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200화 (200/215)

200화

모든 진상을 설명한 드리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놈들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1차 봉인을 해제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건 나로서도 오산이었지.”

“괴물 같은 인간 같으니라고…….”

카일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전쟁은 애당초 자신들에게 승산이 없었던 것이다.

상대가 손에 들고 있는 패는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최대 최강의 전력이었다.

화이트 공국의 전력이 지금보다 열 배 이상 강하지 않고서는 승산이 없었다.

‘아니, 정신 차리자.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카일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저런 괴물을 마음대로 막 써먹을 수 있을 리는 없지. 만약 그렇다면 처음부터 써먹었을 거야.”

“…….”

“어떤 제약이라도 있는 건가? 예를 들어서 좀 전에 나왔던 마법진에 관련된 제약이라든가.”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제 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다.”

드리스는 대답하는 대신 카일에게 정보를 요구했다.

사실 크림슨 블레이드를 다루는 데 걸리는 제약은 꽤 많았다.

리빙 골렘 상태인 크림슨 블레이드를 기동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했는데 그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9서클 대마도사인 드리스조차 버거울 정도로 막대한 마나가 필요했다.

충전에 필요한 시간만 해도 꼬박 하루가 필요했고, 그렇게 충전을 하고 나면 드리스는 직접 전투에 나서기 힘들 정도로 기진맥진해진다.

지금도 자기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 마법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다.

거기다 크림슨 블레이드 자체도 여러 겹의 다중 봉인으로 인해서 전성기보다는 약체화된 상태다.

그렇다고 봉인을 다 풀면 크림슨 블레이드의 육체 안에 있는 본신의 영혼이 육체를 장악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드리스가 이판사판 다 죽고 망해 버리자,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크림슨 블레이드의 봉인을 다 푸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지만 그런 약점까지 말해 줄 정도의 의리는 없었다.

카일과 드리스의 시선이 허공에서 지그시 마주쳤고 카일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아는 인물 중에 다른 이계인이 한 명 있다.”

“뭐라고?”

“이름은 에이라 수 화이트. 내 의동생이지. 나와는 다른 세계선이나 시대선에서 온 것 같은데, 그녀는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그게 정말이냐?”

드리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 카일에게 버럭 소리쳤다.

“왜 그걸 처음부터 말해 주지 않았냐?”

“말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이 썩을 XX새끼가…….”

으르렁거리는 드리스에게 카일이 말했다.

“그럼 뭐지? 내가 먼저 그 사실을 말했으면 너는 제국을 배신하고 내 편이 돼주기라도 했었을 거냐?”

“그건… 아니었겠지.”

드리스의 안에서 루마니스 제국에 대한 애착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나서서 제국을 등질 정도는 아니다.

아마 카일이 이 정보를 말해 주면 정보만 쏙 빼먹고 전쟁터에서는 여전히 적대적으로 대치했을 가능성이 컸다.

카일은 그런 드리스에게 말했다.

“한 가지 정보가 더 있다.”

“그게 뭐지?”

“그전에 대가가 먼저다. 어째서 저 괴물을 전쟁 초반부터 움직이지 않았던 거지? 역시 무언가 제약이 있는 건가?”

카일의 질문에 드리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꽤 집요하군. 이 상황에서 약점을 안다고 해도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야.”

“그렇다면 알려줘도 상관없지 않나?”

“…….”

“미리 말해 두겠는데 두 번째 정보는 더 간절한 것이다. 차원 이동에 관한 정보지.”

카일의 말에 드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크림슨 블레이드는 리빙 골렘이라서 저걸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드리스는 크림슨 블레이드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를 말해 주었다.

에너지의 수급 문제와 다중으로 걸린 봉인과 저 골렘의 육체 안에 있는 크림슨 블레이드의 영혼 등등…….

“너… 거의 핵폭탄을 가지고 불장난을 하고 있었군.”

카일은 질린 표정으로 말했고 드리스는 어쩌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차례다. 두 번째 정보를 불어라.”

