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200대의 수레와 그 수레를 이송하기 위해서 동원된 병력이 대략 2천 남짓.
솔직히 이제까지 발레리아와 아리시아가 펼쳐왔던 작전대상 중에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타깃이었다.
이 작전을 마지막으로 이제 철수할 생각이기도 했던 두 사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나갔다. 그렇다고 임무를 대강하지는 않았다.
적이 휴식을 취하기를 기다렸다가 아리시아가 포위망을 펼치고 발레리아와 그 부하인 장미 기사단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좋아. 가자!”
“옛!”
발레리아의 명령 한 마디와 함께 그리폰에 올라탄 장미 기사단이 날아올랐다.
하늘 높이 올라간 그녀들은 빠르게 목표를 향해서 날아갔다. 그리고 목표가 가까워지자 발레리아가 손을 들어서 신호했다.
“2조, 3조. 하강하라.”
“옛!”
“알겠습니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20기의 그리폰 라이더가 쐐기 모양으로 대형을 갖춰서 지상으로 급강하했다.
그리고 목표에 강하한 순간 그녀들은 그리폰 안장에서 재벌린을 꺼내서 적을 향해 조준했다.
적들도 가까워지는 그리폰 라이더들을 발견하고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딱히 대응 수단이…….
투투투투투투투투!
“끼이이이익!”
급강하하던 그리폰 라이더들이 갑자기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리폰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 영향으로 그 위에 있는 그리폰 라이더들도 다친 것 같았다.
“저건?”
발레리아는 경악했다.
상대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그리폰들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평범한 화살 따위는 먹히지도 않는 그리폰들이 말이다.
‘어떻게?’라는 의문이 드는 동시에 그녀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각했다.
“산개하라!”
그녀의 지시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편대를 이루고 있는 장미 기사단의 대형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과 동시에 지상에서 좀 전에 들렸던 굉음이 다시 울렸다.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
굉음과 동시에 무언가 불씨 같은 것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저건가?’
발레리아는 적의 대공 무기가 무엇인지 깨닫고 바로 행동에 나섰다.
“하아아!”
그녀가 그리폰의 고삐를 잡고 지상으로 조종하는 주인의 뜻을 깨달은 그리핀이 날개를 접고 수직으로 직하강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이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녀와 그리폰이 지상으로 하강했다.
그녀의 접근을 알아챈 적이 대공 무기를 그녀 쪽으로 틀어졌다.
그리고 발레리아는 봤다.
투투투투투투투!
강한 불꽃과 함께 사람의 손가락 정도 되는 작은 쇠붙이가 자신을 향해서 줄지어 날아오는 것을 말이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그녀의 시력으로도 좀처럼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물러나기는 이미 늦었다. 적의 조준선이 자신에게 완전히 틀어지기 전에 적의 무기에 도달해야 한다.
그걸 깨달은 순간…….
“중력 열 배!”
그녀는 낙하 중에 중력을 더했고 순간 그녀를 태우고 있는 그리폰의 낙하 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빨라졌다.
그리고 적의 조준이 닿기도 전에 그녀와 그리폰이 한 몸이 되어서 적에게 도달했다.
콰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겼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대공 무기도 파괴되었다.
“단장님!”
“괜찮습니까?”
창공에서는 회피에 주력 중이던 다른 장미 기사단의 기사들이 발레리아의 이름을 외쳤다.
그녀들의 단장인 발레리아가 강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굉음과 충격은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때, 커다란 먼지구름 속에서 한 명의 인영이 빠른 속도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검에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를 두르고 적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단 일격에 다섯의 적을 갈라 버린 그녀의 건재한 모습에 장미 기사단은 환호했다.
“역시.”
“그럼 그렇지.”
자신들의 단장은 무사했다. 그리고 적들의 남은 대공 무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지상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4조 가자!”
“5조 돌입한다!”
“6조, 단장님한테 가세한다. 돌격!”
그리고 그녀들은 발레리아와 보조를 맞춰서 지상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바로 난전이 시작되었다.
* * *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적의 무기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그게 그리폰의 두꺼운 가죽과 근육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장미 기사 단원들은 지상으로 내려가서 싸우기 시작했다.
전원 익스퍼트에 능력자이기도 한 그녀들은 순수한 전투력에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전투는 쉽지 않게 흘러갔다.
타타탕!
“아아악!”
“제일라!”
“제길, 적의 무기에 주의해!”
“소리가 나면 움직여! 바로 피… 아악!”
“리우라!”
마치 꽃잎이 떨어지듯이 장미 기사단의 단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들은 분명 강했지만 적들 역시 강했다. 처음 보는 신무기는 까다로웠고 무엇보다 적들 중에 상당수는 능력자였다.
“각성자다.”
“우리도 대응해! 전력을 숨기지 마!”
물론 장미 기사단의 기사들도 능력자들이다. 맞서 대응해서 싸우기 시작하자 일대가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콰아앙! 쿠웅! 쩌저적!
불과 뇌전, 얼음이 난무하고 누군가는 거대화하고, 누군가는 신체를 경화하고, 짧은 거리를 순간이동 하며 싸우는 자들도 있었다.
기상천외한 능력을 갖춘 능력자들이 이렇게 난전을 부리면 이제는 작전이나 대형에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저 누가 더 강한가? 누가 더 운이 좋은가?
이게 생존의 여부를 결정하는 전부였다.
루마니스 제국의 남부 전선 후방 보급선.
그곳에서 이 세계 최초의 능력자들 간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아악!”
“니나! 제길, 비켜!”
“쉐일라, 뒤에!”
