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카일이 보기에 이곳의 영지민들이 영주에게 비협조적인 건 그동안 이 영지를 다스렸던 영주들이 쓰레기들이라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필요성이 이었다.
사전에 레이븐과 특수부대원들을 보내서 이 지역을 철저하게 조사한 결과 카일은 이 지역 인근의 도적단의 위치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시기를 정해서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에게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도적단을 싹 쓸어버려라. 생존자는 없어도 좋다.”
“예, 주인님.”
“예, 주군.”
카일의 명령을 받은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는 직속 부하 서른 명과 부하들 일흔 명을 충원해서 각각 백 명씩의 병력을 이끌고 움직였다.
이때 카일의 곁에 있던 헤일로가 말했다.
“자작님. 도적들을 토벌하고자 한다면 마법사인 저도 거드는 게 낫지 않습니까?”
그 말에 카일은 선선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별로 필요 없소. 그보다 전에 내가 말했던 물건을 완성하는 걸 최우선으로 해주시기 바라오.”
그런 카일의 말에 헤일로는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인챈트 학파의 5서클 마법사 아닙니까? 이미 물건의 설계 구조는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실제 프레임을 만들어 줄 대장장이와 마석의 정제 시설만 갖춘다면 양산까지 가능할 겁니다.”
한마디로 자기 일은 다 했다는 말이다.
“뭐, 그렇다면 별로 상관은 없습니다. 그럼 검은 바람…….”
“발레리아 씨,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있는 한 도적들은 아름다운 당신의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그런 헤일로의 말에 발레리아는 찝찝한 표정으로 말했다.
“검은 바람, 자네가 데리고 가면…….”
“정중하게 사양하겠네.”
“하아아…….”
결국 발레리아가 헤일로를 데리고 도적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움직이게 되었다.
이때 헤일로는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을 잘 보여 주면 발레리아가 자신을 다시 볼 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발레리아 씨가 아니라도 레이나 씨나, 로라 씨나, 테레사 씨나, 베네비아 씨나, 리안나 씨나…….’
발레리아 직속 여기사단의 이름을 한 명씩 다 외우고 있는 헤일로였다. 카일도 다 모르는데 말이다.
어쨌든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게 헤일로의 본심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비전투 마법사라고 불리는 인챈트 학파의 마법사라고 해도 5서클 마법사다. 캐스팅이 느려서 그러지 공격 마법도 4서클까지는 완벽하게 익힌 상태다.
도적 토벌 같은 대규모 전투에서 자신 같은 마법사 전력은 분명 유용하게 활용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오산이라고 밝혀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쓸어버려라!”
“예!”
도적단의 위치를 미리 알고 찾아간 발레리아는 특별한 전술 같은 것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저 정면으로 달려가서 정면으로 쓸어버릴 뿐이었다. 애초에 늑대무리가 토끼굴을 덮치면서 작전을 짠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익스퍼트급의 기사들 서른 명이 도적들을 정면에서 압도했고 도적 떼는 공격받고 1분도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피… 피해라!”
“마녀들이다. 악마들이야”
“으어어어어!”
살기 위해서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가려는 도적들이었지만 발레리아가 받은 명령은 가능한 섬멸이었다.
“능력을 해방해도 좋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예. 단장님.”
그녀가 지시를 내린 순간 여기사들에게서 변화가 일어났다.
한 손에 불이나 얼음을 일으켜서 도망가는 도적들을 공격하는 것은 예사였고, 개중에는 몸을 안개처럼 바꿔서 도적들을 앞질러 가서 퇴로를 차단하는 이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근거리에서 순간 이동을 반복하면서 도주하는 적들의 등에 일일이 칼을 꽂아 넣는 이들도 있었다.
“마, 마검사? 아니, 아니야. 이건…….”
헤일로는 진심으로 놀랐다.
처음에 그녀들이 마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마나의 유동이나 캐스팅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저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으아아아!”
“살… 살려 줘…커억……!”
여기사들의 칼날은 용서 없이 도적들을 유린했고 포위망을 유지하며 그걸 지켜보는 병사들은 그걸 보고 태연한 표정으로 구경만 하고 이었다.
마치 늘 보는 것인 광경인 것처럼 말이다. 거기다……..
콰아아아앙!
한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리더니 그곳에서 무언가가 불쑥 솟아났다.
그것은 오우거보다 두 배 이성 거대화된 검은 바람의 머리였다.
“부클랜장님 쪽도 시작한 모양인데?”
