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레드 로즈 공국의 후계자 계승 권리는 오로지 남자에게만 주어졌다. 그리고 남녀 간의 차별이 꽤 심한 나라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여자는 남편에게 헌신하고 집안을 보살피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며 외부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나라에는 여성 관료도 있었고 여자가 작위나 왕위를 이어 받는 경우도 제법 있었지만, 레드 로즈 공국은 달랐다. 여자가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그 성과와는 별개로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설사 왕이라고 해도 그런 세간의 인식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공왕은 에이라 공주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 이후 공왕은 에이라 공주를 다른 공주들보다 훨씬 아끼고 자주 만남을 가졌다.
매일 식사를 함께하고, 공주가 필요하다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구해 주었다.
그렇게 만남이 잦아지면서 공왕은 자연스럽게 공주에게 국정에 관한 의논을 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대전에 불러서 의견을 구한 것은 아니다. 그랬다간 난리가 났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골치 아픈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도로 물어보는 것은 가능했다.
에이라 공주는 공왕의 이런 비공식 자문에 항상 완벽한 답을 가져왔다.
세금과 관련한 새로운 방안이 필요할 때도.
“토지의 보유량에 따른 세금을 다르게 매기면 됩니다.”
국가의 병력으로 고민할 때도.
“인구수가 적은 우리는 병력의 숫자가 아니라 질에서 압도해야 합니다. 우수한 병사를 육성하기 위한 육성 기관을 만들고 퇴역 군인들을 교관으로 임명하십시오.”
무역과 관련한 자문도.
“남방대륙의 교역품에 관해서 관세를 낮춰서 베르나도 왕국의 상인들이 우리 쪽 통행료를 이용하도록 유도하시죠. 만약 율리우스 왕국의 항의가 들어온다면 루마니스 제국에게 중재를 부탁하십시오. 저희들이 낮춘 관세로 인하여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 제국은 절대 중재를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정확했다.
에이라 공주의 조언에 따라 정책을 진행한 것만으로도 공왕은 훌륭한 치세를 하고 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다.
‘하아아, 아깝다. 정말… 너무나 아까워.’
공왕은 에이라 공주의 딸의 재능을 알면 알수록 더욱더 안타까웠다. 이대로 다른 나라에 시집보내기에는 그녀의 재능이 아까운 것을 넘어서 무서울 정도였다.
만약 자기 딸이 장성해서 바로 이웃한 율리우스 왕국이나 베르나도 왕국에 시집을 가고 그곳에서 재능을 꽃 피운다면?
원래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레드 로즈 공국은 순식간에 몰락해 버릴지도 몰랐다.
‘이대로는 안 된다.’
공왕은 자기 후계자인 아들들을 닦달했다.
“멍청한 것. 어째서 그렇게 생각이 짧은 것이냐? 조금은 네 동생을 닮아라. 네 동생은 이미 대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견식을 갖추었는데 너는 어찌 이리 모자란 것이냐? 부끄럽지도 않느냐”
공왕은 아들들을 나무라면서 계속 에이라 공주와 비교했다. 어린 동생보다 못한 오빠로 만들면서 그들에게 굴욕감을 심어 준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은.
“쯧쯧쯧, 무능한 것. 이럴 바에는 왕자라는 것들을 모두 쫓아내 버리고 에이라에게 공국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낫겠다.”
공왕은 왕자들이 모자란 모습을 보일 때마다 종종 에이라 공주에게 나라를 물려줄 것처럼 말했다.
정작 그럴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로써 왕자들이 자극받기를 원해서 한 말이었다.
공왕은 나름대로 후계자들을 강하게 교육시킨다고 이런 방법을 쓴 것 같았지만 이건 에이라 공주의 인생에 있어서 재앙이 되었다.
레드로즈 공국의 왕자들은 자신들보다 어린 에이라 공주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품었다.
‘어린 것이 주제도 모르고 건방지구나.’
‘그래 봤자 계집 주제에…….’
‘아버님의 총애만 사라지면 저런 계집 따위는 영영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버릴 텐데.’
