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84화 (184/215)

184화

딱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카일은 AP―55248를 불렀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첫 마디가…….

“어때?”

이거였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이 한 마디는 참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카일은 세피로스에게 지시해서 AP―55248에게 지난 사흘 동안 세계정부의 통제하에서는 절대 누리지 못할 것들을 누리게 해 주었다.

의, 식, 주 전반의 풍족함과 마음껏 나태해도 괜찮은 자유, 그리고 남자의 본능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아름다운 미녀 등등.

세계정부의 통제하에 평생을 살아온 AP―55248은 절대 느껴보지 못했을 행복을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농축시켜서 체험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농축된 행복 속에서 AP―55248이 느낀 점은 하나였다.

“너무나 행복하고, 황홀하고, 또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삶이 평범한 인간이 누리는 삶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평범은 아니야. 좀 찐하게 체험시켜 준 편이지.”

“그런가요?”

“그래. 그리고 내가 왜 그런 찐한 체험을 시켜 줬는지 알고 있나?”

“…….”

AP―55248은 침묵한 채 생각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를 향한 동정입니까?”

“조금은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너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

“너도 충분히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카일의 말에 AP―55248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고문의 고통보다 사람의 정신을 더 강렬하게 흔드는 것은 행복의 유혹이다.

고작 사흘일 뿐이었지만 AP―55248에게 있어서 지난 사흘의 시간은 나머지 살아온 평생의 시간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그리고 카일은 그런 AP―55248에게 유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따라서 앞으로 쭉 그런 삶을 살아 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그걸 들으면 이제 물러날 수 없다. 그래도 하겠나?”

“하겠습니다.”

“…좋다.”

그리고 카일은 AP―55248에게 자신이 세운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카일의 설명을 다 들은 후 AP―55248은 고무된 표정으로 말했다.

“카일 님. 헛수고를 하셨습니다.”

“뭐가 말이지?”

“저에게 시키실 일이 그것이라면 설득하는 데 크게 공을 들이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저 하라고 한 마디만 했다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했을 겁니다.”

“그런가?”

“예. 물론입니다.”

카일은 피식 웃으며 AP―55248에게 말했다.

“알겠다. 그럼 너에게 그 임무를 맡기지. 그리고 임무에 앞서서 너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겠다.”

“선물은 필요…….”

“아폴론.”

“…예?”

“너의 이름이다.”

순간 AP―55248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이름. 내 이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의 뺨에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혹시 싫은가?”

“아닙니다. 저는… 저는 오늘부터… 아폴론입니다. 그게 제 이름입니다.”

목이 메서 말을 제대로 잊지 못하는 아폴론을 보며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아폴론.”

그렇게 아폴론은 카일의 사람이 되었다.

* * *

제이는 방 안을 뚜벅뚜벅 걸으면서 몹시 분노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제길, 못난 자식들, 중화기로 무장까지 하고 이런 원시적인 미개인들한테 졌다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AP―55248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출동해서 적의 후방 교란 부대와 싸운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전투의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군은 패배하고 능력자 부대를 이끌고 있던 지휘관인 AP―55248은 실종되었다.

이건 뼈아픈 손해였다.

물론 루마니스 제국의 황제는 다르게 생각했다.

황제의 입장에서는 정규군도 아닌 원 어스 클랜에서 용맹하게 싸워서 적의 후방 교란 부대를 물리쳐 주었다고 생각되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 후, 발레리아와 아리시아가 후퇴하면서 루마니스 제국군의 후방 보급선은 안정되었다.

그러니 황제로서는 원 어스 클랜의 공적을 크게 치하하며 포상까지 내렸다.

“그 포상의 내용도 열받아.”

제이는 이를 뿌득 갈았다.

황제가 내린 포상은 나름 파격적이었다. 후궁의 애인에 불과했던 혜정의 위치를 제국의 비(妃)로 정식으로 책정한 것이다.

