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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202화 (202/215)

202화

천재지변(天災地變).

이 상황에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것이다.

마법사로서 전력을 드러낸 드리스는 실로 무시무시한 화력을 보였다.

하늘까지 치솟는 화염의 기둥과 일대가 초토화될 정도의 대지진. 화산 폭발을 방불케 할 정도의 초고온으로 지면이 용암처럼 들끓었지만, 그다음에는 바로 혹한의 동토처럼 얼어붙어 버렸다.

마법사라는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파괴의 극한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대재앙을 상대로 카일과 그 일행은 용케 버텨내고 있었다.

“큭…….”

“버텨라! 우리가 막아야 한다!”

“예, 릴리 조장님.”

카일이 데리고 온 은장미 기사단의 능력자들은 방어에 특화되어 있는 이들이다.

시간 축을 돌리기 전에 발레리아가 크림슨 블레이드를 떨어트리기 전에 그 브레스를 잠시나마 막아 준 괴물들이었다.

그들이 모두 뭉쳐서 방어를 굳히자 드리스의 화력에도 어느 정도 버텨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 이들이기에 드리스의 막강한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동안…….

“큭… 저 새끼, 진짜 거슬리는군.”

드리스 역시 꾸준하게 공격을 받고 있었다.

초음파를 이용해서 그의 뇌와 반고리관을 직접 공격하는 능력은 그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소리는 진동을 타고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베리어를 아무리 두껍게 친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소리까지 완전히 막는다면 실드를 유지한 상태로 외부와 대화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방음에 관련된 마법이라도 하나 개발해 두는 건데…….’

드리스는 이를 갈며 후회했다.

그는 틈틈이 각성 마법으로 뇌를 일깨우며 한편으로는 계속 적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렇게 뇌를 일깨우는 것도 점점 효과가 덜해졌다.

정신을 일깨운다고 해도 순간일 뿐. 두통의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이때 드리스는 이 승부를 일종의 레이스로 봤다.

자신의 뇌 기능이 완전히 맛이 가기 전에 저 단단한 방어막 속에서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적을 처리한다면 자신의 승리.

그전에 자신의 뇌가 맛이 가면 적의 승리.

그렇다면 괜히 망설이는 시간이 아깝다.

“단번에 끝내주마.”

그리고 드리스가 처음으로 영창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그냥 힘을 표출하듯이 자연스럽게 마법을 방출하던 그의 발밑에 몇 겹의 복잡한 마법진이 생기고, 그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룬어가 흘러나왔다.

“시드, 저게 뭔지 알겠나?”

“제 이해를 벗어난 마법입니다. 여러 개의 마법을 중첩 시켜서 만들어 낸 복합 마법 같습니다만…….”

“어쨌든 저게 놈의 승부수겠군.”

카일은 진중한 표정으로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할 수 있겠나?”

“예. 할 수 있습니다.”

“좋아.”

카일 역시 승부를 걸기로 했다.

* * *

드리스 엔케모니아는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최강의 공격 마법이란 뭘까? 설령 크림슨 블레이드 같은 괴물이라고 해도 절대 무사할 수 없는 공격 마법은 뭘까?

그 주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다.

개중에는 화염계 마법과 빙계 마법을 합성해서 순수한 소멸에너지만 얻어내겠다는 표절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그건 씨도 안 먹혔다.

불과 얼음을 합쳐도 그냥 서로 상쇄되며 꺼질 뿐이었지 소멸에너지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오랫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 냈다. 막을 수 없고 일단 적중하기만 하면 그 누구도 무사할 수 없는 최강의 공격 마법을 말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이거다.”

드리스의 양손에 아주 작은 검은색 회오리 같은 구멍이 생겼다.

칠흑 같은 검은색의 그것은 작은 자두 알 정도의 크기였지만 그것을 다루는 드리스의 모습은 몹시 신중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만들어 낸 최강의 공격 마법…….

“인공 블랙홀이다.”

쿠쿠쿠쿠쿠쿠…….

작은 블랙홀이 조금씩 커지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컨트롤이 실패하면 행성조차 빨아들일 수 있는 이 재앙의 덩어리를 만들어 낸 드리스는 그것을 카일이 있는 곳으로 던지며 말했다.