에이라 공주는 본인이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사방에 적을 만들어 버렸다. 그녀가 그것을 깨닫고 어떻게든 손을 써보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왕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공주들마저도 그녀를 증오하고 경계했다.
영특한 에이라 공주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러면 좋지 않은데. 좋지 않아…….”
이런 상황이 자신의 미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열셋이 되었을 때. 결국 문제가 생겼다. 현 레드 로즈 공국의 공왕이 급환으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원래 지병을 앓았던 공왕이 쓰러지자 후계자의 자리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때 한 가지 소문이 퍼졌다.
레드로즈 공국에 최초로 여왕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라는 소문 말이다.
딱히 에이라 공주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게 누구를 뜻하는지는 뻔했다.
“위험해. 이건 진짜 위험해.”
에이라 공주는 목숨의 위기를 실감했다.
자신을 유일하게 보호해 주던 공왕이 병상에 누운 지금 그녀를 지켜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최소한 열여섯까지는 참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녀는 미리 챙겨 두었던 재산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기로 했다.
애당초 오라버니들의 질투가 극에 달했던 순간부터 이 나라에서 평생 몸 성히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사라졌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몰래 야밤에 마차를 타고 왕실을 떠나려고 하는 에이라 공주는 이대로 가까운 베르나도 왕국으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망명 또한 쉽지 않았다.
“꺄악! 공주님! 피하세요!!”
“낸시!”
그녀가 타고 있던 마차가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습격을 받았다. 괴한은 그녀를 해하고자 했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유일한 자신의 편이었던 시녀가 칼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에이라 공주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보낸 것이냐?”
“알 것 없소. 우리는 시킨 일만 하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괴한들은 에이라 공주를 잡았다.
그때 그녀는 사실상 죽음을 각오했지만 괴한들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를 해적들에게 넘겨서 최대한 먼 땅에 노예로 팔아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녀에 대한 질투심이 강한 왕자들은 그녀가 죽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기 바랐던 것이다.
* * *
“그 결과…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저는 바키 버얼레라는 돼지 변태에게 팔렸던 겁니다.”
에이라 공주는 자신이 왜 바키 버얼레 백작의 비밀 감옥에 가둬져 있었는지 사정을 조리 있게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카일은 멀리를 긁적거리면서 생각했다.
‘전부 본인 말이다 보니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를 모르겠네.’
카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소녀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도 없었다.
레드로즈 공국의 공주?
열세 살에 다른 왕족으로부터 질시를 받을 정도의 천재?
아무것도 증명된 것이 없었다.
고민하는 카일에게 에이라가 말했다.
“못 믿겠다는 표정이군요.”
“솔직히 말해서? 맞아. 못 믿겠어.”
“자작의 입장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제 말은 틀림없이 진실입니다. 가능하면 그걸 증명할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군요.”
“기회라… 어떤 기회 말이지?”
“제 신분을 증명하는 건 아마도 무리일 겁니다. 레드 로즈 공국은 너무 멀리 있고, 무엇보다 제 오라버니라는 새끼들이 제 신분을 증명하거나 몸값을 지불할 이유는 조금도 없을 테니까요. X새끼들, 두고 보자.”
“…….”
공주라고 믿기에는 입이 꽤 험한 꼬맹이였다.
잠시 이를 갈던 에이라가 카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제 신분은 증명할 수단이 없어요. 그 대신 제 능력을 증명하게 해주세요.”
“능력을? 어떻게?”
피식 웃으면서 물어보는 카일의 말에 에이라는 한쪽에 있는 레이나를 흘깃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동안 저 수녀님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자작님은 최근 던전 공략자로 명성을 떨친 빅토르 건국 왕 전하가 세운 고르시파 왕국의 신흥 귀족으로서 영지를 받아서 이 영지를 다스리고 계시죠. 맞습니까?”
“맞아. 그런데 그게 뭐?”
“저를 행정 관료로 임명해 주세요. 그렇다면 제 능력을 보여드리죠.”
“열세 살 꼬맹이를? 말도 안 되는 얘기야.”