그 말에 카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최근 너희 제국에 있는 원 어스라는 클랜에 관해서 알고 있나?”

“원 어스? 그게 뭔데?”

“너희 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험가 클랜이다. 그리고 이 세계를 침공하기 위한 다른 세계의 침략의 첨병이기도 하지.”

카일의 말에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황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개소리! 아까부터 듣자 듣자 하니까 억지를 부리는구나, 카일 화이트.”

황제의 분노에 카일은 시선을 흘깃 돌리더니 다시 드리스를 보고 말했다.

“이상하다 생각하면 네가 직접 놈들에 관해서 조사해 봐도 좋다. 그렇다면 놈들이 이 세계의 수준을 뛰어넘은 문명을 훌쩍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게 정말이냐?”

“이 판국에 너에게 거짓말을 해서 뭐 하지?”

“…….”

“모두 진실이다. 놈들은 나의 전생과 연관되어 있는 이들이며 그들의 목적은 이 세계를 침공하는 것이다. 핵전쟁으로 피폐해진 놈들의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지.”

카일의 말에 드리스의 표정이 심각해졌고 황제는 카일이 하는 말을 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지구니 핵전쟁이니, 환경의 피폐화니…….

황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뿐이었다.

카일은 드리스를 향해서 머리를 숙이더니 말했다.

“드리스 엔케모니아. 부디 내 편이 되어다오.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네가 필요하다.”

“…….”

드리스는 그런 카일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카일은 머리를 들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가 승부처다.’

만약 여기서 드리스가 카일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것을 잘 풀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때 드리스가 말했다.

“네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까 말이야.”

“그럼 어쩌자는 거지?”

“일단 네 말대로 원 어스라는 클랜에 관해서 조사를 해 보지. 그 후에 내가 결정을 내리겠다.”

“그렇다면 지금의 전쟁은…….”

“얌전히 항복해라. 그럼 신병을 구속하고 내 봉인을 받는다는 전제하에 네 일신상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실패인가?’

카일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실 드리스 엔케모니아의 입장에서 카일의 일방적인 주장을 바로 믿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 위해서 카일이 되는 대로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카일은 입술을 꼭 깨물고 말했다.

“결국 거래는 성립되지 않았군.”

“그렇다면 어쩌자는 거지?”

“어쩌긴 뭘 어째?”

카일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다시 싸워야지.”

카일의 말에 드리스는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무언가 손을 쓰기도 전에 카일이 먼저 움직였다.

“흐으음!”

카일은 비장의 수단으로 아껴 두었던 시드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우우우우웅.

시드의 능력을 발동한 순간, 일대의 모든 것이 멈췄다.

사람과 대기의 움직임부터 시작해서 마나의 유동도 멈추고 저 멀리 크림슨 블레이드에게 물려서 다 죽어가고 있는 검은 바람의 서서히 저물어 가는 동공마저도 멈췄다.

오직 카일 혼자서만 이 공간에서 의식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다!’

아리시아와 융합하면서 발생한 에너지와 원래 카일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 그리고 시드의 에너지까지 해서 총 세 명의 초능력 에너지가 오직 시드의 능력에 집중되었다.

시드의 능력.

카일조차 사기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그 능력.

그것은 바로…….

“시간이여. 돌아가라!”

타임 리버스. 세계의 시간을 뒤로 돌리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카일이 능력을 사용하는 순간,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뒤로 역행하기 시작했다.

마치 영상을 뒤로 되감는 것처럼 쓰러진 이들이 살아나고, 지상으로 떨어졌던 크림슨 블레이드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고, 양쪽의 군세 역시 전쟁 전의 대치 상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역재생의 순간 카일은 뇌가 녹아 버리는 것처럼 어지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아직… 아직이다. 아직…….’

그리고 일대의 모든 것이 전쟁 전의 밤으로 돌아간 순간…….

“큭…….”

카일은 능력을 해제시켰다.

“대공 전하. 제국 쪽에서 전쟁 전에 수뇌부의 회담을 제안했…….”

“우웨에에엑!”

카일은 능력을 해제하자마자 그대로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 버렸다.