“어디 막을 테면 막아 봐라!”

카일을 향해서 날아간 블랙홀.

카일과 그 부하들은 그 공격을 막을 생각인지 더 강렬한 방어막을 치고 버티고 섰다.

하지만 이건 애당초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확장!”

블랙홀이 카일에게 닿는 순간 드리스가 외쳤고, 그 순간 블랙홀의 직경이 수십 미터로 확 늘어났다.

그리고 확장된 블랙홀에 닿는 모든 것은 그대로 블랙홀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애당초 이것은 방어가 불가능한 절대 파괴의 목적으로 만들어 낸 마법. 설령 크림슨 블레이드라고 해도 막는 것 자체는 불가능했다.

우우우우우웅!

블랙홀은 그 크기를 점점 확장했고 이윽고 지름이 100미터 이상 넓어졌다.

거기까지 확장된 블랙홀은 카일을 비롯한 그의 부하들까지 한 번에 집어삼켜 버렸다.

그 광경을 확인한 드리스는 빠르게 수인을 맺으며 외쳤다.

“닫혀라!”

그 순간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마법진이 역회전을 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블랙홀을 생성하고 확장시킨 마법을 역순으로 재생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블랙홀의 내부에서 화이트홀이 생성되고 블랙홀은 그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신중하게… 최대한 신중하게…….’

화이트홀이 블랙홀을 완벽하게 중화시킬 때까지 신중하게 마법을 전개해야 한다.

화이트홀을 중간에 닫으면 블랙홀이 완전히 중화되지 않고, 지나치게 화이트홀을 전개하면…….

‘뒤질 뻔했지.’

화이트홀의 안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면서 대폭발을 일으킨다.

그때 드리스는 이 세계에 오고 나서 크림슨 블레이드와의 일전 이후 처음으로 죽음의 위기를 겪었었다.

그렇기에 천하의 드리스 엔케모니아라고 해도 이 작업은 신중하게 해야 했다.

슈우우우우웅.

이윽고 블랙홀이 완전히 닫히고 드리스가 황급하게 손을 거뒀다. 그리고 그 일대에는…….

“하아아아… 어떠냐?”

아무것도 없었다.

블랙홀의 파괴력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없애 버리는 것이다.

그 영역 안에 있는 카일과 그 부하들도 한 번에 사라져 버렸다.

“제길, 애먹이고 있어.”

승리한 드리스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으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수백 년을 살면서 이 정도로 애먹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번에도 이겼지만 말이야.”

피식 웃으면서 말하는 드리스였다. 그리고…….

“속단하기에는 이르지.”

어느새 드리스의 뒤에 다가온 카일이 한마디를 했다. 드리스가 황급하게 몸을 돌린 순간…….

“체크 메이트다.”

드리스의 목젖에 카일의 검이 닿아 있었다.

카일은 그 상태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파괴의 흔적을 봤다.

100미터 안의 원형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도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카일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괴물은 괴물이군. 어떻게 블랙홀을 만들어 낼 생각을 했지?”

“괴물은 누가 괴물이지. 그 안에서 살아 돌아오다니…….”

“아, 그건 틀려.”

“뭐라고?”

“애당초 안 맞았거든.”

카일은 이미 영역 밖으로 나가 있었다.

전투가 한창일 때, 카일은 드리스가 비장의 한 수를 쓰려고 하자 자신도 미리 준비한 한 수를 사용했다.

미러 이미지. 5서클의 환각 마법으로 적에게 환영을 보여주는 마법이다.

당연히 그걸 펼친 것은 카일의 측근인 시드였다.

원래 같으면 시드의 마법이 드리스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마법사로서 이 둘은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먹힌 것은 드리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꾸준한 초음파로 뇌를 공격당해서 뇌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고위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집중하고 있는 상태.

그런 드리스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게 아니라 그저 환각을 보여줄 뿐인 미러 이미지 마법은 먹히기에 충분했다.

카일과 그 부하들이 제자리에서 굳건하게 버티는 이미지를 보여준 후 정작 본인들은 최대한 멀리 그리고 빠르게 도망갔다.

드리스가 사용하는 마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범위 밖으로 도주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멀리 가기를 정말 잘했지. 설마하니 블랙홀을 만들어 낼 줄은 몰랐어.”

