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2기생쯤 되면 카일이 바이에른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있던 고참들이자 제법 베테랑들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카일 아래에 속해 있었기에 당연히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리시아는 그냥 아름답고 상냥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저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처럼 청초한 그녀의 모습 이면에는 카일에게 유해한 존재라면 그게 누구든 벌레처럼 으깨 죽여버릴 수 있는 잔혹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리시아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간부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가 훈련 중에 죽일 듯이 잡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목적이 자신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강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선량함 그 자체인 레이나는 몹시 안전한 간부다.
하지만 아리시아는?
그녀의 경우 만약 실수로라도 누군가 카일에게 해를 끼친다고 하면 그녀는 주저 없이 그 대상을 죽여버릴 것이다.
과거 세피로스가 카일에게 꼼수를 부리다가 걸렸을 때 살아남은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카일이 말리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죽었다.
당시 아리시아가 화를 내면… 아니, 폭주를 하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는 현장에 있던 이들이 모두 체험했다.
그런 아리시아의 진면목을 모르는 이들은 그녀를 보고 그저 아름답고 헌신할 줄 아는 1등 신붓감 정도로 여기기 쉽다.
“하아아……. 너희들한테 말해 봐야 믿겠냐. 그냥 하나만 알아 둬라. 아리시아님에게는 가능하면 접근하지 않는 게 좋다.”
“에이, 그 정도는 저희도 다 압니다.”
“맞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주님 여자인데…….”
“그냥 그림의 꽃이라고 보고 눈 보신만 하는 거죠.”
그렇게 대답하는 4기생들이었다.
하나, 이 세상에는 무모함과 용기를 구분 못하는 이들이 종종 나오는 법이다.
* * *
최근 카일의 영지에 마법사가 늘었다.
원래는 5서클 마법사인 헤일로 한 명뿐이었지만 카일이 벌이는 일의 규모가 커지면서 헤일로가 마탑에 편지를 보내서 인원을 충원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덕분에 마법사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그들의 위치는 조금 미묘했다.
그들은 카일에게 고용된 몸이긴 하지만 카일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은 아니다. 게다가 마법사들이 워낙 고급 전력이고 카일의 향후 계획에 반드시 필요한 이들이기에, 같은 식구라기보다는 손님 같은 위치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게 고용된 마법사들 중에는 아리시아나 발레리아 같은 카일의 여자를 보고 가슴앓이를 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바라만 보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건지, 그중에 한 명이 아리시아에게 다가갔다.
“저기, 아리시아 씨?”
“쉿!”
아리시아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젊은 마법사에게 입에 손가락을 가져가서 조용히 시켰다.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는 카일의 머리칼을 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께서 휴식 중입니다. 급한 용건이 아니면 나중에 말씀해 주십시오.”
“아, 그게 급한 용건은 아닙니다. 그저…….”
“그럼 됐습니다. 나중에 말씀해 주십시오.”
아리시아는 더 들어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상대의 말을 자르고 격침시켰다.
그러곤 자신에게 용기를 내서 말을 건 남자는 완전히 신경 꺼버리고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카일만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아……. 주인님. 주인님. 나의 주인님. 주인님께서 제 무릎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모습만 봐도 너무 행복해요. 부디 평생 이대로 주무시고 계시만 안 될까요? 타임 컨트롤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해서 언젠가 시간을 멈출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이 순간으로 시간을 돌려서 멈춰버릴 텐데.’
카일이 아리이사의 생각을 알았다면 꽤 섬뜩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리시아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듯이 자신의 무릎을 베개로 사용하고 있는 카일의 얼굴을 질리지도 않은 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순종적인 눈빛으로 마음속으로는 조금이라도 카일이 오래 자신의 무릎 위에 누워 있기를 바랐다.
“으으음.”
잠시 후, 카일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아리시아는 천국 같은 시간이 끝나서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주인님.”
“그래. 다리 저리지 않아?”
“괜찮습니다.”
다리가 저리지 않아서 괜찮다는 말이 아니었다.
다리는 저리지만 이 저림이 조금 전까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카일의 머리가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저 행복했기에, 이 저림마저 괜찮다는 의미였다.
