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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48화 (148/215)

148화

클레어가 조건을 받아들이고 카일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빅토르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카일은 클레어와의 결혼, 그리고 종속 계약에 관한 것까지 모두 남김없이 말했다.

클레어는 종속 계약에 관한 것까지 말한다고 했을 때 크게 놀라서 만류했지만 카일은 단호했다.

“숨겼다가 나중에 들통나면 더 문제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정면 돌파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공주님께서도 전하가 모든 조건을 다 알고 계시는 게 더 안심되시겠죠.”

“그거야…….”

설령 종속 계약으로 묶인다고 해도 빅토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훗날의 보험이 될 것이다. 확실히 클레어로서는 좋은 조건이었다.

카일이 먼저 이런 제의를 한다는 사실에 클레어는 생각했다.

‘이 사람 믿어도 될지도 몰라.’

카일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카일에 대한 클레어의 믿음이 좀 더 올라갔다.

* * *

자, 누군가에게 가서 이런 질문을 해보자.

‘따님과 종속 계약을 맺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뻐어억!

정답은 이거다.

빅토르의 주먹이 카일의 안면에 정통으로 작렬했고 카일은 한 방에 5미터는 넘게 날아갔다.

“다시 한번 말해 봐라, 카일 화이트 백작.”

빅토르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카일을 내려다봤고 카일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장난 아닌데?’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일 자신도 명색이 익스퍼트이건만, 언제 맞았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빅토르는 힘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 한 방은 이미 각오했던 바였다. 오히려 빅토르가 선선히 허락을 했다면 그때야말로 진심으로 빅토르라는 인간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카일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서 말했다.

“제 설명을 모두 들어 주십시오.”

“그 설명이 나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죽을 수도 있다.”

빅토르의 살기는 진심이었다.

“…….”

“…….”

그래서일까? 발레리아와 아리시아가 굳은 표정으로 카일의 앞에 서서 빅토르를 가로막았다. 특히 아리시아는 눈에 살기를 띠고 있었다.

설령 상대가 빅토르라고 해도 카일에게 주먹을 꽂아 넣은 순간부터 아리시아는 진심으로 상대를 죽일 생각이었다. 다만…….

“멋지군. 짜릿할 정도야.”

유감이지만 빅토르는 아리시아와 발레리아가 결사의 각오를 다지고 덤빈다고 해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빅토르는 자신을 진심으로 죽이려고 하는 두 사람을 마주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저 빨간 머리 아가씨는 마스터군. 그리고 저 금발 하프 엘프…….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

아리시아의 능력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빅토르였지만 직감적으로 무언가 경계해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디, 시험해 볼까?’

빅토르가 두 사람에게 막 손을 쓰려는 순간, 카일이 먼저 두 사람을 말렸다.

“둘 다 물러나.”

“하지만…….”

“주군.”

“명령이야. 물러나.”

카일이 재차 명령하자 아리시아와 발레리아는 일단 물러났다. 카일은 뺨을 문지르며 일어나서 말했다.

“꽤 아프군요.”

“그럴 걸 알면서 헛소리를 했나?”

“속이다가 걸리는 것보다는 낫죠. 그때는 아프다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확실히 그렇게 했다면 ‘아프다’가 아니라 머리가 날아갈 것이다.

카일은 빅토르를 마주하고 말했다.

“일단 이 한 방은 따님을 생각하는 전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제가 하는 말을 들어 주십시오.”

“어떤 허울 좋은 소리를 한다고 한들 내 딸을 노예로 만들겠다는 개소리를 내가 용인할 것 같은가?”

“노예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해서 종속 계약만 맺는다는 말이죠. 제가 괜한 헛소리를 하는 놈이 아니란 것 정도는 전하도 아실 겁니다.”

“…….”

카일의 말에 빅토르는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카일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언사 하나하나에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백작. 까딱 잘못하면 무슨 말이 자네 유언이 될지 모르니 말이야.”

“명심하죠.”

카일을 차분히 빅토르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클레어 공주와 종속 계약을 맺어서 그 계약을 매개로 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를 각성시킨다는 말과 그 후에 그녀와 결혼을 하겠지만 비교적 그녀가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말.

