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76화 (176/215)

176화

1승 1패.

언뜻 들으면 대등하다고 여길 수 있는 숫자였지만 그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1승으로 얻은 것보다 1패로 잃은 것인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야습을 감행하는 도중 유인책을 곁들인 매복 공격은 고르시파 왕국군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

사망자가 5천이 넘었고 부상자는 2만에 가까웠다. 부상자 중에 절반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힘들 정도의 중상자들이었다.

거기다 더 심각한 것은 군량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는 것이다.

전쟁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군량을 잃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빅토르라고 해도 병사들이 먹을 빵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빅토르는 요새로 돌아온 후 바로 카일과 통신을 연결했다.

“어렵게 되었네. 사위.”

―어째서 무리한 공격을 하신 겁니까?

“내 욕심이 과했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군.”

당초 계획대로 원군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공격하다 실패한 빅토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빅토르에게 카일이 말했다.

―군량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아직 위험할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절반가량이 불에 타 버렸으니, 군사의 운용에 크게 제한이 걸릴 수밖에 없네.”

―군량은 제가 바로 수송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간 김에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후송해서 치료하는 것도 맡겨 주십시오.

“고맙군. 덕분에 한숨 돌리겠어.”

카일의 도움에 빅토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에게 카일이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본래의 작전에 충실해야겠지. 엘파소 왕국과 미들랜드 왕국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점령지의 수성에 주력할 생각일세.”

―정석적인 대응이지만 그래서는 적들이 대응하기도 쉽습니다. 이미 그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이대로 적의 기세가 살아 있는 채로 전쟁을 지속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저희 쪽의 작전은 아직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은 장인어른께서 적들의 눈을 돌려주셔야 합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기는 어려운 상황이야. 아니면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지금 많은 병력을 뺄 수는 없지만 유격 활동이 가능한 부대를 빼서 적진을 교란시켜 보겠습니다. 그것으로 아군의 사기를 올려 주십시오.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가 없군. 부탁하겠네.”

빅토르와의 통신을 끊은 카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너희 둘이 나서야겠다.”

“맡겨만 주십시오. 주인님.”

“명령이시라면 즉시 움직이겠습니다.”

듬직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들의 정체는 아리시아와 발레리아였다.

카일의 명령에 대답하는 그녀들의 태도는 실로 늠름하고 믿음직했으며…….

“일단 옷 좀 입을까?”

동시에 몹시 섹시했다.

바로 어젯밤 셋이서 한 이불을 덮고 난 직후이니 말이다.

카일과 그녀들이 모두 옷을 입고 난 후 카일은 본격적인 작전을 지시했다.

“지금 공국의 병력들 대부분은 작전에 투입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 그리고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화이트 공국이 이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지.”

“예, 주인님.”

“이해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둘을 보고 카일이 전장의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적은 아군의 군세를 막기 위한 저지선을 구축하는 동시에 사방에서 병력을 모집하며 점점 더 그 군세를 불려가고 있어.”

“적진에서 전쟁을 할 때 감안해야 할 불리함이죠. 심지어 루마니스 제국의 인구와 생산력을 생각하면 적에게 시간을 주는 것은 이롭지 않습니다.”

기사 교육을 받아서 군사적인 식견이 있는 발레리아가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했다.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못 하게 해야지.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예, 물론입니다.”

“좋아. 지휘는 발레리아가 맡는다. 아리시아는 발레리아의 백업을 맡아줘.”

“예, 주인님. 잘 부탁해요. 발레리아 경.”

“오랜만에 같이 싸우는군.”

발레리아와 아리시아. 카일의 심복 중에서도 힘과 충성 그리고 미모까지 모두 같은 두 명이 전장으로 출격했다.

* * *

전투에서 패하고 요새에 주둔 중인 빅토르의 군세에 원군이 합류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상대가 가만히 있는다면 모르겠지만 바보도 아니고 그럴 리가 있는가?

케메로 후작은 전시 사령관의 권한을 이용해서 주변 영지에서 병력과 물자의 동원령을 내렸다.

“왜 제국이 제국인지 보여주마.”

그가 수도에서 출발할 당시 데리고 온 병력은 15만이었다. 하지만 빅토르를 상대로 승전을 거두고 주변 영지에 동원령을 내려서 병력을 불려 지금 병력의 숫자는 25만까지 불어났다.

루마니스 제국의 저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싱카라 연합 제국 역시 제국이었지만 이 전쟁에 동참하겠다고 의지를 표한 것은 열 개의 연합 국가 중에 세 개뿐이다.

같은 제국이라도 해도 황제의 명령 아래에 총력전을 펼칠 수 있는 루마니스 제국과 연합체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싱카라 연합 제국의 차이인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케메로 후작이 이끄는 병력은 점점 늘어날 테고 방어선도 점점 강고해질 것이 분명했다.

카일은 그걸 두고만 볼 수 없어서 손을 쓰기로 했다.

기마와 보병, 그리고 다수의 수레를 포함한 3,000의 병력이 전장으로 부지런히 이동했다.

케메로 후작의 동원령을 받은 인근 영지의 귀족 중에 한 명이 직접 군을 이끌고 참전을 결정한 것이다.

