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돌을 던진 소녀는 씩씩거리면서 파울로는 노려보고 있었다.
“으음…….”
파울로는 소녀가 자신에게 돌을 던지자 순간 당황했다.
“어허, 벌써 불쌍하고 순진한 어린 양이 세뇌를 당했구나. 아이야, 너의 죄를 용서해 줄 테니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 큭!”
따다닥!
이번에는 돌이 여러 개 날아왔다. 그 돌을 던진 것은 이제까지 참고 또 참아 왔던 신도들이었다.
“저게 보자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감히 수녀님한테 뭐가 어째?”
“어디 한 번 죽어 볼 테냐? 어엉?”
신관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잘못하면 종교 재판에 회부될 수 있을 정도로 큰 잘못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자신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레이나를 사악한 마녀로 몰아가는 파울로의 행동에 진짜로 분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 애가 먼저 돌을 던지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자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몸만 사리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고 말이다.
기름에 불이 붙은 것처럼 화가 난 민중에게 파울로는 맞아죽을 위기에 처했다.
사실 이런 위선자에 답 없을 정도로 타락한 성직자가 죽는다고 해도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이 난장판 속에는 답 없을 정도로 착하고 착한 레이나가 있었다.
“여러분들 멈추세요.”
레이나는 직접 나서서 파울로를 감싸고 나섰다.
화가 잔뜩 나서 파울로를 패 죽일 것처럼 굴던 민중은 레이나가 직접 나서서 그를 감싸자 전부 멈췄다.
“수… 수녀님.”
“수녀님 비키십시오. 위험합니다!”
“맞습니다. 그 돼지 새끼는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들의 분노에 레이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화가 난다고 폭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건 답이 아닙니다. 설령 상대가 밉다고 해도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신을 모시고 선을 행하기로 마음먹은 성직자로서는 참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아… 저걸 내버려 두면 안 되는데.’
‘바위에 꽁꽁 묶어서 바다에 버리면 안 되나?’
‘밤에 몰래 찾아가서 묻어버릴까……?’
답답해 미칠 것 같은 말이긴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성녀나 다름없는 레이나가 파울로를 감싸고 있는 이상 힘으로 어찌 할 수도 없었다.
레이나는 파울로에게 손을 뻗어서 상처를 치료해 주며 말했다
“오늘의 오해에 관해서는 차후에 대화를 통해서 풀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돌아가 주세요.”
레이나의 말에 파울로는 뿌득 이를 갈았다.
‘이런 사악한 마녀가…….’
파울로가 보기에 레이나는 진짜 사악한 마녀였다.
무지렁이들을 세뇌해서 자신을 공격하게 하고 그 후에 나서서 자신을 보호하는 척하면서 위선을 떠는 모습까지 모두 사악한 행위로 보였다.
터무니없는 아집이지만 원래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두고 보자. 이 굴욕과 치욕은 반드시 갚아 줄 테다.’
파울로는 벌떡 일어나더니 도망치듯이 자리를 떴다.
“아직 상처 치료가 남았는데…….”
곤란하게 말하는 레이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수녀님.”
“저런 쓰레기한테 수녀님의 치료는 사치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수녀님.”
“그보다 수녀님은 괜찮습니까?”
“만약 저 쓰레기가 또 와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하면 저희에게 말해 주십시오. 아주 죽여…까지는 아니고 반 죽여 놓겠습니다.”
사람들은 다가와서 레이나를 위로했다.
레이나는 자신을 위로해 주는 사람들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신관 한 명이 돌에 맞고 쫓겨났으니 일이 꽤 커지긴 했다. 하지만 레이나는 일단 주변의 사람들부터 안심시켰다.
‘정식으로 재판을 걸어오면 힘은 들겠지만……. 그때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
다음 날, 파울로는 다시 레이나를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레이나 수녀님!”
무릎 꿇고 사과하기 위해서 말이다.
“…예?”
갑자기 하루 만에 돌변해 버린 파울로의 태도에 오히려 레이나가 당황해 버렸다.
“어제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
‘이게 무슨 일이지?’
레이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제 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했다.
* * *
어젯밤.
레이나를 이단으로 몰기 위해서 찾아갔다가 크게 곤욕을 치르고 물러난 파울로는 자기 신전에서 이를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뭐부터 할까? 이단 신고를 하고 성기사단에 도움을 청할까? 아니야. 그보다……. 그래, 영주를 내 편으로 만들자. 그렇게 사악한 마녀를 처벌하기 위한 일이라면 영주도 내 편을 들어 줄 거야.”
