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25화 (125/215)

125화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에이라가 먼저 카일에게 말했다.

“언제부터 눈치 챘어요?”

“숨길 생각은 없나 보지?”

“내가 숨기면 속아 줄 생각은 있고요?”

“전혀.”

“거봐.”

투덜거리는 에이라를 보고 카일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금씩 위화감은 있었다. 나하고 말이 너무 잘 통하는 느낌이랄까? 여기 있는 결재 서류 중에서 내가 지구의 지식을 도입해서 만든 물건들도 몇 가지 있지. 그 용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결재를 할 수 없을 텐데, 넌 능숙하게 그 물건의 가치를 파악했어. 안 그래?”

“그냥 내가 천재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그래도 최소한 나에게 ‘이런 걸 어떻게 생각했죠?’ 정도의 질문은 했을걸?”

“쯧… 그건 그래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커피 마시는 걸 보고 깨달았지.”

“설탕 크림 두 스푼……. 하아, 너무 국룰에 충실했군요.”

에이라의 말에 카일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너 카페인이라는 말을 썼잖아?”

“…아아!”

“커피의 각성 효과는 마셔 본 사람이라면 몸으로 깨달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원인이 되는 성분을 카페인이라고 명칭해서 부르는 사람은…….”

“지구인뿐이죠. 하아아……. 내가 너무 안이했군요.”

“네 입장에서는 상대편이 같은 지구인이라는 것은 이해 못했던 거겠지.”

“하아……. 이런 골치 아픈 등장인물 구성을 봤나.”

“골치 아프다고?”

“당연히 골치 아프죠. 저는 이 세계에 다시 태어났을 때만 해도 약간의 고난과 역경은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 가면 잘생긴 남자 낚아서 ‘그리고 그녀는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같은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고요.”

“그게 뭐야?”

“로판의 정석?”

“……?”

“몰라요? 오빠… 아,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는 오기 전에 로판은 안 읽었어요. 오직 퓨전파?”

“아니, 그게 아니고…….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이상하네. 말하는 거 보면 오빠도 한국에서 온 거 맞죠?”

“…한국이 어딘데?”

“…응?”

“…….”

“…….”

둘 사이에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에이라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한국 몰라요?”

“모르는데?”

“Do you know BTS? 블랙핑크? 비빔밥?”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

“잠깐, 오빠, 우리 호구 조사 좀 합시다.”

에이라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문을 열었다.

“나는 2011년 한국에서 왔어요. 야근을 마치고 평범하게 퇴근하다가, 평범하게 졸음 운전하는 트럭에 치인 결과로 평범하게 이세계로 왔죠.”

‘어디가 평범한 거지?’

의문투성이인 카일에게 에이라가 말했다.

“오빠는요?”

“나는… 2245년에 왔다.”

카일은 조금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자신의 전생에 관해서 밝히는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입을 여는 것이었지만, 지구에서 무엇을 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인간 이하의 전략 병기 취급당하던 과거 따위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더러웠다.

에이라도 그 부분을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아아……. 그러니까 말이 안 통했지. 이해했어요.”

“그래.”

“에… 아마도 오빠는 나보다 훨씬 더 미래에서 왔나 봐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세계선일 수도 있고 말이죠.”

“그럴 확률이 더 크다고 본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실제로 이세계가 있다면 평행 세계도 있을 수 있겠죠. 뭐, 어쨌든 오빠는 나하고 같지만 비슷한 세계, 혹은 다른 시간 선에서 왔다고 믿으면 되겠네요.”

“그럴 거다.”

“원래 세계에서 오빠 뭐 했어요? 오빠가 가지고 있는 그 신기한 능력은 이 세계로 오면서 받은 거예요?”

“아니, 이건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이다. 그보다 너는 뭔가 이 세계로 오면서 능력을 받았다는 말이야?”

“예. 신이라는 사람하고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축복을 받았죠. 오빠는 안 그랬어요.”

“나는 그런 거 없었는데?”

“…나만 특례였나?”

카일은 어쩐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능력을 받았는데?”

“별것 아니에요. 지적 능력을 높여 달라고 했어요.”

“지적 능력?”

“예. 사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치트 능력을 많이 말해 봤어요. 육체를 무적으로 만들어 달라거나, 태어나면서부터 대마법사로 만들어 달라거나… 뭐, 그런 거요. 그런데 쩨쩨하게 다 안 된다고 하는 거 있죠?”

