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히야아아아아악!”
히드라는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와 함께 푸른 번개를 공격했다.
아홉 개나 되는 머리 중에 하나가 푸른 번개를 집어삼키려는 듯이 튀어나왔다.
푸른 번개는 그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보다 더 빠른 히드라의 공격에 미처 피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배리어를 친 상태로 버틸 수는 있었다.
히드라는 배리어로 푸른 번개를 감싼 푸른 번개를 배리어와 함께 통째로 입에 물어버렸다.
“그게 될 것 같냐?”
푸른 번개는 히드라의 이빨이 자신의 배리어를 뚫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가졌다. 그런데…….
콰직, 콰지지직.
히드라가 좀 더 힘을 줘서 물어버리자 푸른 번개의 배리어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괴물이…….”
푸른 번개는 배리어를 푸는 것과 동시에 급하게 몸을 옆으로 날렸다.
콰직!
히드라의 커다란 입은 그대로 다물어졌지만 그때는 이미 푸른 번개가 빠져나간 후였다.
“제길, 내 능력으로는 못 막는다는 건가?”
이렇게 되면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푸른 번개는 자신의 능력이라면 정면에서 주의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정면에 섰던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 시간을 끄는 건 고사하고 한 입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히야아아아악!”
히드라는 자기 입에서 빠져나간 푸른 번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성질을 내면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이 그걸 내버려 두지 않았다.
“쏴라! 쉬지 말고 쏴!”
“전원 공격이다!”
“우오오오오!”
탐색대원들은 원거리에서 활을 쏘고 단창을 던지면서 히드라를 공격했고, 투란의 전사들도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압도적인 전력의 괴수를 눈앞에 두고도 동료를 놔두고 도망가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의 분투는 실로 용감했다.
“크아악!”
“리코!”
“이 빌어먹을 자식이!”
“리코를 놔! 크아아악!”
“으아아아악!”
하지만 히드라의 강철 같은 피부는 어떠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놈의 입에 한 번이라도 닿으면 끝장이었다. 푸른 번개의 배리어도 으깨버리는 이빨의 강도, 스치기만 해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강산성의 타액.
히드라의 입에 물린 동료들은 그대로 반쯤 녹아내린 상태에서 히드라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이 새끼가!”
“뒤져버렷!”
동료들의 죽음에 눈이 뒤집힌 투란 전사단은 저마다 각성한 초능력을 앞세워서 히드라에게 달려들었다. 개중에는 5서클 이상의 마법사에 버금가는 위력의 파괴력을 보유한 이들도 있었지만, 히드라의 비늘은 그 모든 공격을 거뜬하게 버텨 냈다.
“키햐아악!”
강력한 방어력과 거대한 체구답지 않은 스피드.
히드라를 상대로 한 전투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 새끼야. 그만해! 그만하라고!”
히드라에게 부하가 잡아먹히는 것을 본 푸른 번개는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차라리 자신이 부하들보다 먼저 죽겠다는 각오를 하고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지만…….
쾅쾅쾅!
“이… 이런 빌어먹을…….”
절망적인 전력 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히드라의 동체를 정면으로 가격한 푸른 번개의 대도였지만 히드라의 비늘은 뚫지 못했다.
“쉬이이이익!”
히드라는 자기 배 아래에서 날뛰는 적을 느끼고 머리 하나를 내려 보냈다. 그리고 적을 확인한 순간…….
“히이이익!”
그대로 기분 나쁜 굉음을 내며 푸른 번개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키에에엑!”
커다란 굉음과 함께 히드라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통스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비명과 동시에 히드라의 배 아래까지 파고들어서 공격하고 있던 푸른 번개는 갑자기 제 머리 위에서 히드라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사라진 히드라 대신에 푸른 번개의 눈에 보인 것은…….
“괜찮나?”
검은 바람의 얼굴이었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이…….”
검은 바람은 오랜만에 격하게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멀리서 히드라가 날뛰는 것을 발견한 즉시 거대화를 하고 성큼성큼 달려서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최대한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부하들 중에 상당수는 죽어 있었다.
