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2년 후, 대륙력 533년. 카일은 27세가 되었다.
헤븐 랜드라고 이름 붙인 섬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카일은 배로 막대한 자재를 실어 나르면서 섬의 개척에 열을 올렸다.
그동안 모은 돈과 자원을 총동원해서 헤븐 랜드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2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선, 이 섬은 전 대륙에서 가장 이름난 섬이 되었다.
섬의 남쪽에는 거대한 항구를 중심으로 하여 상업 도시를 만들었고, 조나라와 고르시파 왕국의 상인들이 쉬지 않고 드나들었다.
이들이 무역을 위해서 가져오는 물자는 막대한 부를 가져왔기에 상인들은 없어서 못할 지경이었다.
이대륙 간 무역이 본격적으로 지속되자 고르시파 왕국은 이제 던전 탐색만이 아니라 무역으로 인한 수입도 어마어마한 상업 국가가 되었다.
비록 그 사업의 수입원 대부분이 카일 화이트라는 한 명이 독점하고 있다시피 했지만, 카일이 공주인 클레어와 결혼을 했기에 별문제는 없었다.
그 클레어 공주는 결혼을 하고 나서 자신만의 클랜을 만들어서 헤븐 랜드의 던전 최전선을 공략하는 모험가가 되었다.
보통 결혼을 한 공주가 모험가로 던전 탐색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작 남편인 카일은 그녀의 던전 탐색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클레어 공주가 만든 신생 화이트 클랜에 병력을 지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카일이었다. 그리고 카일은 아내가 만든 클랜에 부클랜장으로 들어가서 그녀의 모험을 돕는 한편, 헤븐 랜드의 공왕으로서 섬을 더 발전시켰다.
상업과 던전.
이 두 가지만 해도 섬의 성장 기반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카일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관광업에도 발을 들였다.
해븐 랜드의 섬의 북쪽에는 아름다운 해안선이 펼쳐져 있었고, 뒤편의 산맥에는 천연의 온천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 두 곳을 중심으로 해서 카일은 리조트 사업을 벌였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훌륭한 관광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는 헤븐 랜드에 전 대륙에서 수많은 이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남방 대륙의 조나라의 국왕이 한 번 찾아와 머물며 크게 감탄한 이후 조나라 사람들도 엄청나게 찾아왔다.
듣기로는 죽기 전에 한 번은 찾아와 봐야 하는 섬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카일이 급격히 성장하는 것에 고르시파 왕국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빅토르는 오히려 더 과감하게 나왔다.
카일에게 공왕의 칭호를 내려 주며 건국을 허락해 준 것이다.
그 결과 헤븐 랜드와 원래 카일이 가지고 있던 영지를 더해서 화이트 공국이라는 나라가 건설되었고, 카일 화이트는 불과 27세라는 나이에 공왕이 되었다.
이로써 카일은 고르시파 왕국의 빅토르를 뒷배로 하고 온전하게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고작 열여섯에 집을 뛰쳐나온 소년이 스물일곱의 청년이 되어 만들어 낸 성과였다.
* * *
“그러니까……. 카일 화이트 공왕 전하가 얼마나 굉장한 사람인지 알겠어?”
한 소년이 동료들에게 열변을 토했고, 그 소년과 동년배로 보이는 친구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말했다.
“알아. 너 말고도 다 안다고.”
“세상에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냐?”
그런 동료들의 심드렁한 반응에도 지치지 않고 소년은 말했다.
“사람이 자고로 놀려면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이야. 카일 화이트 공왕의 전설이 바이에른에서 시작된 것처럼 우리의 전설도 이 헤븐 랜드에서 시작되는 거야.”
“뭐, 그만큼 큰 출세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점은 공감이다.”
“나도 그래. 그래서 여기까지 뱃삯을 마련해서 온 거잖아?”
이 세 명의 소년은 아직 활동하고 1년도 지나지 않은 신출내기 모험가들이었다.
그들은 카일이 지금의 자신들보다 두 살이나 어릴 때 고향을 떠나서 던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접하고 자신들도 신천지로 떠나서 기량을 시험해 보겠다는 이유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비록 운임료가 모자라서 짐칸에 끼어서 타는 신세였지만 말이다.
