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67화 (167/215)

167화

던전 6층.

5인 파티 혼자서 들어가기에는 꽤 깊은 위치였지만 결국 추적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따라와 버리게 되었다.

좋은 소식이 있다면 드디어 거리를 다 좁혀 사정권 안에 적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내가 혼자서 접근한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

“혼자 괜찮겠어? 몬스터와의 전투 결과로 추정해 보면 저놈들, 꽤 강할걸? 최소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전투력이라고 봐야 해.”

세피로스의 분석은 타당했다.

하지만…….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이 남자는 레이븐이다.

카일이 아직까지도 꼭꼭 숨기고 있는 비장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최측근. 그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레이븐의 몸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레이븐이 말이 이어졌다.

“잠시 후에 보도록 하지.”

그리고 레이븐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긴, 저걸 무슨 수로 막겠어?”

* * *

레이븐의 특수 능력 투명화.

원래도 타고난 암살자라고 불리는 다크 엘프의 종족 특성을 생각하면 이 능력의 각성은 호랑이 등에 돋아난 날개나 다름없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카일도 강경 수단이 필요할 때 레이븐에게 암살 지시를 내린 적이 있었는데 그 지시가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성공률 100%의 암살자.

그런 존재가 5인의 모험가들에게 소리 없이 접근했다.

‘일행의 중간에 있는 놈이 리더겠군. 그렇다면…….’

레이븐은 일행 중에 리더로 보이는 인물을 가장 마지막에 처리하기로 하고, 나머지를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나이프를 꺼내서 은밀하게 적의 후방으로 접근했다. 바로 지척까지 접근함에도 불구하고 작은 발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최초로 난 소리는 레이븐의 나이프 손잡이가 적의 뒷목을 내려치는 소리였다.

퍼어억!

“윽.”

깔끔한 일격은 완벽하게 적의 의식을 끊었다. 이렇게 적이 당황했을 때 공격을 이어가면 손쉽게 적을 제압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쉬이이익!

레이븐은 자신을 향해서 주저 없이 날아오는 날카로운 참격을 감지하고 빠르게 백 스텝을 밟았다.

픽!

레이븐이 기민하게 몸을 날렸지만 상대의 공격은 레이븐의 앞머리를 베었다.

‘이놈들…….’

레이븐은 놀랐다. 동료가 기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네 명에게서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은 네 명은 쓰러진 한 명을 가운데 두고 서로의 등을 마주하며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일말의 동요도 없는 그 모습에 오히려 레이븐이 당황할 정도였다.

‘감정이 없는 건가?’

레이븐은 여전히 투명화를 유지하고 있어서 적들은 레이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븐이 달려들면 즉각적으로 반응할 것처럼 완벽한 임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레이븐은 그런 적들을 침착하게 살폈다.

적의 무장은 숏 소드 한 자루에 방패 하나. 입고 있는 장비는 평범한 가죽 갑옷이었다.

장비만 놓고 봐도 그렇게 특별히 경계할 대상은 아니었다. 움직임도 익스퍼트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상의 정보로 판단하건대…….

‘설령 정면 대결이 벌어진다고 해도 지지는 않을 거야.’

레이븐은 그런 판단을 내렸다.

그는 속전속결로 적을 제압하기로 마음먹은 레이븐은 투명화 능력을 유지한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 발차기로 적의 턱을 정확하게 후려쳤다.

뻐어억!

“윽…….”

턱을 맞은 상대의 입에서는 생리적인 신음 소리가 나왔지만 그게 다였다.

나머지 셋은 당황하지 않고 레이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공격을 날렸다.

쉭! 쉬이익!

바람을 가르며 날카롭게 날아오는 공격은 빠르고 강력했지만 레이븐이 대비하지 못할 공격은 아니었다.

레이브는 하나의 공격은 피하고 하나의 공격은 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쪽으로 들어가서 무릎으로 적의 명치를 찍어 올렸다.

뻐어억!

배에 구멍이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력한 임팩트의 공격이 터졌다. 그리고…….

“크으윽…….”

이번에도 나온 건 고통에 의해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신음 소리뿐이었다. 다만, 이번에 그 신음 소리를 내뱉은 건 레이븐 쪽이었다.

“네놈, 몸이……?”

레이븐의 니킥은 정통으로 작렬했지만 대미지를 입은건 레이븐이었다.

레이븐은 바윗덩어리를 공격한 것처럼 단단한 적의 몸에 오히려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렇게 물러나는 레이븐의 몸은 다리를 절고 있었다.

‘이건… 설마 초능력?’

마법도 아니고 정령술도 아니고 오러를 사용한 전투방식도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의 이능력.

카일 화이트의 은총을 받은 이들만이 사용하는 초능력과 같았다.

레이븐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능력은 오직 카일 화이트가 믿을 만한 이들에게 충성을 대라고 은총을 내려서 얻는 것이다. 즉, 이 세계에서 모든 초능력자는 화이트 공국 소속이라는 말도 된다.

그런데 어떻게 원 어스 클랜이라는 곳의 클랜원이 초능력을 사용한단 말인가?

레이븐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가장 처음에 기절시켰던 이 한 명이 눈을 떴다. 그러고는…….

“크르르르르…….”

적의 상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크게 부풀고 양손에는 기다란 발톱이 돋아나고 머리의 형태는 인간이 아닌 늑대의 것으로 변했다.

“수인화? 네놈들 누구냐?”

이것 역시 화이트 소속에 드물게 있는 초능력자의 능력 중 하나였다. 몸 자체에 짐승의 형질을 도입해서 전투력을 대폭 향상시키는 능력.