그냥 군사만 보내도 되겠지만 직접 군을 이끌고 이동한다는 것은 그가 이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문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고 병사들의 무장도 최대한 번듯하게 갖춘 그 병력은 절도 있는 행렬을 갖추고 행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사 한 명이 군을 이끌고 있는 귀족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주군. 오늘은 이쯤에서 쉬어가야 할 듯합니다.”

“오늘 중으로 도착할 수 없겠나?”

“무리해서 행군을 해 봐야, 늦은 새벽이나 도착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병사들이 지친 기색이 역력할 텐데 주군의 위명에 흠이 갈까 두렵습니다.

“음, 그도 그렇군.”

기사의 조언을 받은 그는 병사들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전군 캠프를 차리고 휴식을 취해라. 갑옷은 벗고 편하게 쉬어도 좋다.”

“주군, 전시 행군 중에 갑옷까지 벗게 하는 것은 조금 걱정됩니다.”

“자국의 영토 안이 아닌가? 거기다 적은 한 차례 강한 반격을 맞고 뒤로 물러났다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하지만 병법상의 원칙은…….”

“훗, 어찌 세상사를 원칙대로만 움직이겠나? 병사들의 사기도 있으니 편히 쉬게 하게. 술도 조금 돌리고.”

“예, 알겠습니다.”

조언을 하던 기사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고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 후, 병사들은 최소한의 경계 병력만 세워 놓고 마른 과일과 육포를 안주 삼아서 술을 마시며 전쟁 전의 달콤한 휴식에 취했다.

전쟁에서 방심은 금물.

이건 상식이다.

그런데 왜 못 지키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걸까?

경계 병력도 서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술에 취한 병사 중 한 명이 알딸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저기, 저거 뭐지?”

“뭐 말하는 거야?”

“저기 하늘에 저거 말이야.”

주변의 병사들이 시선을 하늘로 올리자 거기에는 새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냥 새잖아?”

“잘됐다. 안주가 육포밖에 없어서 아쉬웠는데 저거라도 잡아 볼까?”

“좋지. 맞히는 사람이 다리 살 먹는 거다.”

병사들은 술에 취해서 활과 화살을 들고 히죽히죽 웃으며 새를 향해서 화살을 겨눴다.

다행히도 새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정확하게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점점 빠르게…….

그리고 크게 말이다.

“엉? 저거……?”

“뭐 이렇게 커?”

“어, 어어?”

“몬스터다!”

어느 정도 가까워져 모습을 확인할 거리가 되자 병사들은 깨달았다. 그들이 새라고 착각했던 것은 멀리서 급강하를 하고 있는 그리폰이라는 것을 말이다.

독수리의 상반신에 사자의 하반신을 가지고 있는 그리폰은 비행형 몬스터 중에서 와이번과 더불어서 가장 흉포한 몬스터 중에 하나다.

특히 말고기를 좋아해서 종종 상단의 짐마차를 습격해서 말을 잡아채 가고는 했다. 숙련된 기사라고 해도 일대일로는 맞서 싸우기 어려운 강력한 몬스터인 것이다.

거기다 병사들이 당황과 공포로 미처 보지 못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그 그리폰의 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흡!”

그리폰의 위에 올라타 있는 것은 은색 장미가 새겨져 있는 갑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는 그리폰이 강하하는 것과 동시에 안장 옆에 차고 있던 재벌린을 뽑아서 던졌다.

퍼어억!

“커어억.”

“아악!”

일격에 둘이나 되는 병사들을 꿰뚫은 공격은 그녀의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리폰은 강하하면서 적의 병사 둘을 양손에 하나씩 움켜쥐고 그대로 ‘U’자 곡선을 그리며 비상해 버렸다

“으아아아.”

“살려 줘!”

졸지에 그리폰에게 잡힌 병사들은 공포에 비명을 질렀지만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그리폰의 날카로운 발톱에 의해 두 사람은 허공에서 그대로 찍혀서 죽어 버렸다.

단 한 번의 강하로 네 명의 적을 격살한 그리폰 라이더의 솜씨는 몹시 능숙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공격을 시작으로 하늘에서 수백 기의 그리폰이 지상으로 급강하해서 같은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가라!”

“하아앗!”

하나 같이 여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들이 하늘에서 그리폰을 타고 지상의 병사들을 유린했다.

멀리 떨어져 보면 마치 창세기의 신화 속 한 구절을 보는 것처럼 환상적이고 장엄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당하는 병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다.

“크아악!”

“안 돼에에!”

“아아악!”

하늘에서 급강하하면서 치고 빠지는 그리폰 라이더들의 공격에 일반 병사는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그저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는 사냥감일 뿐.

심지어 그리폰 위에 타고 있는 여기사들 중에는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도 있었다. 화염이나 얼음 같은 속성 공격을 가하는 이들도 있고 그 밖에도 중력이나 공간을 조작하면서 기상천외한 공격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 기사들이 용감하게 맞서 싸워 보려고 했지만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이,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이야?”

“주군, 피하셔야 합니다.”

막사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밖으로 나온 귀족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어버렸다.

자신이 이끌고 온 군사들이 지리멸렬하고 있다. 심지어 그걸 보면서도 손을 쓸 방법조차 없었다.

하늘에서 그리폰을 타고 날뛰는 강력한 기사단 전력을 어떻게 대응한단 말인가?

그냥 지방의 봉토 귀족일 뿐인 그는 이런 적에게 대응할 정도로 유능하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