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93화 (193/215)

193화

파죽지세라는 말이 이보다 어울릴 수 있을까?

카일이 이끄는 5만의 병력은 그야말로 거침없이 제국의 영토를 가르며 지나갔다.

해군 병력 8만을 동원해서 제국의 서부 해안을 초토화시킨 후 그중 다시 정예 병력 5만을 추슬러서 그들을 이끌고 제국의 수도로 진격하는 카일 화이트.

화이트 공국의 정예 병력 4만.

레드 로즈 공국에서 지원받은 병력 5천.

호크가 지휘하는 순수 능력자로 구성된 정예 병사 3천.

검은 바람이 이끄는 투란 전사단 300.

발레리아가 이끄는 장미 기사단 200.

아리시아가 이끄는 탐색대 2,000.

탐색대 안에서도 능력자로 구성된 정예 500.

그리고 카일이 숨겨,둔 비장의 전력이 또 한 명 있었다. 그 존재는 바로…….

“화이트 대공 전하, 마법사들의 경계 마법 설치가 끝났습니다.”

“그래, 수고 많았다. 시드.”

카일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인물은 5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중년의 마법사였다.

그의 이름은 시드 테일러.

카일에게 가장 늦게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카일의 측근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시드 테일러.

원래는 마탑에서도 촉망받던 천재였던 인물이었지만 실험 도중 사고로 인해 서클이 파괴되어 마법사로서의 능력을 잃어버린 비운의 천재였다.

자고로 천재가 몰락하면 일반인 이하로 떨어지는 경구가 많은 법이다.

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탑에서는 그를 위해서 마법 이론을 연구하는 연구원 자리를 보장해 주었지만 한때 6서클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그는 그 정도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며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시간만 허비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가 들은 소식이 있었다.

카일 화이트의 은총.

그 은총을 받으면 새로운 능력에 각성을 하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시드가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가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무작정 화이트 공국으로 찾아갔다.

이미 마탑에서도 폐인 취급 받던 그가 화이트 공국의 대공인 카일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화이트 공국에 일하던 마법사들 중에 과거 자신과 안면이 있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간곡하게 사정해서 카일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뜸 무릎을 꿇고 말했다.

“부탁입니다. 저를 구해 주십시오.”

간절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시드의 말에 카일은 사정을 물어봤다. 그리고 그가 어떤 이유로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 이때 카일이 시드를 각성시켜 준다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화이트 공국의 위상과 시스템이 궤도에 올라가면서 카일이 하는 일은 적어졌지만 능력자를 발탁해 꾸준하게 각성시키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오직 카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능력자의 숫자 그 자체가 화이트 공국의 국력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그러니만큼 카일 화이트의 은총을 받기 위한 대기자 명단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밀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카일이 독단으로 시드를 각성시키는 것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좋다. 해 주지.”

일이긴 했다. 일단 왕이니까 말이다.

물론 에이라를 비롯해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은 카일의 변덕에 한숨을 내쉬어야 했지만 말이다.

카일이 그걸 알면서도 시드를 각성시키기로 한 것은 시드의 간절함에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각성.

결과는 대박이었다.

“이건… 사기네.”

“진짜 사기네요.”

시드 테일러가 각성한 능력은 카일이 이 세계에 다시 태어나고 각성시켜 본 모든 능력 중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장 특별한 능력이었다.

비록 정신력의 소모가 막대하기는 했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능력이 각성한 것이다.

카일은 그 순간 시드 테일러를 자신의 최고 특근으로 삼고 화이트 공국의 마법사 부대. 즉, 마법 전단을 만들어서 그곳의 대장으로 만들었다.

코어가 활성화되고 신체가 완벽하게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마법사로서의 능력도 되찾은 시드는 마법 전단의 대장을 맡기에 충분했다.

물론 진짜 중요한 건 시드의 능력이었지만 말이다.

