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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21화 (121/215)

121화

카일이 만사를 제쳐 두고 오직 내정에만 집중한 지 석 달이 다 되어갔다.

그리고 카일은 깨달았다.

‘이렇게는 안 돼.’

이건 아니었다.

절실하게 깨달았는데 이건 진짜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피곤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문제였지만 그 이상으로 효율이 너무나 안 좋았다.

카일 혼자서 영지의 내정 전체를 다 처리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수였던 것이다.

“내가 미쳤지. 미쳤던 거야.”

사실, 이건 명백하게 카일의 실수가 맞다.

클랜의 경우 카일 혼자서도 전부 케어가 가능했다. 내정의 중요한 골자 전부를 카일 혼자서 정하고 처리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지, 그것도 거의 불모지에 가까운 영지를 재건하면서 내정을 컨트롤하는 것은 아무리 카일이라고 해도 무리였다.

“인재, 인재가 필요해.”

결국 카일은 행정 관료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빌 존스에게 말해서 행정관료 능력이 있는 노예를 구할 수 있느냐고 이미 서신을 보내 놨지만 돌아온 답신은 ‘힘써 보겠다.’라는 게 다였다.

‘제길, 결국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말이잖아?’

사실 내정 관료라는 것도 구하기 어려운 인력이다.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밑바닥에 수습으로 들어가서 몇 년간의 현장 경험을 쌓아야 간신히 쓸 만한 관료 한 명이 완성된다.

카일이 데리고 있는 인재들 중에 가장 현장 관료에 가까운 인물이라면 집사인 파르트 정도였는데 그 한 명으로는 부족했다.

게다가 이미 파르트는 카일보다 더 가혹한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평소 카일의 듬직한 오른팔이 되어 주었던 검은 바람이나 발레리아는 유감스럽지만 이런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재, 인재, 내정에 관련된 인재……. 이런 걸 어디서 구하지?”

카일이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레이나가 카일의 막사 안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주인님. 배의 수리와 개조가 끝났다고 합니다.”

“뭐? 진짜?”

“예. 그렇게 전해 들었어요.”

“한 번 가봐야겠군.”

카일은 즉시 막사를 떠나서 항구로 향했다.

항구로 향하니 거기에는 선박 기술자인 프랑크가 그의 부하들과 함께 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배의 수리와 개조가 끝났다고 들었네. 맞는가?”

“예. 수리는 완벽하게 끝냈고 말씀하신 그것도 배의 후미에 장착했습니다.”

“호오오… 그래?”

카일은 감탄했다.

사실 다른 작업보다 가장 먼저 해달라고 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석 달도 걸리지 않아서 배의 준비가 완벽하게 될지는 몰랐다.

“그럼 배는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나?”

“예. 물론입니다.”

“발레리아!”

“예. 주군.”

“검은 바람과 호크에게 연락해라. 일할 시간이 되었다.”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그리고 처음 작업에는 나 역시 참여할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주군.”

“그래. 첫 작업에는 내가 참석해서 가이드라인을 정해 놔야지.”

사실은 지옥 같은 내정 업무에서 잠시라도 좋으니 좀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더 큰 카일이었다.

* * *

귀족이 되고 영지가 생겼지만 사실 카일에게 일어난 좋은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영지를 정상화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많은 돈을 들여야 했고 써도 써도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카일의 재정 상황도 잠시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런 카일이 유일하게 잠시 재정적으로 이익을 봤던 순간이 있다면 그건 해적들을 상대로 약탈을 했을 때였다.

카일의 예상대로 전 대륙에 악명을 떨치는 사이펀 왕국의 해적들은 그 악명만큼이나 짭짤한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12,000골드와 다섯 척의 중형 범선.

이 얼마나 꿀인가?

카일에게 있어서 해적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꿀단지로 보였다.

문제는 이미 한 번 유인책을 써버렸기 때문에 이 꿀단지를 또 건져 낼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일은 생각했다.