‘인생을 날로 먹으려고 한 것처럼 들리는데?’

에이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결국 타협하고 타협해서 만든 게 지적 능력을 높여 달라는 거였어요.”

“지적 능력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말하는 거야?”

“뭐, 간단히 말하면 머리가 좋아졌죠. 암기력이나 계산 속도는 거의 컴퓨터 수준이고 전체적으로 두뇌 회전이 빨라졌어요.”

“그게 다야?”

“예. 그래도 당시에는 이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어디를 가도 머리 좋은 사람들이 두고 보면 잘 살잖아요?”

듣고 보니 그런 듯했다.

“문제는 말이죠. 제가 태어난 레드로즈 공국이 여성의 권리를 개똥으로 아는 X창 난 공화국이라는 거죠.”

“어어……. 말은 조금 곱게 하자. 넌 지금 열세 살짜리 어린애의 모습을 하고 있어.”

“어쩌라고요? 속은 스무 살 넘었거든요?”

“그럼 33세 할래?”

“그럼 죽을래요?”

“내가 고용주거든.”

“33세든 그냥 3세든 좋을 대로 대하고 부려 주십시오.”

자본주의의 위대함을 아는 걸 보니 확실히 지구인이 맞았다.

“크흠, 어쨌든! 기껏 좋은 머리를 가지고 타고 태어나서 지식도 잔뜩 습득했는데, 이놈의 사회적인 인식이라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하아……. 레드 로즈 공국 망해라.”

“…….”

어지간히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이제 카일과 에이라는 서로의 정체와 과거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카일의 물음에 에이라는 웃으면서 말했다.

“고액 연봉만 지급해 주신다면 오빠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요.”

“일반 연봉이면 안 되는 거냐?”

“양심이 있다면 당연히 나처럼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고급 인력을 부리기 위해 ‘고액 연봉’을 지급해야 하지 않겠어요?”

“맞는 말이다만……. 그런데 미모는 굳이 집어넣어야 되나?”

카일의 말에 에이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다시 태어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요?”

“…글쎄?”

“아침마다 거울 볼 때였어요.”

“…….”

“진짜 이것도 로판의 정석이긴 하지만 진짜 이렇게 예쁘게 태어날 줄은 몰랐죠. 하아아……. 전생에 이 미모로 태어났으면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을 텐데. 발로 연기해도 수백억을 벌었을 거야.”

“뭐, 귀엽게 생기긴 했지.”

“거의 천사죠. 아, 사진 찍고 등 뒤에 날개만 합성해도 ‘좋아요’가 몇 개일지…….”

그렇게 자기 미모를 찬양하던 에이라가 말했다.

“아! 그래도 오빠 나한테 반하면 안 돼요. 나는 어차피 이 세계에서 연애할 거면 좀 더 로판의 정석 같은 상대와 연애를 하고 싶어요.”

“그게 어떤 상대인데?”

“글쎄요……. 소박하게 말하면 제국의 공작이나 황제. 좀 더 욕심내면 드래곤 로드나 초월적인 초고대의 정령왕… 뭐, 그런 거.”

“…….”

“왜요? 왜 그렇게 짠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요? 다른 로판에서는 남들 다 하는 거예요.”

“그래. 그렇구나.”

“그렇게 불쌍한 애 보듯이 보지 말라니까요?”

“그래, 그래. 알았어.”

이때 카일은 생각했다.

‘얘는 평생 솔로로 살겠구나.’라고 말이다.

몇 가지 곡절은 있었지만 에이라의 존재는 카일에게 큰 힘이 되었다.

높은 행정 능력을 지니고 있는 관료인 동시에 카일이 추진하려고 하는 현대적 지식에 기반을 둔 사업 계획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카일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다 챙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결재는 에이라가 따로 챙겨서 카일에게 다시 한번 결재를 받았지만 카일의 했던 행정 업무의 90%이상은 에이라가 케어해 주었다.

풍부한 자금과 과감한 발전 계획으로 인해서 카일의 영지는 점점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일은 알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계속 잘 풀리기만 할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벌집을 건드렸으니 벌떼가 날아올 때가 됐는데 말이지.”

* * *

새삼스럽지만 사이펀 왕국은 진짜 범죄자 양아치 집단으로 불리는 나라다.

