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우리 대장님, 저 정도였나?”
“나도 몰랐어. 너는 던전에서 대장님하고 같이 활동한 적 있지 않았어?”
“그랬지만… 그때는 탐색과 후방 지원이 주력이었고, 트롤 세 마리를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줄은 몰랐지.”
“그보다…….”
트롤을 해체하려고 하는 탐색대원은 넝마가 된 트롤을 보며 말했다.
“뭘 어떻게 죽이면 이렇게 되지?”
“이거 가죽은 거의 못 쓰겠는데?”
트롤의 시체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온몸에 칼자국이 빼곡하게 겹쳐서 나있는데, 그 유명한 트롤의 재생력으로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상처가 가득했다.
“이건, 참격으로 베었다가 아니라 갈아버렸다고 해야겠군.”
“그러게 말이야.”
아리시아의 공격력은 발레리아나 검은 바람보다 훨씬 부족하다.
아리시아의 공격은 트롤의 가죽은 베고 그 밑에 근육에 어느 정도 상처를 남길 수는 있지만, 그게 한계다. 트롤이 입은 대미지는 인간으로 치면 과도에 살짝 긁히는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별것 아닌 상처가 전신에 수백 개 이상 난다면 어떻게 될까?
아리시아는 시간 컨트롤 능력으로 트롤의 움직임은 느리게 하고 자신의 움직임은 빠르게 한 상태로 적에게 무수한 참격을 날렸다.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촘촘하게 온몸을 참격으로 도배하듯이 말이다.
트롤의 재생 능력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막대한 참격의 중첩. 그 결과 생명력을 다 소진한 트롤은 쓰러져 버린 것이다.
‘우리 대장님도 강했구나.’
‘보통의 수준을 훨씬 넘었어.’
탐색대의 대원들은 은근히 감탄한 표정을 하고 아리시아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
“전부 비상. 뭔가 있다.”
아리시아가 다시 소도를 꺼내며 주변에 말했다.
“대장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뭔가 온다. 트롤 사체는 내버려 두고 배로 돌아가.”
그녀의 말이 끝난 그 순간, 숲을 헤치고 흉포한 포효 소리와 함께 나타난 몬스터가 있었다.
“움머어어어!”
트롤보다 거대한 몸집에 소의 머리.
양손으로 들고 있는 커다란 배틀 엑스.
그놈을 본 순간 탐색대는 기겁을 했다.
“미노타우르스?”
“XX, 이 섬은 도대체 뭐야?”
부하들이 기겁할 때 아리시아는 섬광처럼 앞으로 뛰어나갔다.
“우어어어어어!”
“죽엇!”
아리시아와 미노타우르스가 정면으로 격돌했고, 다른 부하들은 서둘러서 배로 후퇴를 시작했다.
* * *
트롤 세 마리, 미노타우르스 한 마리, 웨어 울프 일곱 마리, 오크, 고블린, 코볼트 등등은 백 마리 이상.
“이게 고작 사흘 동안 탐색한 결과라 이거지.”
“예. 그렇습니다.”
아리시아는 보고서와 산처럼 쌓여 있는 몬스터의 부산물을 보며 말했다.
“이 섬, 절대 평범한 섬이 아니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리시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동맹군인 게오르그 왕국의 해군에 연락을 취해서 이 섬에 관해서 물어봐야겠다. 사람을 보내라.”
“예, 알겠습니다.”
아리시아는 잠시 탐색을 멈추고 일단 기다렸다.
그것은 실로 정확한 판단이었다.
얼마 후, 게오르그 왕국의 해군에서 아리시아가 원하는 정보를 전달해 줬다. 그 정보에 따르면…….
“재앙의 섬?”
“예. 몬스터가 너무 많아서 그렇게 불리는 섬이라고 합니다. 해적들도 조난 상황이라고 해도 절대 상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정보를 이제까지 우리에게 전해 주지 않은 이유는?”
아리시아의 말에 부하는 머쓱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깜빡했다고 합니다.”
“…….”
아리시아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일단 자제했다.
대신 그녀는 다시 편지를 두 장 썼다.
“한 장은 검은 바람 오라버니에게 전해 주고, 다른 하나는 본국의 에이라 아가씨에게 전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이 재앙의 섬이 탐색대의 전력만으로 탐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러니 검은 바람에게 원군을 청하는 동시에 지금의 상황을 본국의 에이라에게도 보고한 것이다.
이제까지 축 늘어져 있던 그녀가 다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탐색대의 부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역시 대장님도 하실 때는 하시는군.’
‘사실 일이 별로 없을 때 늘어져 있는 것 정도야 흠도 아니지.’
‘사람이 할 때만 제대로 하면 되지.’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아리시아가 다시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만약 이 섬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주인님이 더 칭찬해 주실 거야.’
머릿속에는 오직 카일에게 칭찬받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아리시아였다.
* * *
부하를 통해 편지를 부친 후, 아리시아의 요청대로 검은 바람이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오라버니.”
“수고 많았다, 아리시아.”
피가 흐르지는 않지만 거의 친남매나 다름없는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했다.
검은 바람은 아리시아와 가벼운 인사가 끝나자마자 말했다.
“역시 대단하구나. 주인님이 맡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뿐만 아니라 이런 특수 상황까지 완벽하게 대응하다니.”
“별것 아니에요.”
“아니, 네 특유의 성실함이 빛을 발한 거지.”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성실함?’
‘대장님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탐색대의 부하들은 뭔가 ‘그건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나서서 말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검은 바람과 그가 이끌고 온 투란 전사단은 든든한 전력이었다.
“섬의 상태계가 좀 이상해요. 꽤 큰 섬이긴 하지만 저 정도 섬에 대형종 몬스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건 그렇지. 일단 한번 조사를 해보자.”