앞뒤 가리기도 힘든 난전이었지만 전체적인 전황은 장미 기사단이 열세였다.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른 그녀들은 적들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적들이 하고 있는 이상한 무장은 익스퍼트인 그녀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한 차례 굉음이 울리고 나면 날아오는 작은 암기는 그녀들도 좀처럼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강력했다.
여기까지는 양쪽의 전력은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초능력.
양쪽 모두 각성자로 구성된 전투 부대였지만 장미 기사단보다 상대편이 능력을 더 능숙하게 사용했다. 마치 능력자를 상대로 하는 전투가 익숙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양쪽의 냉철함이었다.
아니, 이걸 과연 냉철함이라고 불러도 될까?
“아아악!”
“케이티, 뒤로 물러나!”
“아직 할 수…….”
“물러나 조장 명령이야!”
장미 기사단은 동료들이 당할 때마다 목청 높여 소리치며 서로를 챙기고 있었다.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같은 구원을 받은 그녀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끔찍하게 챙겼다. 그렇기에 동료들이 한 명씩 당할 때마다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 결과…….
“비켜! 비키라고! 이 새끼들아! 제일라!”
“오지 마! 여긴 위… 아악!”
부상을 당해서 집중포화를 당하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몸이 부서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돌격하다가 부상을 당하는 단원들이 사방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장미 기사단에 비해서 상대들은 동료가 죽거나 쓰러져도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자기 자신이 쓰러져도 묵묵히 현장에서 가능한 전투 행위를 지속했다.
팔이나 다리가 잘려도 계속 싸우고 그러다 쓰러져서 전투가 불가능하게 되면 품 안에 가지고 있는 소형 폭탄을 터트려서 자폭하기까지 했다.
분명 피가 흐르는 생물과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감정이 없는 전투 인형을 상대로 싸우는 것 같았다.
그 두 가지 차이가 점점 장미 기사단을 궁지로 몰고 있었다.
‘위험해. 이대로 가면…….’
발레리아는 초조해졌다.
이대로 가면 이 전투에서 패배하는 건 물론이고 장미 기사단 전체에 막대한 손실이 생길 것 같았다.
아니, 손실은 이미 생겼다.
화이트 클랜 시절부터 함께 하면서 거의 희생이 전무하다시피 하면서 모든 임무를 수행했던 부하들이 이미 몇 명이나 바닥에 누워서 싸늘한 주검이 되고 있었으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
발레리아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분노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지휘관의 분노는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
분노는 초조함을 부르고, 초조함은 실수를 부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적은 그녀의 작은 실수를 놓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단장님, 뒤…….”
부하의 목소리를 듣고 발레리아가 반사적으로 허리를 틀어서 뒤쪽으로 몸을 틀려고 하는 그 순간…….
퍼어어어엉.
“커허억.”
어마어마한 파워의 염동파가 발레리아를 덮쳤다.
발레리아는 마치 수십 톤의 바위에 얻어맞은 것처럼 강력한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가 버렸다.
수십 미터를 날아가서 바닥을 뒹군 그녀를 본 순간 장미 기사단의 기사들은 경악했다.
항상 강하고 아름답고 당당한 등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준 발레리아 드 스콧. 그녀가 저렇게 바닥에 쓰러져 있는 광경은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 말이다.
“단장님!”
“지켜! 단장님을 지켜!”
“비켜어어어!”
장미 기사단의 조장급 기사들이 무리하게 적을 물리치고 달려서 발레리아를 지키려 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이 몸으로 쓰러진 발레리아를 가로막은 순간…….
퍼펑! 콰아앙! 투투투투투투!
적의 집중포화가 그 자리에 쏟아졌다.
“쿨럭. 클, 클라리스… 비켜.”
발레리아는 쓰러진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자신의 앞에 서서 버티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그녀의 이름은 클라리스.
장미 기사단 30조의 조장이며 조장들 중에는 가장 막내로, 장미 기사단의 다른 조장이나 발레리아가 항상 동생처럼 귀여워하던 여기사다.
그런 그녀가 발레리아 앞에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녀가 각성한 초능력 신체 경화를 사용하고 있는 듯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쏟아지는 화력이 너무 무시무시했다.
“비켜! 비키라고! 명령이다. 클라리스!”
발레리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클라리스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쏟아지는 무수한 공격에 갑옷이 다 터져 방패를 들고 있던 팔도 날아가 버렸지만 그래도 그녀는 대지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꿋꿋하게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버텨준 덕분에…….
“단장님!”
근거리 텔레포트 능력을 지니고 있던 제니아가 발레리아를 챙겨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몸을 피하고 나서야 클라리스가 뒤로 쓰러졌다.
선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밝은 금발 머리는 엉망이 되고, 한쪽 팔이 날아갔고, 전신 어느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게 망가졌지만 그래도 쓰러진 그녀의 입가에는 동료를 지켜냈다는 만족감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클라리스!”
“제길, 다 죽어 버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남은 장미 기사단원들도 복수심을 연료 삼아 투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그때…….
핏!
섬광과도 같은 무언가가 다가와서 전장에 난입했다.
흐릿한 금색의 무언가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속도로 전쟁터를 종횡했고 그것이 스쳐 지나가면 그 자리에는 반드시 적들이 쓰러졌다.
“아리시아 대장!”
“지원군이 왔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수백의 능력자들이 전투에 가담했다.
“쏴라!”
“장미 기사단을 엄호하라!”
“모두 조심해. 전원 능력자다.”
아리시아가 이끄는 탐색대의 능력자들 중에서도 오직 전투 계통에만 특화된 능력자 300이 이 전장에 난입한 것이다.
이 300의 능력자가 전황을 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