그리고 종속 계약으로 맺어진다고 해도 그 계약 조건은 노예 계약과는 다르며, 과정 역시 숨기는 것 하나 없이 빅토르가 보는 앞에서 엄중하게 맺을 것, 절대로 그녀를 노예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카일은 말을 끝맺었다.

모든 말을 다 들은 후 빅토르가 말했다.

“클레어 그 아이가 그것을 원하던가?”

“스스로 결정하기는 했습니다.”

“…….”

빅토르는 고심했다.

빅토르에게 있어서 클레어는 꽤 아픈 손가락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였냐고 물으면 양심상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빅토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자식들을 보살폈다.

모험가 시절부터 자식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가정 교사를 모집해서 붙여 주었고 의식주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고 풍족하도록 지시했다. 1년의 3분의 2 이상은 던전에 들어가 있어야 했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은 그 정도가 한계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클레어처럼 친모를 잃어버린 아이는 유년 시절에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국왕이 되고 난 후에는 더 바빴고 후계자로서 교육시켜야 할 아들들에 비해서 딸들은 더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클레어가 모험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도 이제 알았군.’

빅토르는 카일을 흘깃 보고 말했다

“그 아이가 모험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던전에 들여보낼 생각은 아니겠지?”

“왜 안 됩니까?”

“이제 열일곱일세. 그리고 적절한 수련을 받지도 못한 연약한 아이를 어떻게 던전에 바로 들여보내?”

그런 빅토르의 말에 카일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전하, 따님이 익스퍼트인 걸 몰랐습니까?”

“뭐라고?”

“거기다 4서클 마법도 익히셨더군요.”

“4서클? 무슨 그런…….”

“정말 모르셨습니까? 전혀?”

“…….”

“따님께 신경을 쓰기는 하셨습니까? 전하께서 조금만 눈여겨보셨다면 클레어 공주님의 수준을 몰라볼 리가 없지 않습니까?”

“후우우우…….”

빅토르는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렇게 무심한 아버지였단 말인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스스로를 자책할 뿐.

카일의 말대로 빅토르가 조금만 클레어를 눈여겨봤다면 그녀의 경지는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몰랐다는 것은 빅토르는 클레어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머리로는 모든 자식을 골고루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신경 쓰고 있던 것은 후계자로서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아들 몇 명이었지 나머지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카일의 결혼 상대로 클레어를 지목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자기 딸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그저 결혼 상대로 추천하기에는 너무 뚱뚱하니까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한심하군.”

빅토르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자신의 한심함을 한탄했다. 카일은 그런 빅토르를 굳이 옹호하지 않았다.

긴 침묵 끝에 빅토르가 말했다.

“딸을 만나 봐야겠군.”

“그렇게 하시죠.”

속으로는 ‘이제 와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늦은 감이 있는 이제라도 만나는 게 낫기는 했다.

* * *

빅토르와 클레어의 만남을 주최한 카일은 그들만을 남겨 둔 채 밖으로 나가 그들을 기다렸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레이나 씨가 같이 왔어야 했는데…….”

아리시아는 카일의 뺨을 보고 울상을 지었다. 수건에 차가운 물을 적셔 와서 카일의 뺨을 식혀 주면서도 어쩔 줄 몰라 했다.

“별것 아니야.”

“하지만…….”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저 안에서 부녀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아마 부녀의 대화에 따라서 앞으로 카일의 계획도 바뀔 것이다.

잠시 후.

“화이트 백작님.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시종의 말에 카일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클레어와 그런 딸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있는 빅토르가 보였다.

‘잘 풀린 건가?’

분위기만 봐서는 나쁘지 않은 것 같기는 했다.

빅토르는 카일을 향해 말했다.

“화이트 백작.”

“예. 말씀하십시오.”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대신 내 딸을 잘 대해 주게. 만약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내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이 순간 카일의 결혼 상대가 정해졌다.

* * *

카일 화이트 백작의 결혼.

이것 자체는 이미 예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원래 소문이라는 게 금방 퍼지는 법이라서 카일이 공주들과 돌아가며 만남을 청하고 있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돌고 있었다.

