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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68화 (168/215)

168화

“후우우… 꼴이 말이 아니군.”

레이븐은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레이븐은 전신에 멀쩡한 곳이 없었고 혼자서 걷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노 페이스가 말없이 부축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임무 실패.

카일 직속의 특수 부대가 편성되고 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거물 클랜 마스터나 적국의 귀족을 암살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원 어스 클랜의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을 뿐인데 실패한 것이다.

레이븐과 그 동료들을 던전 안에서 급하게 나와서 그대로 국경 지대를 향해서 달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원 어스 클랜의 집요한 추적이었다.

은밀하게 이동하는 건 전문분야인 이들이었지만 원 어스 클랜에게는 소용없었다.

완벽하게 흔적을 지웠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정확하게 추적을 해 왔다.

투명화 능력을 사용해도 다른 인물로 변신을 해도, 테이밍한 인물을 동원해서 교란 작전을 펼쳐도 적들의 추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결국 몇 번의 전투가 벌어졌고 그 와중에 레이븐과 특수 부대원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다.

솔직히 이제 와서는 적의 추격을 따돌리기도 힘들어졌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가기 위해서 걷고 떠 걸을 뿐.

그때 노 페이스가 낡은 오두막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레이븐을 이끌었다.

“여기서 쉬어 가자는 거냐?”

“…….”

노 페이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두막은 완벽하게 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사냥꾼이나 화전민이 사용하다 버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 둘은 휴식을 취했다. 아니, 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레이븐이 노 페이스에게 말했다.

“노 페이스. 넌 먼저 가라. 아직 움직일 수 있지?”

노 페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 알아. 먼저 가라. 나는 이미 글렀어.”

노 페이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레이븐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조금은 세피로스를 본받아! 내 목숨보다 우리 임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몰라?”

레이븐의 말에도 노 페이스는 그저 묵묵하게 침묵으로만 일관했다.

참고로 세피로스는 이 전에 추적자들과의 전투가 끝난 후 따로 움직였다.

부상을 입은 레이븐이 적을 막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난 이미 늦었어. 너희들은 먼저 도망가!”

그러자…….

“알았어.”

세피로스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뛰어갔다.

단번에 뛰어가는 그 모습에 레이븐은 오히려 어이가 없었지만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살아서 화이트 공국으로 돌아가면 카일에게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대로 노 페이스는 레이븐을 버리지 않고 싸웠고 그 결과 큰 부상까지 입었다.

노 페이스의 배려는 고마웠지만 이제는 진짜 한계다.

이대로는 둘 다 죽는다.

임무를 실패한 것도 모자라서 동료까지 죽게 하면 죽어서도 카일을 볼 면목이 없어졌다.

“저주받은 종족? 난 그런 것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 앞으로는 나를 위해서 일해라.”

암살자 길드의 도구로 실컷 이용당하다가 폐기 노예로 팔려 간 자신을 구해 준 카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다.

“큭…….”

레이븐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가라, 노 페이스. 주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

노 페이스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가라고! 이 멍청한 자식아. 이건 명령…….”

콰아앙!

그런 말일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이 있던 오두막이 엄청난 폭음을 내며 폭발해 버렸다.

오두막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노 페이스는 레이븐을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그는 가까스로 폭발의 사정권 밖으로 나갔지만 그런 둘을 기다리고 있는 건 척 봐도 수십이 넘어 보이는 추격자들이었다.

그중에 한 명이 말했다.

“죽여라.”

그 명령에 다른 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착실하게 명령을 실행할 뿐.

콰앙!

또다시 무시무시한 폭발이 두 사람이 있는 장소를 덮쳤고 노 페이스는 다시 몸을 날렸다.

그렇게 몸을 날린 노 페이스의 모습은 어느새 변해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

트윈 헤드 오우거.

노 페이스가 지금 변신할 수 있는 존재 중에서 육체적인 전투력이 가장 강력한 존재다.

노 페이스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카피할 경우 그 사람의 기억은 복사할 수 있지만 기술까지 복사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서 마법사를 카피하면 그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존재하지만 마법은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육체적인 능력을 다르다.