어차피 카일이 능력을 각성시키기 전에 개인적으로 종속 계약을 맺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시드를 최대한 우대하기로 했다.

만약 시드가 그 능력으로 카일의 뒤통수를 때리고자 마음먹으면 감당을 하기 힘들 듯싶었다.

다행히도 시드는 카일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자고로 절망 속에서 구원받은 이들은 자신을 구해 준 존재를 배신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 절망이 깊고 길었던 이들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시드는 능력과 별개로 자신이 마법사로서의 능력을 되찾은 것 하나만으로도 카일에게 남은 평생을 바칠 것을 맹세할 정도였다.

그 결과, 시드는 더욱더 마법에 매진했고 지금은 40대의 나이에 벌써 6서클 마스터라는 경지를 이룩했다.

이대로 순조롭게 성장한다면 7서클 대마도사의 경지는 보장이나 다름없었고 어쩌면 8서클까지 바라볼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 시드가 카일에게 말했다.

“대공 전하, 제국의 황제가 직접 중앙군을 편성해서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서 출진했다고 합니다.”

“황제가 직접? 흠… 이건 예상 밖이군.”

카일은 원래 중앙군이 출격하면 그 틈을 타서 최정예를 편성한 다음 공간이동 능력자를 총동원해서 황실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중앙군이 비어 있는 상황에서 수도의 방비가 약해진 틈을 타서 황제를 사로잡고, 그에게 세계정부와 루마니스 제국의 연결 고리를 캐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제가 중앙군을 직접 이끌고 덤벼든다면 그 방법을 실행하기 힘들어진다.

“어쩌면 우리 작전을 예상하고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군의 규모는?”

“중앙의 정예군으로 20만을 편성했고 진군하는 사이에 인근의 상비군을 끌어들여서 그 군세를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할 때 무렵이면 30만이 넘을 듯합니다.”

“30만이라……. 숫자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군.”

카일이 이끌고 있는 군사는 5만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일반 병사들의 숫자가 아니라 일정 선을 넘어선 강자, 그리고 그 강자의 수준조차 넘어선 초인이라 질이 완전히 달랐다.

카일에게 능력을 각성 받은 이들을 익스퍼트로 치면 최소한 중급은 되고 마법사로 치면 4~5서클 정도는 된다.

그런 이들을 수천을 모아 놨는데 일반 병졸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단순 계산으로 그들이 일반 병사 100명씩만 상대해 줘도 40만 정도는 여유 있게 상대할 수 있다.

물론 제국에서도 강자는 있다.

대외적으로 확인된 제국의 마스터의 숫자는 열일곱. 하지만 숨겨진 전력이 있을 수 있으니 두 배는 더 생각해야 한다.

거기다 루마니스 제국의 마법사들은 그 수준이 높은 것으로 유명했고 익스퍼트 역시 무수하게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카일은 자신 있었다.

그런 강자의 반열에 든 고급 인재들이 루마니스 제국에 아무리 많다고 해도 1천이 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질적으로는 우리가 한참 우위에 있지. 유일하게 변수가 있다면…….’

“드리스는 어때?”

“그때 대공 전하와 격돌한 이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군. 뭐, 나타나면 다시 싸울 뿐이지.”

카일은 한 번 드리스를 격퇴시켜 본 경험이 있으니 다시 온다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싸운다는 작전을 수립했다.

시드의 말이 이어졌다.

“송구하오나 대공 전하. 드리스 엔케모니아를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그는 9서클의 대마도사입니다.”

“알아. 직접 상대해 보기도 했으니 실력은 충분히 인정하지.”

“그때의 그가 전력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때는 힘을 숨겼다는 말인가? 그런 의미 없는 짓을 왜 하지?”

카일의 말에 시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중간에 도주까지 했으니 힘을 숨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전사와 달리 갑작스러운 전투에 제 실력을 발휘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

“진정한 전사라면 항상 일정하게 제 기량을 발휘하는 법이겠지만 진정한 마법사라면 준비를 갖췄을 때 제 기량을 발휘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마법사에게 시간을 주면 위험하다는 말이 있는 법이죠.”