이런 능력자를 적으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크하아아앙!”

수인화를 마친 적이 정확하게 레이븐이 있는 곳으로 발톱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투명화의 능력을 믿고 약간 방심하고 있던 레이븐으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아차, 수인의 후각…….’

“큭…….”

촤아아악.

서둘러서 몸을 빼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적의 공격은 레이븐의 가슴을 길게 스치고 지나갔고 바닥에는 레이븐의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븐의 위치가 드러나자 다른 이들도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선두에 있던 이의 머리 근처에서 여러 개의 화염구가 생기더니 즉각 레이븐을 향해서 날아왔다. 그리고 다른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강력한 충격파를 날려서 레이븐을 공격했다.

콰아아앙! 퍼어엉!

“커헉…….”

레이븐은 몸을 웅크려 공격을 버텨내려 했지만 뒤로 크게 날아가서 나뒹굴어야 했다.

이 와중에 레이븐은 다시 한번 확신했다.

‘파이로 키네시스에 염동파. 확실해. 이놈들은 능력자들이다.’

이 사실에 확신을 얻은 레이븐은 바로 깨달았다. 지금 당장 후퇴해서 이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후퇴를 하려고 해도 상처 입은 몸으로 눈앞에 있는 적들로부터 몸을 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혼자서는 말이다.

“숙여!”

레이븐은 뒤편에서 들려온 짧은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레이븐의 머리 위로 작은 구슬 같은 것이 날아왔다. 그리고…….

파아아앗!

순간 어마어마한 섬광이 터져 나와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이들의 눈을 즉각 멀게 해 버렸다.

‘섬광탄, 제때 왔군.’

레이븐은 이것이 자신과 동료들에게 지급된 특수 장비 중에 하나인 섬광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카일이 연금술사 길드에 의뢰를 해서 만들어 낸 것인데 재료비가 많이 든다는 것 말고 성능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는 장비였다.

“달려!”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세피로스는 레이븐을 부축하며 후퇴를 시작했다.

“세피로스.”

“닥치고 달려. 제길, 이게 무슨 꼴이람.”

레이븐은 세피로스의 부축을 받으면서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 * *

원 어스 클랜의 본부.

당연하지만 이곳에는 클랜장이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하면…….

“헉, 헉…….”

“아아, 아아아아…….”

그는 지금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을 자신의 책상에 엎드리게 하고 그 뒤에서 허리를 움직이며 그녀를 탐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모험가들이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열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루마니스 제국에서 떠오르는 신성으로 평가받고 있는 원 어스 클랜의 클랜장이라는 인물이 대낮부터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 다소 의외일 것이다.

거기다 그는 외견만 봐도 모험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툭 튀어나온 배와 작은 신장 등등을 봤을 때 모험가라기보다는 상인, 사실 상인보다는 간신배가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한쪽의 욕망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폭력과도 같은 섹스가 끝나고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며 말했다.

“쯧, 이 거지 같은 동네에서는 그나마 즐길 게 여자뿐이군.”

여자는 머리채를 잡혀서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그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유일한 감정은 오직 두려움 하나뿐이었다.

그런 여자의 눈빛에서 남자는 비열하고 삐뚤어진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때? 내가 무섭나?”

“아, 아닙니다.”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호오, 내가 안 무섭다고? 만만한가 보지?”

“아, 아닙니다. 무섭습니다.”

“불쾌하군. 그럼 싫다는 남자한테 억지로 안겼다는 거냐?”

“…….”

“대답해라. 마치 내가 너를 강제로 범한 것 같잖아? 응?”

“부, 부디, 용서를…….”

무슨 대답을 해도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악질적인 장난에 여자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남자의 입장에서는 그저 시시한 장난일 뿐이지만 그녀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상대는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목숨을 태연하게 빼앗을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여자의 반응을 즐기며 희롱하고 있는 그때…….

똑똑.

“클랜장님. 보고 사항이 있습니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그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장신에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다부진 인상의 남자였다.

그가 클랜장에게 말했다.

“코어 확보를 위해서 던전에 투입된 파티원이 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 인간 사냥꾼인가 뭔가 하는 놈들인가?”

클랜장은 보고를 하는 남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자기 품 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자의 몸을 더듬으며 말했다.

“처리는 확실히 했겠지?”

“…도주했다고 합니다.”

“뭐?”

“그리고, 전투 중에 초능력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적은 그 사실을 목격한 상태로…….”

뻑!

말을 하던 남자는 자기 이마를 향해서 날아오는 재떨이를 정통으로 맞았다.

“이 병신 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해?”

클랜장은 버럭 소리를 치며 화를 냈다.

“초능력을 사용했으면 적을 확실하게 처리했어야 할 것 아니야? 그걸 놓치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적의 실력이 초능력 없이는 상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냥 뒤지든가? 네놈들 따위, 트럭으로 죽어 나가도 아무 상관 없어. 그것도 몰라?”

“…….”

보고를 하던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빌어먹을, 적의 정체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루마니스 제국 밖의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적의 위치를 마킹하고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주 방향이 국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클랜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놈들을 잡아서 죽여.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실패하면 네놈들 모두 폐기해 버린다. 알겠나?”

“…….”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굳은 표정으로 물러날 뿐이었다.

집무실에 남은 클랜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구 주제에 너무 건방져. 성능보다 교육 정도를 보고 데려왔어야 했나?”

그리고 그는 불쾌한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다시 여자에게 향하며 미소 지었다.

“기분도 별로인데 재미 좀 봐야겠다. 아픈 건 좋아하지?”

“…예.”

여자는 울상을 지으며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