“기운들 내라고. 우리의 전설은 여기서 시작되는 거야.”
“그 전설의 일장은 네가 입을 다무는 걸로 시작하면 안 되냐?”
“나도, 그건 진짜 동감이다.”
셋 중에 한 명은 유난히 꿈이 대단한 듯하긴 하지만, 뭐 어떤가?
이윽고 셋은 배에서 내려서 최근 대륙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섬인 헤븐 랜드에 도착했다.
“오오오……. 대단해!”
“…호오?”
“이게 생긴 지 2년밖에 안 된 도시라고?”
세 명의 소년이 내려서 바라본 헤븐 랜드의 전경은 그야말로 신세계라고 할 만큼 발전된 도시였다.
샐 수도 없을 정도로 무수하게 늘어서 있는 항구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커다란 물류 창고였고, 그 창고를 지나서 도심지로 들어가자 별천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발전된 도시가 있었다.
“저건 뭐지? 커다란 철 상자가 말도 없이 움직이잖아?”
“촌놈아. 너무 티 내지 마. 저게 아마 마도 전철이라는 것일 거야.”
“마도 전철? 저게? 한 번 타보자. 꼭 한 번 타보고 싶었어!”
“야. 이 미친……. 케일, 넌 뭐 해?”
“아니, 타려면 표 끊어야 한다고 해서…….”
“너마저?”
완전히 텐션이 올라서 폭주하는 소년과 그런 촌놈이 부끄러운 친구. 그리고 남은 한 명은 티는 내지 않지만 역시 신기한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하긴, 저 두 놈만 아니면 나도 비슷하려나?’
그만큼 헤븐 랜드는 발전한 도시였다.
마차가 열 대는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대로를 중심으로 둘러보면 10층 이상의 높은 건물들이 즐비했다.
‘고향에서는 제일 높은 건물이 3층 여관이었는데 말이야.’
거기다 저 멀리 보이는 반짝이는 유리창으로 외관을 모두 꾸민 건물은 최근 완공된 카일 화이트의 궁전일 것이다.
‘듣기로는 궁전이지만 최상층인 관람대를 완전히 개방해 놓는다고 했지? 저기는 한번 가볼까?’
침착한 척하는 소년이지만 그 역시 ‘저 높은 건물의 전망대에서 이 아름다운 섬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상상은 지울 수 없었다.
“크흠, 그럼 일단 저기 궁전의 관람대까지만 가보자.”
“좋아.”
“표 끊었어.”
* * *
“오오오. 쩔어. 진짜 개쩔어.”
“그만 좀 해라. 오늘 하루 동안 쩐다는 말을 몇 번 하는 거냐?”
친구의 말에 소년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어디 보자, 섬에 도착했을 때 한 번, 그리고 오면서 전철 타고 한 번, 전철 타고 궁전 밑에 도착했을 때 한 번, 또 오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누가 세어 보래?! 하여튼 조용히 좀 해라. 주변에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소년의 말대로 이 최상층의 전망대는 도시의 명소답게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귀족이나 대상인은 물론이고 남방 대륙의 귀족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원래 이 전망대는 이용료가 제법 들어서 비싼 돈을 내지 않고는 올 수 없다.
대신, 섬에 처음 도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오를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이 세 명의 소년은 무료로 여기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주변의 귀족들 중에는 촌티를 팍팍 내는 소년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었다.
“거참, 화이트 공왕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를 평민들에게도 개방했는지 모르겠군.”
“정말입니다. 이런 장소는 당연히 고귀한 신분에게만 허락하는 게 당연한데 말이죠.”
“뭐, 어쩔 수 없지. 화이트 대공 자체가 원래 고귀한 신분은 아니지 않았나?”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 귀족들이 하는 말을 들은 소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당신 지금 감히 화이트 공왕 전하를 욕한 거야? 앙?!”
“뭐? 뭐라고?”
“이 무지렁이가 갑자기 무슨…….”
거만한 모습을 보이던 귀족 두 사람은 크게 당황했다.
