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탐색대의 전투대원들은 대부분 원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한 능력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복잡한 난전 속에서도 정확하게 적들을 포착해서 저격했다.
난전 속에서 장미 기사단과 힘겨운 전투를 지속하고 있던 적들은 외부에서 정밀한 저격까지 더해지자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갔다.
그러자 적들 중에 한 명이 외쳤다.
“후퇴한다!”
그 명령이 떨어지자 적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산개해서 후퇴하라. 각자 생존을 최우선으로… 읍!”
카카카카카카카칵!
지휘를 내리던 적은 황급하게 자신의 몸을 염동 실드로 둘러쌌다. 그러기를 무섭게 분쇄기에 자갈이 갈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며 눈앞에 무수한 섬광과 불꽃이 번뜩였다.
그런 지휘관의 앞에 양손에 짧은 단검을 들고 있는 아리시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다른 애들은 다들 벙어리인데 너만 유일하게 좀 다르네.”
“…….”
입을 꾹 다무는 놈을 보고 아리시아가 말했다.
“나하고 같이 좀 가야겠다. 거부는 안 받겠어.”
“동감이야.”
아리시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대의 등 뒤에서 발레리아가 말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적을 노려보고 있는 발레리아는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었다.
화이트 공국 건국 이후, 아니, 바이에른에서 모험가로 활동하던 시절까지 포함해서 발레리아가 이끄는 부하들이 이렇게까지 많이 상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여기서 적의 지휘관까지 잡지 못하면 죽은 부하들을 볼 면목이 없다.
“각오해라.”
발레리아는 지친 몸에 다시 힘을 끌어 올렸고 그녀의 전신에 오러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 * *
‘위험해. 오랜만에 말이야.’
발레리아와 아리시아에게 앞뒤로 포위당한 인물. 그는 이전에 검은 바람과 부딪힌 적이 있는 AP―55248이었다.
전투가 벌어지고 후퇴할 때가 되면 그는 항상 수방에 가장 늦게까지 남았다.
그렇게 자신이 후방에서 적을 막아내야 부하들이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적도 있었다.
강적과 맞서야 했거나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수의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죽은 적은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AP―55248은 항상 살아남았다.
그건 그가 세계정부의 전투 요원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편에 들어가는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어떤 경우보다 지금이 가장 큰 위기일 것이다.
발레리아와 아리시아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움직였다.
동시에 움직였지만 먼저 도착한 것은 아리시아였다.
가속 능력을 가진 그녀의 공격에 미리 대응하고 있던 AP―55248은 미리 전개해 둔 염동 베리어로 공격을 막았다.
카카카카카카!
‘빠르다. 스피드는 S급, 하지만 파워는 없어.’
AP―55248은 능력자 간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적의 능력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 발현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적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보는 가능하면 숨기는 것이 중요했다.
아리시아의 공격을 막아낸 AP―55248은 뒤편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았고 그 즉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콰아아아앙!
“칫!”
그가 허공으로 날아오른 순간 그가 있던 자리에 발레리아의 강력한 일격이 날아갔다.
‘피하기를 잘했군. 저건 막을 수 없어.’
중력 조작으로 물리적인 파괴력을 늘린 상태로 휘두르는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검은 바람이 거대화해서 하는 공격력은 광범위하게 강력하게 덮치지만 발레리아의 경우 그 파괴력이 작은 검에 집중되어 버린다.
순수한 일점의 파괴력만 보면 그녀가 검은 바람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말이다.
단 두 번의 공격을 본 것만으로 AP―55248는 적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피할 수 없지만 막을 수는 있을 것 같은 아리시아의 공격, 피할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은 발레리아의 공격.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AP―55248이 내린 결론은…….
“흡!”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지상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발레리아와 아리시아가 지상에서 경계 자세를 잡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비행 능력은 없는 거군’
AP―55248은 둘에게 비행 능력이 없음을 확신했다. 이건 확실한 호재였다.
아리시아의 등 뒤에 활이 보이긴 했지만 저런 원시적인 냉병기 따위가 자신에게 위협이 될 리가 없다.
‘무시하면 될 뿐.’
그렇게 자신의 이점을 자각한 AP―55248는 양손을 지상으로 뻗었다. 그리고.
“받아라.”
퍼퍼펑! 퍼엉!
무시무시한 파괴력의 염동파가 지상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마치 융단 폭격을 하는 듯한 염동파의 공격에 발레리아와 아리시아는 그저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둘은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적의 공격을 피했다.
AP―55248는 그런 둘에게 좀처럼 공격을 적중시키지 못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아리시아와 발레리아는 아예 상대방을 공격할 수단 자체가 없었다.
멀리 떨어져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부하들 중에는 비행 능력이나 원거리 요격 계통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지금 이 전투에 끼어들지 않았다.
AP―55248의 염동파가 너무 파괴적이어서 엄두가 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들은 믿고 있었다. 발레리아와 아리시아라면 반드시 이겨 줄 거라고 말이다.
