의 고압 수류 커터를 모두 피하고 심지어 후방으로 우회해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의 공격까지 빈틈없이 피했다.

‘예지 능력인가? 아니, 좀 다른 것 같은데…….’

듀란은 몰랐겠지만 지금 카일은 시드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

듀란의 공격은 아리시아의 가속 능력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피하기 어려울 만큼 촘촘하고 변칙적이었다.

하지만 염동력을 전신에 둘러서 일격에 즉사하는 것만 피하면 시간을 돌려서 그 공격을 받은 사실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다.

즉, 공격을 맞을 때마다 시간을 돌려서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제길, 무슨 놈의 공격이 이따위로 집요해.’

고작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좁히는 데 벌써 30번도 넘게 시간을 돌렸다.

짧은 시간만을 돌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가 편두통으로 지끈지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카일은 마침내 듀란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제 적의 심장을 노리고 특대 염동파를 날려 버리면 되지만…….

“걸렸다!”

듀란의 한 마디와 함께 그의 발밑에서 물의 창이 솟구쳐 올랐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카일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서 준비했던 함정이었다. 그러나…….

스팟!

그 물의 창이 솟구친 순간 카일은 가볍게 뒤로 백스텝 해서 공격을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앞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공격에 듀란은 경악했다.

“어떻게?”

“걱정 마라. 통했으니 말이야.”

이 공격을 한 번 맞았던 카일이다.

턱을 정통으로 맞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던 차에 간신히 시간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카일의 손이 듀란의 심장 바로 앞에서 멈췄다.

‘이건… 이놈, 설마?’

듀란은 섬뜩했다.

실전에서 염동파를 이용해서 적을 공격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거리에서 공격해서 외부에 물리력인 충격을 날리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근거리에서 적의 내부를 목표로 삼아서 내부에 직접 충격을 주는 것이다.

당연히 두 번째 공격이 더 어렵지만 훨씬 더 치명적이다.

“뒤져라.”

카일이 말하는 것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듀란의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커헉…….”

커다란 북이 터지는 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뒤섞이며 묘한 소리와 함께 듀란이 뒤로 날아가 버렸다.

“크으윽…….”

듀란은 고통에 신음했고 그런 듀란을 바라보는 카일도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짧게 자주 사용하는 것도 좋지는 않군.’

듀란을 이기기 위해서 시드의 능력을 50번 가까이 사용했다.

대부분 1~5초 정도로 짧게 시간을 돌렸을 뿐이지만 그래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다. 그보다 저놈을 구속… 아니, 그냥 죽여야겠군.”

카일은 듀란을 사로잡을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아폴론이 준 정보에 의하면 듀란은 세계정부의 사상에 완벽하게 공감하는 열렬한 추종자라고 했다. 아폴론처럼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여기서 죽이는 게 나았다.

‘그래도 물이 적은 장소라서 다행이군.’

만약 놈의 이명대로 바다에서 만났다면 어떻게 해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카일이 듀란을 잡은 순간…….

“끝장내 버려!”

“우워어어어어어!”

검은 바람과 드리스 역시 피에르를 상대로 결착을 내고 있었다.

피에르의 능력은 염동력.

가장 순수하고 파괴적인 능력이지만 단순한 물리력에 국한된 능력이기도 했다.

검은 바람은 이미 많은 염동력자들과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고 드리스의 마법은 피에르의 염동력보다 훨씬 더 활용성이 높았다.

결국 이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 자체가 피에르에게는 무리였던 것이다.

‘이게 죽는다는 거군.’

피에르는 자신에게 떨어지는 거대한 거인의 검격을 보며 담담하게 생각했다.

삶과 죽음.

그중에서도 특히 죽음을 많이 마주한 사람이 피에르였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세계정부의 명령이라는 핑계로 그저 죽이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그것밖에 할 줄 몰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죽을 순간이 오자 피에르의 무표정한 얼굴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나쁘지 않아.”

그것과 동시에 검은 바람의 공격이 그의 몸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해 버렸다.

“후우우…….”

결착을 내고 몸을 원상태로 돌린 검은 바람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검에 몸을 기대고 호흡을 정돈했다.

그런 검은 바람에게 드리스가 다가와서 말했다.

“나쁘지 않았다. 덩치.”

“당신에게 칭찬받을 이유가 없소.”

“꼭 있다니까? 칭찬해 줘도 지랄하는 새끼들.”

드리스는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꽤 고마워하고 있었다.

피에르라는 적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단순무식하지만 그래도 강력한 힘 자체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라서 은근히 까다로웠다.

그 막강한 힘을 뚫기 위해서 8서클 이상의 공격 마법을 퍼부어야 했는데 검은 바람이 앞에 나서서 몸빵으로 그 공격을 버텨주지 않았다면 영창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성의 전투도 거의 끝나가고 있는 모양이군. 이제 적의 간부만 사로잡으면 전투는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그렇게 되겠지.”

그렇게 대답하는 검은 바람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묘하게 굳어 있었다.

“왜 그러지? 전투가 끝나는 게 아쉽나?”

“아니, 그런 건 아니오. 다만…….”

“다만 뭐지?”

“좀 찝찝하군.”

“…….”

“주인님은 세계정부라는 적을 굉장히 경계하고 일면… 두려워하시기도 했소. 그런 강대한 적을 상대하는 것치고는 너무 쉬운 느낌이 드오.”

근거는 없다. 하지만 검은 바람에게 축적된 전사 특유의 육감은 경고를 하고 있었다.

이 전투는 이렇게 쉽게 끝날 전투가 아니라고 말이다.

몸에 힘이 빠지지 않고 흥분도 가라앉지 않는 검은 바람은 불길한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 * *

내성으로 돌입한 검은 발레리아와 정예 병력.

그들은 내성 곳곳에 위치한 장소를 세계정부의 병력을 일소하고 구금당해 있는 황족들을 되찾으면서 전투를 유리하게 풀어가고 있었다.

아니, 유리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압도적이었다.

“발레리아 경. 황실의 대전에서 농성 중인 적들을 완전히 제압했소.”

“수고했습니다. 구스타프 공작님. 그럼… 이제 황궁을 완전히 되찾은 겁니까?”

“그런 셈이오. 황실의 가족들도 모두 되찾았으니 우리의 승리요.”

환하게 미소 짓는 구스타프 공작을 보며 발레리아는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그녀 역시 검은 바람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코 쉽지 않아야 할 적을 너무 쉽게 이겼다.

‘이상해. 주군이 두려워할 정도로 경계한 적이 고작 이 정도일 리가 없어.’

발레리아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의 부하 중 한 명이 말했다.

“단장님. 황실의 별궁에서 수상한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수상한 물건?”

“예. 직접 보시겠습니까?”

그리고 발레리아가 현장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커다란 쇳덩어리가 있었다.

“이게 뭐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처음 봐서…….”

커다란 쇳덩어리에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는 색색의 선과 처음 보는 문자가 새겨져 있는 그것은 발레리아의 이해를 넘어서는 물건이었다.

“주군에게 보여 드려야겠군. 조세핀.”

“예, 단장님.”

“텔레포트 능력자를 동원해서 주군을 모셔와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텔레포트 능력자가 움직여서 그대로 카일을 데리고 왔다.

“이상한 걸 봤다고?”

“예. 주군, 한 번 확인해 주십시오.”

발레리아의 보고를 받은 카일은 수상한 물체가 있다는 별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카일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카일이 본 것은 바로…….

[Nuclear Bomb]

핵폭탄이었다.

“모두 피해!”

카일이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빛이 모든 것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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