“그러게 말이야.”
병사들이 담담하게 하는 말을 듣고 헤일로가 말했다.
“저건 도대체 뭔가? 아니… 설마 자네들도 저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나?”
헤일로의 물음에 병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대답할 수도 없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아! 종속 마법.”
머리 좋은 마법사답게 헤일로는 상황을 바로 깨달았다.
카일이 자신의 모든 부하들을 노예로만 받아들이는 것도 아마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하는군. 저건 도대체 뭐지?’
마법도 아닌데 불과 얼음, 번개 등등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자신의 신체를 변환시킨다거나 짧은 거리지만 공간을 넘어간다거나……. 저런 능력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기사단이라니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이들과 함께 하면서 느낀 바로 발레리아의 여기사단과 검은 바람이 이끄는 투란 전사단은 거의 대등한 위치인 듯 했다. 즉……
‘저쪽에서 날뛰는 검은 바람과 투란족 전사들도 여기에 지지 않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지. 크으으으… 보고 싶다. 물어보고 싶고, 연구하고 싶어.’
하지만 옆에 있는 병사들에게 물어봐야 사실을 알 길은 없었다.
그때 금방 토벌을 마치고 발레리아가 돌아왔다.
“이 장소는 끝났다. 다음으로 이동한다.”
“예. 발레리아 님.”
그때다 싶어서 헤일로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발레리아 씨, 아니 발레리아 단장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좀 전에 단장님이나 다른 기사 분들이 사용한 능력은 도대체 뭡니까? 어떤 능력을 사용하고 계신 겁니까? 그리고 그 능력을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은 겁니까?”
마법사답게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는 헤일로였다. 하지만 발레리아는 냉담한 시선으로 말했다.
“비밀입니다. 그리고 헤일로 씨, 당신도 주인님하고 계약할 때 비밀 엄수의 약속을 맺었을 겁니다.”
“아… 그건, 그랬군 그래서…….”
헤일로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왜 카일이 자신에게 그렇게 당연한 부분을 다시 한번 말하고 계약서에 명시하면서까지 강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세간의 이목으로부터 숨기고 싶은 게 당연했다.
“그렇다면 발레리아 씨, 고작 도적들 따위로 여러분들의 비밀스러운 능력을 사용하는 건 좀 실수 아닙니까?”
“주인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굳이 능력을 숨겨야 할 필요는 없다고요.”
어차피 빅토르는 카일의 능력을 대강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활동 무대가 던전 안에서 밖으로 변한 이상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숨기다 X될 바에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카일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카일에게는 자신의 비밀이 알려진다고 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저에게도 좀 더 비밀을 알려줘도 되지 않습니까?”
헤일로가 끈질기게 달라붙자 발레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주인님에게 직접 물어보시죠. 저는 주인님에게 숨기지 않아도 좋다고 명령받았지 일부러 소문을 퍼트리라고 지시받지는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헤일로는 깨달았다.
카일에 대한 발레리아의 충성심은 그냥 노예라는 위치에서 나오는 종속 계약으로 인한 게 아니라 본인의 진심에서 나오는 충성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복 터져 죽을 놈.’
역시 카일은 용서가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헤일로였다.
* * *
이유야 어찌 되었건,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제 실력을 발휘하는 이상 도적들에게는 버틸 방도가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적단이 박살 났다. 카일은 그런 도적단에 잡혀 있던 마을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려주고 도적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은 모조리 압수했다.
의외로 도적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제법 있어서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도 걸리지 않아서 모든 도적단을 토벌한 카일은 자기 영지의 모든 촌장들을 불러 모았다.
“영주님이 오셨습니다.”
집사인 파테르의 말과 함께 임시로 만든 막사에 카일이 등장했다.
아리시아와 레이나를 거느리고 도착한 카일이 들어오자 촌장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극도의 공경을 보이며 머리를 숙였다.
“나오셨습니까, 영주님.”
카일은 그들의 상석에 앉은 후 촌장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제 좀 인정하는 모양이군.’
처음에 부임했을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모습들이었다.
“앉아라.”
카일의 지시가 떨어지자 모든 영주들이 자리에 앉았다.
카일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한 장의 지도를 펼쳐 보였다.
“전원 주목. 이게 바로 너희들이 살고 있는 영지다.”
카일이 펼친 지도에는 영지의 자세한 지형과 마을의 이름과 규모와 인구수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이 지도만 보면 한눈에 이 영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 할 수 있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었다.
“영주님. 언제 이런 것을 만드신 겁니까?”