발레리아와 아리시아는 적의 공격을 계속 피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적의 염동파가 너무나 굉장한 파괴력이긴 했지만 그래도 상황이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에너지 소모가 계속 가능할 리가 없어.’
‘반드시 한계는 온다.’
이 둘도 능력자이기에 알고 있다.
초능력은 편리하고 강력한 능력이지만 그래도 에너지의 총량은 있다.
마법사가 소모하는 오러나 기사들이 소모하는 오러처럼 능력자들이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있었다.
무한정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이렇게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직접 뿜어내는 계열은 더욱더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후우우… 후우우…….”
무한정 쏟아지고 있던 AP―55248의 공격이 멈췄다.
허공에 떠서 숨을 고르는 적의 모습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못 잡았군.’
AP―55248로서는 아쉬운 결과였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었다.
자신이 이렇게 적의 발목을 잡아주는 사이 부하들은 도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나도…….’
“음?”
몸을 빼려던 AP―55248는 순간 특이한 광경을 보고 실소해 버렸다.
금발에 활을 매고 있던 적이 등 뒤에 활을 뽑아서 시위를 매기고 있는 것이다.
‘제정신인가?’
어이가 없었다.
세계정부는 이 세계에 관해서 여러 가지로 조사를 했다.
문명의 수준은 어떤가?
사회의 구조는 어떤가?
그중에서도 특히 공들여서 조사했던 것은 전쟁의 수행 방식과 무기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조사한 보고서에 활의 위험도는 D급이었다.
정확성과 위력이 다소 높은 케이스를 좀 발견하기는 했지만 결국 활 자체는 지구의 냉병기 시대의 석궁 정도가 한계였다.
그런 활로 자신을 공격한다? 먹힐 리가 없다.
‘아니, 방심은 금물이다.’
AP―55248는 혹시 모르니 남은 힘으로 염동력 베리어에 힘을 집중했다.
그리고 아리시아가 본격적으로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따다다다다다당!
유리 천장에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속 능력을 이용한 아리시아의 속사와 화살의 속도는 그만큼 놀라웠다. 하지만…….
‘이게 다인가? 괜히 걱정했군.’
AP―55248는 허탈함에 마음을 놨다.
확실히 대단한 속도와 연사력이긴 하지만 아무리 잘 봐줘도 단거리에서 쏘는 기관총 정도의 위력이었다.
상대도 능력자인 만큼 혹시 뭔가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것도 아니었다.
‘됐다. 마무리로 한 방 먹이고 빠지자.’
AP―55248이 그렇게 마음먹고 염동 베리어를 걷었다. 이 정도 공격이라면 거창한 방어막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발레리아 씨!”
아리시아가 크게 소리 지르며 다시 화살을 메겼다. 그리고 AP―55248는 경악했다.
아리시아가 화살을 쏘고 순간 누군가가 위로 솟구쳤다. 발레리아였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하늘 위 높은 곳에 떠 있는 AP―55248까지 점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탁탁탁.
그녀는 아리시아가 발사한 화살 위를 발로 사뿐하게 밟으면서 그대로 화살을 계단처럼 타고 올라갔다.
“헉!?”
AP―55248는 경악했다.
상대방에게 무게 혹은 중력을 조작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다.
그렇다면 자기 체중을 줄여서 저런 짓도 할 수 있기는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능력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화살을 하늘 위로 올라간다는 신기를 누가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아리시아의 화살은 가속 능력으로 인해서 그 속도가 총알보다 훨씬 빠른데 말이다.
이게 가능한 것은 순수한 기사로서 수련을 거듭해서 쌓아 놓은 발레리아의 실력 때문이었다.
화살을 밟고 올라간 발레리아는 순식간에 적의 앞에 도착했고 염동 베리어를 거두고 있던 AP―55248로서는 미처 대응할 수가 없었다.
“큭.”
놈은 그 와중에 다시 한번 염동파를 발사해서 발레리아를 튕겨 내려고 했지만 그전에 발레리아의 일격이 먼저였다.
“끝이다!”
“큭.”
발레리아가 일격을 내려치는 순간 AP―55248은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충격이 그를 덮치고 그게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 * *
발레리아는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아서 사뿐하게 착지했다.
100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떨어졌지만 능력을 사용했는지 발소리 하나 나지 않고 사뿐하게 착지했다.
그리고 지상으로 내려온 그녀에게 아리시아가 다가와서 말했다
“어때요?”
“괜찮아. 살아 있어. 검면으로 쳤으니까.”
그 말에 아리시아는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리가 하도 커서 죽인 줄 알았어요.”
“생각 같아서는…….”
발레리아는 자신의 허리에 잡고 있는 AP―55248을 내려놓으면서 이를 갈았다.
이번 전투에서 죽은 그녀의 부하들을 생각하면 검을 적당히 휘두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원한을 가지는 건 기사의 도리가 아니겠지.”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스렸다.
전쟁터에 온 이상 서로 목숨을 노리고 싸우는 것은 당연한 것. 이것도 기사의 숙명인 것이다.
거기다 부하들의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적들 중에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잡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