‘놈들이 오지 않으면 찾아가야 마땅하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영지에 온 기술자들에게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배의 수리와 개조를 부탁한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해적이라는 짭짤한 돈주머니를 털기 위해서 배를 수리했고 헤일로를 닦달해서 만든 아티팩트로 개조까지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해적 사냥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상쾌한 바다 바람이 불어오는 망망대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수평선을 보고 있으니 카일은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그 말을 해야지.’

카일은 배의 선수에서 양팔을 쭉 펼치고 말했다.

“나는 해적 왕이 될 테다.”

“주, 주인님. 그러시면 안 돼요. 해적 왕이라니…….”

그러자 옆에 있던 레이나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 마. 그냥 해본 말일 뿐이야.”

“그냥이라고 해도 왜 그런 말을…….”

“한 번은 해보고 싶었거든. 가능하면 밀짚모자를 쓰고 말해야 더 멋있는데.”

“배 위에서 밀짚모자를 왜 쓰죠? 그게 필요한가요?”

“필요해. 필요하고말고.”

“…….”

레이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카일을 바라보았다. 카일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고 옆에 있는 여기사에게 말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 이름이 뭐더라?”

“제니아입니다, 주군.”

제니아라고 이름을 밝힌 인물은 연한 담갈색 머리카락이 허리까치 찰랑거리는 날씬한 체형의 여기사였다. 외모만 보면 청초하고 순박해서 꽃밭에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그녀 역시 엄연한 발레리아의 부하 중에 한 명으로 잘 단련된 일류 기사였다.

항해를 하는 동안 그녀는 특별히 카일의 근접 경호와 전령 역할을 맡았다.

실력은 익스퍼트 하급이었고 발레리아의 직속 부하들 중에서 실력은 중간 정도였다. 다만, 그녀가 선택된 이유는 그녀의 능력 덕분이었다.

단거리 순간이동.

최대 100미터 정도의 거리까지 순간 이동이 가능한 그녀의 능력은 굉장히 귀중했다.

던전에서도 층간을 오가면서 전령으로 활동하기도 했었고, 레이븐을 비롯한 특수부대에서 도움을 청해서 은밀한 임무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능력 덕분에 그녀는 이번 임무에서 카일의 측근 경호를 맡게 된 것이다.

해상에서 다섯 척의 배가 다 떨어져서 이동하는 이 특수한 환경에서 카일의 명령을 다른 배에 원활하게 전달하고 또 만에 하나 카일이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을 것 같은 경우 카일을 최우선적으로 피신시키기 위해서는 그녀의 능력이 최선이었다.

희귀한 능력에 높은 전투능력.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와 카일을 향한 두터운 충성심. 하지만 카일은 그녀를 보고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다.

“아, 그래. 제니아였지. 잘 부탁해.”

“이름 정도는 기억해 주십시오. 그래도 두 번 정도 주인님에게 안기기도 했는데.”

“아……. 미안.”

카일은 미안한 표정으로 제니아에게 웃어 보였다. 제니아는 그런 카일을 보고 아쉬운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여전히 상냥하시구나.’

발레리아의 부하 여기사들 중에 대부분은 카일에게 한두 번 정도는 안겨 봤다.

술에 취해서 카일이 실수를 한 적도 있었고, 그녀들이 집념으로 울고불고 애원하면서 제발 안아 달라고 내가 더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애원하며 안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애원은 보통 코어를 관리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카일의 곁에 있어야 할 기회가 있을 때 많이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안긴다고 해도 카일은 그녀들에게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았다.

코어의 관리가 끝나고 활성화가 되면 그냥 발레리아에게 맡겨버리고 반드시 필요한 대화 이외에는 함부로 말을 걸지도 않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들의 사랑을 애원받으면서도 오히려 최대한 절제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카일의 침실에 주기적으로 들어가는 여자는 아리시아, 발레리아, 레이나. 오직 이 세 명이 전부였다.