몸이 반 이상 녹아내린 부하들도 있었고, 아예 보이지 않는 부하들도 있었다.
자기 부하들 중에 도망치는 겁쟁이는 한 명도 없으니, 아마도 보이지 않는 부하들은 저 히드라가 먹어 치운 것이리라.
“푸른 번개.”
“예, 대장님.”
“몇 명이나 당했나?”
“여섯 명이 당했습니다.”
“…….”
“푸른 바위, 녹색 강, 붉은 산, 검은 풀, 하얀 바위, 갈색 나무가 당했습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뿌드드득.
검은 바람은 이를 갈았다.
카일이 자신에게 투란의 전사단을 맡겼을 때, 검은 바람은 이들을 자신의 가족이나 다름없이 대했다.
먼 타 대륙에서 노예로 구르고 전사로서의 자긍심을 잃어버린 그들을 한 명의 어엿한 전사로 키워내기 위해서 그야말로 헌신을 다했다.
그런 부하들이… 자신의 피붙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부하들이 죽었다.
투란 전사단이 결성된 이후 첫 사망자였다.
“죽여버리겠다.”
검은 바람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히드라에게 달려들었다.
“우워어어어어어어!”
“히이이이이익!”
히드라는 자신만큼이나 거대한 체구의 인간이 달려드는 것을 보고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콰직! 콰직! 콰직!
히드라의 이빨이 거대화한 검은 바람의 온몸에 박혔다. 이대로 강산성의 타액으로 적을 녹여버리거나 강력한 교근의 힘으로 뼈를 바스러트리는 것이 히드라의 전투법이다. 하지만…….
“우오오오오!”
검은 바람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검은 바람은 개의치 않고 히드라의 거대한 몸을 들어 올려서 집어던져 버렸다.
콰아아아아앙!
어지간한 건물보다 훨씬 거대한 히드라의 거체가 그대로 지면에 틀어박혔다.
“키에에에에엑!”
히드라는 생전 처음 당해 보는 상황에 고통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자신의 이빨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처음 만나 본 것이다.
바위도 녹여버리는 자신의 산성 타액도 검은 바람의 피부를 약간 태울 뿐, 결정타는 되지 못했다.
“저게 안 통하다니?”
놀라는 탐색대에게 투란 전사 한 명이 말했다.
“몰랐냐? 우리 대장님의 능력은 거대화하면 할수록 피부의 강도도 올라가는 능력이야.”
“뭐? 우리가 그걸 왜 몰랐지?”
“그거야 평소에는 공격 같은 걸 허용하지도 않고 그냥 압도적으로 이겨버리니까.”
“아…….”
“일단 저 상태가 되면 우리 대장님은 거대한 강철의 거인이다. 절대 무적이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바람은 쿵쿵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히드라에게 달려들었다.
“흐으읍!”
콰아앙!
주먹이 작렬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히드라의 거체가 그 한 방에 크게 휘청거렸다.
거기에 이어서 검은 바람은 연속으로 공격을 이어 갔다.
쾅! 쿠웅! 퍼엉!
검은 바람의 공격 한 방 한 방이 모두 오우거 정도는 절명시킬 수 있는 파괴력의 공격이었다.
그 공격을 맞을 때마다 히드라의 거대한 몸을 휘청거렸지만, 놈도 지지 않고 성질을 부리며 검은 바람의 몸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이놈!”
검은 바람은 그런 히드라를 들어서 지면에 힘껏 던졌다.
콰아아앙!
그리고 쓰러진 놈을 검은 바람은 발로 밟았다.
쾅! 쾅! 쾅! 쾅! 쾅!
검은 바람이 히드라를 밟을 때마다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지면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검은 바람과 히드라의 전투는 거의 괴수들의 대전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투처럼 커졌다.
“어마어마하군.”
“누가 괴물인지 모를 지경이야.”