촌장 중에서 카일과 가장 안면이 있는 조셉이 놀란 얼굴을 하고 물었다.
그 질문에 카일은 선선히 대답했다.
“너희들에게 각 마을의 인구를 조사해서 데리고 오라고 했었지? 그때부터 준비한 것이다.”
“한 달도 안 된 시기인데…….”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정밀한 지도를 만들다니.”
“과연 영주님이십니다.”
촌장들은 순수하게 카일의 능력에 감탄했다.
지도라는 것이 어디 이렇게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
지형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측량을 몇 번이나 하고 지도를 수정해 가면서 만들어야 정확한 지도가 나온다.
그런데 지금 카일이 보여준 지도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마저도 한눈에 ‘이게 우리 영지구나.’ 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정확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정밀한 지도를…….’
‘이제까지 본 어떤 지도보다 더 정밀해 보여.’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그린 것 같아.’
마지막에 한 촌장이 한 생각이 정답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카일이 마탑을 들렸을 때로 돌아가야 한다.
마탑에서 카일이 샀던 아이템 중에 카메라 비슷한 것이 있었다. 정식 명칭은 순간 평면 정보 기록 장치 어쩌고저쩌고했지만 카일은 그냥 카메라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것을 이용해서 하늘에서 영지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이어 붙여서 지형지물을 파악한 후 얇은 종이를 겹쳐서 지형 지도를 그린 것이다.
사실, 21세기 지구에서 만든 위성 지도와 비슷한 개념인 것이다. 당연히 그것보다는 정밀도가 크게 떨어졌지만 이 세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초정밀 지도였다.
카일은 그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다시피 우리 영지는 남쪽으로는 사이펀 왕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바다를 인접하고 있다. 특별한 자원 따위는 없고, 농업과 어업이 주력 사업이지.”
카일이 말대로였다. 촌장들은 고개를 끄덕이자 카일이 말을 이었다.
“도적들을 토벌해서 치안을 바로 잡고 사이펀 왕국의 해적들도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만 이대로는 영지에 미래가 없다. 농토가 넓고 비옥한 것도 아니고 어촌의 작황도 그리 좋지는 않다고 들었다.”
어업을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먼 바다에 나가서 큰 참치나 대량의 청어때 따위를 잡아와야 했다. 마을 인근의 근해에서 그물을 던지고 사냥을 해봐야 잡고기가 약간 잡힐 뿐이지 제대로 된 수익이 나지는 않았다.
“영주님께서는… 어떤 방안이 있으십니까?”
케인즈라는 이름의 촌장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카일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나는 이 영지를 부흥시킬 수 있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다만 너희들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도 따를 수 있겠나?”
카일의 말에 촌장들은 동시에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영주님이 하시는 말씀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믿고 따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저희가 영주님 말씀을 거역하겠습니까?”
인근 지역의 도적들을 한 달도 안 돼서 다 토벌해 버린 카일에 대한 촌장들의 신뢰도는 대단했다.
그들의 대답을 들은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지시를 내리마. 우선, 브란데 마을, 베레츠 마을, 루벡 마을.”
“예. 영주님.”
“너희들 세 개의 마을은 인구가 적고 터전이 가까우니 하나의 마을로 통합한다.”
“예?”
“아… 그……”
“예, 알겠습니다.”
카일의 지시에 전폭적으로 따르겠다고 말은 했지만 설마 시작부터 마을을 통합해 버리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카일의 파격적인 지시는 그 후에도 이어졌다.
“일메나우 마을과 플라우엔 마을은 농업을 그만둬라. 너희들의 땅은 농토로 쓰기에 부적합하다.”
“영… 영주님. 농사를 그만두면 저희는 무엇을 해서 먹고 삽니까?”
“그렇습니다. 영주님. 저희는 앞으로 뭘 합니까요?”
두 영주의 물음에 카일이 말했다.
“너희들의 토지는 농업보다는 낙농업에 더 적합하다. 앞으로 낙농업을 통해서 우유와 치즈 등을 생산하도록 해라.”
“하… 하지만 저희는 소는 고사하고 염소 한 마리 없는…….”
“초기 자본은 내가 대주겠다. 이미 소와 양을 가지고 오고 있다.”
“아… 아아…….”
“가… 감사합니다. 영주님.”
무리한 요구에 기겁을 했던 두 영주는 순간 말을 잊지 못할 정도로 감격했다. 설마 자신들을 위해서 영주가 이렇게까지 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