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검은 바람은 정예 병력만을 추슬렀지만 그 정예 병력도 300에 달했다.
심지어 그 300은 카일의 은총을 받아서 초능력을 각성한 동시에 오랫동안 검은 바람을 따라 무수한 실전을 거친 정예 중에 최정예였다.
무엇보다 그 선두에는 검은 바람이 있다.
“흡!”
검은 바람이 가장 선두에서 돌격했다.
수십 미터가 넘는 거인으로 변한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서 적이 있던 곳에 거대한 대검을 내려쳤다.
후우우우웅!
검격이라기보다는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가 연상되는 거대한 일격.
콰아아아앙!
그 일격이 적에게 작렬하며 그 충격으로 지면이 진동했다. 마치 대형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충격 속에서 적은 산산조각…….
뻐어어억!
나지 않았다.
그 대신 강렬한 염동파가 솟구쳐서 검은 바람의 턱을 가격했다.
“읏…….”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검은 바람은 일순간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런 검은 바람의 앞에 적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솟구쳤다. 그러고는…….
“죽어라!”
퍼퍼퍼퍼퍼퍼퍼펑!
무수한 염동파의 연속 공격.
화이트 공국에도 염동파를 사용하는 능력자들은 많았지만 이 남자의 공격은 그 수준이 달랐다.
한 방, 한 방의 무게가 검은 바람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검은 바람 역시 역전의 전사다.
큰 충격을 받은 검은 바람은 위축되기는커녕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흐으읍!”
검은 바람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적에게 날아갔다.
검은 바람의 몸이 거대화되어 공격 대상인 놈들의 크기는 너무 작았지만, 검은 바람의 예리한 검술은 표적을 정확히 노리고 날아갔다.
적은 허공에서 몸을 띄워서 그 공격을 피했지만 검은 바람은 유려한 연속 공격으로 그런 적을 거듭 공격했다.
“큭…….”
검은 바람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공격은 적을 당황하게 했고, 결국 몇 번을 피하지 못하고 그 공격을 받아 내야 했다.
콰아아앙!
검은 바람의 공격이 적과 부딪힌 순간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렸다. 적이 염동력으로 검은 바람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강철 덩어리가 부딪히는 것 같은 굉음이 울린 것이다.
“내 염동 방어는 절대 뚫리지 않는다.”
“그래? 그렇다면…….”
순간 검은 바람의 근육이 크게 팽창했다. 그리고…….
“날아가 벌려라!”
검은 바람은 온 힘을 다해서 막힌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후우우우웅!
그러자 적은 마치 홈런을 맞은 야구공처럼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뭐 이런 괴물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던 적은 억지로 염동력으로 저항하며 생각했다.
지원군으로 온 적이 생각보다 강하다. 거기다…….
“포위 공격하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자신이 맡고 있는 거인 전사 한 명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부하들과 격돌하는 적들 또한 모두 초능력을 사용하는 전사들이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진다.’
그는 짧은 순간 판단했다.
이대로 임무를 지속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가 택할 수단은 하나뿐이다.
“전원 후퇴하라!”
그는 후퇴를 명령했다.
돌아가서 클랜장에게 질책을 받고 페널티를 먹는다고 해도 좋다.
그는 부하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후퇴를 명령했다.
그 명령을 받은 이들은 최대한 신속하게 빠졌다. 그리고 도망가는 부하들의 후미로 가서는…….
“저리 꺼져라!”
퍼퍼퍼퍼펑!
염동파의 연속 공격으로 추적하려는 투란 전사단을 견제했다.
“큭…….”
“워워. 진정해.”
넓은 범위의 파상 공격은 전사단에게 큰 대미지를 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타고 있는 말을 크게 놀라게 했다.
그렇게 잠깐 발을 묶은 그는 홀로 후미에 남아서 검은 바람과 그 부하들과 홀로 대치했다.
“혼자서 우리를 막아 보겠다, 이거냐?”
검은 바람의 말에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와라.”
검은 바람은 적의 결의에 찬 표정에 은은하게 감탄했다.
“대단하군. 전사로서 존경할 만한 모습이다.”
“…….”
검은 바람의 말에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이라고 해도 네 투지와 부하를 아끼는 모습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가능하면 이름을 알려 주지 않겠나?”
검은 바람이 말에 상대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름조차 밝힐 수 없다는 건가? 뭔가 사정이 있는가 보군.”
퍼어엉!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력한 염동파가 검은 바람을 덮쳤고 검은 바람은 대검을 세워서 그 공격을 막았다.
“좋다. 그렇다면 검으로 대화하도록 하지.”