탐색대와 검은 바람의 부하들은 감탄했다.
그들도 검은 바람의 전력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검은 바람이 최선을 다해서 공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히드라는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쉬이이이익!”
오히려 더 독이 올라서 검은 바람에게 강한 산성의 액체를 뿜어내며 발악했다.
검은 바람은 놈의 타액에 피부가 조금 녹자 일단 녀석을 놓고 물러났다.
“빌어먹을 정도로 단단한 놈이군.”
검은 바람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되면 맨손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쩔 수 없지. 질질 끌지 말고 승부를 보자.’
검은 바람은 등에 차고 있는 자신의 대도를 뽑았다.
거대화한 상태의 검은 바람이 검을 뽑고 히드라와 대치하자 그 모습은 마치 신화 속의 한 장면과 같았다.
“후우우우……. 흡!”
검은 바람은 깊게 호흡을 정돈하더니 자신의 대도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그의 거대한 대도를 타고 오러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마침내 선명하게 그 형태를 갖췄다.
파킹!
완벽하게 정련된 오러 블레이드.
마스터의 상징이자 강자의 상징.
그것이 100미터에 가까운 길이로 뻗어간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쉬이이이이익!”
히드라는 그 압도적인 모습에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대로 뒤로 돌아서 도주하려고 했지만…….
“이놈!”
검은 바람이 그걸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가 수직으로 지면에 내리쳐졌고 그 순간 지축을 가를 정도로 거대한 참격이 히드라를 덮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오러의 해일과도 같은 검은 바람의 일격은 통상 마스터의 공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했다.
그 일격은 거대한 괴수인 히드라를 그대로 쪼개버렸고 그 밑의 지면에도 깊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다란 상흔을 남겼다.
“후우우우우…….”
검은 바람은 그 일격에 온 힘을 다했는지 몸을 원래 사이즈로 돌리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아리시아는 그런 검은 바람에게 냉큼 다가가서 상태를 물었다.
“그래. 전보다는 적응이 되었구나.”
검은 바람이 전력으로 거대화를 하고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면 그 일격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전에 시험 삼아 해변에서 휘둘러 봤을 때도 일순간 바다가 갈라져 버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강력한 위력과 더불어서 부작용도 있었다.
그 강대한 출력을 신체가 감당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전에 일격을 휘둘렀을 때는 검은 바람이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다. 거대화를 동반한 오러 블레이드는 너무나 고출력의 공격이기에 사용자가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 후 꾸준하게 수련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력을 발휘한 공격은 검은 바람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거대화를 했을 시에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일단 맨손으로 적을 상대하는 버릇을 들이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뭐, 사실 거대화한 검은 바람의 전력 자체가 어지간한 마스터보다 훨씬 더 강하니까 전력상의 손해는 없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부하들하고 같이 히드라의 시체를 회수해 두렴. 저건 아마 쓸모가 많을 거야.”
“그렇겠죠. 주인님이 칭찬해 주실 거예요.”
아리시아는 카일이 자신을 칭찬해 준다고 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검은 바람은 그런 아리시아를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쨌든 격렬한 전투의 후유증으로 검은 바람은 좀 쉬어야 했다.
아리시아는 먼저 히드라의 사체를 살펴보기 위해서 다가갔다. 그러다 그녀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오라버니, 이쪽에 와보세요.”
“아리시아, 지금 피곤한데.”
“중요한 거니까 빨리 와보세요!”
검은 바람은 아리시아의 말에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아리시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리시아가 말했다.
“오라버니, 저거 보이세요?”
“저거라니……. 헛?”
검은 바람은 크게 놀랐다.
아리시아가 가리킨 곳은 검은 바람의 공격으로 인해서 파괴된 절벽의 한쪽 면이었다.
그곳에는 지면으로 비스듬하게 파고드는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에서는 스멀스멀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저건?”
“던전? 이 섬에 던전이 있었던 건가?”
재앙의 섬에 넘쳐 나는 몬스터의 근원을 찾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