다른 여기사들에게는 오히려 매정할 정도로 거리를 두는 카일의 모습에 여기사들은 생각했다.

이것이 주군의 다정함이라고 말이다.

더럽혀진 자신들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에게 얽매이지 말라는 무언의 조언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카일은 검은 바람의 부하들은 이름과 능력까지 다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발레리아의 부하들인 여기사들에게만 그렇게 냉정한 모습을 취하고 있으니 그 속내가 들통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일의 의사가 어떻든 간에 그녀들은 카일에게 이미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이들이다. 여자로서도, 기사로서도 모두 말이다.

‘이런 상냥함이 더 아파요.’

제니아는 그렇게 입에서 나오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한숨만 내쉬었다.

문제를 하나 내겠다.

1.해적 소탕

2. 산적 소탕

3. 뒷골목 조직 소탕.

이 셋 중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은 무엇일까?

답은 1번.

해적 소탕이 가장 어렵다.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보면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해적이다.

해적은 바다를 누비는 도적이다.

여기서부터가 이미 큰 장애물이다.

넓은 바다에서 해적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거기다 기껏 찾는다고 해도 해적들이 먼저 도망가 버리면 추격하는 것도 힘들다. 왜냐하면 해적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속도이기 때문이다.

상선의 경우 짐을 싫어야 하고 군선의 경우 무기와 군인을 잔뜩 싫어야 하기 때문에 속도보다 선적양이나 배의 내구도 등에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해적선은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속도다.

사냥감을 발견해서 추격할 때도, 강적을 만나서 도주할 때도 일단 속도에 우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적은 발견하기도 힘들고 발견해도 추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정한 근거지가 있는 산적이나 도적들은 이런 해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다.

물론 해적들도 평생 바다 위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물자를 보급하고 약탈한 물자를 돈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육지의 항구에 기항을 해야 한다.

‘그럼 그때를 노려서 잡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대부분의 해적들은 자신들의 근거지, 그러니까 모항(母港)이 되는 항구의 국가 혹은 관료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가장 흔한 클리셰 패턴으로는 약탈로 얻어 낸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바치는 대신 그 항구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더 나아가는 적선 나포 허가권이라는 것을 받는다. 적국의 배를 나포해서 그 재산을 약탈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에서 보장받는 것이다.

즉, 칠X해와 비슷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항구에 입항한 해적을 공격하는 것은 그 나라를 향한 공격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러니 해적 토벌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카일은 어떻게 해적을 토벌하려는 걸까?

발상 하나만 바꾸면 방법은 간단했다.

“주인님. 저기가 사이펀 왕국의 알비니아 항구입니다.”

“좋군. 깃발을 올려라.”

“예. 주인님.”

카일의 명령에 따라서 해적선 위에 깃발이 올라갔다. 그것은 누가 봐도 해적임을 알 수 있는 무시무시한 해골 깃발이었다.

“좋군.”

카일은 바다 바람에 펄럭이는 해적 깃발을 보며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해적에는 해적이지.”

* * *

사이펀 왕국의 알비니아 항구.

이곳은 겉으로는 상업 항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은 일곱 개 이상의 해적들이 모여서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는 해적들의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런 항구에 해적들이 들어오는 건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당당하게 해적 깃발을 걸고 들어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저건 뭐지?”

“뭐하는 놈들이야? 왜 해적 깃발을 올리고 들어오는 거야?”

“초짜들인가?”

항구의 선원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다섯 척의 해적선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해적선이 항구까지 거의 다가왔을 때.

“쏴라!”

명령과 함께 해적선에서 화살이 항구로 쏟아졌다.

“어… 어어?”

“으아아아!”

“공격이다!”

항구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해적선에서는 계속해서 화살을 쏘면서 항구로 접근했고 항구가 가까워지자 검은 바람의 전사단과 발레리아의 여기사단이 가장 먼저 상륙했다.

이어서 내린 카일이 명령했다.

“보이는 건 전부 빼앗고 약탈해라!”

참고로, 주인공이 한 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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