“하긴,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화이트 백작이 남방 대륙과의 무역을 시작하면 그 부와 권력이 어디까지 뻗칠지 모르는 일이니.”

“왕실의 입장에서는 자기 품 안에 넣어 두고 싶었겠죠.”

“과연 어떤 공주님이 행운의 주인공이 될까?”

사람들은 카일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었다. 주시하고 있다가 카일과 결혼을 할 공주가 정해지면 정치적으로 손을 뻗을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누구보다 빠르게 손을 뻗기 위해 주시하던 모든 귀족들은 카일이 클레어 공주와 결혼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크게 놀랐다.

“클레어 공주? 설마 그 클레어 공주?”

“농담이지? 진짜로?”

“이해가 안 가는군. 화이트 백작이 뭐가 아쉬워서?”

사람들은 클레어 공주가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 번 보고 잊기 어려운 체형의 소유자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아무리 빅토르의 딸이라고 해도 그녀와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여자로서의 매력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일 화이트 백작이 그녀와 결혼을 한다고? 왜? 어째서?

왕국의 실세로 급부상하고 있는 카일 화이트 백작이 어째서 클레어 공주와 결혼을 한단 말인가? 뭐가 아쉬워서?

카일의 취향이 독특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의견은 이내 묵살당했다. 카일이 평소 데리고 다니던 여자 노예들을 보면 이 세상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 클레어 공주와 결혼을 한다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군.”

“정말 전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귀족들은 이 뜻밖의 상황에 그저 당황할 뿐이었다. 하지만 귀족들과 달리 그냥 당황을 넘어서 분노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빅토르에게 찾아와서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은 과할 정도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이 귀부인이었다.

빅토르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에게 대놓고 항의를 하는 귀부인을 바라봤다.

그녀의 이름은 제미니 폰 고르시파. 빅토르의 많고 많은 아내 중에 한 명이다. 동시에 카일에게 핵폭탄으로 분류된 멜리사 공주의 친모이기도 했다.

하긴, 빅토르 정도의 권력자에게 이렇게 거침없이 따질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마누라 정도일 것이다.

“클레어라니요! 어째서 클레어라는 거죠? 제 딸이 훨씬 더 예쁘고 착하잖아요!”

가만히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빅토르가 입을 열었다.

“클레어 역시 당신 딸이야.”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그래도 이건 다르잖아요!”

잠시 주춤거렸던 그녀는 다시 강하게 따지고 들었다.

그녀는 이번에 자신의 딸인 멜리사를 카일과 결혼시키기 위해서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정통파 귀족파를 가리지 않고 많은 귀족들에게 돈을 주고 매수를 하면서 카일과 멜리사를 결혼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 생각이었고, 멜리사에게도 카일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라고 지시했다.

비록 후자는 역효과밖에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이번 일을 인생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런 기회는 절대 다시 오는 게 아니야. 내 인생에 드디어 세 번째 기회가 온 걸지도 몰라.’

잠시 그녀의 인생에 관해서 논하자면…….

그녀는 이미 살면서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 한 번의 기회는 놓쳤지만 다른 한 번의 기회는 잡았다.

원래 그녀의 이름은 제미니 로셀리온. 귀족가에서 가정 교사로 일하던 하급 귀족이었다. 거의 몰락한 가문의 일원이었던 그녀는 여러 가문의 가정 교사를 전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인생에 첫 번째로 찾아온 기회는 과거 한 아이의 가르침을 거부한 것이었다.

제미니는 남작가의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의뢰받았고 방문해서 가르쳐 본 결과 그 아이가 천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빈곤한 남작가에서 제시한 보수가 너무 보잘것없어서 의뢰를 거부했다.

그런데 제미니가 의뢰를 거절한 그 소년이 훗날 제국의 아카데미 행정학과에 최연소로 수석으로 입학하게 된 것이다. 그때 그 소년을 가르친 교사는 우수한 교사로서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그 명성을 통해 공작가의 자제를 전담해서 가르치는 교사로 초빙되기도 했다.

나중에 가서야 제미니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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