상대방을 카피할 경우 그 육체적인 능력은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노 페이스는 평소 전투용으로 강력한 몬스터를 몇 개 카피해 두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지금 사용하고 있는 트윈헤드 오우거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어마어마한 거구로 변신한 노 페이스는 눈앞에 있는 적들을 향해서 저돌적으로 돌격했다.

7미터가 넘는 거대한 근육질의 거인이 된 노 페이스를 상대하면서 적들은…….

퍼어엉! 콰앙!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 어떠한 동요도 하지 않고 침착하게 노 페이스를 공격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염과 전격의 폭발은 강건한 트윈헤드 오우거의 육체마저도 고통스럽게 했다. 거기다…….

쩌저정!

이를 악물고 돌격하려는 노 페이스의 발치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원 어스의 한 클랜원이 사용한 빙결계 능력이 그의 발을 묶어 버린 것이다.

“지금이다! 집중 공격하라!”

발이 멈춘 노 페이스를 상대로 적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의 명령이 떨어졌다.

쾅! 콰앙! 쩌어어억!

원거리에서 염동계 공격이 가능한 이들부터 해서 근거리에서 육체 강화와 변화를 이용한 공격까지.

수십 명의 초능력자들의 공격이 노 페이스에게 떨어졌다.

“노 페이스!”

레이븐은 고함을 질렀다.

부상당한 지금의 몸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뿐.

“제길.”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덤비려고 하는 레이븐은 평소 냉정한 그답지 않게 몹시 흥분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적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다가와서 말했다.

“네 배후와 목적을 밝혀라.”

“그냥 죽여라.”

이를 악물고 대답하는 레이븐과 상대의 눈을 불꽃처럼 마주쳤다.

그는 레이븐의 눈에서 죽으면 죽었지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읽었다.

“순순히 말하면 네 동료는 살려 줄 수도 있다.”

그 말에 레이븐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강건한 트윈 헤드 오우거의 육체로 적의 공격을 버티던 노 페이스는 어느새 적이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레이븐은 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말했다.

“뻔한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진짜다. 저런 특이한 생물은 귀중한 실험체로 사용할 수 있으니 생포할 명분이 있다.”

그 말에 레이븐은 이를 갈며 말했다.

“차라리 죽여라. 개자식들…….”

그 말에 남자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죽는다는 선택을 참 쉽게도 하는군.”

“…….”

“누구는 단 일 분, 일 초라도 더 살기 위해서 오만가지 굴욕을 감내하는데 말이야.”

그 순간 레이븐은 느꼈다.

‘이놈은 다르다.’

이제까지 본 원 어스의 클랜원들은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전투 중에도 이상할 정도로 말이나 감정의 동요가 보이지 않아서 정말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지휘관은 다르다.

말을 하고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레이븐은 순간 말했다.

“네놈들은 도대체 누구냐? 어째서 주인님의 은총을 받지 않고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냐?”

“은총, 그 카일 화이트라는 남자를 말하는 거냐?”

‘아차!’

순간 레이븐은 당황했다. 자신도 모르게 정보를 말해 버리고 만 것이다.

첫 임무의 실패에 이어서 동료의 위기까지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너무 몰린 탓일까? 그답지 않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당황한 레이븐을 앞에 두고 상대가 말했다.

“카일 화이트, 그는 우리에게도 특이대상 001호로 등록되어 있다.”

“…….”

“그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초능력을 각성시킬 수 있는 거지? 설명해라.”

“…….”

레이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적에게 어떠한 정보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레이븐을 보고 상대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제압하라. 둘 다 생포하겠다.”

그 말에 부하들이 달라붙어서 레이븐과 쓰러져 있는 노 페이스를 제압하려고 했다.

‘제길, 이대로는…….’

레이븐은 이렇게 된 이상 미리 숨겨둔 독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때…….

쉬이이이익!

무언가 맹렬하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그리고…….

쩌어엉!

레이븐과 노 페이스를 구속하려고 했던 원 어스의 클랜원들이 강렬한 공격을 맞고 날아갔다.

그들을 후려쳐서 밀어낸 것은…….

“오래 기다렸지?”

세피로스의 채찍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당장 사로잡힐 위기에서 벗어난 레이븐이었지만 인상은 와락 구겨졌다.

“이 멍청아. 왜 왔어?”

“뭐? 사랑한다고? 미안, 난 주인님 말고는 관심 없어서 거절할게.”

“큭…….”