그런 카일을 보고 말을 하던 전령은 깜짝 놀랐다.

“어… 어어…….”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는가 생각하는 전령을 두고 아리시아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주인님…….”

“우웨에에엑… 난… 으으으으…….”

격렬한 두통과 자신이 서 있는지 누워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어지러움.

역시 시드의 능력은 특히 부작용이 강했다.

“난 괜…찮……. 그보다… 우우욱…….”

“지금 당장 신관들을 불러올게요.”

아리시아는 황급하게 달려가서 바로 신관들의 끌고 왔다. 그리고 빨리 카일을 치료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신관들의 회복 능력에 카일도 제 몸이 조금씩 회복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후우우우……. 후우우…….”

호흡을 정돈하자 조금은 나아졌다. 여전히 후유증은 있었지만 말이다.

“최악의 멀미와 숙취를 동시에 겪는 느낌이군.”

조금이지만 회복이 된 카일은 아리시아에게 차가운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물을 한 모금 마신 후에 카일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반격 개시다.”

* * *

카일은 바로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서 은밀하게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지금 자신의 상황을 알렸다.

“제 능력을 사용하셨단 말입니까? 그것도 융합한 상태로?”

“그렇다.”

“오오오, 과연, 그렇다면 대공 전하와 융합한 저는 어떻게 된 겁니까? 누구하고 같이 융합하셨던 겁니까? 혹시…….”

“그만,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은 일단 나중으로 하자.”

카일은 시드의 질문 공세를 끊으며 말했다.

“일단 지금부터 내일 전쟁에서 벌어질 일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모두 잘 들어 두도록.”

그리고 카일은 자신이 보고 온 것을 모두 말해 주었다.

“제가 죽었군요.”

“아마 상황을 봐서는 나도 죽었겠지. 거참… 묘한 기분이군.”

발레리아와 검은 바람은 그 사실을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아직 자신이 겪은 일도 아니거니와 어차피 전사인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항상 따라오는 것이었다.

다만 가장 격렬하게 반응하는 건…….

“주인님, 일단 피해야 해요.”

아리시아였다.

그녀는 발레리아와 검은 바람의 죽음에도 충격을 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렇게 강대한 적과 카일이 싸워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했다.

하지만 카일의 이견은 반대였다.

“아니, 후퇴해도 적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지금 기습을 가하는 것이다.”

“기습……. 크림슨 블레이드의 에너지가 완전히 충전되기 전을 기다리시는 거군요.”

시드의 말에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쟁 초반에는 우리가 적을 압도했다. 드리스가 그것을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은 에너지가 부족했다는 말이겠지.”

“확실히 일리가 있군요.”

“크림슨 블레이드의 존재만 없다면 우리 전력이 제국을 앞서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니.”

“하지만 드리스 엔케모니아는 주의해야 합니다. 크림슨 블레이드가 아니라고 해도 그는 9서클 대마도사입니다.”

“그래도 크림슨 블레이드보다는 낫겠지.”

결국 의견은 기습으로 굳어졌다.

“좋아. 결정했으면 바로 움직인다. 호크.”

“예, 대공 전하.”

“전군을 이끌고 적을 공격할 준비를 해라. 발레리아, 검은 바람.”

“예, 주인님.”

“말씀하십시오, 주군.”

“너희 둘이 선공이다. 각자 하늘과 기마를 이용해서 제국군을 휘저어라. 제국에 너희들을 막을 적이 없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상태다.”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시드. 네가 이끌고 있는 마법 전단의 전력은 호크에게 지휘권을 넘겨라. 너는 나하고 같이 움직인다.”

“예, 알겠습니다.”

카일은 여차하면 다시 한번 시간 축을 되돌릴 생각이었다.

사실 지금 기습이라는 과감한 수단을 선택하는 이유도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시드가 반드시 필요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시드와 아리시아와 함께 융합해서 내가 직접 별동대를 이끌고 황제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자.’

그리고 카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바로 시작한다. 속전속결이 생명이니 모두 명심하고 임하도록.”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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