그리고 검은 바람을 상대로 적 지휘관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흡!”
“으아아아앗!”
콰앙! 퍼퍼엉!
다른 이들은 둘의 전투에 함부로 끼어들지도 못했다.
거인이 되어서 검에 오러를 두르고 싸우는 검은 바람의 파괴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상대 또한 그런 검은 바람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대단하군. 저거 염동파 맞지?”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염동파라는 게 저렇게 강력한 능력이었나?”
“설마, 대장님하고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이라니…….”
상대의 염동력은 거인화를 한 검은 바람과 맞서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또, 상대는 그 능력을 너무나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이런 치열한 전투를 몇 번이고 해 봤다는 듯이 말이다.
레이븐은 그런 광경을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노 페이스, 세피로스.”
“왜 불러?”
“내게 작전이 있다. 다소 위험할 수 있지만…….”
“좋아. 뭔데?”
“…….”
세피로스는 바로 하겠다고 말하고 노 페이스 역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특수 부대의 대장은 레이븐이고 둘은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레이븐은 그럼 세피로스와 노 페이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 * *
‘제길, 이 녀석,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하군.’
적의 지휘관은 검은 바람을 상대로 싸우면서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이 시점에서 판정을 매긴다면 이기고 있는 건 그였다. 검은 바람의 공격은 그에게 거의 맞지 않았고 맞는다고 해도 몸 주변에 두르고 있는 염동 실드로 막아냈다.
그에 반해서 그의 염동파는 검은 바람의 거대한 전신을 끊임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유효타가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그게 검은 바람의 대미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최초의 일격 이후에는 턱이나 명치 같은 급소는 철저하게 막고 있었고 그 외의 부분은 공격이 들어가도 검은 바람의 단련된 근육의 갑옷을 뚫지 못했다.
원래 극한까지 단련된 전사의 육체에 거대화 능력으로 내구력까지 올라간 검은 바람의 육체는 그야말로 강철보다 더 단단했다.
서로 간에 대미지를 주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의 전투 그런 상황 속에서 갑자기 끼어든 것은…….
“내 것도 받아라!”
특수 부대원인 세피로스였다.
검은 바람과 적의 전투 반경이 워낙 크고 위험해서 다른 이들은 이 전투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세피로스는 그 위험 지대로 진입해서 적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건방진…….”
상대는 세피로스의 공격을 염동력으로 가볍게 낚아챘다. 그리고…….
“꺄아아악!”
그대로 채찍을 잡고 역으로 휘둘러서 세피로스를 검은 바람에게 집어 던져 버렸다.
검은 바람은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세피로스를 보고 한손으로 받아 냈다.
“아야야야. 나같이 아름다운 미녀를 집어 던지다니. 저 새끼는 고자가 분명해.”
세피로스는 검은 바람의 손바닥 위에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검은 바람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위험하니 뒤로 물러나 있어.”
“그럴 수는 없지. 이쪽도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거라서 말이야.”
“무슨 생각?”
“바로 저런 생각이지.”
세피로스가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적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홀연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레이븐을 등에 업고 있는 노 페이스였다.
‘아! 투명화 능력을 저렇게도 쓸 수 있었나?’
검은 바람은 깜짝 놀랐다.
레이븐이 투명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검은 바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까지 같이 동화해서 투명화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레이븐 스스로도 철저하게 숨겨왔던 능력의 활용법이었기 때문이다.
능력자의 전투 효력에 있어서 능력의 정보의 기밀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카일이 가능하면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함구시켰던 것이다.
그런 레이븐이 이 능력을 지금 이렇게 쓴 건 이 순간 이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잡아!”
레이븐이 지시하는 것과 동시에 노 페이스가 손을 뻗어서 적의 지휘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바로…….
뻐어어엉!
“크으으윽!”
레이븐과 노 페이스는 강력한 충격파를 먹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레이븐! 노 페이스!”
검은 바람이 그 둘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맹렬하게 적을 공격했다.
콰아아앙!
하지만 그 순간 적은 크게 날아올라서 검은 바람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쯤 되면 부하들은 다 도주했겠군.’
그는 이 이상 전투를 해도 의미는 없다고 판단했다.
저 거인 전사의 강력함을 생각해 보면 이들이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다.
그는 허공을 날아서 물러나기 전에 검은 바람을 흘깃 보더니 말했다.
“기억해 두겠다. 거인 전사.”
“검은 바람이다.”
“…….”
그는 검은 바람에게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최고 속력으로 날아서 사라져 버렸다.
뒤에 남은 검은 바람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끝까지 이름은 안 밝히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