“엄밀히 말하면 열세 살의 ‘천재’ 꼬맹이를 고용하라는 겁니다.”
“…….”
카일이 답이 없자 에이라는 작은 가슴을 쭉 펴고 도도하게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처럼 미모와 지성을 겸비하고 있는 우수한 인재를 거의 공짜로 고용할 수 있는 기회는 자작님의 평생에 두 번 온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공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공주병은 확실히 있는 것 같네.”
객관적으로 보면 10년 후가 기대되는 미모를 하고 있기는 했다. 그래도 꼬맹이가 자기 스스로를 미모와 지성을 겸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조금 웃겼지만 말이다.
“뭐, 기회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일어날 수 있겠어?”
“예. 물론입니다.”
에이라는 누워 있던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처음에 구출했을 때는 피골이 상접했다고 느낄 정도로 야윈 모습이었지만 그동안 레이나의 신성력을 겸한 치료와 적절한 식사를 통해서 몸을 꽤 회복한 듯 했다.
카일은 그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전용 막사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보기만 해도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서류가 가득 쌓여 있었다.
카일은 그 중에서 서류를 조금 꺼내서 에이라에게 맡겼다.
“어때? 네가 말하는 대로 높은 지성의 소유자인 천재 소녀라면 이걸 보고 결재의 가부를 판단 할 수 있겠지?”
카일의 말에 에이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못합니다.”
“…응?”
“저는 지금 자작님의 재정 상황과 향후 영지의 발전 계획을 조금도 모릅니다. 그 와중에 업무 서류만 보고 결재의 가부를 판단하라는 것은 나침반 없이 원양 항해를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네 천재성을 증명할 수 있겠니?”
에이라 공주는 카일을 보고 말했다.
“사흘만 주십시오.”
“사흘이라고?”
“예. 사흘 안에 영지와 자작님이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이 영지의 상태와 자작님의 미래를 판단하겠습니다.”
카일은 이 순간 처음으로 이 꼬맹이가 진짜 공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몫을 요구하는데 굉장히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은 높은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바람.”
“예. 주인님.”
“호크를 불러서 이 아이에게 호위를 붙여 줘. 그리고 사흘 동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편하게 말씀해도 되요.”
“으음… 알겠다.”
검은 바람은 카일이 시키는 대로 에이라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카일의 옆에 있던 아리시아가 말했다.
“주인님, 저 아이가 진짜 공국의 공주일까요?”
“아마도 맞을 거야.”
“너무 터무니없는 말 아닌가요?”
“오히려 그래서 신뢰가 갔어. 저 정도로 똑 부러진 꼬맹이라면 없는 말을 지어낼 때 조금 더 그럴 듯하게 지어내지 않겠어?”
“…그건 그래요.”
아리시아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자기 책상에 앉아서 서류를 읽으며 말했다.
“저 꼬맹이의 말을 전부 믿는 건 아니야. 원래 자기 입장에서 하는 말이라는 건 조금씩 자기변호를 위한 과장이 들어가기 쉬운 법이지. 하지만…….”
“하지만요?”
“저 꼬맹이가 실제로 행정 능력을 조금이라도 갖추고 있다면 지금 나에게 간절하게 필요한 능력이거든.”
그렇다. 이게 본심이다.
열세 살 꼬꼬마의 말에 넘어가 준 것은 지금 카일에게 행정 능력을 가진 인재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일은 자기 막사 한쪽에서 방석을 깔고 앉아서 뒷다리로 귀 뒤편을 벅벅 긁고 있는 화이트를 바라봤다.
“솔직히 지금 같아서는 저 녀석 신세가 부러울 정도야.”
한때 던전을 누비고 트롤을 찾으면서 탐색견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증명한 명견 화이트였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냥 늘어져서 먹고 싸고 자고밖에 안 했다.
‘진짜 부럽다.’
* * *
이틀 후.
카일은 사흘이라는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에이라는 이틀 후에 나타나서 말했다.
“오늘부터 업무를 분담해 드릴게요.”