“예, 오라버니.”
검은 바람은 아리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너하고 호흡을 맞춰서 전투에 임하는 것도 말이야.”
“잘 부탁해요.”
그렇게 바로 그다음 날부터 재앙의 섬이라고 불리는 섬의 탐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쿠워어어어어!”
거대한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오우거의 기세는 용감했다.
“시끄럽다.”
하지만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검은 바람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검은 바람이 거대화를 사용하자 그는 오우거보다 훨씬 더 커다란 체구가 되었다.
“크워어?”
오우거는 자신보다 족히 세 배는 더 커진 검은 바람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당황해하는 오우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검은 바람은 검도 뽑지 않고 그대로 주먹으로 오우거를 내리쳤다.
콰지직!
검은 바람의 주먹에 오우거 한 마리가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한 마리의 오우거를 처치한 검은 바람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라버니, 그렇게 죽이시면 어떻게 해요! 오우거의 부산물을 챙기지 못하잖아요!”
“이미 배에 더 실을 수도 없을 정도로 부산물이 많이 쌓였지 않니?”
“그래도 그렇죠. 오우거의 가죽이 얼마나 고가인지는 오라버니도 아시잖아요?”
“그래. 다음부터는 주의하마.”
검은 바람은 아리시아의 멀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리시아는 다른 남자들이 감히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카일의 것인 자신에게 다른 남자가 손을 댄다는 것을 절대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은 바람은 유일한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카일 이외의 남자이면서도, 아리시아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가 검은 바람이다.
그런 검은 바람과 단둘이 있을 때 아리시아의 모습은 오빠를 신뢰하고 투정을 부리는 여동생 같은 모습이었다.
‘저건 또 생소하네.’
‘우리 대장님은 얼굴이 몇 개인 거지?’
부하들에게는 꽤 낯선 모습이었다.
어쨌든, 검은 바람과 투란 전사대의 합류로 섬의 탐색은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탐색대가 길을 찾고 투란 전사단이 그사이에 끼어서 몬스터를 탐색하는 형태로 섬의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있었다.
덕분에 탐색 자체는 순조로웠지만, 문제는 왜 이 섬에 이렇게 몬스터가 많은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좀 이상하지 않아요? 제법 큰 섬이긴 하지만 몬스터가 이렇게 많다니. 심지어 대형종 몬스터도 제법 보이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이 정도로 대형종 몬스터가 많이 생성되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생태계가 넓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그냥 몬스터를 토벌만 해서는 소용없어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이 섬을 중계지로 사용하는 건 포기해야 할 거예요.”
“다른 적당한 섬을 몇 개인가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니?”
“그건 그렇지만 이 섬도 위치나 규모를 보면 최적지 중에 하나긴 해요. 몬스터 무리만 해결하면 말이죠.”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검은 바람은 아리시아의 말을 믿고 이 섬을 깔끔하게 정돈하기로 결정했다.
‘꽤 큰 섬이긴 하지만 부하들과 함께 돌면 한 달 안에는 다 정리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하며 말이다. 그런데 그때…….
피유우우우우! 펑!
멀리서 신호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멀리서도 잘 보이는 붉은색의 연기가 높게 올라오고 있었다.
“저건?”
“위험 신호예요. 빨리 가봐요.”
“서두르자.”
검은 바람과 아리시아는 신호가 나온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큭……. 어디서 이런 괴물이…….”
“막아. 대장님이 오실 때까지 버텨!”
“흩어져! 흩어져서 활을 쏴서 투란 전사단을 지원해라!”
열 명의 투란 전사들과 마찬가지로 열 명의 탐색대원들은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사실 이들 스무 명의 전력을 다 합치면 과거 바이에른에서 활동하던 작은 모험가 클랜 하나만큼은 된다.
투란 전사단 열 명은 모두 익스퍼트급에 준하는 수준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고, 탐색대원들 역시 능숙한 궁수들이었다.
마법적인 전력이 없기는 하지만 이 정도 전력이면 오우거가 나와도 거뜬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눈앞의 괴물은 오우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놈이라는 점이었다.
트롤을 한 입에 집어삼켜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거구, 그 거구의 몸에 달려 있는 아홉 개의 머리,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과 뚝뚝 떨어지는 침은 지면의 바위도 녹여버리는 강산성의 맹독이다.
이 세상에 이런 몬스터는 하나밖에 없다.
재앙급 몬스터라고 불리는 오우거보다도 더 상위 개체인 전설급 몬스터.
“키햐아아아아.”
바로 히드라다.
“제길, 이런 놈은 던전의 최심부에서 계층 보스로 나온다는 거물 아닌가?”
“왜 이런 게 지상에 있는 거야?”
탐색대는 이를 갈면서 이 사태를 원망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눈앞에 있는 현실이 부정되지는 않았다.
히드라는 오랜만에 자기 눈앞에 나타난 인간들이 맛있는 간식거리로 보였나 보다. 척 봐도 식욕이 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인간들에게 다가왔다.
“절대 정면으로 덤비지 마. 대장님이 올 때까지 시간만 끌어라.”
“예.”
투란 전사단 중에서 리더격인 푸른 번개가 외쳤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히드라의 정면에 서서 대도를 들고 마주하고 있었다.
부하들이 산개해서 싸우려면 누군가는 정면에서 히드라와 맞서서 주의를 끌어야 했다.
여기서는 가장 강한 자신이 그 일을 맡기로 한 것이다.
푸른 번개가 카일에게 받은 초능력은 배리어.
오만가지 공격을 다 튕겨 낼 수 있는 방어막이었다.
평소에는 수비보다 공격적인 능력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지만,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이라면 히드라의 공격에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