‘하아아……. 조금만 더 있었으면 했는데, 한 100년만 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오후 스케줄은 뭐였지?”
“항구의 건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가신 후 그레이 마을의 촌장을 만나서 석회석 생산과 콘크리트 가공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 후에는 에이라 행정관에게 가서 결재 서류를 검토하셔야 합니다.”
“그렇군. 빨리 끝내버리자.”
“예. 주인님.”
그리고 카일은 아리시아 잡아 놓은 일정대로 완벽하게 스케줄을 소화했다.
항구의 확장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고, 그레이 마을의 석회석 생산 과정도 순탄했다.
저녁이 되면 영주 공관으로 이동해서 에이라가 추려 놓은 서류를 몇 가지 검토하고 결재했다.
지금 화이트 영지의 행정 서류의 90%이상은 에이라의 선에서 처리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남은 중요한 일들은 카일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직접 서류를 검토해야 했다.
물론 에이라가 꼼꼼하게 사전 검토를 하고 의견서까지 첨부한 상태이기에 그리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서류 심사까지 모두 마친 후 카일은 저녁 식사를 먹었다.
카일이 저녁을 먹는 식탁에는 검은 바람, 아리시아, 발레리아 그리고 에이라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중에서도 에이라는 어린 나이와 밝은 성격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오빠 나 왔어요.”
카일을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전 대륙을 다 뒤져 봐도 에이라뿐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카일이 정식으로 남매의 연을 맺었다고 말을 한 후에 그냥 그러려니 하며 아무렇지 않아하기 시작했다.
곧 정식으로 서류에 호적을 올리기도 할 거니 에이라는 곧 에이라 화이트가 될 것이다.
모두의 주인이자 주군인 카일의 하나뿐인 여동생이 될 그녀는 식사 테이블에 앉아서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제 영주 공관이 거의 다 지어져 가는데 어쩔 거예요. 짓자마자 바로 옮기실 거죠?”
“그래야지. 주문한 설비는 모두 도입된 거지?”
“물론이죠.”
카일이 지금 머물고 있는 영주 공관은 그냥 평범한 벽돌 저택이었다.
이것만 해도 보통의 하급 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집만큼은 좋은 저택이었지만 카일이 생각하는 영주 공관은 이게 아니었다.
카일이 원하는 것은 오션 뷰의 고층 빌딩이었다.
모처럼 바다가 보이는 항구에 자리를 잡았는데 높은 건물을 지어 오션 뷰를 즐길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게 카일의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높은 고층 건물에서 넓은 바다와 발전하는 영지의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보기 위해서 카일은 고층 건물을 지으라고 명했다.
그 높이는 10층.
벽돌 건축으로는 어림도 없는 높이였지만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도입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거기에 필요한 엘리베이터와 통유리 창 기타 단열재 등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을 갈아 넣었지만 말이다.
“영주 공관이 다 완성되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말이죠.”
“그게 뭔데?”
“최상층에 방 하나 찜.”
“야. 최상층은 내 전용으로 하려고 했는데.”
“뭐 어때요? 공간도 넓은데 나도 방 좀 줘요.”
“그래도 말이지…….”
카일이 말을 흐리자 에이라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발요. 언니들하고 오붓한 분위기를 낼 때는 방해 안 할게요. 그냥 나도 최상층 오션 뷰 스위트룸을 원할 뿐이라고요.”
“푸우웁!”
순간 카일은 입에서 먹던 음식을 뿜어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입을 쩍 벌렸다.
천하의 검은 바람도 어린애의 모습을 한 에이라가 이런 말을 하자 크게 당황했다.
“크흠……. 에이라 양. 숙녀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답니다. 더구나 식사 시간에는 더욱이.”
레이나가 침착하게 주의를 주었지만…….
“에이, 레이나 언니. 그냥 넘어가요. 나 조숙한 거 다 알잖아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크흠, 에이라 아가씨, 주군에게 그런 투정을 부려서 곤란하게 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괜찮아요. 안 그래요. 안심해요.”
“에이라 영애, 주군의 동생이라면 모쪼록 거기에 걸맞은 언행으로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그냥 품위 없고 말래요.”
“아니 그래서는 주군의 체면이…….”