“아직 약속한 시간이 좀 남았는데?”
“예. 하지만 지금 이 황금 같은 시기에 자작님이 행정 작업을 꽉꽉 틀어막고 영지의 발전 속도를 늦추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너무 답답해서 말이죠. 그냥 오늘부터 일할게요.”
“…….”
“고맙다고 말 안 하셔도 되요. 이미 들은 걸로 할게요.”
‘고마운 게 아니라 건방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카일에게 에이라가 척척 다가오더니 카일의 옆에 있는 서류 뭉치를 가져다가 멋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통과, 이건 기각, 이건 수정, 이건…….”
일을 하는 에이라를 보고 카일은 식겁했다.
“야… 야야, 멈춰.”
“왜요?”
다급하게 외치는 카일을 보고 에이라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지금 읽기는 읽는 거니?”
“당연하죠. 안 읽고 결재를 어떻게 해요?”
“…방금 전에 결재 서류 내용이 뭐였지?”
“항만 설비 건설을 위한 자재 구입 요청서, 기마 부대의 마갑 구입 요청서, 신형 아티팩트 개발을 위한 마석 수입량 증대 요청서.”
“…….”
“항만 설비는 무조건 증설해야죠. 영주님 하시는 걸 보아하니 차후에는 남방대륙과의 교역도 염두에 두고 계신 것 같은데, 항만 설비의 증설은 필수예요. 그러니 통과. 기마 부대의 마갑은 필요 없잖아요? 영주님의 기마는 투란인들인데 투란족의 기마부대 중갑 기사단으로 만들 것도 아니고 속도를 증시해서 전령과 호송 의뢰 등에 사용하고 있으면서 무슨 마갑이 필요해요. 기각. 신형 아티팩트 개발을 위한 마석 수입은 필요하겠지만 아티팩트의 개요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고 필요한 마석의 분량에 관해서도 적어 두지 않았어요. 그러니 빠꾸… 아니, 수정.”
“…….”
카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에이라가 저 세 가지 서류를 판단하고 결재하는데 걸린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카일이라면 읽어 보는 데만 해도 5분은 걸리고, 신중하게 판단해서 상황 파악을 하고 결재를 하는데 못해도 20분, 어쩌면 30분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그런데 에이라는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그녀는 마치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영지의 상황과 카일의 향후 계획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진짜 천재인가?’
이쯤 되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에이라 수 레드로즈는 틀림없는 천재였다.
“이제 빨리 다른 서류도 줘요. 막 필 받으려고 했는데, 흐름 끊으면 시간만 더 잡아먹는다고요. 가뜩이나 영주님이 그동안 쌓아 놓은 일이 한가득인데.”
“어, 어어…….”
카일은 곱게 서류를 돌려주었다.
에이라의 행정 능력은 놀라웠다.
카일에게 막혀서 꾹꾹 억눌려 있던 행정 서류의 산더미가 하루도 되지 않아서 말끔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으으음……. 끝났다!”
서류를 다 끝내고 에이라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카일은 그런 그녀에게 직접 차를 타주며 말했다.
“수고했다.”
“고맙습니다.”
자기 손보다 커다란 머그컵에 따라져 있는 차를 보고 에이라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이게 뭐에요?”
“따뜻한 우유. 설탕도 탔다.”
“내가 애예요? 커피 있죠? 쩨쩨하게 아끼지 말고 줘요.”
“커피는 애들이 먹기에는 해로운데?”
“그냥 주세요. 난 지금 카페인이 필요하다고요.”
“…설탕하고 크림은?”
“두 스푼씩.”
카일은 직접 커피를 타서 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에이라는 환하게 웃으면서 커피를 받아서 능숙하게 마셨다.
“아아… 좋다…….”
그 모습을 보고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이걸로 확신했다.”
“뭐가요? 나 천재라는 거요.”
“아니, 그건 이미 알았고, 지금 확신한 건 다른 거야.”
“뭔데요?”
“너 지구인이지.”
“……!!”
카일의 말에 에이라의 여유 만만하던 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