“…….”

드리스는 깨달았다. 자신이 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 순간 드리스는 실로 오랜만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안… 안 돼.’

수백 년을 살아왔으니 죽음이 두렵지 않다?

개소리다. 두려운 건 두려운 거다.

거기다 드리스는 이 세계에서 자신의 죽음이 정상적인 윤회의 궤를 타지 않고 이물 취급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통 사람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서 두려워하는 법이지만 그는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어서 더 확실하게 두려웠다.

그게 최악의 결과이니 말이다.

“살…….”

자존심 때문에 차마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애걸하려는 드리스. 카일은 그의 목을 겨누던 검을 거두었다.

“부탁이오. 나를 도와주시오. 드리스 엔케모니아.”

“…뭐라고?”

죽음의 두려움 속에 떨고 있던 드리스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다.

카일은 드리스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후 드리스의 능력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9서클 마스터라는 본연의 능력은 물론이고, 크림슨 블레이드라는 비장의 수단까지 가지고 있는 그는 너무나 강력한 전력이다.

세계정부라는 강적과 맞서야 하는 카일의 입장에서 드리스 엔케모니아는 아쉬운 걸 넘어서 간절할 정도로 필요한 전력이었다.

그리고 시간 축을 돌리기 전에 세계정부에 관한 정보를 공개했을 때 드리스의 반응. 그때 드리스는 전시 상황인 것 치고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카일의 말을 들어 주었다.

포로가 된다는 위험부담을 짊어지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돌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때 카일은 생각했다. 드리스 엔케모니아를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카일은 진지하게 드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오. 부디 마음을 열고 들어주기를 바라오.”

“싸우다 말고 갑자기 무슨…….”

“일단 듣고 판단해 주시오.”

그리고 카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세계의 정보와 세계정부의 위험에 관해서 설명했다. 물론 에이라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말이다.

카일은 그렇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는 드리스를 향해서 정중하고 간절하게 말했다.

“부디 힘을 빌려주시오. 당신이 내 편이 되어서 세계정부를 물리치는 데 힘을 빌려준다면 굳이 내가 제국과 전쟁을 할 이유도 없소. 또한 그대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최선을 다해서 찾아내겠소. 카일 화이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소.”

구구절절 간절함이 묻어나는 카일의 말에 드리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뇌했다.

시간 축을 돌리기 전에 카일이 세계정부에 대한 정보를 밝히며 같은 편이 되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때 드리스는 일단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유보의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카일이 지고 있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드리스의 입장에서는 카일이 하는 말의 진위 여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카일이 이기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드리스에게 죽음의 공포마저 느끼게 할 정도로 완벽한 외통수를 친 후의 상황이었다.

여기서 카일이 거짓말을 해서 무슨 이득을 얻어내겠는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거짓이라면 차후에 드리스를 다시 적으로 돌릴 뿐이다.

드리스로서는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법이지. 제발 넘어와라.’

카일은 겉으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말했고 드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뭘 어쩔 수 있을 리가 없군. 알겠다. 얌전하게 항복하고 협조하도록 하지.”

“…….”

긴장이 빠진 카일은 안도감과 함께 나오려고 하는 한숨을 억지로 눌렀다.

“고맙소. 드리스 엔케모니아.”

“됐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전쟁을 계속하는 것 자체가 멍청한… 아! 너희 애들 말려. 빨리.”

“알겠소. 로잔나! 부하들에게 종전을 선언해라.”

“예. 전하.”

카일의 명령을 받은 은장미 기사단원 한 명이 재빨리 제 그리폰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드리스 역시 긴장이 풀렸는지 카일에게 말했다.

“보기보다 도박을 즐기는군. 만약 내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 거냐?”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거죠. 하지만 당신이 받아들일 거라는 심증이 있었소.”

사실 드리스가 카일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카일은 다시 한번 시드의 능력을 사용해서 시간 축을 되돌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문답 무용으로 드리스를 죽였을 테고 말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시드의 능력이 사기긴 진짜 사기야.’

그런 카일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드리스는 카일이 도박을 하고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 카일은 드리스가 무슨 선택을 하든 자신이 이기는 결과만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다.

그걸 드리스에게 말해 줄 의리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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