“언니가 공주로 태어나서 한 십수 년 품위, 품위 하고 살아 봐요. 아주 미친다니까요. 그냥 나 좀 편하게 내버려 둬요, 예?”
“…….”
에이라는 차례대로 레이나, 검은 바람, 발레리아를 다 격퇴시켰다.
그녀는 카일을 보고 간절하게 말했다.
“어쨌든 오빠, 나도 방 하나 줘요. 응? 주세요. 안 주면 나 확 파업해 버린다.”
그런 에이라에게 아리시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이라 아가씨. 그만두세요. 주인님에게 무슨 말버릇 입니까?”
“에이, 아리시아 언니도 너무 빡빡하다. 자꾸 그러면 오빠하고 언니가 같이 밤을 보낼 때 쳐들어가서 깽판 놓는 수가…….”
“아가씨.”
아리시아는 에이라의 말을 끊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뒤.질.래.요?’
순간 에이라는 깨달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리시아는 말한 바를 확실히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해 보니 최상층은 좀 그런가? 그 바로 밑에 빈 방 있으면 나 줄래요? 9층도 충분히 높은 것 같아.”
에이라는 까불어도 되는 때와 빠져야 할 타이밍을 잘 구분할 수 있었다.
에이라가 한 발 물러서자 카일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방 줄게. 대신 생활공간은 철저하게 분리할 거다.”
“와아~ 오빠 사랑해.”
“현실 남매만 하자.”
그렇게 식사 후 카일은 목욕을 하기 위해서 나갔다.
아리이사는 카일의 목욕 시중을 들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자기 차례가 아니라서 참아야 했다.
“부탁해요. 발레리아 씨.”
“응. 알았어.”
아쉽게 발레리아에게 카일의 목욕 시중을 맡기고 아리시아는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리시아 씨.”
그런 그녀의 앞에 마법사 청년이 나타났다.
아리시아는 기계적으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페르난도 씨군요. 어쩐 일이시죠?”
“아, 그게 별것 아닌데 그게…….”
“별것 아니라면 이만…….”
“아니, 별거입니다. 엄청나게 별것입니다.”
페르난도는 아리시아를 황급하게 붙잡았다.
아리시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무슨 용무시죠?”
그런 아리시아에게 페르난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리시아 씨 저기, 당신이 자작님의 노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비록 당신 스스로는 자신을 더럽다고 여길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는 말에서 찌질함이 가득 묻어나는 페르난도를 아리시아는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런 아리시아를 눈치채지도 못한 건지, 결심을 굳힌 페르난도가 말했다.
“당신을 제가 사도 되겠습니까?”
아리시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노예인 제가 누군가에게 사고 팔릴 권리가 있나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자작님에게 말을 해봤습니다. 그러자 자작님은 당신의 의사가 가장 주요…….”
“지금 뭐라고 했죠?”
심드렁하던 아리시아의 표정이 바뀌었다.
“예? 그게 그러니까 제가 당신의 새로운 주인……. 큭!”
페르난도는 언제 당했는지도 모를 사이에 벽에 처박혀 버렸다.
아리시아는 페르난도의 멱살을 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주인님에게 뭐라고 말했죠? 설마 나하고 주인님을 갈라놓으려고 했어요? 그런 사악한 짓거리를 한 건 아니죠? 아니라고 말하는 게 좋아요. 했다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말하는 게 좋아요. 했다고 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거든요.”
“어… 어어…….”
페르난도는 크게 당황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뭐 뭐야? 이 여자 뭐지?’
페르난도가 알고 있는 아리시아는 그야말로 꼭 곁에 두고 싶은 이상적인 여성 노예였다.
아름답고 상냥하고 헌신적으로 주인을 챙겨 주는 그런 여자 노예 말이다.
그래서 카일에게 그녀를 자신에게 팔 수 있는지 물었고, 그때 카일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페르난도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아리시아를 평생 아껴 주겠다고 말하면서 거듭 카일에게 간청했다.
결국 카일에게 얻은 답이 아리시아 본인이 원한다면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얻기 위해서 반년 가까이 카일에게 애걸하다시피 했던 페르난도였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아리시아가 상냥하고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건 상대가 카일일 때뿐이라는 것이다.
