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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26화 (126/215)

126화

젊은 시절 악명이 자자했던 피바다 라킨도 오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기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 자신의 산하에 있는 젊은 해적들을 적극적으로 밀어 주기 시작했다.

자신이 바다에 나갈 수 없는 몸이 된다고 해도 자신의 산하에 있는 해적들을 통해서 자신의 악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라킨을 그들을 자식이라고 부르며 그들에게는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

그리고 지금, 피바다 라킨의 휘하에는 수십 명이 넘는 산하 해적들이 있었고 그들은 철통같은 단합을 유지하며 지금도 현역에서 은퇴한 피바다 라킨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다.

그런 라킨이 산하 해적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이미 눈치가 빠른 이들은 내가 왜 불렀는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라킨의 말에 해적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라킨의 말을 기다렸다.

라킨은 그런 산하 해적들을 보고 말했다.

“알바니아 항구가 불타버렸다. 범인은 그동안 싱카라 연합 제국의 남부에 새롭게 부임한 카일 화이트라는 신흥 귀족이다.”

라킨이 손을 들어 올리자 보조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서 해적들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그 서류에는 카일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간단한 출신배경까지 적혀 있었다.

“카일 화이트는 던전 도시인 바이에른에서 출세한 모험가라고 한다. 이번에 던전 공략자로 이름을 날리고 국가를 건국한 빅토르의 수하로 들어오면서 작위를 받은 모양이다. 뭐, 여기까지는 아무래도 좋다.”

라킨은 눈을 스산하게 뜨면서 말했다.

“문제는 이 X새끼가 감히 생때같은 내 자식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라킨의 산하 해적들 중에 정예라고 불리는 이들은 아르트라 항구를 근거지로 활동하지만 다른 항구에도 그에게 자식의 이름을 받은 산하 해적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워낙 위명이 쟁쟁하다 보니 별의별 해적들이 다 피바다 라킨의 이름을 등에 업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적들이 간절히 원하는 피바다 라킨의 이름을 얻은 해적단 중 하나가 바로, 이번에 카일이 박살 낸 일곱 개의 해적단 중 있었던 거였다.

라킨으로서 산하 해적단이 당했는데 그냥 참고 있을 수는 없었다. 피바다 라킨이라는 이름이 주는 공포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라킨은 주변의 산하 해적들을 보고 말했다.

“들어라 아들들아. 우리 해적은 바다의 상어다. 상어라는 놈은 결코 먹잇감에게 얕잡아 보이고서는 살 수가 없다.”

“맞습니다. 아버지.”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그 자작인지 뭔지 하는 놈의 피부를 벗겨서 바다에 던져버리죠.”

호전적인 해적들은 이미 라킨이 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카일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기세였다.

라킨은 그런 산하 해적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전 병력을 끌어모아라. 감히 먹잇감이 상어에게 반항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예. 아버지.”

“지금 당장 애들을 다 모으겠습니다.”

해적들이 당장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버지.”

한 명의 젊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일어난 남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해적 티가 거의 나지 않는 젊은 남자였다.

주변의 다른 해적들이 대부분 40대 중후반의 연령에 얼굴에는 훈장처럼 칼자국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지만 이 남자는 좀 달랐다.

아직 한창때인 20대로 보이는 연령에 얼굴도 제법 잘 생긴 남자였다. 외모만 보면 해적보다는 극단의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준수한 남자였다.

겉보기만 해도 눈에 띄는 이 남자는 실제로 주변의 다른 해적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이 강했다.

“아버지, 너무 감정적으로 나서면 안 됩니다. 지금 싱카라 연합 제국의 남부에 나라를 건국한 인물은 던전 공략자입니다. 수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업적을 세운 인물이며, 그런 빅토르가 남부의 국경 지대에 영지를 내렸다는 말은 이 카일 화이트라는 남자도 보통이…….”

“그만.”

라킨은 그 젊은 남자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데드, 나는 너를 무척 아낀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젊은 남자의 이름은 데드였다. 아직 젊은 나이에도 해적단 하나를 거느릴 정도로 빠른 출세를 한 남자였다.