농담 따먹기나 하는 세피로스를 보며 레이븐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피로스는 천천히 웃으면서 다가와서 말했다.

“안녕, 너는 말문이 좀 트인 것 같은데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세피로스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는 순간 레이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지금 세피로스가 하는 것은 챠밍이다. 뱀파이어 고유의 능력으로 이성을 유혹하는 능력.

이것으로 적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테이밍 능력까지 겸해서 강력한 구속력으로 노예로 만들 수 있다.

이제까지 어스 원의 클랜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이 드러나 있는 저놈이라면?’

어쩌면 일발 역전의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적이 반응했다.

“집어치워. 기분 더러우니까.”

레이븐이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지만 세피로스는 아름다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니들 진짜 고자지?”

“…….”

세피로스의 푸념에 상대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다만 꾹 다문 입술과 떨리는 눈빛을 본 세피로스는 오히려 놀랐다.

“어? 야, 잠깐, 설마 농담 아니고 진짜…….”

“닥치고 죽어라.”

그리고 상대편이 양손에 무기를 들었다.

하나는 짧고 굵은 나이프였고 다른 하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기였다.

이제까지 지시만 내리려고 했던 그가 직접 전투에 나서려는 것이다.

“잠, 잠깐만. 고자라고 놀려서 미안해. 일단 진정해 봐. 내가 좋은 의사 소개시켜 줄까?”

“…….”

상대방은 굳은 표정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런 상대에게 세피로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알았어. 싸우자. 싸울게. 그런데 그전에 할 말이 있어. 진짜 진지한 얘기야. 너도 꼭 들어야 해.”

세피로스의 말에 일단 상대방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세피로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왼쪽을 봐.”

그녀의 말에 상대는 왼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뻐어어어억!

커다란 바위가 날아왔다.

오른쪽에서 말이다.

“큭.”

상대편은 바위를 정통으로 맞았지만 그전에 얇은 막을 쳐서 그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큰 물리적인 충격에 버티지 못하게 크게 날아가 버렸다.

그런 상대에게 세피로스가 말했다.

“미안, 내 쪽에서 왼쪽이었네.”

세피로스의 왼쪽. 그리고 상대편의 오른쪽에서는 수백의 병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병력의 선두에 있는 것은…….

“전군, 돌격하라!”

카일 화이트의 오른팔, 검은 바람이었다.

* * *

레이븐과 떨어져서 도주했던 세피로스는 도주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녀라고 동료애가 없는 건 아니다.

레이븐과 노 페이스는 그녀와 함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팀원이었고 그들에게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 그 어떤 것도 주인님에 대한 충성심과 사랑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지.’

그게 그녀가 레이븐도 노 페이스도 버리고 달려갈 수 있는 이유였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둘을 살리면서 임무를 완수하고 주인인 카일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녀라고 왜 안 하겠는가?

그런 방법만 있다면, 그런 방법이 있기만 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며 달리는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검은 바람이었다.

“검은 바람? 당신 왜 여기에 있어?”

“세피로스? 당신이야말로 왜 여기 있는 거지?”

부하들과 함께 야숙을 하고 있던 검은 바람을 발견한 세피로스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가 알기로 검은 바람은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서 부하들과 함께 투란 전사단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검은 바람 정도의 강력한 전력을 자유로 풀어주는 카일의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검은 바람은 그렇게 자유를 손에 넣었다.

그런 검은 바람이, 지금쯤 투란의 대초원을 누비고 있어야 할 검은 바람이 지금 루마니스 제국의 영토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투란족을 거느리고 말이다.

“어디 침공이라도 하러 가는 거야? 설마 루마니스 제국 전체를 뒤집으려고?”

“아니, 주인님의 지시도 없는데 그런 짓은 안 하지. 주변과 마찰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검은 바람은 자신이 북방의 대초원에서 수많은 부족들을 통합하고 5만의 투란인들과 함께 카일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밝혔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세피로스가 외쳤다.

“그럼 됐어. 나 좀 도와줘.”

“무슨 일인데 그러는 것이냐?”

“가면서 설명할게. 어쨌든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는 일…….”

“녹색 나무! 정예 병력 300을 거느리고 따라와라! 즉각 출발한다.”

“예. 대족장님.”

자세한 설명 같은 건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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