국가의 주요 산업이 해적질인 이 나라에서는 타국의 배나 항구를 공격하고 약탈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하지만 자신들이 당한다면 그건 얘기가 달라진다.

해적들이 모항으로 애용하던 알바니아 항구가 완전히 불타고 파괴되었다는 소식은 사이펀 왕국의 해적들을 긴장시켰다.

“어떻게 될까?”

“으음, 이전의 싱카라 제국하고 다른 대응이긴 한데…….”

“지랄, 그래 봤자 처음뿐이야. 절대 굴복하지 않고 끈기 있게 덤비면 저 놈들도 두 손 들게 되어 있어.”

“과연 그럴까?”

“당연하지. 우리 사이펀 남자들보다 근성 있는 놈들이 전 대륙에 어디 있어.”

“그러다 실제로 싸움이 나서 다 죽으면 어쩌고?”

“싸우지 뭐. 네 말대로 죽기밖에 더 하겠어?”

해적들의 의견은 반반이었다.

싱카라 제국의 남반부에 새롭게 생긴 로스시파 왕국의 강경 노선을 경계해야 한다는 비중이 반이었고 나머지 반은 놈들이 질릴 때까지 덤비고 또 덤벼서 마지막에 이기면 된다는 의견이었다.

사실 두 번째 의견은 호전적인 성향이 사이펀 왕국의 해적들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원래 국가 입장에서는 이런 미친놈들이 골치가 아픈 법이다.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무법을 행사하는 범죄 조직은 전쟁 중인 적군보다 더 까다로운 경향이 있었다.

사이펀 왕국에서 가장 커다란 아르트라 항구.

이 항구는 대륙에서 세 가지로 유명하다.

첫째는 해적들의 천국.

해적 왕국인 사이펀 왕국에서 가장 커다란 항구라는 말은 해적들의 근거지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대륙 최대의 암시장이다.

대외적으로 무역이 활성화되어 있는 항구는 아니지만 아르트라 항구에는 수많은 해적들이 약탈해 온 물자와 보물이 풀린다.

공식적인 루트로 처분할 수는 없는 보물들은 자연스럽게 어둠 속에서 거래되었고 그것이 거대한 암시장을 형성한 것이다.

그래서 대륙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에 있는 물건 중에서 아르트라의 암시장에서 구하지 못할 물건은 없다.

이런 암시장을 이용하기 위해서 전 대륙에서 꽤 많은 귀족들이 찾아왔다.

해적들이 지배하고 있는 위험한 범죄 항구 도시에 찾아오는 귀족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그 규모는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암시장에서 파는 보물들은 그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특성은 그 암시장을 이용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 사업이다.

이 추악하고 범죄율과 사망률이 극악한 도시에서 무슨 놈의 관광이겠냐고 하겠지만, 사실 이 도시는 여러 국가에서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관광이 활성화되어 있는 도시다.

하나 관광 사업이라고 해도 암시장을 이용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업이 건전할 리가 없다.

도박, 술, 여자, 마약 등등.

아르트라 항구 도시는 이 세상 모든 환락과 쾌락을 맛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했다.

폭력과 쾌락과 돈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범죄 도시였다.

이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히 해적이었다.

그런 해적들 중에서도 제법 이름이 굵직한 거물들 몇 명이 모여서 만남을 가졌다.

“모두 오느라 수고가 많군. 이렇게 호출에 응해 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모여 있는 해적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는 백발이 무성한 외팔의 노인이었다.

얼굴의 주름과 백발로 그가 노인임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의 당당한 태도와 날카로운 눈빛은 그가 절대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라킨.

피바다 라킨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해적이었다.

사이펀 왕국에서 널리고 널린 게 해적이지만 피바다 라킨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해적이다.

딱히 귀족 작위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사실상 사이펀 왕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력자 중에 한 명이며 평범한 항구 도시였던 아르트라를 환락과 폭력이 도시로 키워 낸 인물이기도 했다.

해적이라면 이를 가는 베르나도 왕국에서 이 남자에게 걸어 놓은 현상금이 무려 30만 골드였다.

영지와 귀족 작위를 살 수도 있을 정도로 큰돈이 이 노인에게 걸려 있었다.

젊은 시절 그가 가라앉힌 베르나도 왕국의 군함만 해도 이백 척이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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