좋은 분야든 나쁜 분야든 간에 어린 나이에 출세를 한 인물들은 보통 유능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라킨이 데드라는 젊은이를 아끼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너는 다 좋은데 가끔 신중함이 지나치는 경우가 있어. 동료들 앞에서 적을 너무 과하게 칭찬하지 마라. 너는 형제들의 사기를 떨어트릴 생각이냐?”

“아버지, 아무 근거 없이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 역시 알바니아 항구의 파괴 사건을 들은 후 놈에 관해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해적단에 최근에 들어온 동료를 통해서 카일 화이트 자작의 과거 행적을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흐으음…….”

라킨은 의자 뒤에 머리를 기대고 데드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말해 봐라.”

“카일이라는 남자는 던전으로 유명한 바이에른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전의 행적은 알 수 없지만 그가 바이에른에 등장해서 모험가가 되었을 때의 나이가 갓 열여섯이었다고 합니다.”

“어리군. 그때가 언제지?”

“대륙력 522년입니다.”

“522년? 진짜 얼마 안 됐군. 그럼 지금 그놈 나이가 몇이라는 말이냐?”

“이제 스물둘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허어어……. 그렇게 어린놈이 내 자식을 공격했다고?”

“과거의 행적을 돌아보면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인간입니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모험가로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그때마다 큰 방해가 들어왔지만 과감한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고는 했습니다.”

“과감한 방식이라면? 어떤 방식이지?”

“한 번은 뒷골목 조직에게 잡혀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대응으로…….”

“뭘 했지?”

“도시를 불태웠다고 합니다.”

“뭐?”

“허어어……?”

“미친놈일세.”

엄밀히 말하면 카일이 잡혔던 폐기장만 불태웠던 것이지만 소문이라는 건 거리에 비례해서 과장이 되기 마련이다.

이 순간 해적들의 머릿속에서 카일은 범죄 조직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도시에 대규모 방화를 저지르는 미친놈으로 보였다.

“바이에른이라면 모험가 길드가 꽉 잡고 있는 도시 아닌가? 거기서 방화 같은 미친 짓을 하면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텐데?”

“영문은 모르겠지만 길드 상부와 도시의 수뇌부에 막대한 뇌물을 주고 풀려난 것 같습니다.”

“과연, 그렇군.”

“역시 어디를 가도 돈이 최고지.”

“돈으로 안 되는 곳이 없으니 말이야.”

해적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런데 라킨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바이에른 같은 거대 도시의 상층부에 뇌물을 먹이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집안에 돈이 많은가?”

“아닙니다. 카일 본인에게 돈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예. 그렇습니다. 그의 집안은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간에는 천애 고아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카일 스스로가 돈을 버는 것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험가로 활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파티를 만들고, 그 파티를 클랜으로 키우고,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서 나중에는 바이에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돈이 많은 클랜을 이룩했다고 합니다.”

데드는 이런 카일의 행적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래서 주변을 보며 ‘대단하지 않습니까?’라는 식의 동의를 구하고자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후후후……. 누구하고 비슷한걸?”

“그러게 말이야. 돈 잘 벌고 알랑거리고…….”

“데드, 혹시 조사한 게 아니라 네 소개서 써온 것 아니냐?”

하지만 형제라는 이들에게서 돌아온 건 동의가 아니라 조롱이었다.

‘이 빌어먹을 노땅 돌대가리 새끼들이…….’

데드는 실제로 라킨 휘하의 해적들 중에서 돈을 가장 잘 벌었다.

해적으로서 거두는 성과가 다른 해적들보다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성과물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보여 주는 수완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데드의 능력을 눈여겨 본 라킨은 데드에게 본부에 들어오는 모든 보물의 처분을 맡기고 거기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게 데드가 아직 20대 중반의 나이로 자기보다 두 배 가까이 나이가 더 많은 해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이유였다.

당연히 다른 해적들은 그런 데드의 능력을 싫어했다.

자신보다 센 것도 아니고 해적질을 더 잘한 것도 아닌 어린놈이 그저 돈을 잘 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들과 동열로 취급받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이 무능한 새끼들이 감히 회의장에서 대놓고 비웃어?’

물론 데드 역시 자신을 호구 취급하는 다른 형제들을 싫어했다.