“내가 다 들었어. 방금 공왕 전하를 보고 원래 고귀한 핏줄이 아니라서 어쩌고 하면서 모독했잖아?”
“이 천한 것이 생트집을 잡는구나! 어디서 거짓말이냐!”
“뭐? 난 거짓말 안 해. 나의 다섯 가지 장점 중에 하나가 솔직함이라고!”
“그걸 알게 뭐냐!”
양쪽이 소란을 일으키자 당연하다는 듯이 경비대가 나타났다.
“무슨 소란입니까?”
“저 사람들이 공왕 전하를 모독했어요.”
“저 천한 것이 생트집을 잡고 있네.”
“거짓말 아니네요. 제가 진짜 들었어요.”
“본인은 루마니스 제국의 아렉시스 백작이네. 저 어린 천것과 나. 둘 중에 누구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나?”
경비는 난감했다.
어차피 외국의 신분 따위는 왕족이라도 아닌 이상 신경 쓰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럴 수 있는가?
‘저 시끄러운 꼬맹이를 보내는 쪽으로 하자.’
경비가 그렇게 마음먹고 움직이려고 하는 그 순간.
“거짓말 아니다. 나도 들었다.”
“뭐? 누가 그런……. 흐읍”
아렉시스 백작이라는 자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헛숨을 삼켰다. 거기에는…….
“공왕 전하를 뵙습니다.”
경비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 거기에는 최근 모험가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취급받는 카일이 있었던 것이다.
* * *
카일은 오랜만에 자기 여자들과 함께 전망대에 있는 카페에서 디저트를 즐기고 있었다.
카일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은폐 능력자까지 대동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 욕하는 소리는 다 듣고 있었다.
물론 카일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리시아를 비롯한 주변 여자들이 저 이름도 모를 듣보잡 백작을 박살 내버리려고 했다.
그때 용감한 소년이 자신의 우상을 지키기 위해서 나서는 기특한 모습에 클레어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두실 거예요?”
“조용히 디저트만 즐기고 싶은 것 아니었어?”
“그래도 당신을 좋아해서 저러는 거잖아요?”
클레어의 말에 아리시아와 레이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발레리아가 말하기를…….
“제가 가서 소년을 도와주고 오겠습니다.”
그녀는 아예 직접 나서려고 했다.
결국 카일은 피식 웃으며 무거운 엉덩이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가지.”
그리고 지금.
“아렉시스 백작이라고 했지?”
“그… 그렇습니다. 전하,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저는…….”
“됐고. 다 들었다.”
“…….”
“얌전히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라.”
“예. 알…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백작은 서둘러서 궁전의 전망대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모르고 있는 게 있는데, 카일이 나가라고 한 것은 이 궁전이 아니라 헤븐 랜드 그 자체였다.
즉, 이 섬에서 영구 추방자로 등록하겠다는 말이다.
이 섬에 오는 귀족들 상당수가 대륙 간 해양 무역이 목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렉시스 백작인 입은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렇게 듣보잡 백작을 처리한 후 카일이 소년에게 말했다.
“이름은?”
“예? 아… 피터라고 합니다. 전하의 위명은 정말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 모험가가 꿈이니?”
“예. 꼭 전하처럼 되고 싶습니다.”
그런 소년의 말에 카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그렇다면…….”
카일은 소년의 귓가에 무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고는…….
“각오가 되면 찾아오렴. 친구들도 함께 말이야.”
“예…?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카일이 돌아가자 피터의 친구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야, 너 전하하고 무슨 말 했어?”
“뭐라고 했는데? 응? 말해 봐.”
“그게…….”
피터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잘 모르겠어. 그냥 ‘많이 아파도 괜찮다면 오렴, 힘을 나눠 줄 테니.’라고 하셨어.”
“그게 뭐야?”
“나도 몰라. 다만…….”
피터는 생각했다.
직접 본 카일은 훨씬 더 멋있었다.
그런 카일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소년이 말했다.
“뭐가 됐든, 난 할래.”
그렇게 또 한 명의 소년이 꿈을 위해서 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