“음, 명심해 두지.”

시드의 말을 듣고 보니 카일은 자신이 너무 방심하지 않았나 싶었다.

상대는 800년을 넘게 산 살아 있는 괴물이다. 시드의 말대로 그가 작정하고 무언가를 준비해서 온다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아리시아를 불러라.”

“예.”

그리고 전령이 나가기도 전에…….

“부르셨어요. 주인님?”

카일의 막사 밖에서 아리시아가 재깍 들어왔다. 마치 ‘주인님. 산책 가나요? 간식 주나요?’라는 듯한 표정의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고 말이다.

카일은 그런 아리시아에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리시아, 제국군의 이동 경로를 수시로 정찰해서 보고해.”

“예. 알겠습니다.”

“기동력이 필요하면 텔레포트 능력자를 동원해도 좋아. 정찰을 위해서라면 30명 정도면 되겠지?”

“예, 충분합니다.”

“좋아. 뭔가 특이한 것을 본다면 바로 보고하도록.”

카일은 시드에게 시선을 돌린 채 아리시아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러면 되겠지?”

“예.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시아의 탐색대에는 투명화, 감청, 천리안 등등의 탐색에 최적화된 능력자들이 많았다. 그들이 꾸준하게 감시를 하며 정찰 보고를 한다면 적의 함정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나머지는……

‘정면 대결로 깨부순다. 최대한 빨리.’

카일의 목적은 루마니스 제국을 무너트리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세계정부의 침공을 막아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루마니스 제국의 정복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일 수는 없었다.

각개격파의 성격상 단기 결전을 원하는 황제.

제국과의 전쟁 이후 세계정부를 염두에 두고 있는 카일.

단기간에 결판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둘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황제가 친정을 하는 제국군 30만과 카일이 이끄는 5만의 군사는 알트란트 평원에서 맞대결을 하게 되었다.

* * *

매복이나 기습 같은 작전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 넓은 평원.

양쪽은 합의라도 한 것처럼 이 장소에서 대회전을 펼치기 위해서 집결했다.

그리고 전쟁을 막 준비하려는 찰나…….

“뭐라고? 만나자고?”

“예. 그렇게 연락이 왔습니다.”

황제 쪽에서 카일에게 전령을 보내서 회담을 가질 것을 주장했다.

사실 대회전을 앞에 두고 양쪽의 수뇌부가 만나서 얘기를 하는 것이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나쁘지 않겠군. 마침 만나서 물어볼 것도 있고 말이야.’

그렇게 마음먹은 카일이 말했다.

“시간과 장소는 우리 쪽에서 정한다. 오늘 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 양쪽 진형의 중앙에서 만나자고 해.”

“예. 대공 전하.”

해가 지고 양쪽 진형은 멀리서 서로가 밝힌 진형의 불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막사를 치고 휴식을 취했다.

그야말로 폭풍전야.

지휘권이 없는 병사들도 느끼고 있었다. 내일 저쪽에 있는 인간들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긴장감 속에서 양쪽의 수뇌부가 은밀하게 만남을 가졌다.

발레리아, 검은 바람, 아리시아를 대동하고 나타난 카일.

“카일 화이트다.”

그런 카일의 맞은편에는 젊은 황제가 나타났다.

“루마니스 제국의 황제 아지무트 시비르 갈프슈타인 루마니스다.”

‘이름 참 길기도 하다.’

카일은 그런 생각을 하며 황제의 좌우에 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한 명은 아는 인물이다. 드리스 엔케모니아. 성질 더러운 9서클 대마도사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로폰트 구스타프 공작인가?”

“역시, 알아보는군.”

‘역시…….’

황제는 가슴을 펴며 뿌듯하게 말했고 카일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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