탕!

라킨이 한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만, 내 앞에서 못난 모습 보이지 마라.”

“예. 아버지.”

“예. 아버지.”

부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라킨이 데드에게 말했다.

“계속 말해 봐라.”

“예. 아버지. 어쨌든, 카일이라는 남자는 막대한 자금과 과감한 수단으로 점점 바이에른에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기존에 대형 클랜으로 자리하고 있던 실버 팽이라는 클랜과 격돌해서 상대편을 완전히 박살 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형님들의 반도 살지 못한 애송이가 해낸 것이죠.”

슬쩍 형제들을 나이만 많은 무능한 놈으로 취급하는 데드였다.

그걸 알아들은 해적들이 울컥하여 몸을 들썩였지만, 그 전에 라킨이 먼저 나섰다.

“한마디로 대단한 놈이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지만 말이다, 데드. 놈이 대단한 놈이라는 것이 내가 복수를 망설여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수 이전에 대화를 통한 동맹은 제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동맹?”

“예. 앞에서도 말했지만 카일 화이트는 돈을 버는 감각이 탁월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고르시파 왕국의 빅토르 국왕에게 영지의 전권을 위임받기도 했죠. 그의 영지를 통해서 우리와 거래를 튼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수입이 늘어날 겁니다.”

“…….”

라킨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피보다 황금이 더 좋기는 하지. 복수 같은 거 해봐야 어차피 내 세력만 더 깎일 뿐이니 말이야.’

생각 같아서는 라킨은 데드의 말을 듣고 싶었다.

카일에게 뇌물을 주고 어느 정도 친분을 만든 다음 거래선을 트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게 좋겠다. 그렇게 하자.’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쾅!

“닥쳐라. 데드, 너는 형제의 핏값을 황금으로 대체할 생각이냐?”

“맞다. 아버지의 위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피의 복수는 이뤄져야 한다. 그게 피바다 라킨의 자식인 우리의 의무다.”

바로 이게 문제였다.

이미 카일은 라킨의 산하에 있는 해적을 건드렸고 여기서 복수를 하지 않으면 라킨의 명성에 흠이 간다.

내 자식을 건드리면 반드시 복수를 한다.

그 규칙을 꾸준하게 지켜서 반드시 복수를 했기에 피바다 라킨의 일족은 지금의 사이펀 왕국에서 최고의 해적 집단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라킨은 알고 있다. 성질 더럽고 은혜 따위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해적들이 자기 말에 끔뻑 죽어가면서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악의 카리스마 덕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게 무너지는 순간 라킨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지위도 무너진다.

그 말은 피바다 라킨이 그저 늙고 힘없는 노인이 될 뿐이라는 말이고, 그런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처참한 죽음뿐이다.

‘역시 어쩔 수 없군. 돈보다는 내 명성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라킨은 눈을 뜨고 단정 짓듯 단호히 말했다.

“설령 세상 모든 황금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내 자식을 죽인 죗값은 치러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

“그만해라. 데드 너도 이 이상 말하지 말고 병력을 준비해라.”

“아버지 재고해 주십시오. 적은 강하고 싸워서 볼 수 있는 이득은 없습니다. 이미 죽은 놈들은 어쩔 수…….”

“그만!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의 반론은 용서하지 않겠다.”

라킨의 말에 데드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입을 다물었다.

‘당신에게 중요한 건 부하들의 복수가 아니라 자기 위상이겠지. 빌어먹을…….’

데드는 머리가 좋은 만큼 라킨의 속내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말은 그럴 듯하게 했지만 처음에 자신의 의견에 생각을 해봤다는 것은 라킨도 죽어버린 부하들보다 돈이 더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결정을 내린 건 결국 피바다 라킨이라는 카리스마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진짜 부하를 위한다면 그 복수 과정에서 실제로 더 많은 부하들이 죽을 게 뻔하건만, 그런 멍청한 짓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데드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열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라킨에게 맞설 수는 없었다.

데드의 능력을 높이 사는 라킨이긴 하지만 자신의 권위를 향한 집착은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러나서…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음, 그러도록.”

결국 라킨의 고집대로 그의 부하들이 복수의 함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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