아리시아는 카일 이외의 인간은 어떻게 되든 알바 아니다.
그녀에게는 오직 카일만이 중요했고, 자신을 카일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려고 하는 인간, 아니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용서할 이유가 없었다.
“감히, 나하고, 주인님을, 떨어트리려고 했어요? 왜요? 어째서요? 뭐 때문에 그런 사악한 짓을 했죠? 아! 혹시 죽고 싶은 건가요? 그런데 자살 방법 치고는 너무 민폐를 많이 끼치는 것 아닌가요? 마법사는 머리가 좋은 줄 알았는데요? 도대체 왜 그랬어요? 왜?”
아리시아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서 페르난도의 목에 가져갔다.
단검의 날이 파고들면서 페르난도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리자 그는 크게 당황했다.
“자… 잠깐, 잠깐만……. 아리시아 씨, 아니… 아리시아! 나는 이 영지에 초빙되어 온 마법사다! 나에게 손을 댄다면…….”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왜…….”
“어… 어어어…….”
페르난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살의를 품은 광기를 직면했다.
인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살기는 곱게 책상 위에서 마법 연구만 했던 인챈트 학파의 마법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살기였다.
아리시아의 칼날이 그대로 페르난도의 목을 그어버리려는 순간이었다.
“거기까지 해라, 이 미친년아.”
누군가 끼어들어서 그녀를 말렸다.
“세피로스.”
아리시아가 눈동자만 굴려 바라본 그곳에는 세피로스가 있었다.
세피로스는 아르트라 항구에서의 작업을 보고하기 위해서 오랜만에 리온 항구로 찾아왔다. 카일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일언반구도 없이 온 것이었는데, 그 전에 복도에서 아리시아가 애꿎은 마법사 하나를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세우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하아아……. 말려야겠지?’
세피로스 입장에서 아리시아 따위야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지만 카일에게 해가 되는 존재와 행위는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만두고 물러나. 안 그러면…….”
“꺼져. 세피로스. 안 그러면 뭘 어쩌겠다는 거야? 내가 네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
“안 그러면 주인님한테 이른다.”
세피로스의 그 한 마디에 마법사 한 명의 목숨이 보존됐다.
“…….”
아리시아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러났고 세피로스는 그런 아리시아를 보고 말했다.
“이제 그만 물러나 있어. 이 마법사 입은 내가 막아 놓을게.”
“…….”
아리시아는 페르난도를 한 차례 노려보더니 말도 안 하고 그대로 돌아갔다.
‘살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한 페르난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아리시아에게 저렇게 숨겨둔 면모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하아아…… 어떻게 보면 년이 최고 미친년이라니까.”
세피로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페르난도가 말했다.
“구, 구해 줘서 고맙소. 당신도 화이트 자작님의 사람이오?”
“그렇지.”
“그렇군. 그렇다면 이후 자작님에게 오늘은 일을 고발할 때 내 증인이 되어주시겠소?”
페르난도는 이 아름다운 여인을 증인으로 삼아서 오늘 아리시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카일에게 이를 생각이었다.
감히 노예가 이 영지에 초빙된 마법사인 자신의 목숨에 위협을 가하다니? 그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다만, 여기는 그가 아는 상식이 통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아니, 그러면 곤란하니까 너는 입을 다물어 줘.”
“뭐? 그게 무슨 말이오?”
“흐음, 싫어?”
“당연하지 나는 죽을 했단 말이오. 저 미친년에게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게 해줄 거요.”
“뭐, 그렇게 나오겠지. 그런데 말이야.”
짜아아악!
세피로스는 언제 꺼냈는지 손에 검은색의 채찍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 상태로 입술을 핥으며 페르난도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거든. 이제부터 우리 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양쪽의 의견 차이를 좁혀 보자.”
“보, 보통은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하지 않소?”
“아니, 난 폭력이 좋아.”
“…….”
이날 페르난도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가급적이면 카일의 곁에 있는 여자들과는 상관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이제 알겠지? 멍멍아? 입 다물 거지?”
“…예, 주인님. 멍멍.”
“그래. 착하다.”
자기 안에 몹시 특수한 성벽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표현하기는 약간 메스꺼우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