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웅성거렸다.
“세상에…….”
“지금 저걸 영주가 저지른 거야?”
“미쳤어, 미쳤어. 이제 어쩌려고 그래?”
“다 죽을 거야, 빌어먹을…….”
사람들은 마을의 목책 외각에 나와서 눈앞의 광경을 보고 크게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바로…….
“크윽…….”
“뭘 봐 이 새끼들아!”
“저리 안 꺼져!”
꽁꽁 묶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세가 등등한 이들은 바로 이 인근 지역의 마을을 주기적으로 약탈하는 도적들이었다.
카일이 그놈들을 모두 잡아들인 것이다.
“지금부터 도적들의 처형을 시작한다.”
카일은 영지민들을 모아 놓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그 말에 영지민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진짜 저지를 생각인가?’
‘미쳤어. 미친 거야.’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이 지랄을 하는 거야?’
평소 자신들을 괴롭히고 약탈하던 도적이다.
그런 도적의 죽음에 영지민들이 환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위축되고 겁을 먹고 있다.
그 이유는 딱 하나다.
보복이 두려워서다.
영주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이 땅에서 영지민들이 도적들을 상대로 살아남는 것은 강하게 맞서는 게 아니라 적당하게 타협하며 머리를 숙이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도적에게 맞서도 이길 수도 없을뿐더러 지독한 복수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일이 도적을 죽이면 순간은 통쾌할 수도 있지만 이 후에 찾아올 도적들의 보복을 생각하면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카일이 형을 막 집행하려고 하는 그때.
“멈추십시오!”
한쪽에서 헐레벌떡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것은 촌장인 조셉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조셉은 카일에게 도착하더니 말했다.
“안, 안됩니다. …영주님.”
“뭐가 말이지?”
“이, 이 들을 죽이면… 안… 됩니다.”
숨도 고르지 못하고 안 된다고만 말하는 조셉에게 카일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이 도적들을 죽이면 안 된다는 거지?”
“그건……”
순간 조셉의 말문이 턱 막혔다.
상식적으로 잡은 도적을 영주가 죽이겠다는데 그걸 말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들을 죽이면 끔찍한 보복이 따라올 것이 뻔했다.
“영주님. 부탁입니다. 제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조셉은 그냥 간절하게 빌었다.
이 영주가 싸지른 똥을 어떻게든 치우기 위해서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하지만 카일은 조셉의 애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별 이유가 없다면 처형을 집행하겠다. 호크.”
“예. 주인님.”
카일의 명령을 받은 호크가 자신의 검을 뽑아서 도적들에게 다가갔다.
“제길, 진짜 안 된다고. 제발 사람이 말하면 좀 들어!”
조셉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
카일이 그런 조셉은 물끄러미 바라보자 조셉이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당신… 당신이 저놈들을 죽이면 도적들이 마을에 보복을 할 거야. 그러면 우리가 뒷감당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저 도적들을 죽이면 곤란하다 이건가? 보복이 무서워서.”
“그, 그렇습… 커억!”
말을 하던 조셉이 자기 배를 잡고 허리를 꺾었다. 카일의 발길질이 명치를 파고 든 것이다.
“병신 같은 새끼.”
카일은 경멸어린 시선으로 조셉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도적들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재산을 바치고, 마을 처녀를 바치면서 연명해 왔던 거냐?”
“당, 당신이 뭘… 안다고…….”
조셉은 입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걸 참으면서 카일의 바지를 잡고 늘어졌다.
“우리는…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살아남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 했어. 이게 우리에게는 생존이고 투쟁이었어. 그런데 당신이 뭔데 우리의 룰을 멋대로 바꾸는 거야?”
“생존? 투쟁? 헛소리 하지 마라. 도적들이 안 죽이고 살려 주는 것에 감지덕지해서 돈과 여자, 아이들까지 가져다 바치는 걸 생존이라고? 투쟁이라고? 개소리 지껄이지 마!”
버럭 소리를 지른 카일은 그대로 구경하고 있는 다른 영주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생존이 아니다! 도적들에게 있어서 너희들은 사람도 아니야. 지금 너희들은 그냥 가축이다!”
카일의 일갈에 주민들 중에 몇 명은 자리에 주저앉아서 흐느끼기 시작했고 몇 명은 분한 표정으로 카일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카일이 말에 나서서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이 카일에게 말했다.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어떻게 하라고 하면 할 테냐?”
“…….”
“참 편하지? 그저 누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인생이라는 건 말이야.”
카일의 조롱 섞인 목소리에 조셉은 고개를 숙였다.
카일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해라. 인간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말입니까?”
“그래. 잘 생각해라. 나는 영주고, 너희는 내 영지의 영주민이다. 그리고 저것들은 도적이지.”
“…….”
“상식적으로 너희가 나에게 무엇을 제시하고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생각하고 판단한 다음 말을 해라.”
“…….”
카일은 엄중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조셉에게 말했다.
“만약 이번 대답에서도 나를 실망시킨다면 정말 너희들이 좋아하는 가축 같은 삶을 살게 해주마. 내가 짖으라면 짖고 기라면 기는 삶. 아마 지금까지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삶이 될 테지.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해라.”
카일의 말은 사실상 마지막 경고였다.
그리고 조셉은 이걸 못 알아들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사방에서 마을을 뜯어 먹으려는 도적들을 상대로 마을을 어떻게든 지켜 왔던 것은 이 남자가 최소한 생각할 머리가 있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게…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조셉은 카일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들을 지켜 주십시오, 영주님.”