영주에게 정식으로 요청해서 레이나를 마녀로 몰아갈 계획을 세우는 파울로였다.
그는 즉시 영주를 만나기 위해서 영주 성으로 향하려고 했지만…….
“여기 신관이 누구지?”
그럴 것도 없었다.
카일이 직접 파울로를 찾아온 것이다.
옆에 아리시아를 거느리고 찾아온 카일을 보고 파울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엉? 넌 누구냐? 이 무례한 놈!”
카일을 본 적이 없는 파울로는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가뜩이나 기분도 더러운데 어떤 젊은 놈이 찾아와서 반말로 자신을 찾으니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파울로가 모르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일단 처맞고 시작하자.”
기분은 카일이 훨씬 더 더럽다는 것을 말이다.
레이나는 카일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카일이 업적으로 영지민들의 민심을 휘어잡았다면 레이나는 가식 없는 상냥함과 자상함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녀가 하는 봉사 활동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카일에게 도움이 되었다.
영지민들의 민심을 다독이는 동시에 빈민과 고아를 구제함으로 인해서 도시의 그늘을 어느 정도 축소시키고 있었다.
인간의 문명이 고속 발전을 하기 시작하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음지가 생기기 마련인데 레이나 덕분에 그런 부분이 최소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익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나서도 카일에게 있어서 레이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손에 닿는 여자라면 누구나 자기 품에 안을 수 있는 카일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아리시아, 발레리아, 레이나 이 세 명은 카일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여자들이었다.
카일이 이미 자신의 것이라고 정한 여자들.
비록 신분이 노예라고 하지만 그런 여자가 위협을 당하면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게 남자의 본능이었다.
레이나에게 붙여 놓은 호위를 통해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카일은 만사 제쳐 두고 바로 파울로가 머무는 이곳에 뛰어온 것이다.
“끄… 끄르르르…….”
그리고 지금 카일의 발밑에는 엉망진창으로 당해서 쓰러진 파울로가 있었다.
“이제 좀 분위기를 알겠나? 네놈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카일의 말에 파울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영주님의 여자인 줄은 몰랐습니다.”
“내 여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트집을 잡아서는 곤란하지, 안 그래?”
“맞…습니다. 무조건 제가 잘못한 겁니다.”
파울로는 완전히 굴복했다.
처음에는 카일의 폭력에 항의하고 성스러운 신의 종에게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같은 싸가지 없는 발언을 했지만 거듭된 폭력과 결정적으로 카일의 각성 능력을 이용한 고문을 몇 번 곁들이자 이제는 완전히 굴복해 버렸다.
인간이 살면서 이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도 있음을 몸소 체험한 파울로는 카일이 핥으라고 하면 구두 바닥이라도 핥을 수 있을 것 같이 굴종했다.
그런 파울로를 보고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일단 대화가 통해서 다행인군. 그럼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나?”
카일의 말에 파울로는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장 이 도시에서 사라지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 말은…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 가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지어내고 나와 내 여자 그리고 내 영지까지 곤란하고 피곤하게 만들겠다. 이 말인가?”
순간 파울로의 몸이 움찔했고, 카일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그냥 물러나려는 겁니다. 이 도시에는 새로운 신관을 추천하겠습니다. 여기서 있었던 일은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파울로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해 봐야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못 믿어.’
카일은 기본적으로 파울로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인간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지.”
“그, 그게 무엇입니까?”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
“네가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 가서 귀찮은 개소리를 지껄이면 꽤 피곤하단 말이지. 그러니 너는 이 도시에서 계속 성직자로서 살아 줘야겠다.”
“그, 그런 일이…….”
카일은 파울로를 보고 말했다.
“앞으로 너는 내 영지에서 성직자로서 봉사하며 살도록 해라. 힘이 닿는 한도까지 사람을 치료해 주고, 헌금도 받지 말고, 결벽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청렴한 성직자로 살아. 같은 성직자들이 봐도 재수 없다고 할 정도로 훌륭한 성직자처럼 말이야. 알았어?”
“어, 언제까지 말씀이십니까?”
“평생!”
“…….”
카일의 말에 파울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나는 너를 전혀 믿지 않아. 그러니 감시를 붙여 둘 테고 만약 내 지시를 어긴다면…….”
카일은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 내가 너에게 했던 고문을 똑같이 진행할 거다. 시간은 두 배로 늘려서 말이지.”
“그, 그건…….”