일개 평민 출신의 여인을 비로 승격시켜 준 것은 황제 입장에서는 몹시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제이의 입장에서는 짜증만 치미는 일이었다.

이 일로 인해서 혜정 본인은 황제라는 중요 관리 대상을 더 엄중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높은 평가를 받겠지만 자신은 얻은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길, 다른 걸 다 떠나서 AP―55248를 잃은 게 너무 아까워.’

세계정부는 시민들의 계급에 의해서 그 권리와 역할을 엄중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 법령에 따르면 2급 시민인 제이가 자신의 관리하에 두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급 능력자는 한 명이 다였다.

그리고 그게 바로 AP―55248이었다.

다른 능력자를 파견받고 싶으면 세계정부에 AP―55248을 반납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피해 보상금을 지불하고 파견받아야 했다.

그게 제이를 가장 열받게 했다.

“제길, 나는 지금 세계정부의 중요한 과업을 위해서 노력 중이잖아? 그럼 상급을 넘어서 S급 능력자들도 막 파견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이런 불평을 세계정부를 통해서 정식으로 할 수는 없다. 목숨이 아까우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나? 재산이 날아가겠지만 그래도 상급 능력자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할 테니…….’

결국 제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세계정부에 돈을 지불하고 새로운 상급 능력자를 데려오는 것밖에 없었다. 그때…….

“손님이 왔습니다.”

부하 중에 한 명이 제이에게 말했다.

“손님? 누군지 보고 중요한 인물 아니면 꺼지라고 그래.”

“…….”

제이의 신경질에 부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못한 것이다.

“제길, 네 새끼들하고 대화를 하려고 하는 내가 미친놈이지.”

중급 이하의 능력자들은 그 감정을 철저하게 통제당한다. 덕분에 관리하기는 용이하지만 자잘한 명령을 내릴 때는 굉장히 불편했다.

마치 인공지능처럼 딱딱한 사고 구조 때문에 지금처럼 미묘한 자기 판단이 필요한 명령은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이는 직접 나가서 그 손님이라는 자를 만나 볼 수밖에 없었다.

‘별것 아닌 놈이면 죽여 버릴 테다.’

그렇게 씩씩거리며 나간 제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 너는?”

“복귀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거기에는 제이가 죽었다고 생각한 AP―55248이 있었다.

비록 한쪽 팔이 날아가고 한쪽 눈도 뭉개진 상태였지만 말이다. 거기다 한쪽 다리도 절뚝이고 있는 걸 봐서는 상태가 굉장히 심각해 보였다.

“네놈, 살아 있었나?”

“적에게 한 번 사로잡혔지만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손상을 입었습니다.”

“허어어… 그래. 그렇군.”

제이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쓸모없는 놈이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비록 엉망진창이 상태라고 해도 살아만 있다면 세계정부에 무사히 반납할 수 있다.

AP―55248를 반납하고 다른 상급 능력자를 지급받으면 지금 하고 있는 임무도 더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정부에 반납 절차를 밟을 테니 따라와라.”

“예, 알겠습니다.”

제이는 AP―55248이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서 칭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세계정부에 반납할 테니 빨리 따라오라는 말뿐이었다.

물론 AP―55248 역시 그런 제이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제이는 이진영 대위에게 보고했다.

잠시 능력자의 반납과 재보급을 위해서 지구에 갔다 오겠다고 말이다.

―이동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아깝다. 너하고 그 반납할 놈 둘만 따로 이동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대위님.”

그렇게 대답을 한 제이는 AP―55248을 데리고 클랜의 지하 본부에 있는 전송 장치로 이동했다.

“어디 보자, 나하고 이 녀석을 이동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어느 정도더라.”

평범한 인간인 제이는 이동하는 데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능력자의 경우 일반인보다 차원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더 많았다.

특히 제이 같은 상급의 능력자들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랬다.

제이는 한쪽에 있는 에너지 보급 장치에 충분한 에너지를 충전시킨 후 장치를 가동시켰다.