“그 대가로 지불할 것은?”
“영지민으로서의 충성과 봉사입니다.”
조셉의 대답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래는 성립되었다.”
그리고 구경하고 있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카일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카일을 영주로 인정한 것이다.
영주민들의 인정을 받은 카일은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도적들은 깔끔하게 처형…하려고 했었다.
“이놈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두목님들이 너희들을 전부 찢어 죽일 거다. 아니, 산채로 가죽을 벗겨 버릴 테다!”
“이 새끼들 두고 봐라. 반드시 피의 복수가 뒤따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도적들은 평화롭게(?) 처형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호크, 정지.”
막 형을 집행하려고 하던 호크는 카일의 명령에 멈췄다. 그러자 도적들은 순간 살았다는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애송이 영주. 댁도 잘 생각하시오.”
“여기서 우리한테 찍히면 영주고 뭐고 끝장이야. 알아?”
놈들 딴에는 카일에게 자신들의 공갈이 먹힐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도적들의 공갈과 협박은 오히려 그들에게 더 큰 재앙을 불러왔을 뿐이다.
“튼튼한 말뚝을 가져와서 이놈들을 묵어라”
“예. 주인님.”
호크는 한 치의 지시도 없이 카일의 명령을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카일이 조셉에게 말했다.
“조셉, 마을 주민들 전원에게 전달해라.”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처형 방식을 바꾼다. 참형이 아니라 석형(石刑)으로 진행한다.”
그 순간 도적들은 난리가 났다.
“야 이 새끼야!”
“말도 안 돼! 이 XX 새끼야!”
“뒤진다. 진짜 죽여버리겠어.”
석형.
처형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야만적인 형벌 중에 하나다.
민중들 앞에 죄인을 세워 놓고 돌을 던져서 죄수를 죽이는 형벌인데 그 잔혹성과 고통은 사형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원래 카일은 굳이 잔인한 처형을 선호하지 않는다.
딱히 죄인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별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유해한 요소를 죽이고자 하면 그냥 죽이면 되는데 왜 굳이 더 많은 수고를 들여서 복잡한 방식으로 죽인단 말인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우선 저 도적들의 공갈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저것들의 협박이 마을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도적을 두려워하는 마음 자체를 바꿔야해.’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도적들을 처형할 수 있는 석형으로 바꾼 것이다.
“돌을 최대한 모아 오고 마을 사람들에게 전원 참가하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한 번 카일을 따르기로 한 조셉은 생각보다 흔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든 카일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단, 아이들은 오지 않아도 좋다. 험한 광경이니 말이야.”
“영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해서 카일이 잡아온 도적들은 석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여졌다
사로 잡힌 도적들의 숫자는 일곱. 그 일곱 명은 커다란 말뚝에 묵힌 상태로 마을 사람들 앞에 던져졌다.
“던져라.”
카일의 명령이 떨어졌고 마을 사람들은 손에 들고 있는 돌을 가지고 머뭇거렸다.
‘역시 바로는 무리인가?’
그동안 도적들에게 당해오면서 뼛속까지 두려움이 새겨진 주민들에게 갑자기 돌을 던지라고 하면 무리일수도 있었다.
‘무언가 계기를… 음?’
그때 카일의 눈에 한 소년이 보였다.
분명 어린아이들은 모두 빼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소년은 손에 돌을 들고 힘껏 집어 던졌다.
퍼억!
“크윽…….”
“제길, 던졌겠다?”
“이 꼬맹이가… 죽여버릴 테다.”
도적들은 돌을 던진 꼬맹이를 험악하게 협박했다. 하지만 소년은 도적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를 살려 내!”
도적들의 분노보다 그들을 향한 소년의 분노가 더 컸다. 그리고 그것이 방아쇠를 당겼다.
퍽, 퍼퍽! 퍼억!
사방에서 돌이 날아오고 영지민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네놈들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 내 아들이!”
“노예로 팔려 간 내 딸을 돌려줘!”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들을 하루에 한 끼도 먹이기 힘들었다. 다 네놈들 때문이야!”
사람들의 분노와 함께 비처럼 쏟아지는 돌덩어리의 폭격에 도적들은 피투성이로 죽어갔다.
“살…살려 줘…….”
“잘못…했… 크윽…….”
“아아악……! 용서해 주세요. 제발… 크아아악!”
처음의 분노와 협박은 안 먹히자 제발 살려 달라는 애원으로 변했지만 사람들이 용서해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 후, 말뚝에 박혀 있던 도적들은 처참한 광경으로 죽었다.
영지민들은 그제야 분이 풀렸는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고, 그때 조셉이 카일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영주님. 이놈들은 저희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위치한 도적단입니다. 위치를 알고 싶으시다면 지금이라도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카일이 딱 잘라서 거절하자 조셉이 다시 말했다.
“빨리 토벌하지 않으시면 도적들이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카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쪽에서 먼지 구름과 함께 검은 바람과 발레리아가 부하들을 잔뜩 이끌고 나타났다.
말에서 내린 검은 바람이 카일에게 다가왔다.
“주인님, 말씀하신 지역의 도적단 다섯 개는 모두 토벌했습니다.”
“음, 수고했다.”
“…….”
카일과 검은 바람의 대화에 조셉은 멍하니 놀란 표정만 지었다.
카일은 그런 조셉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 지역 인근에 있는 도적단 다섯 개의 토벌은 이미 완료되었다.”
“여… 영주님.”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조셉은 깨달았다.
이번 영주는 이제까지 다녀갔던 허접쓰레기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다.