‘크라테스시여. 부디 굽어 살피소서.’
파울로는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진상 성직자의 기도를 일일이 들어주기에는 신은 너무 높은 분들이었다.
* * *
‘두려움? 어째서 사과하러 와서 저런 감정이 느껴지는 걸까?’
레이나는 사과를 받으면서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레이나의 표정을 보고 파울로는 성급하게 말했다.
“앞으로 저도 사람들을 무료로 치유하면서 도우며 살겠습니다. 부디… 부디 저의 사과를 받아 주십시오. 레이나 수녀님.”
“예. 아… 알겠어요. 그러니 일어나세요.”
레이나는 무릎 꿇고 있는 파울로를 일으켰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로 앞으로 사람들을 돕고 신의 뜻을 실천하며 성실하고 청렴하게 살 건가요?”
“물론입니다. 꼭 그러겠습니다.”
‘안 그러면 죽으니까.’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텔레파스 능력으로 살펴봐도 파울로의 말은 진심같이 보였다.
“알았어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파울로 사제님.”
“감사합니다. 레이나 수녀님.”
그렇게 카일의 영지에는 청렴하고 사람들을 돕기 좋아하는 성직자가 한 명 더 늘었다.
* * *
아리시아.
그녀 역시 카일의 초창기부터 계속 함께 활동해 온 중진 중에 한 명이었다.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영지의 군사력과 치안을 담당하고 레이나는 치안의 복지를 담당했다.
그럼 그녀는 무엇을 담당하는 걸까?
그걸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바로…….
“주인님, 오늘의 일정이에요.”
“음. 고마워.”
카일이다.
그녀는 카일을 담당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카일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카일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고 주변을 챙기고 있었다.
원래 그녀도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처럼 자신을 따르는 특수 병력이 있었다.
그녀를 따르는 사냥꾼 출신의 50명은 던전에서 탐색꾼을 했고, 궁수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카일이 던전에 들어갈 일이 없어지면서 그들은 그저 단순한 궁수가 되었다.
아리시아는 그들 중에 부대장을 한 명 뽑아서 부대의 관리를 맡기고 자신은 카일의 곁에 붙어 있기로 했다.
카일은 그녀의 뜻을 받아들여서 그녀에게 자신의 개인 비서라는 직함을 주었다.
사실 업무능력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그녀에게 비서직을 수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열의가 있으니까 시켜보면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 정도로 가볍게 수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카일이 생각하던 것보다 아리시아는 비서로서 유능했다.
비서라는 직책은 누군가를 곁에서 챙기면서 그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잘 보필하는 것이 일의 핵심이었는데, 아리시아는 카일의 기호를 철저하게 꿰고 있었다.
카일이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료, 심지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두 꿰차고 있었다.
아리시아는 그것들을 항상 카일이 원하는 타이밍에 척척 내왔다. 예를 들어서…….
‘목이 좀 마른데. 뭐라도 마실까?’
카일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아리시아가 다가와서 말했다.
“주인님. 여기 아이스커피 드세요.”
어느새 마법사에게 준비시킨 얼음까지 동원해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유리잔에 담아서 주었다.
“어, 고마워.”
그리고 잠시 후.
오후 훈련을 마친 카일은 문득 생각했다.
‘아직 저녁 시간은 아니지만 배가 좀 출출하네. 간단하게 뭐라도 먹고 움직일까?’
그런 심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인님. 햄에그 믹스 샌드위치를 준비했어요. 간단하게 드시고 하세요.”
“오, 고마워. 마침 배고팠는데.”
이런 식으로 카일이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아리시아는 알아서 척척 준비를 해줬다.
그런 카일의 모습은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럽기 짝이 없었다.
“와아아……. 진짜, 주인님은 좋겠다.”
“저렇게 아름다운 아리시아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챙겨 주다니.”
“어떻게 예쁜 사람이 마음까지 고울 수 있지? 너무 판타지 아니야?”
카일의 이런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대부분 최근에 받아들인 4기생들이었다.
그들은 훈련장에서 빡세게 구르면서 카일이 아리시아의 시중을 받으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때마다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4기생들을 보고 2기생 교관이 다가와서 말했다.
“하아아……. 너희들은 저게 부럽냐?”
“어? 교관님?”
“왜 그러십니까? 설마 교관님은 저게 부럽지 않으십니까?”
4기생 훈련병들의 말을 들으며 2기생 교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나도 예전에는 너희들처럼 생각하기는 했지. 했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