“이제 가면 되는데, 네가 등 뒤에 매고 있는 가방은 뭐냐?”

“예. Dr. 피터께서 명령하신 이세계의 연구 대상 물품입니다.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마법에 관련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명령이 내려졌다고? 나를 안 거치고 네놈한테만?”

“예. 그렇습니다. 극비 명령이라고 지시받았습니…….”

퍼억!

말을 하던 AP―55248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이의 발차기가 AP―55248의 복부를 걷어찼기 때문이다.

“XX, 사람 개짜증 나게 하는군.”

자신을 거치지 않고 도구 따위에게 독자적인 명령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몹시 불쾌한 제이였다.

“…….”

AP―55248은 거기에 어떠한 불평을 하지도 않고 그냥 묵묵히 침묵하고만 있었다.

“빨리 간다. 올라와.”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제이와 AP―55248은 전송 장치를 통해서 지구로 이동했다.

지구에 도착하자 AP―55248과 제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공기가 진짜 안 좋군.’

“제길, 공기가 썩었네. 이거 하나는 저쪽이 훨씬 좋았어.”

지금 지구는 인류가 생존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육지 면적의 20%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존 가능한 지역도 어디까지나 생존이 가능하다, 정도지 그렇게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단순히 숨만 쉬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목이 칼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빨리 돌아가야겠군. 따라와라.”

“예. 알겠습니다.”

AP―55248는 제이를 따라서 움직였다.

전송 장치가 있는 이 시설은 세계정부의 엄중한 관리를 받고 있다.

중간중간에 엄중한 검문을 거치고 생체 인식 보안까지 다 통과한 후에야 본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이는 나가자마자 AP―55248에게 차 키를 넘겨주며 말했다.

“네가 운전해라. 일단 능력자 선별 센터로 간다.”

제이는 한쪽 다리를 절뚝이고 한쪽 팔이 잘려 있는 AP―55248에게 운전을 맡기고 태연하게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AP―55248는 차 키를 받아서 차를 몰았다.

둘을 태우고 있는 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제이는 뒷좌석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하아암, 차만 타면 왜 이렇게 졸리나 몰라.’

그렇게 제이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찰싹, 찰싹.

“일어나라.”

“으음, 누가 시건방지게… 응?”

정신을 차린 제이는 순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AP―55248이 자신을 바라보며 뺨을 툭툭 치고 있는 것이다.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꿈인가?”

“아니, 현실이다.”

그리고 AP―55248는 제이에게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체감시켜 줬다.

짜아아악!

강렬한 싸대기로 말이다.

“큭. 너 이 새끼.”

제이는 정신이 번쩍 들어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이 자리가 도심 외곽 지역의 원자력 폐기물 처리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즉, 아무도 오지 않는 장소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군. 설마 여기서 날 어떻게 해 보겠다고 온 거냐?”

“그런 거지.”

“하아아아, 멍청한 놈. 고통 1단계.”

제이는 손가락을 튕기며 명령했다. 하지만…….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는 AP―55248을 보고 제이는 크게 당황했다.

“고, 고, 고통 1단계.”

“…….”

“고통 1단계. 아니, 2단계. …아니. 아니 그냥 죽여. 고통 최종 단계!”

명령어를 아무리 외쳐도 AP―55248은 끄떡도 없었다.

그는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명령을 받았을 때 1차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순간이 있었다.”

“잠, 잠깐, 진정해라. AP―55248.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일단 진정… 크으으윽…….”

제이는 강인한 염동력이 자신의 목을 잡아서 위로 끌어 올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로 뒤룩뒤룩 살이 찐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AP―55248는 그런 제이를 보고 말했다.

“네놈은 절대 곱게 죽지 않는다. 최소한 내 동료들이 느낀 고통의 만 분의 일이나마 느끼고 죽어라.”

“끄… 끄으으으. 이, 이건, 아니. 끄아아아악!”

그리고 처절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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